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장철수 감독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은 올해 가장 뛰어난 데뷔작일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한국영화라 할만하다.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장철수는 <김복남>으로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것에 이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시네마디지털서울의 주요 상을 수상하며 지금 한국영화의 가장 뜨거운 이름이 되었다. 장철수 감독에게 듣는 영화의 전말. (이 인터뷰는 2010년 9월 3일 이뤄졌습니다. 지금 상황에 맞게 책에 실린 원문을 살짝 변경하였습니다.)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마음고생이 있었나?
마음고생이 있다. 끝이 없다. (웃음)

어떤 부분들이 그런가?
영화라는 게 한 번 만들면 끝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이 길다. 처음부터 끝까지 움직였던 감독으로서 어느 순간이 되면 영화가 자생력을 갖기를 바라는데 그 마지막 단계를 맞이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상영까지만 잘 해주면 그때부터는 영화가 살아남거나 도태되거나 그렇게 되니까. 그 마지막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쓴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접하고는 잔혹한 묘사에 놀랐다고?
처음 시나리오에는 복남의 남편 만종(박정학)이 친 딸을 건드리는 설정이 있었다. 내가 딸이 없어서 그런지 그 설정을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딸을 가진 스탭들이 엄청 싫어하더라. 심지어 김기덕 감독님도 불편해했다. 그에게도 딸이 있다. 계속 문제를 제기하더라. (웃음) 오히려 개인적으로 복남의 복수나 시동생 철종(배성우)과의 관계가 상업영화판에서는 생소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자칫 예술영화나 작가주의 영화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됐다. 잔혹한 묘사를 줄이는 것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끔 앞부분의 드라마를 더 신경 써서 구축해 원 시나리오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 영화는 여자가 억압받는 사회 구조가 두드러진다. 그런 점에서 ‘김복남’이라는 이름이 흥미롭다. 과거 한국의 부모들은 아들에 비해 딸의 이름을 성의 없게 짓는 편이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이름에서부터 느껴진다.   
복남이라고 하면 ‘복이 없다.’는 반어적인 의미도 있다. (웃음) 게다가 남자 이름 같아서 여자 이름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토속적이면서 여러 가지 의미를 품고 있는 것 같아 처음부터 맘에 들었다. 

처음부터 제목이 <김복남>이었나?
제목만 보면 미스터리 같지 않나. 살인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추적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근데 시나리오 읽으면 그게 아니다. 그냥 드라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그래서 제목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길다, 앙드레김 생각난다, 코미디로 안다, 장르와 안 맞는다 등등. 더 좋은 게 있으면 바꾸자 했는데 더 좋은 게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제목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었고 살인사건이라는 상업적인 느낌도 풍기고, 그래서 결정했다.

그런데 해외 제목은 <Bedevilled>다. 한국 제목의 뉘앙스가 잘 안 살았다.
영어 제목을 짓기가 어려웠다. 처음엔 그대로 번역했어요. ‘김여인의 살인사건’ 그런데 나중에 해외 세일즈를 보니 ‘Bedevilled’로 이미 다 진행이 되어있더라. 뉘앙스가 바뀌긴 했다. 외국 관객들이 이 제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영화를 칸에 초청해줬던 전(前)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샤를 테송은 원제목이 더 좋았다고 했다. <Bedevilled>는 너무 있어 보이고 호러느낌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우려는 있다. 시각적으로 단어만 보면 그 언어를 쓰지 않는 나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데 본질이 제대로 전달이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제로 갔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하는데 걔네들은 긴 걸 안 쓰니까. 결국 중요한 건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시골에서 성장기를 보냈다고 알고 있다. 고립된 지역일수록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폭력이 만연하지 않나. 그에 대한 자각이 어릴 때부터 있었나?
강원도 영월의 굉장한 산골에서 살았다. 부인을 때리는 남편의 폭력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자라서인지 그때는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고 친근감을 느끼지 않나. 그래서 그런 폭력을 보는 것이 힘들었고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복남이 쓰는 무기로 낫을 선택한 건가? (웃음)
낫을 무기로 선택한 것은 복남이 살인을 즐기는 사람 혹은 살인을 위해 머리를 쓰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쇠를 두드려서 만든 낫은 삶을 살아가는 농촌에서 필수 농기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늘 소지하고 다니고, 집 안에도 항상 여러 개가 널려있다. 그것은 평소에 전혀 살인도구로 보이지 않지만 밑바닥에 쌓인 분노와 결합하면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무서운 도구가 된다. 평소에 한(恨)을 가지고 살아도 표시가 안 나지만 그 한이 분노와 결합하면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다. 낫은 한을 표출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복남 역의 서영희는 정답처럼 보일 만큼 기존의 이미지가 극대화됐다. <무도리>(2006)에서는 시골 여자로 등장했었고, <추격자>(2008)에서는 연쇄살인의 피해자였다.
김기덕 감독님은 서영희를 추천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반대했다. 너무 정답 같은 거다. 기존의 이미지와 연기가 복남과 너무 겹치는 거다. 연기도 너무 잘하는데다가 내가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부분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서영희를 만나보고, 무엇보다 그녀의 어머니가 시집살이 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자랐다는 얘기를 듣고는 주저 없이 캐스팅했다.

