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사용자 삽입 이미지리처드 매드슨은 자신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1954)를 영화화한 <지상 최후의 사나이>(1964)와 <오메가 맨>(1971)을 생각하면 지금도 한숨부터 나온다. 가명 ‘로건 스완슨’(Logan Swanson)으로 각색에 참여한 <지상 최후의 사나이>에 대한 평가는 ‘원작을 다룬 첫 번째 영화’라는 역사적 의미로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당시 유행하던 흡혈귀 설정에 치중해 원작의 매력을 퇴색시키고 만 것이다.

두 번째 <오메가 맨>은 기억하는 것조차 끔찍할 정도. 슈퍼스타 찰턴 헤스턴이 나왔지만 액션만 강조해 원작의 묵시록적 세계관이 꼴사나운 영웅물로 변질된 것이다. <지상 최후의 사나이> 전부터 러브콜을 보냈던 영국 공포영화 전문제작사 해머 스튜디오와의 작업도 좌초되고 말았다. 제목을 <밤의 피조물 The Night Creature>로 바꾸고 시나리오를 완성했건만 영국 검열관들이 “너무 진짜 같다”고 경고하자 해머 스튜디오가 손을 뗀 것이다.

워너브러더스는 <오메가 맨>이 끝난 후 일찌감치 판권을 확보하고 적당한 영화화 시기를 모색 중이었다. 각색문제에 부딪혀 난항을 거듭하던 프로젝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1994년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서다. 그러나 불어나는 제작비, 시나리오를 둘러싼 견해차로 물 건너간 뒤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클 베이, 기예르모 델 토로를 전전하는 계륵 신세로 전락했다. 대가들도 감당하지 못한 전설의 프로젝트가 뮤직비디오로 잔뼈가 굵은, 그러나 고작 한 편의 퇴마영화를 완성한 애송이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콘스탄틴>(2005)의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이 1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나는 전설이다>를 만든 건 기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완성만으로 ‘기적’이라 말할 순 없다. 과거의 불쾌한 기억을 떨치지 못한 리처드 매드슨이 새로운 <나는 전설이다>의 개봉을 눈을 부릅뜬 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트 맨 스탠딩(Last Man Standing)

‘멸망한 지구에서 홀로 생존하는 인간’이라는 한 줄의 설정만으로도 구미를 당긴다. 생존만이 일상인 그를 좀비가 공격한다는 설정은 원작이 세 번씩이나 영화의 부름을 받는 원천이었다.

때는 2012년 9월 14일.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애견 ‘샘’이 있지만 인간과 대화한 건 3년간 한 번도 없다. 전세계를 먹어 삼킨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간의 씨는 말라버렸다. 유일한 생존자인 네빌의 일과는 단조롭다. 거리를 배회하며 식량과 옷가지를 구하고 무료한 시간을 이기기 위해 DVD를 구한다. 귀가 시간도 일정하다. 해가 지평선을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집으로 돌아온다. 밤은 그의 시간이 아니다.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었다가 부작용으로 다시 살아난 좀비들의 시간이다. 좀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요새처럼 집을 꾸민 네빌은 어둠이 지배하는 동안 좀비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해독제를 구하려 연구에 몰두한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그는 모든 AM 주파수를 동원해 어딘 가에 있을지 모를 또 다른 생존자를 구하는 작업도 잊지 않는다.

프랜시스 로렌스는 <콘스탄틴>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전설이다>의 연출 제안을 받았다. 후반작업 중이던 그는 <콘스탄틴> 개봉 즈음 차기작을 물색했고, 그제야 시나리오를 접할 수 있었다. 각본가 마크 프로토세비치가 쓴 시나리오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작에 너무 충실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설정을 빌린 <28일 후>(2003)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이미 이룩한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28일 후>는 대단한 영화다. 하지만 리메이크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 로렌스는 <콘스탄틴>에서 작업했던 프로듀서이자 각본가 아키바 골즈먼을 끌어들여 원작의 기본 골격만 남기고 많은 부분을 새로 구성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전설이다>는 ‘지상 최후의 사나이가 펼치는 생존사투’라는 설정 외에 <28일 후>와는 많은 지점에서 차별된다. 그중 바이러스 발생 3년 후의 사연을 다룬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28일 후>가 좀비의 탄생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나는 전설이다>는 좀비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기존 좀비영화와 설정을 달리한 로렌스 감독은 장르적인 접근을 피하려 했다. 좀비물이 갖는 재미 중 하나는 주인공과 좀비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인데 로렌스는 이런 장면들이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을 자제하고 로버트 네빌에 집중해 캐릭터 영화로 만들었다. 원작에 등장하는 인간과 좀비 외 신인류의 존재는 극중에서 자취를 감췄고, 따라서 영화의 3분의 2를 네빌 혼자 이끌어가는 영화가 됐다. 둔중한 버디액션영화에서 진가를 발휘했던 윌 스미스는 기존 캐릭터에서 벗어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무인도에 홀로 남아 삶을 이어가는 <캐스트 어웨이>(2000)의 톰 행크스처럼 윌 스미스는 대화 없이 고요하게 진행되는 영화 속에서 미묘한 감정과 섬세한 행동만으로 근 미래의 묵시록적 비전을 전달하는 ‘원맨쇼’를 펼친다.


