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가 얻을 완전한 자유 –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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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는 언제부턴가 변화무쌍해지기 시작했다. 하릴없이 노닥거리는 백수였다가 남편 몰래 욕망을 불태우는 불륜녀로, <열한번째 엄마>에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변화와 함께 그의 삶도 완전한 자유에 가까워지고 있다.


연기생활 22년째. 배우경력으로 치자면 이미 많은 것을 이뤘을 법한 시간이지만 김혜수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서인지 배우의 기본인 경험의 폭이 넓지 못하고 단조롭다는 게 콤플렉스인 적도 있었죠.” 별 탈 없이 오랫동안 배우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자신이 출연한 모든 연기를 간접경험 삼아 운신의 폭을 넓혀왔기 때문이다. 김혜수에게 변신은 정체된 연기생활을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라기보다 일상에 가깝다.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출연작은 많았지만 경험이 두텁지는 않았다. 캐릭터 간 차이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고만고만한 역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00년 이후, 특히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를 전후해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2000년 이후부터 영화적으로 훨씬 자유로워졌어요. 그런 진지한 욕구에 집중하던 차에 좋은 기회가 온 거죠.” 도박판의 꽃 ‘설계자’ 정마담 (<타짜>), 대담한 ‘유부녀’ 이슬(<바람피기 좋은 날>(2007)), 빈둥빈둥 하루를 살아가는 ‘백수’ 이모(<좋지아니한가>(2007)) 등 최근 들어 부쩍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김혜수는 마음을 열어두는 태도, 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김진성 감독의 <열한번째 엄마>도 그런 이유에서 택한 작품이다.

<열한번째 엄마>는 애정을 모르고 살던 한 여자가 생면부지의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엄마가 돼가는 과정을 그린다. 집창촌 여성으로 보이는 그녀(김혜수)가 머물게 된 곳은 달동네 허름한 단칸방. 그녀를 맞이하는 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 재수(김영찬)다. 열한 번째 맞이하는 ‘엄마’인 까닭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재수처럼 그녀도 아이의 존재는 관심 밖이다. 유일한 관심거리라면 재수가 숨겨둔 음식을 뺏어 먹는 것. 먹을 것을 두고 신경전을 거듭할 즈음 둘 사이에는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녀는 점차 재수의 엄마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김혜수는 전에 느껴보지 못한 경험을 했다. 시나리오를 읽다보면 스토리와 캐릭터 등 영화적인 고민이 먼저 생기기 마련인데 <열한번째 엄마>를 읽으면서는 신기하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됐다. 삶의 태도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극중 아이의 불우한 삶은 평범한 가정에서 화목하게 자란 김혜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재수에게로 이입됐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상대 역할에 감정을 이입한다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그 느낌을 고스란히 옮기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상대역 재수로 등장한 (김)영찬의 순수함은 큰 도움이 됐다. “영찬이는 감성이 풍부하고 감정 선이 여려 몰입이 대단해요. 최대한 계산적인 연기를 배제하려 했던 제 부족한 부분을 영찬이가 많이 메워줬어요.”

김혜수는 <열한번째 엄마>를 촬영하며 연기란,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 속에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행위”임을 다시금 절감했다. 극중 그녀와 재수의 관계 묘사가 판에 박힌 모자 사이로 그려지기보다 관객에게 연애하는 느낌으로 다가갔으면 한 것도 그래서다. 캐릭터에 기초해 외양을 꾸미고 상황을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맞는 연기를 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재수를 이해하게 되니 비로소 그녀의 삶과 가까워졌고, 외양도 구체적으로 설정하게 됐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머리. 영화 스탭 외에는 가족에게만 알릴 정도로 짧게 깎았는데, 짧기 때문에 거칠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에 잘렸기 때문이라는 캐릭터 형상화 작업을 통해 나온 모습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접근한 인물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될지 그 자신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 관객의 반응이 더 기대된다.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반추한 것처럼 <열한번째 엄마>를 보고 많은 관객들이, 아니 소수일지라도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그런 작업이야말로 배우로서 완전한 자유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서는 발걸음”이라고 김혜수는 생각한다. “완벽하게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을 통해 발전하는 배우가 되는 거죠.”

‘TV 드라마 연기의 반복’ ‘판에 박힌 연기’ 등 2000년 이전 김혜수가 들었던 상투적인 비판은 지금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공개석상에서의 옷차림, 거침없는 입담이 논란을 일으킬지언정 연기의 스펙트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쓰리>(2002), <얼굴 없는 미녀>(2004), <타짜> <바람피기 좋은 날> <좋지아니한가> <열한번째 엄마>까지. 한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매번 보폭을 달리하는 연기는 이제 김혜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열한번째 엄마> 이후 차기작이 될 정지우 감독의 <모던 보이>에서 김혜수는 다시 한 번 그 보폭을 한껏 벌릴 예정이다. 경성시대의 ‘신여성’ 조난실 역을 맡아 시대의 무게에 아랑곳없이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거침없이 한 해를 보낸 김혜수는 연기를 통해 완전한 자유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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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63호
(2007.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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