서영희를 반대했던 건 왜인가?
서영희의 이미지가 너무 정답 같았다. 진짜 섬에서 살았던 것 같더라. 이전에 이미 그런 이미지의 연기가 있었지 않나. 내가 <김복남>을 통해 이 배우가 더 잘했다는 소리를 듣게 할 자신이 없었다. 연기를 잘 한다고 원래 저런 배우인데 네가 한 게 뭐냐 그런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아예 안 그럴 것 같거나 그런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배우면 이미지 확 바꿔놓았다, 연기 잘 한다,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서영희는 워낙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데다가 내가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부분이 없을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무도라는 섬이 배경인데 한국 사회의 폭력성만 가져다가 건설한 ‘폭력의 왕국’처럼 느껴졌다.
<김복남>은 현대가 배경이다. 근데 섬을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과거를 보여주는 면도 있다. 그러다보니 시간상으로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길게 보여주기 때문에 폭력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공간적으로는 도시와 섬,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대, 그리고 미래까지 대비감이 잘 살아나도록 사각지대가 안 생기게 구현하려 애썼다. 우리는 대개 목격자나 방관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제고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를 원했다.

<김복남>은 지극히 한국적인 배경과 한국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외국 관객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설정도 눈에 띈다. 가령, 복남은 내리쬐는 햇빛을 보고 복수할 결심을 내린다. 이 장면은 누가 보더라도 알베르 카뮈가 쓴 <이방인>의 뫼르소를 연상시킨다.
이 장면을 보고 사람들이 <이방인>을 떠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냥 죽인 게 아니라 죽이지 않을 수 없어서 죽인 것이기 때문에 태양이 살인의 동기가 된 건 아니다. 복남에게 태양은 그 자신이 넘지 못했던 거대한 운명 혹은 신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태양이 신이라면 신 또한 그동안 방관자, 관찰자였고, 작열하는 뜨거움으로 복남의 노동을 더욱 힘들게 만든 가해자이기도 하다. 복남은 자신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힘의 질서와 맞서 지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태양과 눈물겨운 싸움을 벌인다. 결국 이기고 허락을 얻어낸다.

<김복남>은 복남의 복수를 그리지만 단순히 여성 복수극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 섬에서 끔찍한 소동을 겪고 서울의 집으로 돌아온 해원(지성원)의 누운 몸 위로 섬이 겹친다. 폭력적인 환경, 더 정확히 말해 폭력을 방관하는 환경이 폭력을 낳는다는 것을 더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나는 <김복남>을 여성 복수극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지 않았다. 여자가 주인공이지만 복남은 억압받는 약자를 상징하는 존재에 가깝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이 약자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가 봐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봤고 복남의 복수에 대리만족을 느낄 거라고 판단했다. 개인적으로 강자가 영웅적인 행동을 통해 약자를 도와주는 내용보다 약한 사람이 자기의 현실을 깨고 극복해가는 종류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가장 약한 인물인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거다.  

각종 영화제의 호평에 이어 개봉 성적도 좋다.
칸 영화제 갔다 온 게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근데 워낙 태생부터 다른 영화들보다는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영양분이 간절히 필요했다. 이 영화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제의 순기능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같다. 더 받을 수 있으면 더 받고 싶은 심정이다. (웃음) 사실 평론가나 기자들이 좋게 봐주는 부분들이 더 부담스럽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건 그 자체로 좋고 즐겁다. 근데 내가 평소에 어렵게 생각하고 존경의 대상으로 봤던 영화 현장의 선배들, 감독들, 평론가들, 기자들이 품는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이렇게 큰 부담인줄 몰랐다.

그에 대해서 김기덕 감독의 조언을 구하지는 않았나?
그보다는, 김기덕 감독님의 조감독을 안 했다면 이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못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저예산 영화는 김기덕 감독님만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비교적 많은 이들이 아주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든다. 필름이 아니어도 되니까. 디지털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저예산으로 하는 영화들은 대개 김기덕 감독님 영화처럼 살아남고 있지는 못하다. 저예산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김기덕 감독님밖에 없었다. 김기덕 감독 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 부분에 있어서 독보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배우기 위해서 감독님을 찾아갔었다. 자칫 <김복남> 같은 저예산 예술영화로 시작하면 그런 영화만 찍을 수 있는 환경에 놓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안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돌파하려면 <김복남>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운명처럼 내게 다가온 거다. 그런 점에서 김기덕 감독님이 영화기술이 아니라 생존법을 가르쳐줬다고 생각한다.

사진 박성호


사용자 삽입 이미지

KOREAN CINEMA TODAY
Vol. 8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