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밍 풀> ‘무삭제’ DVD가 출시된다고 한다. 개봉 당시 필름이 삭제 돼있었다는 얘기다. 누가 삭제했을까?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를 의심할 수도 있겠으나 그랬다면 이슈가 되었을텐데 그런 소식이 들려온 적은 없다. 이 영화는 1차 심의에서 18세 상영가를 받았다. 부분 삭제된 필름으로 심의를 받았던 것이다.
의문이 든다. <스위밍풀> 수입사측에서 등급을 받지 못할까봐 지레짐작,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미리 삭제하고 심의를 받은 것은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문제다. 영등위가 직접적으로 필름을 자를 권한은 없지만 <죽어도 좋아>, <킬빌 Volume1> 등에서 보여준 전력을 볼 때 간접적으로 가위질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 도리가 없다.
무엇보다 특정부분을 삭제했다고 해서 <스위밍 풀>측은 어떻게 등급통과를 자신할 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그동안 영등위가 심의에서 보여준 기준을 보건데 말이 기준이지 그 해석은 들쭉날쭉 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개봉 당시 과도한 폭력성을 문제삼아 12초 분량을 삭제한 끝에야 겨우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던 <킬빌 Volume1>이었거늘 후에 벌어진 DVD 심사에서는 무삭제 통과되었으며 또한 그 수적인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으나 사지절단이라는 잔인한 강도 면에서 결코 뒤질 것이 없었던 <천년호>의 경우는 15세 관람가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도대체가 상황을 판별할 정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밍 풀> 수입사 측이 미리 필름을 삭제하고 심의를 넣은 의도가 자뭇 궁금해진다. 어쩌면 디비디 시장에서 ‘무삭제’가 가지고 있는 홍보효과 때문은 아닐까?
그 진위여부를 이 지면에서 따지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 가능성만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삭제’라는 떳떳치 못한 행위가 마케팅에 이용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다니. 그 이유는, 제한상영관은 단 한군데도 없으면서 제한상영가라는 웃지 못할 등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급보류와 같은 심의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영등위 관계자들이 방어용으로 흔히 써먹는 레퍼토리가 있다. ‘제한상영가도 등급이다. 우린 기준에 맞춰 등급을 부여할 뿐이다. 제한상영관이 없는 건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악법도 법이란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법을 계속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올바른 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한상영관이 단 한군데도 없는 이 땅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은 누가 봐도 악법이다. 이를 올바로 잡기 위해서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없애거나 제한상영관을 세우면 된다.
그럼 이것은 누가 해야 하나? 제한상영가 등급이라는 부당한 제도에 반대하거나 피해 받는 이들이 해야한다. 그렇다면 불합리한 제도 속에서 심의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는 영등위 관계자들도 이 대열에 동참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실 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있다면 제도에 따라 등급을 부여한 죄 뿐이지. 다시 말해 영등위 위원들도 피해자다.
그러니 영등위 위원들이여, 당신들의 멍에를 풀기 위해서라도 제도 뒤에 숨어 안주할 것이 아니라 제한상영가 등급 폐지/제한상영관 건립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2004. 2. 영화 월간지 <DVD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