살아난 시체들의 전설

윌 스미스가 로버트 네빌로 분해 보여주는 원맨쇼는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소설 <나는 전설이다>가 전설 혹은 신화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건 현실의 비극을 극단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원작자 리처드 매드슨은 좀비에게 흡혈귀 신화를 덧씌우고 이를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들은 괴물도, 흡혈귀도, 심지어 죽은 것도 아니다. 신체적으로만 살아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의학적인 방법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 그들에게 발생하는 많은 증상과 징후는 우리가 바이러스에서 얻었던 증상과 많은 부분 닮았다.” 악랄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는 소설 속에서 흡혈귀가 빛이나 마늘의 고약한 냄새에 맥을 못 추는 이유를 과학적 분석을 통해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그렇게 불길한 신화를 현실화하는 데 공을 들인 이유는 당대 미국인들을 지배하고 있던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신경질적인 징후를 은유하기 위해서다. 소설 속 좀비가 체내에 침투한 박테리아로 인해 더욱 폭력적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리처드 매드슨은 인간의 폭력성이 시간을 더할수록 도를 더해간다고 믿었다. 인간의 진화를 폭력으로 증명하는 그에게 현실은 비극이다. 더 큰 비극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출구라는 점이다. 그래서 폭력에 저항하는 방법은 더 큰 폭력으로 이겨내는 것이 아닌 공포를 익숙한 생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설 속 네빌처럼 인간을 갈망하고, 그의 목숨을 노리는 신인류의 공격에 별다른 저항 없이 평화를 갈구하는 태도는 흘러간 태고적 과거, 즉 전설에서나 가능할법한 꿈같은 이야기인 셈이다. 결국 <나는 전설이다>는 현실의 비극과 통하는 이야기다.

<지상 최후의 사나이>와 <오메가 맨>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건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를 간파하고 영화에 활용한 것은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었다. 로메로는 <나는 전설이다>를 읽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초안이 된 단편소설을 썼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현대 좀비물의 원형이라는 극찬을 받았지만 로메로가 매드슨의 소설에서 가져온 건 ‘살아난 시체들’만이 아니다.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메타포로 좀비를 가져왔다. 백인 경찰이 좀비 대신 흑인에게 총을 겨눠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적 결말은 지금 봐도 충격적이다.(매드슨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밝혔다) <나는 전설이다>의 주요 설정을 고스란히 차용한 대니 보일의 <28일 후> 역시 다르지 않다. 광대한 런던 거리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의 모습은 대단한 스펙터클이지만 ‘인간과 좀비의 대결‘에서 ‘인간과 인간의 싸움’으로 마무리 짓는 마지막 장면은 <나는 전설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암울함을 이어받고 있다.

프랜시스 로렌스의 <나는 전설이다>는 이들 영화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큰 도시에 점처럼 존재하는 인간, 좀비의 공격을 피해 폐쇄 공간에 고립된 인간,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벌이는 좀비와의 사투, 그리고 집단을 이루기 위해 필사적으로 인간을 갈망하는 모습까지. 하지만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출발은 사뭇 불길하다. 영화는 인류 멸망의 원인으로 암을 치유하는 바이러스를 지목한다. 이는 치유의 가능성과 함께 인간에 대한 희망을 기저에 깔고 있다. 원작의 주인공이 인간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고 희망에 목매지 않는 것에 반해 영화 속 로버트 네빌은 매일 라디오 송신을 통해 인간을 찾는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지향점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28일 후>, 무엇보다 원작과 정반대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영웅은 미국의 전설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전설이다>는 슈퍼히어로물의 변형태다. <28일 후>와 다른 방식의 영화를 만들겠다던 프랜시스 로렌스의 호언은 할리우드 주류 영웅물에서 해답을 찾은 듯 보인다. 캐릭터에 집중하겠다는 그의 말은 로버트 네빌이 가진 능력, 즉 후천적인 것이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혹은 운명적으로 물려받은) 그의 면역력에 대한 할리우드식 접근법으로 구체화됐다. 이는 슈퍼히어로물에서 익히 봐왔던 설정으로, 기존 영웅물이 파괴적인 능력에 주목했다면 로버트 네빌은 좀 더 평화로운 방식으로 지구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좀 더 과장한다면 영화 속 네빌은 미국, 그 자체다. 좀비가 지배하는 세상의 유일한 인간이라는 설정은 과거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발을 디딘 이방인을 연상케 하고,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고 나아가 인류영웅으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는 미국적 이상과 다르지 않다. 애초부터 로렌스의 고민은 좀비영화와의 차별성보다 홀로 세상을 감당하는 <캐스트 어웨이>, 영웅적 인류 구원기인 <아마겟돈>(1998) 사이에서 그럴싸하게 균형을 잡는 게 아니었나 싶다. “<캐스트 어웨이>와 <아마겟돈> 두 이야기가 나란히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갈팡질팡할 가능성이 컸다. 감독과 작가 사이에서 <나는 전설이다>를 정확히 어느 지점에 놓고 진행할 것인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각본가 아키바 골즈먼의 말이다.

원작과 달리 무대를 LA에서 뉴욕으로 옮긴 것도 의미심장하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보건데 영화의 무대는 LA보다 뉴욕이 더욱 상징적(iconic)일 거라 생각했다”는 로렌스 감독의 말에서 ‘뉴욕’의 지정학적 의미가 다시 한 번 환기된다. 뉴욕의 주요 도심을 통제해가며(박스 참조) 촬영한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단순한 눈요깃감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파괴된 곳에서 새롭게 영웅이 탄생하는, 현실의 종말이자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공간인 셈이다.

미국처럼 역사가 일천한 나라는 그들의 전설과 신화를 영화로 창조해 전파하려 한다. <나는 전설이다>는 그 상징적 전설 만들기를 시도한다. “<나는 전설이다>의 설정은 많은 영화에서 흔하게 사용됐던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실제처럼 느끼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나는 전설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아름답다.” 원작과는 정반대의 결말을 접하고 감독의 이 말에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원작자 리처드 매드슨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로렌스 감독의 영화는 결과적으로 가장 원작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연출됐다. 다시 한 번 반복된 영화의 실패가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전설적 지위를 더욱 굳건히 하리라는 건 부인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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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65호
(2007.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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