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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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영화기자 12년째다. 한국영화가 황금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시작해서였는지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참 별 일도 많았는데 첫 번째 취재만큼 기억에 남는 일도 없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 3가의 파고다 극장에 대한 일종의 잠입 취재였다.

당시 파고다 극장은 중년의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다. 지금이야 동성애자를 이성애자와 구분해 사고하지 않지만 당시의 나는 이성애자 중심의 교육을 받고 생활해온 터라 파고다 극장 취재 건이 영 두렵기만 했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파고다 극장은 파고다 공원 바로 옆 건물 2층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그 흔한 극장 간판 없이 작은 매표소만 운영하고 있어 세상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묘한 곳이었다. 당시 주성치의 <소림축구>가 상영 중에 있었는데 코믹한 장면이 나와도 누구하나 웃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기억이 정확한 것이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경직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앉은 곳을 피해 멀찍이 자리 잡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멀티플렉스와는 다르게 좀 허름했던 극장이었던지라 왠지 불길하고 스산한 공기가 내 주위를 감싸는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극장에 들어왔고 그 많은 자리를 놔두고 하필이면 내 옆에 앉았다. 심적으로 잔뜩 움츠러들고 있었던 나는 놀라서 그 극장을 뛰쳐나왔다.

극장의 외관을 얼른 카메라로 찍고 사무실로 돌아와 어찌 어찌 원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편집장은 외관 사진만으로는 파고다 극장인 걸 알기가 어렵다며 내부 사진을 다시 찍어올 것을 명령했다. “지금이요?” “자기 신입기자 아니야? 오늘 마친 취재는 오늘 원고 마감이 원칙이야.”

‘에이 xx, 나 안 해’라고 속으로 외친 후 편집장의 지시에 따라 군말 없이 다시 한 번 파고다 극장으로 향했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극장에 도착한 나는 ‘꼼수’를 쓰기로 작정했다. 상영관 입구를 열자마자 카메라 셔터를 누른 후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듯 극장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첫 번째 취재 원고는 결국, 기사가 되지 못했다. 동성애자에게 편견이 있던 나는 그들과 파고다 극장을 희화화했고 편집장은 균형 감각이 떨어진다며 관련 원고를 속된 말로 ‘킬’ 시킨 것이었다. 그때 나는 고생해서 취재해온 원고를 어떻게 채택하지 않느냐며 속으로 꽤 분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의 내가 당시 편집장이었다면 나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 그 원고를 쓰레기통에 처넣었을 것 같다. 그만큼 기자에게 균형 감각은 중요하다. 그러니까, 첫 번째 취재 이후 지금까지 나에게 기자 생활은 각종 편견을 버린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파고다 극장이 있던 곳을 지나칠 때면 기자의 본분에 대해서 반문하고는 한다. 나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지?

movieweek
NO.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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