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에든버러에 온 이유는 에든버러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히 오후 1시가 되면 ‘펑’하고 포신(실제로는 공포탄)을 쏘아 올린다는 그 유명한 ‘에든버러 성’도, 평평한 돌을 깔아 조성된 마차 도로 위로 거리의 예술가나 기념품점이 즐비해 명소로 각광받는 ‘로열 마일’도, 그러니까 내게는 관심 밖이었다. 내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를 방문한 유일한 이유는 바로 ‘네시’(Nessie), 즉 네스 호(Loch Ness)에 산다는 괴물 때문이었다.
네스 호는 길이가 36km에 이르고, 수심이 240m나 될 정도로 깊고 어두워 예로부터 정체불명의 괴물이 산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실제로 네시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지금도 줄을 잇는다. 또한 수면 위로 긴 목을 내민 희미한 괴생물체 사진이 유수 언론을 통해 수없이 공개된 까닭에 네스 호는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나 또한 그중 한 명이라서 영국을 여행하는 동안 부러 스코틀랜드를 방문, 네시에게 물려죽는 한이 있어도 이 두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에든버러냐고? 네스 호 관련 여행 상품을 운영하는 여행사가 에든버러에 있거든. 이름하여, ‘하이랜드 투어’(Highland Tours)다.
하이랜드 투어는 스코틀랜드 북쪽 산악지대인 하이랜드를 둘러보는 관광 프로그램이다. 나는 24파운드를 주고 네스 호와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스털링 성(Stirling Castle)을 당일로 둘러보는 코스를 선택했다. 출발지인 에든버러 성 앞에는 스코틀랜드 전통복장 킬트를 차려입은 가이드 겸 운전자의 인솔에 맞춰 10명 조금 넘는 사람들이 16인승 밴에 몸을 싣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중에는 대형 잠자리채를 손에 든 이도 있었는데 네시를 자기 손으로 잡겠다며 전의를 불태워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렇게 하이랜드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의 목적은 한결같았다. 어떻게 하면 전설 속의 괴물과 조우할 수 있을까,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있었던 것이다.
가이드는 이동하는 내내 스코틀랜드와 앙숙인 잉글랜드를 농담 소재 삼아 입담을 과시하며 투어 참석자들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에든버러에서 3시간 남짓 달려 도달한 하이랜드 일대 풍경의 첫 인상은 음산하고 감때사나웠다. 가지만 무성한 나무들이 악마의 손처럼 땅 위로 불쑥 솟아 있고 안개가 사슬을 두른 듯 나무 주변에 자욱하게 퍼져있어 괴물이 출몰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열성 네시 사냥꾼(?)의 잠자리채는 좌석 밑으로 숨겨진 지 오래였고 네스 호가 멀지 않았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투어 참석자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침을 꼴까닥,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네스 호에는 수면 위로 길게 목을 내민 네시, 가 아니라 네시의 흔적을 찾겠다며 카메라 잡은 손을 최대한 뻗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런 시장 통인 분위기에서 네시는 물론이고 네시 할아비도 모습을 드러낼 것 같지는 않았다. 네시를 보겠다며 거금을 들여 투어를 신청한 참석자들이 실망감을 드러내려던 그 순간, 가이드는 “네시가 나타났다.”며 일행을 한쪽 방향으로 이끌었다. 전설로만 떠돌던 네시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투어 참석자 모두 ‘나의 마음 너의 마음 울렁울렁 두근두근 쿵쿵’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가이드를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정말 네시가 있었다. 사람들의 입이 하나같이 커졌다.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수십 마리가!
그곳은 다름 아닌 네시 테마상품으로 가득한 기념품점이었다. 가이드는 말했다. “실제로 있는 게 중요하겠어요.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게 중요하지. 네스 호의 전설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에 한 참석자가 물었다. “스코틀랜드 식 농담인가요?“ 가이드가 답했다. ”잉글랜드에서 오셨나요? 예, 맞습니다. 잉글랜드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농담이죠.“ 그제야 사람들은 껄껄 웃기 시작했다. 에든버러로 돌아가는 모든 투어 참석자들의 손에는 기념품점에서 구입한 갖가지 네시 인형이 들려 있었다. 그날 난 네스 호에서 괴물을 보았다. 일러스트 허남준

현대자동차 사보
201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