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간첩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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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이 몰려온다. 그냥 간첩이 아니다. 피부에 꽃향기를 잔뜩 머금은 ‘꽃미남’ 간첩들이다. 스파이의 한국말 정도 되는 ‘간첩’은 2013년의 한국 영화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베를린>의 북한 공작원 표종성과 동명수로 분한 하정우와 류승범은 정확히 꽃미남 과(科)는 아니다. (오히려 ‘훈남’ 과다.) 하지만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와 베를린을 무대로 벌이는 추격전은 벌써 전국 관객 700만 명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이에 질세라, TV드라마에서도 간첩들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아이리스 2:뉴제너레이션>(KBS, 이하 ‘<아이리스 2>’)에서는 북측 비밀 요원 출신의 유중원(이범수)이 남측 NSS 요원들과 비밀조직 ‘아이리스’를 둘러싼 첩보전을 펼친다.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 한 <7급 공무원>(MBC)은 직접적으로 간첩을 등장시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모가 간첩으로 몰려 집안이 풍비박산 난 이들이 복수를 위해 국정원 요원들과 맞선다는 내용이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작품의 기세를 이어받아 곧 꽃미남 간첩들이 대거 출몰할 예정이다. 김수현, 박기웅, 이현우가 출연하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최승현(빅뱅의 TOP)이 캐스팅된 <동창생>, 공유가 등장하는 <용의자>가 바로 그렇다. 이 세 작품은 하나 같이 북한에 적을 뒀거나, 두었던 간첩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인 설정 같지만 좀 더 현실적일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남한에 잠입해 있던 젊은 특수부대원 세 사람이 암살이 아니라 자결 명령을 받은 후 겪는 분단 현실에서의 아픈 청춘을 그린다. 또한 <동창생>은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여야 하는 열아홉 살 탈북 소년의 비극적 운명과 가슴 시린 첫사랑을 전면에 내세운다. <용의자>는 북한 정권이 바뀌면서 버림받은 첩보 요원이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이야기다.

다양한 장르 실험

간첩을 소재로 한 영화는 <쉬리>(1999) <간첩 리철진>(1999) <의형제>(2010) <간첩>(2012) 등 간간히 등장해 왔지만 올해처럼 한꺼번에 등장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이는 급변하는 남북정세와 한국영화계의 장르 실험이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와 맞물린 결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선 한국이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 평론가 조민준은 “스토리텔링의 소재로만 따지자면, 첩보물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다.”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할리우드의 경우, <본> 시리즈처럼 외부의 적을 잃고 내부로 향하거나, 아니면 산업스파이를 등장시킴으로써 냉전시대를 풍미했던 첩보물의 오라(aura)를 빠르게 상실해 가는 중이다. 그와 다르게 여전히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한국의 현 상황은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첩보물이 유일하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첩보물이 블루 오션의 가능성을 보이면서 다양한 장르적 실험의 결과로 간첩 소재의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베를린> <아이리스 2>가 정통 첩보물 표방한다면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성장물, <동창생>은 애잔한 첫사랑, <용의자>는 액션물에 포커스를 맞춘다. 북한 사람을 뿔 달린 도깨비(1970~80년대), 과격한 테러리스트(1990년대) 정도로 묘사했던 과거와는 사뭇 변화한 양상이다.

이는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대적으로 다양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상황 자체가 그렇다. 정치적으로는 북한이 위험한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안보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으로는 독재 체제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북한 사람들의 탈출 러시가 계속되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양가적인 감정에 빠져있는 것이 지금 남한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인 것이다.

한국형을 찾아서

언급한 작품들은 그와 같은 남한의 복잡한 감정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야기 속에 반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북한을 적으로 인식하는 남한 국민의 정서가 외부의 공포를 상징한다면 <아이리스 2> 같은 작품이 이에 해당할 만하다. 그와 다르게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동창생>은 관객들이 좀 더 감정이입하기 용이하게끔 꽃미남 간첩들을 앞세워 북한 사람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시스템에 버림받은 주인공의 정체성 혼란이 주가 되는 <베를린>과 <용의자>도 후자의 범주에 속할 만하다.

살펴본 바, 다양한 이야기로 간첩을 다루지만 이들 작품 들은 소수의 범주로 묶는 것이 가능할 만큼 아직은 장르의 폭이 좁다. 간첩을 소재로 입체적인 장르 실험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형에 걸맞은 완성에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당연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동창생>, 그리고 <용의자>는 아직 개봉 전이다. 그러니 이미 발표된 작품과 미발표 작을 묶어 어떤 형태로든 규정을 짓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다. 다만 한국 배경의 첩보물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한국형(型)’ 개발이 중요하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장근영은 “공개된 작품들은 대개 한국적인 상황의 이해보다 할리우드의 장르 규칙에 더 충실해 보인다.”며 한국형의 부재를 아쉬워한다. 그래서 꽃미남 간첩의 등장은 일종의 한국형 첩보물을 기대케 한다. 여성 팬들이 잘생긴 남자 연예인에 열광하는 건 동서양을 통틀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꽃미남, ‘아이돌’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숭배하는 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다. 이를 남북이라는 대치상황과 절묘하게 이식하니,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동명 웹툰은 이미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볼 때 한국에서 미국, 영국과 같은 첩보물을 만든다는 건 판타지에 가깝다.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으로 여전히 떠들썩한 게 작금의 우리 현실이 아니던가.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의 배경으로 한국이 아닌 이국을 선택한 건 전략적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다르게, 꽃미남 간첩물은 한국과 한국 문화라는 로컬적인 성향을 강하게 띤다. 결국 영화는 현실이 반영될 때 설득력을 얻는다. 한국의 첩보물은 간첩이라는 우리 현실을 소재로 취하면서 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movie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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