<님포매니악>의 피보나치 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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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이른 나이에 오르가즘을 경험한 후 성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첫 경험 역시 예사롭지 않아서 제롬의 부드러운 손에 꽂힌 조는 그에게 자신의 처녀성을 바친(?)다. 하지만 손의 부드러움과는 상관 없이 섹스에 미숙한 제롬은 전희 단계는 무시하고 바로 삽입에 들어가 정상위 3번, 후배위 5번으로 짧게 조와의 관계를 마무리한다. 이때 화면에는 그들의 관계 위로 ‘3+5’라는 자막이 거대하게 찍힌다.

0,1,2,3,5,8,13,21,34… 로 이어지는 피보나치 수열은 앞의 두 수의 합이 바로 뒤의 수가 되는 수의 배열을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자연계는 불규칙하고 무질서하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매우 정밀한 수학적 원리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조가 자신의 첫 경험을 설명하자 이를 듣던 셀리그먼은 피보나치의 수열을 설명하며 그들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처럼 셀리그먼은 피보나치의 수열을 비롯해 플라잉 낚시법, 에드가 알렌 포의 <어셔가의 몰락>, 바흐의 ‘정선율’ 등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조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상징 안에 가두려고 한다. 섹스로써 세상이 임의로 정해놓은 정상의 범위를 넘어서려는 조와 다르게 셀리그먼은 사회가 권위를 부여한 지식의 틀 안에서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드는 것. 그래서 조가 셀리그먼에게 가장 자주하는 말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랬죠?”이다.

셀리그먼은 지식으로써 조의 위에 군림하려 들지만 사실상 이 영화에서 그는 조롱의 대상이다. 아는 것은 많을지 몰라도 책과 예술품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방 안에서 나온 적 없는 이론으로만 무장한 헛똑똑이일 뿐이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성 관계 한 번 가져본 적 없는 셀리그먼이 실전으로 무장한 조의 섹스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셀리그먼이 피보나치 수열을 들먹이자 화면 위에 커다랗게 뜨는 3+5는 <님포매니악>을 연출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장난기 어른 미장센이다. 이건 일종의 함정이다. 별 의미가 없는 3+5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몰두하며 이 영화를 이해하려 들면 결국 셀리그먼과 같은 오류에 빠지고 만다. 라스 폰 트리에는 조처럼 모든 종류의 제약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자유인을 옹호하면서 이를 억지 이론에 가두고 억압하려는 세력에게 ‘엿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맥스무비
‘미장센 추리 극장’
(20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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