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밴드’ 김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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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은 종합 예술인이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음악인이고 연기를 하는 배우이며 글을 쓰는 작가다. 그가 이번엔 김창완 밴드로 정규앨범 <BUS>를 발표했다. 1997년 산울림의 열세 번째 정규앨범이후 12년 만이고, 산울림의 막내멤버 김창익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 슬픔을 이겨낸 뒤 젊은 연주인들을 규합해 만든 ‘김창완 밴드’로 EP앨범 <The Happiest>를 낸 지 10개월 만이다. <The Happiest>를 통해 ‘김창완=산울림’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지운 밴드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한 김창완 밴드는 <BUS>에서 역시 록을 바탕으로 모던하고 세련된 음악을 선보인다.

특히 <BUS>는 사이키델릭부터 펑크까지 장르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김창완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하여 <BUS>는 산울림이라는 자전축에서 공전하고 있지만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앨범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은유와 상징이 물결치던 동요 같은 가사와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으로 높은 평가(실제로 유럽의 아트록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산울림 1집과 2집이 고가에 거래됐을 정도다!)를 받았던 산울림 시절과 달리 <BUS>는 현실이 파도치는 직설법의 가사와 멤버 각자의 기량이 잘 살아있는 연주 덕에 최근 록의 조류와 잘 맞아 떨어지는 형국이라 할만하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김창완’에서 ‘밴드’로 버스를 갈아탄 것 같은 인상이 강하게 든다.  

그러니까 이번 인터뷰는 음악 하는 김창완을 위한 자리고 무엇보다 김창완 밴드의 첫 번째 정규앨범 <BUS>에 대해 묻는 자리다. 혹시 연기 하는 김창완을 기대하고 이 인터뷰를 열람했다면 마음을 고쳐먹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지레 실망할 이유는 없다. 음악에 대해, <BUS>에 대해 묻는 자리였지만 결국 김창완이라는 소우주에서 음악과 연기와 글은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뷰였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10월 6일 목동 SBS방송국 앞에 위치한 오목근린공원에서 1시간 동안 이뤄졌다.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을 마치고 나온 김창완은 공원의 시간이 좋다며 외부에서의 인터뷰를 제안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공기를 만끽했고 주변 풍경을 놓치지 않았으며 자연을 예찬했다.

허남웅(이하 ‘허’) 공원을 좋아하나 보다.
김창완(이하 ‘김’) 방송이 끝나면 자주 들른다.

인터뷰를 야외에서 하는 건 개인적으로 처음이다.
그런가? 나는 이 공원을 찾는 걸 즐긴다.  

<BUS>를 발표하고 인터뷰 요청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요즘 많다.

인터뷰뿐만 아니라 매일 공연으로도 바쁘다고?
오늘도 공연이 하나 잡혀 있고 내일은 <EBS 스페이스 공감>, 모레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축하공연, 글피는 KBS1의 <낭독의 발견>, 토요일은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2009’까지 연일 공연이다. 


‘김창완’에서 ‘밴드’로 버스를 갈아타다

<Happiest> 이후 <BUS>를 내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큰 고민은 아니었다. 다만 싱글을 발표한 후 EP와 정규앨범 사이에서 갈등이 됐던 건 김창완 밴드 색깔이 만들어졌느냐, 만들어지는 과정이냐를 판단해야 하는 거니까. 왜냐면, EP를 지속적으로 축적해서 밴드 색깔을 만든 후 그 다음에 정규앨범을 발표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에 정규앨범을 바로 내면 밴드 색깔을 미리 규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으니까 그게 좀 부담스러웠다. 우리 스스로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당황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 고민 끝에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색깔은 만들어지겠지. 우리가 규정한대로 팀이 굴러가는 게 아닐 수 있으니까. 그런 갈등을 하다가 어차피 미완일 거니 내자 이렇게 됐다. 우리가 팀 색깔을 만든다기보다 대중들이 김창완 밴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팀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중적인 평가를 더 받아봐야 한다.

