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재자>(My Dict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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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가 주목하는 소재 중 하나가 ‘아버지’다. 지금 충무로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감독들이 주로 30~40대이다 보니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 감독의 아버지 세대가 혼란스러운 근현대사를 통과한 까닭인지 자식들과 소통이 원만하지 않았던 것이 더욱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독재자’처럼 가족 위에 군림해왔던 아버지에게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나의 독재자>는 그와 같은 궁금증에서 출발한 영화다.

철천지원수 같은 아버지

성근(설경구)은 무대 위에 오를 기회를 잡지 못하는 무명배우다. ‘리어왕’ 공연을 앞두고 주연 배우가 감독과 불화가 생기면서 기회가 찾아온다. 아버지가 무대에 선 모습을 보고 싶었던 아들 태식은 공연장을 찾지만,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한 성근이 제대로 연기를 하지 못하자 크게 실망한다. 그건 성근도 마찬가지. 하지만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리허설을 위해 비밀리에 김일성 대역을 찾던 정부 측 관계자에 의해 성근이 발탁된다. 이를 위해 성근은 필사적인 노력을 펼치지만, 회담은 무기한 연기되고 설상가상으로 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한국의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실제와 같은 리허설을 펼쳤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다. <나의 독재자>를 연출한 이해준 감독은 관련 기사를 보고는 흥미를 느끼는 것을 넘어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반대편의 논리로 살아야 했던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일까 궁금했고 바로 그와 같은 호기심에서 이 영화가 출발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로 끌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데 이는 “저희 아버지도 독재자 같은 면이 있었고 그런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이해해보고 싶었다.”는 거다.

김일성 대역을 맡은 배우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고 해서 <나의 독재자>가 북한과 관련한 영화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성사가 고조되던 1972년을 배경으로 삼았던 영화는 회담 취소와 함께 20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리고 1994년으로 옮겨 가 성근의 아들인 태식(박해일)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1972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태식은 30대 초중반으로 성장했는데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지는 못한다. 거액의 빚더미에 올라 도망자 신세인 태식은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그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은 피하지만 유추하기에 크게 어려운 대목은 아니다. 김일성 대역이 취소된 뒤에도 자나 깨나 ‘혁명 위업’, ‘자급자족’, ‘민족경제’ 등의 구호를 외치는 성근은 주변 사람, 특히 태식에게는 자신의 앞길을 막은 원수와도 같은 존재였을 터다.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믿는 아버지가 미친놈 취급을 받으니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겠으며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매장을 당하기에 십상인 시대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무엇보다 경제생활을 해야 하는 아버지의 상태가 온전치 않다 보니 태식은 가난을 안고 성장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태식의 인생 가치는 오로지 돈이다. 그는 지금 어떻게 하면 큰돈을 쉽게 벌어들일까 다단계 회사에서 많은 사람을 ‘꼬시는’ 중이다. 태식이 번듯한 직장을 가지기는 힘들었을 거다.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좋은 대학은 꿈도 못 꿨을 것이고 게다가 빨갱이(?) 집안 출신이니 직업을 구하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을까. 그가 아버지와 오래전부터 인연을 끊은 이유다. 그런 태식이 먼저 아버지를 찾는다. 분당의 옛집을 버려뒀었는데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 보상금을 받게 됐고 아버지의 도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 오~ 나의 아버지

한국영화에서 아버지는 전혀 새로운 소재가 아니다. 이해준 감독만 해도 연출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2006)에서 동성을 사랑하는 아들을 등장시켜 폭력적인 아버지와 반목하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 적이 있다. 다만 <나의 독재자>가 신선한 소재로 받아들여지는 건 김일성을 연기하기 위해서 말투부터 제스처 하나하나까지 필사적으로 몰입하는 성근에게서 배우 예술의 한 방법론을 꺼내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바로 메소드 연기다. 메소드 연기는 자신이 맡은 역에 완전히 동화되는 연기법을 말한다.

성근이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착각하는 이유는 결정적으로 메소드 연기에 있다. 그런데 극 중에서 활용되는 메소드 연기는 강제적인 측면이 있다. 사실 성근이 받은 김일성 대역 오디션은 남영동으로 추정되는 지하 고문실에서 강제적으로 이뤄진 경우다. 게다가 성근의 캐스팅이 확정된 후 연기 연습을 위해 기용되는 인물 중 한 명은 학생운동을 하다가 빨갱이 혐의를 받고 잡혀 온 대학생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중앙정보부장이 이 학생을 북한 사정에 정통하다고 판단해 성근에게 북한의 체재와 사상에 대해 상세히 일러주게 시킨 것이다.

그것이 어디 성근의 경우에만 해당할까. 굳이 고문실에 끌려간 경험이 없더라도 우리의 아버지들은 행여 자신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북한을 찬양하거나 고무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자신이, 가족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러워 하며 엄혹한 시절을 통과해 왔다.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보릿고개를 통과하며 새마을 운동의 시대를 거쳤던 아버지들은 또한 오로지 잘 살아야 한다는 국가적인 목표를 개인의 신념으로 받아들이며 당신들의 젊은 시절을 희생해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아버지들이 잃은 가치는 또 얼마나 컸던가. 어떻게든 가난을 떨쳐 버리겠다고 일터에서 살다시피 하며 돈을 모으고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마련했건만 돌아온 건 자식들의 냉대와 무관심이었다. 하 수상했던 시대와 국가의 아젠다에 주입되어 개인을 잃어버리고 독재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아버지들의 비극. <나의 독재자>의 이해준 감독이 김일성 대역이라는 소재와 메소드라는 연기론을 내세워 성근과 태식의 부자(父子) 관계를 풀어간 건 한국의 비극적 근현대사가 중요하게 놓여 있다.

“아버지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가 알고 있던 독재자 같은 아버지의 모습은 거기 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있었다. 무엇이 아버지를 지금의 아버지로 만들었을까.” 이해준 감독의 말이 아니더라도 서로 애증 하거나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부자는 주변에서 쉬이 목격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나의 독재자>는 이해준 감독이 자식 세대를 대표해 아버지에게 건네는 영화적 화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래서 아버지 성근 역할 못지 않게 아들인 태식의 비중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잊지 말아야 할 건 태식 또한 아버지가 될 운명이라는 거다. 그렇게 아버지를 원망했던 태식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거울삼아 자신의 자식 세대와는 좀 더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까. 시대는 또 달라졌다. 신도시가 되기 전의 분당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재개발과 강남으로 대표되는 부(富)의 가치가 지금 이 시대 한국인의 전반적인 인식을 지배하는 삶의 ‘메소드’가 되었다. 자식 또한 아버지가 되어야 할 운명. <나의 독재자>는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건 그 자신 또한 아버지가 되어간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시사저널
(20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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