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패션지와 평화의 상관관계

사용자 삽입 이미지가히 남성 패션지(紙)의 전성시대다. 기존의 <아레나> <GQ> <에스콰이어> <루엘> 등에 더해 <LEON> <GENTLEMAN> <BAZZAR MAN> <GEEK> 등 새로 창간한 잡지들이 등장하면서 남성 패션지 시장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혹자들이 말하길, ‘남성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아졌다’, ‘취향을 갖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광고 시장에서 남성 소비자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 결과, ‘남성 패션지의 시장이 날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 패션지를 두고 제기되는 이런저런 발언들을 종합하면 결국 미(美)에 대한 남성들의 욕망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남성 패션지들이 바야흐로 치열한 경쟁시대에 돌입하면서 이들의 타깃 독자층도 세분화되는 추세다. 기존의 남성 패션지들이 경제력을 겸비한 30대 이상의 남성 독자층을 겨냥했다면 <LEON>은 좀 더 구체적으로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30대를 타깃으로 하고, <GEEK>은 파격적으로 20대를 주요 독자층으로 삼는다. 그에 따라, 이들 남성 패션지들의 커버 모델도 잡지의 성격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라이언 고슬링 등의 할리우드 스타와 이병헌, 정우성, 원빈, 소지섭 등의 국내 스타가 점유하던 커버가 <LEON>은 지롤라모 판체타가 전속 커버 모델로 매달 등장하고(유머러스하지 아니한가!), <GEEK>은 이제훈, 이민기 등 20대가 선망하는 스타가 전면에 나선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 이들 잡지를 비교, 분석하여 남성 패션지 소비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라고 궁금해 할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니고. 다만 남성패션지의 유행에 대한 비판도 있어 보인다. 그들이 내세우는 독자층이나 커버 모델만큼 콘텐츠 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심의 시선들 말이다. 유명 브랜드 광고를 지나 신상품 소개를 거쳐 특집 기사, 셀러브리티 화보와 인터뷰를 섭렵하는 순의 구성은 별 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비판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와 같은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성 패션지의 유행 자체만으로도 꽤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결국 이들 남성 패션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신사 Gentleman’다. 더 정확히는 ‘신사 만들기’다. 바로 이와 같은 목적 하에서 남성 패션지들의 지면은 광고부터 콘텐츠까지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런데 이들 잡지들이 내세우는 신사는 대체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걸까? 남성 패션지들이 주로 직면하는 비판 중 하나인 고가의 명품 소개, 그러니까 이를 구매할 수 있는 돈 많은 남자들이야말로 이들 잡지가 지향하는 신사의 상(像)인 걸까? 그럼 명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남성 패션지를 구입해서 보는 나 같은 사람은 대체 뭘까? 내가 보기에 이들 잡지들이 명품 소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긴 해도 단순히 독자들의 소비 욕을 부추기는 것 이상의 가치 추구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패션은 태도의 반영이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남자들이라면 꽤 익숙한 경험일 텐데, 군대를 제대한 사람들은 평상시 멀쩡하다가도 예비군 훈련 때문에 군복만 입으면 갑자기 돌변하기 시작한다. 군복을 통해 체화된 군대의 기억이나 행동이 되살아나서인지 다소 과격해지거나 과하게 껄렁해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기업들이 사원들에게 되도록이면 튀지 않는 형태의 양복을 요구하는 것은 회사의 이미지도 있지만 실은 조직 논리에 순응할 수 있게끔 취한 조치 중 하나라 할 만하다. 패션은 그야말로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기증명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전까지 한국사회에서 목격되는 남성들의 패션은 어떠했나. 흔히 우리가 ‘패션 테러리스트’로 비하하는 사례를 살펴보면, 바지를 허리춤 위에까지 올려 입는다든지, 샌들 위에 양말을 길게 올려 신는다든지, 양복의 색상에 관계없이 흰 양말만 고수한다든지 등등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 아방가르드(?)한 스타일 때문에 일상의 대화에선 이들을 쉽게 우스갯거리 삼고는 하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사회의 미관을 해치는 폭력에 가깝다는 점에서 ‘테러리스트’라는 수식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패션을 명품과 등가에 놓고, 고로 사치와 같은 등식으로 접근하거나 이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지점에서 남성 패션지들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사실 이들 잡지들이 강조하는 건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의 가격보다 흔히 ‘티피오 TPO’로 일컬어지는 패션에 대한 태도다. 티피오라 함은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온 용어로, 의상을 경우에 알맞게 맞춰 입는 것을 말한다. 이를 적용해 남성 패션지의 명품 소개 페이지를 이야기하자면, 광고 효과의 목적이 분명 크겠지만 이를 통해 상품을 보는 안목을 기르고 그럼으로써 패션에 대한 감각을 폭넓게 익히자는 뜻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남성 패션지가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티피오는 패션이란 선천적인 감각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배우고 익혀야하는 예의라는 사실과 맞닿아있다. 패션 테러리스트가 많다는 건 우리가 이들을 목격하는 것만큼 이 사회에 예의가 실종됐다는 의미다. 사회가 폭력적이라는 얘기인 셈인데 이를 패션과 연결시킨다는 게 행여 황당한 주장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다만 패션이 미(美)에 대한 감각이라고 할 때 그와 같은 감각의 기저에는 자연에 대한 존중이 깔려있다고 보는 것이다. 자연은 곧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법이다. 그러니 패션이야말로 미를 추구함으로써 자연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의식이자 행위가 아닌가. 실제로 베트남 전쟁 당시 히피들은 반전(反戰)의 기치를 높이며 그들의 이념을 패션으로 분출했다. 자유와 반전의 상징인 꽃은 액세서리로 활용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인디언 복장과 같은 민속 복식을 차용하니, 히피 패션은 곧 평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나는 작금의 한국에서의 남성 패션지의 유행은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평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간 행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워낙 남성성이 강해 남성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는다는 게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편에 속한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 그렇거니와 이를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환경, 즉 군대와 같은 획일화된 조직에서 패션은 그야말로 뒷자리로 밀려나기 일쑤다. 게다가 군대의 조직 논리가 고스란히 사회 시스템에 편입(?)되어 한국 전체를 움직이는 상황에서 패션은 여자들의 전유물이거나 무엇보다 여자 같은 남자들이나 관심을 갖는 별난 취미쯤으로 의미가 축소되거나 과장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남성 패션지들이 유행할 정도로 미에 대한 남성들의 욕구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니, 확실히 시대가 변한 것이다.
 
