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Trouble with the Cu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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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무법자>(1964) <더티 해리>(1971)의 폭주하는 마초 캐릭터부터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그랜 토리노>(2008)의 한발자국 물러설 줄 아는 어른의 역할까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월의 나이테를 하나하나 늘여가며 그 스스로가 장르가 된 유일무이한 배우다. <그랜 토리노>를 끝으로 배우 은퇴를 선언한 건 더 이상 보여줄 세월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4년 만에 배우로 돌아온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에는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성찰이 담겨있는 걸까.

거스는 재능 있는 야구 선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봐야 하는 스카우터다. 매일 같이 현장에 나간 탓에 방망이에 공이 맞는 소리만으로도 재목감을 알아볼 정도다. 하지만 시력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의 판단에 의심을 보내는 시선이 많아진다. 거스의 건강이 걱정된 딸 미키가 찾아오지만 불같은 성격의 둘은 서로 으르렁대기 일쑤다. 때마침 전도유망한 선수였다가 치명적인 부상으로 스카우터가 된 쟈니가 찾아와 중재하려들지만 쉽지가 않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로버트 로렌즈의 연출 데뷔작이다. 로렌즈는 이스트우드가 감독했던 주요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그랜 토리노>를 적당히 섞어 야구 버전으로 개비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스트우드처럼 별다른 기교 없는 고전적 연출을 구사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결과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구단으로부터 은퇴 압박을 받던 거스와 삐걱거리던 미키와 쟈니의 사랑이 급격하게 해피엔딩으로 치닫는 결말은 유아적일 정도다.

그렇다고 이스트우드의 출연까지 빛이 바래는 건 아니다. 거스는 이스트우드의 연기가 아니면 상상이 가지 않는 캐릭터다. 시력 저하 때문에 사고를 내고도 운전대를 놓지 않는 고집하며 딸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를 위협하는 호전성까지. 하지만 이스트우드라는 장르가 보여주는 어른의 면모는 육체적 한계를 인정하고 운전대를 놓아야 할 때와 딸이 좋은 남자를 찾아 자신이 떠나갈 때를 아는 순간에 번뜩인다. 거스처럼 직구처럼 살아온 이가 인생의 변화구를 익히고 좀 더 유연해지는 순간이랄까. 거스는 이를 두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삶이 보인다”며 현자처럼 얘기한다. 그래서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그랜 토리노> 이후 배우 이스트우드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내놓은 보너스트랙 같은 기분이 느껴지는 것이다.

movie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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