‘김창완’이라는 이름이 전면에 부각됐지만 앨범을 들어보건대 방점은 ‘밴드’에 찍혀있는 것 같다. 멤버에 대한 의존도가 산울림 시절에 비해 커지지 않았나?
많이 커졌다. 기량이 워낙 출중한 사람들이다. 대단한 연주가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연주를 어떤 스타일로든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각 파트의 기량이 골고루 살아나왔으면 하는 게 바람이었다. 물론 상의를 하지만 음악적인 접근은 자기들 스스로가 하니까 파트에 대한 책임은 각자가 지는 거지.

록 앨범이긴 하지만 장르가 굉장히 다양하다.
우리가 다루고 싶은 게 사이키델릭부터 펑크까지 너무나 스펙트럼이 넓다. [그땐 좋았지]에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나오고 [29-1]에는 펑크적인 게 나오기 때문에 이번 앨범을 통해서 우리들의 거취를 점쳐 볼 수 있을 것 같다.

멤버 구성은 어떻게 이뤄졌나? 하세가와 요헤이(한국명 김양평)의 경우, 산울림이 좋아 김창완 밴드에 들어온 일화는 유명하다.
산울림 시절부터 해온 멤버(기타 하세가와 요헤이, 이상훈)들이 일단 주축이 됐다. 나머지 두 멤버 드러머 이민우와 베이시스트 최원식만 새로 들어왔다. 근데 이들도 나름대로 서로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산울림 레퍼토리에 익숙하다.

산울림 때와 비교해 김창완 밴드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는 큰 변화가 없겠다?
글쎄, 내 위치가 지금 상당히 많이 변했다. 산울림 시절에는 오히려 나의 음악적 경향이나 그룹 내에서의 차지라는 것이, 물론 3인조 밴드니까 더 그럴 수 있었지만 비중이 상당히 컸다. 근데 이번에는 보컬리스트나 백킹 기타 정도 하는 거니까 역할이 많이 줄었다. 밴드 이름은 김창완 밴드지만 전반적으로 김창완은 훨씬 축소돼있다. 음악적으로 우리 팀원들의 기량이 많이 돋보이기 때문에 좋다.

그럼 곡들도 모두 함께 만든 건가?
작사, 작곡은 내가 다 했다. 근데 모른다. 앞으로 밴드가 계속 가야하기 때문에 작업들을 하라고 독려하고 있으니까.

지난 9월 진행을 맡고 있는 MBC의 <음악여행 라라라>에서 <BUS> 발표 후 공식적인 첫 무대를 가졌다. 당시 현장의 분위기가 어땠나?
너무 좋았다. 나도 그랬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밴드 연주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놀라던가?
앨범 리코딩 자체가 곡당 원 테이크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연습을 거쳤지만, 그래서 언제 어디서라도 충분히 연주가 가능하지만 녹화현장에서 그렇게 완벽하게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깜짝 놀라더라.

앨범 작업 기간이 비교적 짧았겠다.
글쎄, 한 2~3주 걸렸나. 콘셉트가 금방 잡혔다. 디자이너가 앨범을 듣고 버스라는 이미지를 금방 구상을 하더라. 아마 앨범이 나름대로 굉장히 임팩트가 있었나 보다.


하나의 곡처럼 앨범을 구성하다

어느 한곡만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들 만큼 앨범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그렇다, 앨범이 아주 좋다. (웃음) 전체가 한곡 같이 들리도록 구성이 잘 돼있다. 감상의 느낌, 곡의 흐름이나 강약, 그리고 말이 주는 뉘앙스를 모두 고려해서 우리 팀원들이 1번부터 11번까지 곡 순서를 함께 정했다.

