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2 Days in Paris)


사용자 삽입 이미지<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이하 <뉴욕 남, 파리 여>)는 연애 2년차에 접어든 남녀가 이틀 동안 파리에 머물며 벌이는 연애담을 경쾌하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게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특히 여자 주인공 매리온으로 등장하는 줄리 델피가 감독과 각본, 편집과 작곡까지 1인 다역을 맡아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줄리 델피의 실제 삶과 경험, 성격을 토대로 기획된 <뉴욕 남, 파리 여>는 출발부터가 그녀의 원맨쇼를 예고한다. 줄리 델피 자신이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다보니 뉴욕에 사는 남자와 파리에 사는 여자를 주인공 연인으로 설정했다. 양국 간 문화 차이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은 것. 각본 구성에 있어서는 자신과 친한 주변 지인들을 캐릭터의 ‘재료’로 삼았다. 대부분의 출연배우들이 시나리오 단계에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서 정해져 있던 상태였다. 가령, 극중 매리온의 남자친구 잭은 이 역을 연기한 배우 아담 골드버그를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그러다보니 촬영과정에서도 배우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등 가족 같은 친밀한 호흡 속에 진행됐다.

이런 방식의 작업이 가능했던 건 줄리 델피가 <비포 선셋>(2004)을 통해 비슷한 분위기를 경험한 바 있고 그 결과물 또한 좋았기 때문이다(줄리 델피는 <비포 선셋>으로 리처드 링클레이터, 에단 호크와 함께 2005년 아카데미 각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사실 <뉴욕 남, 파리 여>는 유럽여행 중 벌어지는 상황극이라는 점에서 <비포 선라이즈>를, 30대 중반의 남녀가 파리에서 사랑에 관한 달콤 쌉싸래한 로맨스를 나눈다는 점에서 <비포 선셋>을 닮았다. 즉, <뉴욕 남, 파리 여>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하지만 줄리 델피는 “로맨틱하고 달콤했던 <비포 선셋>과 달리 <뉴욕 남, 파리 여>를 다소 거칠고 삐딱하게, 그리고 비열하게 보이게끔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힌다. <비포 선셋>에서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 셀린이 프랑스 여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게끔 긍정적인 면만 부각됐다고 생각한 탓이다.

이를 위해 줄리 델피는 잭을 보수적인 남자로, 매리온을 개방적인 여자로 설정, 각자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생활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주요하게 다룬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낭만과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프랑스 여자의 모습을 강조한다. 체온계를 항문에 넣고(!) 재고 토끼의 머리고기를 먹을 뿐 아니라 전 남자친구와 시도 때도 없이 음담패설을 나누는 등 <뉴욕 남, 파리 여>의 매리온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여자의 모습일까 의심마저 든다. 일련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기획의도가 마치 ‘프랑스 여자에 대한 환상 깨기’가 아닐까 착각하게 된다.

<뉴욕 남, 파리 여>가 말하는 차이는 국적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화 충격 차원의 문제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남녀 사이의 생물학적인 차이도 중요한 잣대다. 한때 장안의 화제였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이성 간에 서로 다른 감성, 언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면서 잭과 매리온 사이의 시각차에서 오는 갈등을 전반부에 배치하는 것.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행복한 남녀관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해와 관용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사랑에 대한 가벼운 대사로 일관하며 웃음만 유발하는 작품이 아니다. 잭과 매리온의 성과 사랑에 대한 폭포수 같은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랑에 관한 묵직한 잠언까지 들을 수 있다. ‘버라이어티’의 평론가 데릭 엘리는 ‘우디 앨런 감독이 초기작에서 보여줬던 특기가 파리의 거리에서 부활했다’고 평가했을 정도. 결국 <뉴욕 남, 파리 여>가 보여주려는 건 달콤한 로맨스에 가려진 씁쓸한 사랑의 뒷모습인 것이다.

사랑에 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뉴욕 남, 파리 여>의 메시지는 평가받을 만하지만 스토리와 연출력이 그에 상응하는 건 아니다. 특히 경쾌한 에피소드 위주로 진행되던 영화가 사랑의 본성을 설파하는 지점에 이르면 갑작스럽게 마무리된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에피소드와 메시지 사이의 균형 맞추기에 실패한 까닭이다. 이는 프랑스인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해 또 다른 면모를 필요 이상 극단으로 밀어붙인 데서 기인한다. <뉴욕 남, 파리 여>에 등장하는 프랑스인은 대부분 무례하고 흉물스럽고 예의라고는 희박한 존재로 묘사된다. 더군다나 이를 프랑스인 전체로 일반화하다보니 캐릭터의 성격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국가적 특징만이 부각돼 감정을 이입하기 어려워진다. 캐릭터들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랑은 논리적으로 규정되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역설하지만 정작 영화 자체가 논리 모순에 빠져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 결과, <뉴욕 남, 파리 여>는 로맨틱 코미디로서 만족할 만한 재미는 주지만 줄리 델피가 의도했던 것 이상의 성과는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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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44호
(2007.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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