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사용자 삽입 이미지마쓰모토 세이초의 장편소설 <짐승의 길>에는 이런 묘사가 나온다. ‘이렇게 불합리한 일도 없지만, 타인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는 지극히 공평한 입장에 선다. 그녀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헌신적인 간호에도 불구, 병상에 누운 남편의 폭거에 헤어질 결심을 하지만 전후 사정을 알 리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받게 될 비난이 두려워 극 중 아내가 내뱉는 절절한 속마음 고백이다.

제시한 예처럼 지금 한국 사회에는 자의적인 윤리 기준을 앞세워 너무 쉽게 타인의 행동을 재단하고 비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최근의 화두라면 아마도 ‘종편’일 텐데 지금 한창 TV조선에서 방영중인 <한반도>의 출연배우 김정은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한반도> 방영을 앞두고 벌어진 제작발표회에 참석, “익숙하지 않은 채널이라고 해서 선입견을 갖고 볼 기회가 없어진다면 아까운 일”이라고 발언한 것이 온갖 특혜로 출범한 종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김정은을 향한 빗발치는 비난의 화살이 겨냥하고 있는 핵심은 여론이 좋지 못한 종편에 대해 출연 방송이라고 굳이 옹호하는 발언을 할 것이 무어냐는 거다. 개인적으로 아주 틀린 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여’배우로서 처한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교과서적인 잣대만 들이미는 매몰찬 처사가 아닌가, 의문이 든다. “같이 하는 동료들 모두 좋은 대우 받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서 좀 더 일할 공간이 넓어진다고 생각하면 나쁜 것이 아니지 않나” 김정은이 그 자리에서 발언한 배우(와 스태프)의 생존문제도 좀 더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실제로 영화의 드라마 분야에서 여배우들이 돋보일만한 배역이 줄어들고 있고 그나마 있는 역할도 소수의 여배우들이 독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30대 여성 관객층을 겨냥한 트렌드 작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까닭에 꽃미남 배우들이 각광받고, 또한 남자 감독의 비중이 여자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남성 영화의 제작이 늘다보니 여배우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김정은도 예외는 아니다. 인기가 절정이었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1년에 영화 1편, 드라마 1편이 출연 패턴이었던 것에 반해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을 기점으로 영화와 드라마 중 1편으로 출연 작품이 줄어든 것이다.

그나마 <나는 전설이다>(2010)를 제외하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상황에서 1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드라마에, 북한 출신의 지도층 자제에서 후일 남한의 영부인이 되는 림진재 캐릭터는 아무리 종편의 시청률이 바닥을 치는 것은 감안하더라도 출연을 마다하기 힘든 조건이었을 테다. 더 나아가 남성 영화 위주의 제작 풍토로 인한 여성 캐릭터 부재의 칼바람을 견뎠을 김정은에게 앞으로의 작품 활동을 위해서라도 <한반도>의 성공은 누구보다 절실했을 것이다. 문제의 발언이 나온 바탕에는 그녀를 비롯한 여배우의 생존권이 절실히 자리 잡고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 쪽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의 영상문화 콘텐츠가 내외부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때 김정은과 같은 배우는 중요한 자산에 속한다. 정치가 국민의 삶의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작금에 활력소가 되어준 이들을 더욱 존중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인 입장과 다르다고, 혹은 선악의 이분법에 근거한 기계적인 도덕률을 앞세워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행동 하나에, 발언 한 줄에 족쇄를 채우는 것도 일종의 폭력에 해당한다. 특히 국가 시스템의 편애를 받고 있는 대기업 자본이 문화계의 대부분을 장악한 것을 감안하면 여기서 자유로운 이들을 찾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고로 김정은 개인에게 과한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이런 결과를 가져온 불합리한 구조에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더 필요해 보인다. 사실 대기업의 마인드라는 것은 눈앞의 이익을 좇는 경우가 다반사라 올바른 문화계의 생태를 조성하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이들의 자본이 대거 유입된 TV프로그램의 경우, 능력에 상관없이 한창 인기 절정인 아이돌을 투입해 일시적인 붐을 일으켜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도 마찬가지다. 인기가 출연의 척도가 되다보니 인기와 동떨어진 연기 경력자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병풍’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연기자들에게 생존은 정치에 ‘훨씬’ 우선한다. 생존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선과 악의 구분도 무의미하며 더욱이 도덕과 윤리는 썩은 홍시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다. 그래서 김정은의 문제시된 발언을 옹호하는 것이냐고? 서두에 예로 든 <짐승의 길>은 ‘산양이나 멧돼지 등이 지나다녀서 산중에 생긴 좁은 길’을 의미한다. 산을 걷는 사람이 종종 길로 착각해 들어섰다가 큰 해를 입는 경우가 있는데, 그녀의 발언이 흡사 정치적인 발언으로 비쳐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 타격을 입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서다.

난 그녀가 이순재나 김수미처럼 오랫동안 대중에게 사랑받는 배우로 남기를 바란다. 그것은 이번 발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김정은을 이해하고 존중했다는 의미가 되니까. 또한 입장이 다른 타인의 견해를 끌어안은 우리 문화계의,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일러스트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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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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