1번 트랙 [내가 갖고 싶은 건]은 이 앨범이 품고 있는 정서를 함축적으로 잘 드러낸 것 같다. 도시의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이상향을 추구한다고 할까.
벗어난다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도시적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태어난 환경은 도시지만 지향점은 바깥을 향해있으니까. [내가 갖고 싶은 건]을 비롯해 [Good Morning]이나 [앞집에 이사 온 아이]같은 곡들은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했다. (앞에서 조잘대는 어린 아이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친구 있는 아이가 아니라 혼자 노는 아이를 보면 얼마나 도시 안에서 외로워 보이나.

산울림 시절부터 김창완 밴드까지, 가사를 들어보면 ‘아이‘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듯하다.
순진해지고 싶은 욕망, 그런 것의 투사일 수 있다. 순수에 대한 노스탤지어랄까.

안 그래도 이번 앨범에는 노스탤지어가 굉장히 강하게 풍긴다.
그렇다. 사람들이 자극적이고 거친 가사들을 구사하기 시작하는데 그런 것들이 능사가 아니다. 감정의 덩어리라는 것은 생각보다 파괴적이지 않다. 우리가 너무나 많은 독소, 공해물질에 길들여지고 있다 보니 언어 자체가 그렇게 됐다. 하지만 감정이야말로 상당히 친환경적이다. 저기 있는 풀 한포기, 저게 선인가, 악인가. 나는 선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 햇살 아래서 살아남기 위한 아주 가녀린 몸부림, 이야 말로 축복 그런 게 아니겠나. 내 마음 상태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사람이 아무리 약하고 험한 일을 많이 겪어 각박하더라도 그렇다고 믿는다. 그래서 좋은 말을 더 많이 쓰고 싶다.

[내가 갖고 싶은 건]의 기타 솔로링에도 그런 서정성이 강하게 풍긴다.
초반 솔로는 내가 쳤고, 가운데 솔로는 (김)양평이가 쳤다. 재미난 코드 진행이다. 이 노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물신에 젖어 사느냐, 우리가 진정 원하는 건 자동차가 아니고, 옷이 아니고, 높은 건물이 아니고 프렌드십(friendship) 아니냐. 그런 쾌락주의적인 얘기를 가사로 썼다.

3번과 4번 트랙의 [Good Morning]은 part1과 part2로 나눴다.
어차피 7분이나 되는 곡이니까 방송에서도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곡의 흐름상 잘 못 느끼겠지만 앞의 노래와 뒤의 노래가 키 자체가 다르다. 뒤에 부분이 사실 [Good Morning]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걸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파트를 두개로 나눴다.  

5번 트랙 [29-1]은 이 앨범에서 제일 신나는 곡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웃음) [29-1]은 마이크 디스토션을 일부러 만들고 소리를 질러 망가뜨린 음악이다. 감상자들이 그 의도를 알고 즐기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곡은 버스 안에서 만난 여자를 잊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왜 굳지 버스번호로 ‘29-1’을 골랐나?
다른 의미는 전혀 없고 말맛에 맞추느라고 그냥 나온 거다. 그 번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찾아보니까 실제로 있는 번호라고 하더라.

[29-1]은 특히 젊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곡이었다. 사운드부터 가사까지 젊은 사람의 심정을 적극 반영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읽히더라.
이왕이면 젊은 사람들의 감정을 담고 싶다. 여러 가지 다양한 노래를 할 수 있겠지만 젊고 활기차고 행복하고, 슬프더라도 아름답게 슬픈 걸 노래하고 싶다.

6번 트랙 [삐에로와 광대]는 연주곡이다.
내가 코드 진행만 정해놓고 연주했다. 코드 진행은 똑같이 하는데 앞에 부분 ‘삐에로’는 세련됐으니까 양평이 네가 멜로디를 작곡해 와라, 뒷부분은 내가 맡는다 해서 둘을 합친, 그야말로 접속곡이다. 

