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 트랜스포머의 욕망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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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에게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출연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이 설 연휴 동안 가볍게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경쟁 작품들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늘 영화에서 죽을 쓰기 일쑤였던 그간의 전력을 감안한다면 김명민에게 <조선명탐정>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김명민이 연기한 조선의 명탐정이 정조의 명을 받아 고위 관리들의 공납비리를 은밀히 수사한다는 <조선명탐정>은 확실히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로 가득한 작품이라 할만하다. TV드라마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사극을 스크린으로 끌어들인 점, 이를 현대적으로 변용해 무거운 이야기를 코믹하게 치장한 점, 여기에 화려한 조선 저잣거리의 재현은 물론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족관객이 집중되는 설 대목의 영화로는 제격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언제나 신사적이고 믿음직스러웠으며 진중했던 김명민이 <조선명탐정>을 통해 필모그래프 최초로 코믹한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의 기대감을 부풀린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흥행요소로 작용했다.

김명민은 영화에 출연할 때면 늘 변신을 제일 덕목으로 삼아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내 사랑 내 곁에>(2009)에서는 루게릭병 환자를 맡아 거의 20kg을 감량하며 아크로바틱한 연기의 정수를 보여줬고 <파괴된 사나이>(2010)에서는 유괴당한 딸의 복수를 위해 납치범에 당한대로 되갚아주는 잔혹한 아버지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다만 영화 속에서 그의 변신이 관객들에게 지지를 받은 건 아니었다. 잔인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김명민은 소위 말하는 ‘박스오피스 포이즌’(Boxoffice Poison), 즉 출연료에 준하는 흥행성적을 내지 못하는 대표적인 배우 축에 속했다.

그는 지금까지 영화 데뷔작 <소름>(2002)부터 <거울 속으로>(2003) <리턴>(2007) <무방비 도시>(2007) <내 사랑 내 곁에> <파괴된 사나이> <조선명탐정>까지, 총 7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그중 <거울 속으로>를 제외하면 모두 캐스팅 롤을 맡았지만 명성에 준하는 흥행성적을 올린 경우는 <조선명탐정>이 유일하다. 그 전까지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내 사랑 내 곁에>는 2009년 개봉 당시 추석 특수를 노렸지만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도 불구, 20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맘마미아>(2008) <타짜>(2006) <가문의 위기>(2005) 등 예년 추석개봉작들이 최소 4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을 감안하면 <내 사랑 내 곁에>를 흥행작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다시 말해, 영화 속에서 김명민의 변신은 웬만해선 관객의 마음을 혹한 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그런 사실에 비춰 <조선명탐정>의 쾌속 흥행 질주는 김명민의 변신에 대한 관객의 인정을 보증하는 지표로 보일 정도다.

개인적으로, <조선명탐정>에서 김명민이 보여준 연기는 흥행 성적이 과히 좋지 못했던 전작들보다 퇴행했다고 평가하는 쪽이다. 그의 재능이 낭비된 대표적인 사례라고나 할까. 김명민이 이번 영화에서 연기한 탐정은 까불까불한 면도 있고 실수도 범하는데다가 인간적인 모습이 강조된 까닭에 바늘로 찌르면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기존 캐릭터와 비교해 일견 신선해 보인다. 다만 <조선명탐정>에서의 연기는 캐릭터를 흉내 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바람에 이는 나뭇잎처럼 섬세했던 그의 몸짓은 동작만 커진 슬랩스틱 연기를 보는 듯 했고 테너의 음색처럼 믿음직스러웠던 그의 대사치기는 어느새 농담 따먹기 수준으로 변모해있었다. 코믹한 연기가 자연스럽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것이다. 그것은 김명민이 적역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방증이다.

그의 연기 패턴은 온전히 캐릭터에 자신을 투신할 때 좋은 결과를 얻었다. 김명민은 캐릭터를 자기화하기보다 그 자신이 캐릭터에 동화되는 방식으로 연기를 해왔다. 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어떤 재능이 캐릭터와 교감될 때 김명민의 연기는 무시무시한 잠재력을 폭발시키곤 했다. <불멸의 이순신>(2004)과 <하얀거탑>(2007)과 <베토벤 바이러스>(2008)가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김명민이 대중에게 크게 각인된 역할은 주로 리더를 연기한 경우였다. 이순신(<불멸의 이순신>)은 죽는 순간, 자신의 죽음을 부하에게 알리지 말 것을 권유하며 세를 결집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고, 장준혁(<하얀거탑>)은 목표한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루고야마는 야망가였으며, 강마에(<베토벤 바이러스>)는 괴짜 기질을 지녔으되 최고를 지향하고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춘 말 그대로 엘리트이었다. 

