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스티브 맥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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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지금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영화는 스티브 맥퀸 연출의 <노예 12년>이다.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무려 9개 부문 후보에 올라가 있는 상태인데 그 어떤 작품보다도 주요 부문의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진다. 아카데미 심사위원 들이 전통적으로 실화에 기초한 감동 스토리에 오스카 트로피를 몰아줬던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노예 12년>은 남북전쟁 발발 전 19세기 미국의 노예제를 폭로한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한다. 저자인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이 실제로 당한 일을 영화에 그대로 옮기고 있는데 그 내용이 사뭇 충격적이다. 바이올린 연주가이자 공예가로 자유를 누리고 있던 노섭은 공연을 위해 뉴욕을 벗어났다가 납치를 당한다. 함께 연주하자며 접근한 이들이 노섭을 노예상에게 팔아넘긴 것. 미국 남부의 루이애나주로 팔려간 노섭은 다시 자유를 얻어 뉴욕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 12년 동안 노예 신분으로 인간 이하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헝거>(2008)와 <셰임>(2011), 단 두 편의 연출작으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스티브 맥퀸은 2013년 솔로몬 노섭의 노예 해방 160주년을 맞아 그의 이야기를 하루 빨리 영화로 만들어 관객에게 알리고 싶었다. “노섭의 이야기는 내가 최근에 보고 들었던 어떤 것보다 충격적이었다. <안나의 일기>가 유럽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만큼 <노예 12년>도 미국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시기의 미국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많은 부분들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극 중 내용과 별개로 스티브 맥퀸이 <노예 12년>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노예 12년>까지 세 편의 연출작을 통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구속된 자들의 사연을 일관되게 주목해온 그이기 때문이다. 데뷔작 <헝거>는 1981년 벨파스트의 메이즈 교도소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다 66일 만에 사망한 IRA(아일랜드 공화군) 소속 보비 샌즈의 실제 옥중 투쟁을 소재로 한다. 두 번째 연출작 <셰임>은 겉으로는 모든 게 완벽해 보이지만 사적 관계에서는 의미를 찾지 못해 사고파는 섹스에만 집착하는 뉴요커의 초상으로 현대인의 공허함을 묘사했다.

스티브 맥퀸은 다양성의 가치가 급격히 추락한 현대사회에서 다수에 의해 의도적으로 감춰지고 탈골되어 온 소수의 사연, 즉 흑역사를 발굴해 일반에 알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노예 12년>의 원작만 해도 그렇다. 솔로몬 노섭이 1853년 1월 극적으로 구조되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해 그해에 베스트셀러로 올랐다. 하지만 영화화 전까지 스티브 맥퀸을 포함해 이 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출간 당시는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주류의 사연이 아닌 까닭에 금새 잊힌 것이다. “나 또한 그전까지 이 책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대부분의 미국인들도 들어본 적이 없을 거다.”

말하자면, 스티브 맥퀸의 영화들은 극 중 인물들을 대리해 다수라는 이유로 논리를 획득한 비상식적인 세상에 맞선 투쟁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맥퀸이 영화를 통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주제는 ‘생존’이다. 맥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가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다수의 폭력으로부터 박해받는 인물들이지만 이를 감내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꺾는 대신 <헝거>의 보비 샌즈처럼 (아이러니한 방식이지만) 단식을 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노예 12년>의 솔로몬 노섭이 ‘우량한 가축’ 취급을 받으며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지옥을 경험하면서까지 생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건 자유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살아남아야지만 더 좋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것. 이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스티브 맥퀸은 인간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행위이고 무엇보다 그런 폭력에 맞선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설파한다. 그래서 맥퀸의 작품을 본다는 건 유희를 위해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와는 또 다른 자세가 요구된다. 실제로 스티브 맥퀸은 자신의 주인공이 고통 받는 모습을 축소하거나 은유하는 식으로 처리하는 법이 절대 없다. 극 중 인물처럼 관객 또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끔 그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연출을 가져간다.  

예컨대, <헝거>의 보비 샌즈를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는 단식 후 삐쩍 마른 몸을 구현하기 위해 실제로 20kg 가까이 감량한 일화는 유명하다. <노예 12년>에도 그에 필적할 만한 장면이 있다. 에드윈 앱스(마이클 패스벤더)는 백인 아내를 두고 흑인 여자 노예를 노리개 삼는 악질 농장주다. 그 여자 노예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며 체벌을 줄 때 앱스는 노섭에게 대신 채찍을 들게 한다. 농장주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 노섭은 동료에게 채찍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일련의 과정을 단 한 번의 편집과정 없이 롱테이크로 따라가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노섭의 상황을 그대로 전시하는 것이다.

그 장면이 주는 여운은 충격과 다르지 않아서 관객들은 대개 노섭이 당하는 육체적 고통과 그에 따른 도덕적 고뇌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스티브 매퀸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제기하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만약 당신이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영국 런던에서 흑인으로 태어난 스티브 맥퀸은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줄곧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다만 고민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연출하는 것이었다. <노예 12년>이 특별했던 것은 자유인으로서의 일상적인 행복과 노예로서 갑자기 들이닥친 끔찍함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의 관점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노예 제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근데 그건 그냥 나 혼자 생각했던 영화 소재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고민하다보니 영화를 보는 우리와 같은 자유인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가족이 있는 평범한 사람. 누가 납치되어 노예가 된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그래서 맥퀸의 영화는 이야기가 속 시원히 종결되는 경우가 없다. 대개의 영화 들처럼 선인에게는 그에 합당한 해피엔딩을, 폭력을 휘두른 이에게는 그에 따른 벌을 내리지 않는다.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비상식과 부조리가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 사건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관객들의 각성을 요구한다. 스티브 맥퀸 영화의 진가는 바로 여기에 있다.

BEYOND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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