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시계공> <섬, 그리고 좀비>를 영화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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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 한국의 장르문학 신작을 내리 읽었다. 김탁환, 정재승의 <눈먼 시계공>, 일전에 한 번 기사로 다룬 적 있는 ‘ZA문학공모전’(‘좀비문학상’을 환영하며) 수상작을 모은 <섬, 그리고 좀비>, 배명훈의 단편집 <안녕! 인공존재>와 김보영의 단편집 <멀리 가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하나같이 화제를 모았던 작품들인 만큼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오늘은 <눈먼 시계공>과 <섬, 그리고 좀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안녕! 인공존재>와 <멀리 가는 이야기>를 제외한 건 배명훈 작가야 이 지면을 통해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고 김보영 작가의 경우, 함께 출간된 또 하나의 단편집 <진화 신화>를 아직 읽지 못해 후에 따로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좀 더 첨언하자면, <눈먼 시계공>과 <섬, 그리고 좀비>와 같은 작품을 한국 극장가에서 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안녕! 인공존재><멀리 가는 이야기>와 비교해 <눈먼 시계공>과 <섬, 그리고 좀비>는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작품인 것이다. 배명훈의 작품이 언어의 가능성을 최대한 밀어붙이고, 김보영의 작품이 현대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인간 가치의 미세한 분열의 결을 찾아 SF적 상상력으로 바라보는 까닭에 언어를 음미하는 맛이 강한 반면 <눈먼 시계공>과 <섬, 그리고 좀비>는 각각 SF소설과 좀비소설로서 장르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로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 것이다. 게다가 이 두 작품의 탄생 배경이 이채로운 점도 글을 쓰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다. 

<눈먼 시계공>은 주로 역사소설을 집필해왔던 김탁환과 물리학자로 유명한 정재승의 공저라는 점에서 우선 관심이 동한다. 2049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뇌를 강탈당한 시체들이 연달아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미래의 서울 풍경을 담았다. <눈먼 시계공>의 전체적인 아이디어는 정재승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김탁환과 함께 소설로 옮겨 쓰면서 각자의 전공을 살리는 방식으로 구성이 이뤄졌다. 구체적인 사건 묘사가 이뤄지면 그 다음 장(章)에 바로 사건의 배경에 대한 과학적인 해설의 성격이 짙은 서술이 이뤄지는 식이다. 가령, 뇌 강탈 살해 사건과 함께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로봇 격투기 대회 ‘배틀원’에 대한 묘사가 이뤄지면 이것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투로 실제 2002년 2월 일본에서 벌어졌던 휴머노이드 로봇 격투기 대회 ‘로보원’에 대한 장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 같은 구성은 지은이 각자의 특기를 살린다는 점 외에 하나의 전제가 더 밑바탕이 된다. <눈먼 시계공>에서 묘사하는 미래 서울의 풍경이 허황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 극중 ‘인간은 꿈을 통해 어제의 추억을 되뇌고, 오늘의 경험을 정리하며, 내일의 숙제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해 두는 대뇌 활동이 아니라 매순간 변하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경험의 질료‘라는 것이다. 기억은 과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와 같은 지문은 이 작품이 뇌, 그중에서도 기억을 왜 중요하게 다루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눈먼 시계공>이 묘사하는 2049년의 서울 풍경은 지금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토대로 구성되었음을, 바투 다가온 미래를 대비하고, 닥쳐서는 안 될 미래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SF소설에서 공간의 묘사는 그래서 필수적이고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현재 욕망하고 있는 ‘어떤’ 모습이 상상일지언정 미래 배경을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눈먼 시계공>이 묘사하는 미래의 서울 역시 철저히 현재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의 집합으로 이뤄진 듯 보인다. 마천루가 즐비한 서울 풍경은 지금의 과시형의 도시 정책의 확장판으로 이해되고, 인간과 결합한 사이보그의 등장에 따른 정체성의 문제는 현재의 다인종 다문화 사회의 미래버전인 듯하며, 상암동 격투기 로봇 전용경기장에서 열리는 로봇 격투기 대회라는 설정은 인간 폭력성의 한계가 과연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무대 같은 인상을 준다. 이처럼 공간의 특성이 특정 욕망을 대표하고 대변한다는 점에서 <눈먼 시계공>은 시각적인 설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섬, 그리고 좀비>와 같은 좀비소설은 좀비 그 자체로 시각적인 장르다. 붉은 눈자하며 창백한 피부 위의 문신처럼 새겨진 붉은 생채기 자국들, 발을 질질 끌며 어슬렁어슬렁 이동하는 모습 등등. 다만 시각적인 피조물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받는 것은 태생적인 배경과 관계가 있다. 좀비는 당대의 현실 속에서 곪고 있는 각종 부정이나 부조리함이 터지면서 생겨난 사회악의 총체다. 그래서 좀비의 탄생 과정을 살피는 것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섬, 그리고 좀비>가 흥미로웠다.

ZA(Zombie Apocalypse)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인 <섬, 그리고 좀비>에는 당선작 <섬>과 가작 <잿빛 도시를 걷다> <도도 사피엔스> <어둠의 맛>, 그리고 심사위원 특별 추천작 <세상 끝 어느 고군분투의 기록>까지 모두 다섯 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은 <어둠의 맛>과 <도도 사피엔스>이었다. 대개의 좀비 소재 작품들이 좀비를 타자화하고 돌연변이로 삼는 것에 반해 <어둠의 맛>과 <도도 사피엔스>는 주체 삼는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둠의 맛>은 철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인공이 좀비가 되어 겪는 소수자의 박해를 다루었고 <도도 사피엔스>는 각종 개발 사업과 오염물질로 발생한 바이러스가 인간들을 어떻게 좀비로 변모시키는지 섬쩍지근한 과정을 해부학과 병리학을 동원해 사실적으로 접근했다.

두 작품은 좀비물 속에 침전한 사회적인 함의 외에도 이 장르가 어떻게 진화해 나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제 철거라든지 무분별한 건설 사업 등과 같은 현재 가장 첨예한 사회 문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정통적이다. 그렇지만 좀비를 피해자의 위치에 세워 소수자의 입장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향을 가늠케 하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지금의 한국 영화계가 잃어버린 그 무엇이기도 하다. 웬일인지 올 여름 극장가에서 한국 공포영화를 찾기가 힘들다. (SF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이 개봉을 앞두고 있긴 하지만 철저히 전편의 흥행을 등에 업은 결과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우리는 언제쯤이면 장르 본연의 재미를 삼은, 이에 더하여 적절한 사회비판과 색다른 시도까지 겸비한 공포영화, SF영화를 볼 수 있을까. 한국 영화계가 <눈먼 시계공>과 <섬, 그리고 좀비>에서 해답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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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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