이는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관객에게 어필하는 욕망이 구체화된 결과다. 목표를 놓치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과 허튼소리는 용납하지 않는 똑 부러진 말투, 이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흐트러지지 않는 옷차림까지. 현실의 모든 이들이 꿈꾸고 바라지만 결코 이룰 수 없어 그저 마음속에서나 품고 마는 이상화된 인물이 바로 김명민이 연기한 이순신이요, 장준혁이며, 강마에였던 것이다. 거짓과 술수가 판치는 이 시대에 김명민이 TV드라마에서 보여준 캐릭터와 연기는 시청자에게 가장 어필하는 요소이었다. 그것이야 말로 지금의 김명민을 배우로 서게 한 성공요소에 다름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명민의 성공작이 (<조선명탐정>을 제외하고) TV드라마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성공한 경력의 대부분을 TV를 통해 쌓아온 것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드라마는 김명민의 현실 이미지를 교묘하게 드라마 속에 드러내는데 주저하지를 않았다. 실제의 김명민이 드라마에서처럼 완벽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는 매사에 대충 일처리를 하는 경우가 없다. 촬영 현장에선 그런 원칙을 더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데 <불멸의 이순신> 촬영 당시에는 그런 그를 동료들이 부담스러워했을 정도다. 촬영의 90% 분량을 차지하는 주인공 이순신 역의 김명민이 NG를 내지 않으니 분량이 많지 않은 동료 배우 입장에서 NG를 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배우 김명민을 돌아보건대 그는 NG 없는 정도를 걸어온 듯하다. 달콤한 성공을 경험하든 씁쓸한 실패를 경험하든 단 한 번도 연기 외의 길을 생각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듯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왔다. 물 흐르듯 자신을 맡기고 때가 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TV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김명민의 면모를 꿰뚫어보고 노골적일 정도로 그의 이미지를 이상적으로 포장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니까 변신은 어떤 면에서 김명민에게 가장 불필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성공을 영화에서 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다. 많은 한국의 배우들이 그렇듯 김명민에게도 변신에 대한 일종의 강박증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광고가 주 수입원인 TV와 달리 영화는 관객의 입장료를 수익의 원천으로 삼기 때문에 배우 된 입장에서 TV 속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에서만큼 김명민은 TV드라마 속 완벽한 캐릭터의 포스를 철저히 배제해왔다.

<파괴된 사나이>와 <내 사랑 내 곁에>는 앞서 설명한 그대로이고 <무방비 도시>의 광역수사대 베테랑 형사 조대영 역시도 소매치기 대모를 어머니로 둔 탓에 수사의 차질을 빚는 비극적 인물이었다. 눈에 띄는 한계를 지닌 인간의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스크린 속 차별화된 모습을 선보였던 그였지만 김명민의 영화 선택은 늘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조선명탐정> 역시도 그런 차별화된 전략의 일환인데 비록 흥행성적은 좋다고 하지만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변신에 대한 조급증이 느껴져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명민에게는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캐릭터와 연기의 경지란 게 있다. <조선명탐정>의 주인공 역할은 굳이 김명민이 아니더라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많다. 그의 팬들이, 관객들이 김명민에게 원하는 연기는 따로 있다. 그것이 비록 <불멸의 이순신>의, <하얀거탑>의, <베토벤 바이러스>의 재판이라고 해도 김명민이 그간 해온 캐릭터를 보건데 그 속에서 차별화된 연기를 뽑아낼 역량은 충분하다.

어느 배우나 마찬가지겠지만, 김명민에게는 새로운 역에 도전하고 싶고 어려운 역할을 건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얀거탑>의 장준혁처럼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변신이란 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계산한 것처럼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그 자신이 무명이라는 숙성기간을 거쳐 속이 꽉 찬 과일 같은 배우의 위치에 오른 것처럼 머리 굴리지 않고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길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것 역시 좋은 배우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우리가 원하는 건 트랜스포머와 같은 현란한 변신에 있지 않다.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캐릭터의 역량을 밀어붙일 줄 아는 김명민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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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11년 3월호

2 thoughts on “김명민, 트랜스포머의 욕망을 버려라!”

  1. 빅히트 드라마 < 하얀거탑>은 열혈본방사수, < 베토벤바이러스>는 퐁당퐁당 봤죠.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는 틀림없지만 김수현 드라마 보면서 힘든 것처럼, 김명민 연기를 보는 것도 저는 좀 힘들더라고요. 힘 꽉! 줘서 어깨아픈 느낌?^^ 영화는 < 소름>, < 내사랑 내곁에>를 봤지만,, 소름은 장진영만 강렬했고, 역시 < 내사랑 내곁에>는 역시 힘이 들어서. 김명민이 제일 아름다워 보였던 연기는 <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연약하게 눈물연기할 때였는데.. 이젠 김명민이 어떻게 힘을 빼도 그 느낌은 안 만들어질 것 같기도해요.

    1. 저는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편인데 < 하얀거탑>은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때 정말 김명민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걸 알았죠. 정말 그 만큼 연기하는 배우 많지 않잖아요. 언젠가 영화에서 폭발적인 연기력을 보여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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