이 곡을 녹음할 때 시기를 달리 했다면 다른 톤의 사운드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즉흥성이 가장 돋보이는 곡이다.
물론이다.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은 크리에이티브(creative)하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음악의 힘을 너무나 잘 안다. 다만 음악의 내용이나 아름다움 같은 것이 역치에 이른 것 같다. 더 이상 모차르트나 가브리엘즈 오보에(Gabriel’s Oboe 영화 <미션> OST 중 엔니오 모리코네가 만든 곡) 등과 같은 러브 아이디어나 대단한 멜로디에서조차 아름다움을 못 느낀다. 그런 가운데 미학적으로 펑크도 나오고 여러 가지 시도들이 이어지지만 그런 요구 자체가 크리에이티브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욕구들이 끝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 요구를 어떻게 충족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 거고. 

7번 트랙 [길]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오래 전에 만들어진 곡이다.
그건 아마 내가 스물 몇 살 때 쓴 곡일 거다. 내가 통기타로 취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와 고등어] 때 부른 곡이었나.

1983년에 나온 비정규앨범 <기타가 있는 수필>에 수록된 곡으로 알고 있다. 20년이 훨씬 지난 곡인데도 요즘 음악과 비교해 뒤떨어지거나 빈티지한 느낌이 없다.
이 노래에는 사춘기 감상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가사나 곡 형식이 유니크하다. 이번에 리코딩 때 내가 주문하길, ‘가장 투덜거리는 자아,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리코딩을 합시다.’ 그랬다. 그래서 보컬도 불만이 가득 찬 젊은이 목소리처럼 하려고 했다. 목소리는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감정은 많이 다르다. (웃음)

혹시 아는지 모르겠지만, 산울림 1집과 2집에서 ‘PSK이펙터’를 썼다고 해서 인디신의 기타 키드들이 경쟁적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경남 이펙터 말하는 건가?
맞다.
퍼즈하고 와와 같이 붙은 거.
그게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였다. (웃음)
맞다. (웃음) 후에 옛날 사운드는 왜 그렇게 재현이 안 되냐고 하니까 안에 들어가 있는 내선이나 와이어가 달라서 옛날 악기들은 재현되기가 힘들다고 하더라. 

8번 트랙 [앞집에 이사 온 아이]는 관찰자 시점에서 혼자 노는 아이를 묘사했다. 실제로 아이를 관찰한 건가? 아니면 자전적인 이야기인가?
이곡도 그렇고 [너를 업던 기억]도 낯선 도시의 풍경을 그려 넣고 친구 없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어떨까, 그런 아이를 나는 어떻게 위로해줄까, 소설같이 쓴 거다. 

9번 트랙 [그땐 좋았지]는 전주 부분이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연상시킨다.
양평이한테 그런 질문들을 많이 한다. 그럼 양평이는 그런다. ‘그런 진행이나 구성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음악을 들어보셨으면 좋겠다.’고. 그 사람들이 핑크 플로이드만 알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그 말이 맞다. [그땐 좋았지]의 후주는, 어휴 그건 핑크 플로이드가 아니라 어떤 밴드가 오더라도 그렇게 자극적으로 연주하기가 쉽지 않다.

자극적인 후주에 비해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지내던 그 시절 좋았지’와 같은 가사는 굉장히 슬프게 다가온다. 
회한이 가져다주는 통증 아니겠나. 도저히 갈 수 없는 세상인데 손에 잡힐 듯 하는 순간 있잖나. 그럴 때 안 잡히는 안타까운 감정이 연주로 너무너무 잘 돼 있어. 더 할 수 없는 연주라고 본다. 감정의 몰입이 안 되면 그렇게 못한다. 양평이가 굉장히 애썼다. 테크닉이 아니라 그 감정 안에 들어가려고 했던 노력은 정말 대단한 거다. 음악의 깊이를 파본 사람만 그 안에 들어가지, 겉핥기로 몇 곡 들어서 알아지는 감정이 아니다.  

11번 트랙 [결혼하자]는 마지막에 ‘야! 결혼할거야, 결혼할 거라고’라고 내지르는 외침이 인상적이다.
[결혼하자]를 취입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뭔가 얘기를 하다만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뒤의 고함소리를 즉석에서 부른 거다. 의도한 게 아니라 노래 다 부르고 나서 후주 나가는데 갑자기 막 원통한 거다. 그래서 팍 고함을 질러 버렸다.