물론 패션이란 감각은 없어도 살아가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패션이 남녀 할 것 없이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른 배경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당한 말이지만 역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대중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한국이 정신적으로 더 풍요로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특히 조직 논리와 획일화에 익숙한 남자들이 패션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 사회는 점점 다채로워지고 있는 듯 보인다. 다양성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갈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갈등이 적다면 서로 부딪히는 일도 없어 세상은 평화로워지고 아름다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파괴의 주범(?)인 남자들이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고 그에 따라 남성 패션지의 대거 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 꽤 고무적이지 않은가. 남성 패션지의 유행이 곧 평화적인 환경에 대한 조성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cartoon 허남준

ARENA
2012년 12월호

4 thoughts on “남성 패션지와 평화의 상관관계”

  1. 동물들도 원래 수컷들의 치장이 좀 요란하지 않나요? 이건 평화이기 보다는 연애시장에 팔리기 위한 전략… 이라고 우겨볼래요.

    1. 오~ 이쁜이님 컴백홈 하셨어요? ^^ 성지순례 하고 오셨으니 이제 성자가 되셨겠네요 ㅋㅋ 맞아요, 이쁜이님 말이. 저 기사 쓰면서도 제가 너무 막 나간 거 같아서 좀 찜찜했어요 ^^; 조만간 저 서울아트시네마 가니까요, 준비한 선물은 그날 주시면 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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