원통한 감정도 그렇거니와 ‘이담에 돈 많이 아주 많이 벌어/ 이담에 아이들 아주 많이 낳아 행복할거야’같은 가사가 은근히 계급성을 대표하는 것 같더라.
요즘 여러 가지 경제적인 사정으로 결혼을 기피하거나, 의무로써만 생각하는 등 결혼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퇴색하는 것 같다. 결혼의 근간은 사랑이다. 사랑은 한 번 목숨 걸고 해볼 만한 일인데 뭐가 두려워서 그렇습니까. 그런 얘기다.

[결혼하자]를 비롯해서 이 앨범의 가사는 비주류 시각의 감수성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그런 위치는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비주류의 감수성을 견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앨범은 회고조로 하면 안 되고 완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나는 무슨 파트나 어떤 부류를 대표하고 싶지 않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 같은 여러 가지 분류법이 있지만 그런 구분을 떠나고 싶다. 오히려 그 부분을 애매하게 만드는 작업이었으면 한다. 다만 가장 원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박제된 혹은 진짜 싸구려로 포장된 음악에 노출이 많이 돼서 감동을 알처럼 품고 있는 음악을 간과하고 또 그렇게 해서 삶을 너무 표피적으로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노래가 즐겁다, 글쓰기가 즐겁다

가사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나. 뮤지션 중에서는 ‘음악이 우선이고, 가사는 후순위다’라고 하는 이들도 많던데.
내가 곡 전체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앞집에 이사 온 애가 도시에서 외롭다, 청년실업이 있다, 버스 탔다가 사랑에 빠졌다 이런 것보다 ‘난 노래하는 게 즐겁다’이다. A라는 노래를 하는 것과 B라는 노래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A나 B를 통해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노래해서 즐겁다, 노래해서 행복해 지고 싶다, 그게 내 노래의 주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소음공해가 싫다, 고양이가 불쌍하다, 자연보호를 해야 된다, 아니다. 글쓰기가 즐겁다.  
<BUS>와 비슷한 시기에 소설집 <사일런트 머신 길자>를 발표한 것도 그런 창조의 즐거움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나?
공교롭게도 시기가 겹쳤다. <사일런트 머신 길자> 중 ‘숲으로 간 죠죠’는 예전에 내가 한 어린 고양이의 죽음 때문에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 고양이의 넋을 위로하고 나를 달래주기 위해 썼던 거다. 나머지는 출판사에서 제안이 들어와 쓰게 됐다. 

동요집은 몇 권 냈지만 소설집은 처음이다.
일이 많아서 귀찮으니까 그렇지 글 쓰는 걸 워낙 좋아한다. 나는 목적 글은 못쓴다. 근데 소설이라면 아주 호흡이 긴 거는 시간도 그렇고, 내가 잡으면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성격이라, 그래서 짧은 글을 썼다. 그러나 한편 한편은 순식간에 써놓은 글들이다.

떠오르는 걸 즉석에서 메모 하는 편인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이렇게 포착되는 것들이 있다. 저쪽의 꼬마아이가 길을 가다가 무슨 의도로 저기서 빙빙 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쟤 나름대로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다. 나는 지금 저걸 보면서 <동년왕사>를 떠올렸다. 아이가 구슬치기해서 딴 구슬을 그대로 가져가면 엄마한테 걸리니까 땅속에다 묻으면서 힐끔힐끔 보는 생각을 했다. 저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여기서 보았던 풍경 중에서 저 그림이 한 커트처럼 남아 있다. 그렇게 툭툭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그걸 애써 글로 쓰고, 그러면 [앞집에 이사 온 아이]도 되고 [너를 업던 기억]도 되고, 그게 내 얘기면 [길]도 되고.

허우샤오시엔의 <동년왕사>(1985)는 본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영화를 정말 좋아하나보다.
영화 너무 너무 좋아한다. 나는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1001편> 중에 골라서 흑백영화 보는 걸 되게 좋아한다.

<동년왕사>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허우샤오시엔 영화의 특징이라면 굉장히 끈덕지게 일상을 관찰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김창완이 쓰는 글(가사)의 성격과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영화 정말 기가 막힌다. 내가 원래 고정된 샷을 좋아한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샷은 싫어한다. 움직임이 움직임을 방해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내가 지인에게 좋은 샷 나오는 영화 있냐고 물어보니 <동년왕사>를 권해줬다. 근데 처음부터 할머니가 아이 찾으러 나오는 그 장면부터 너무 좋아서 죽겠더라고. (웃음)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만 요즘은 연기만 하지 영화음악은 안 한다.
예전에 했었다. <내일 또 내일>(1979) <우산 속의 세 여자>(1980)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에서 극중 보물섬(김세준)이 부른 [안녕], 그리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같은 작품들에서는 영화음악을 했다. 1980년대까지 하다가 1985년부터 연기를 했고. (웃음)

그래서 요즘엔 젊은 사람들이 김창완 하면 연기자인줄 안다. (웃음) 공연장에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나?
아직은……. 우리가 공연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나이 어린 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 생각에 그 친구들이 음악입문을 록으로 했으면 좋겠는데 록이라고 하면 아직도 생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록은 현장에 와서 체험을 해봐야 한다.

산울림 시절과 비교하면 어떤가?
우리는 아주 어린 관객들, 지금 가요의 최대 소비자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연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네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건 모르겠고. 다만 점점 세대가 낮아지는 건 사실이다. 일전에 록 공연장 가면, 외국 밴드가 와도 삼사십 대가 많았다. 우리는 세대 구분 없이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와서 함께 관객이 되어주길 바란다. 공연장 안에서 그들 간의 소통, 무대와 객석간의 소통이 화학작용을 일으키길 바라는데, 이제 좀 나아지지 않을까.

앞으로의 공연 계획은 어떤가?
계속 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다. 내년 1월에, 내가 일본 공연을 몇 번 했는데 본격적으로 일본 팬들을 위해서 하는 공연은 처음이다. 아마 김창완 밴드 활동이 더 바빠질 거다. 김창완 밴드 좋은 밴드인데 잘 좀 부탁해요. (웃음)

그래서 인터뷰 요청 한 거다. (웃음)
록페스티벌 같은 데서 우리가 공연을 하면 굉장히 열광을 하는데 큰 매체들에서는 주요하게 안 다룬다. 

그러게, 왜들 그럴까?
저 사람들이 록커에 대한 정체성을 어떻게 보느냐면, 사회에 대한 거부반응이 록으로 나온다는 이상한 편견이 있다. 록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치료되고 사회적으로 얼마든지 순기능을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인식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좋은 앨범으로 의식이 전환이 된다면 언제라도 부활할 수 있고 계기가 마련될 거라고 본다. (웃음)


김창완은 음악을 일러 자연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공기나 물처럼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더랬다. 그래서 요즘은 장사꾼의 물건으로 전락했고 상업논리에 휘말리면서 좋은 음악이 사라지고 있다고 통탄했다. 맞다. 김창완 밴드는 한국 음악계에서 희귀동물과 같은 존재다. 김창완 밴드뿐이랴. 이 땅에서 록커는 멸종위기에 놓인 상태다. 그래서 더더욱 김창완 밴드의 출현이 반가운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 록 음악사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거의 유일한 매개이면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래서 천연기념물처럼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밴드인 것이다. 자연환경은 그렇게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 천연기념물이 늘어나면 언젠가 공룡처럼 번식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김창완에게 김창완 밴드는 제2의 음악인생의 출발이지만, 한편으론 우리 음악계에 뿌려진 새로운 씨앗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김창완 밴드의 활약이 기대된다.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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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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