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이야기로 맺는 인연 – <기담> 김태우, 김보경, 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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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은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가는 영화다. 공포영화가 처음이라는 김태우, 김보경, 진구에게는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연기가 쉽지 않았다. 세 배우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해내기 힘들었을 거라고 말한다.


김태우, 김보경, 진구는 <기담>에서 처음 만났다. 하지만 세 개의 에피소드로 나뉜 이야기라 함께 출연하는 분량은 손에 꼽을 정도. 성격도 딴판이다. 진구와 김보경은 감정이 북받치면 어디서든 눈물을 잘 흘리는데, 김태우는 이게 잘 이해가 안 된다. 김태우와 진구는 공포영화를 싫어하지만 김보경은 호러 마니아다. 김보경과 김태우가 장난을 치며 현장 분위기를 돋우는 것에 비해 진구는 조용히 촬영을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셋 사이에 공통점이라 할 만한 게 별로 없는 셈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섭섭해 할지 모른다. <기담>은 이들에게 긴밀한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특별한 만남


정식, 정범식 감독의 <기담>은 1942년 경성의 안생병원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을 다룬다. 동원(김태우)과 인영(김보경)은 엘리트 의사이자 부부다. 정남(진구)은 인영 밑에서 병원생활을 익히는 의대 실습생. 마음이 여려 시체를 보는 것만으로 속이 뒤틀리는 그에겐 병원생활이 고역이다. 그런 정남이 여고생 시체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내키지 않는 결혼을 앞두고 마음 둘 곳이 없어서다. 인영도 마음을 못 잡기는 마찬가지. 사랑하는 남편과 남부러울 것 없는 직장, 최고 의사라는 명성까지 부족할 것 없는 그녀지만 1년 전 동경유학 중 발생한 사고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세 사람에게 <기담>은 모두 ‘특별한 영화’다. 각자에게 주는 의미가 각별하기 때문이다. 김태우는 이 영화를 위해 무려 1년을 기다렸다. 출연 결정을 한 게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2006)에 출연하기 전. 감독에 대한 믿음이 컸다. 검증되지 않은 신인 감독이었지만 탄탄한 시나리오는 기다림의 이유로 충분했다. 촬영을 끝낸 지금 “재미는 백 퍼센트 자신한다”고 말하는 그다. 김보경에겐 극중 인영이 복잡한 캐릭터라는 점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이전 역할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복잡한 연기를 펼쳤어요. 그 때문에 고민도 많았지만 그것마저 좋았어요.” <친구>(2001)의 보경 이후 <하얀거탑>(2007)의 강희재로 실로 오랜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녀. 인영을 연기하면서 배우생활에 자양분이 될 만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 <기담>이 특별하게 느껴질 법한 배우는 바로 진구다. 처음으로 맡게 된 주연작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진구가 연기한 정남은 전작 <비열한 거리>(2006)의 종수와 360도 바뀐 무르고 약한 인물. 연기경력 4년차인 배우에게 <기담>은 특별하기 이전에 벅찬 경험이었을 테다.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다. “부담이요? 그런 거 없었어요.” 이 친구 알고 보니 꽤나 강심장의 소유자다. “아니요, 전 겁이 많은 편이에요.” 대신 함께 출연한 김태우 ‘선배’와 김보경 ‘누나’에게 의지하고 의견을 구하면서 부담감과 책임감을 덜 수 있었단다. 첫 주연작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식하지 못한 이유다. 진구에게 <기담>이 인상 깊은 작품으로 기억된다면 김태우, 김보경과 함께 동료 이상의 호흡을 나눈 까닭이다.


감정의 이중주를 나눈 호흡


인터뷰 내내 세 사람은 촬영현장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강조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의문이다. 부부로 출연하는 김태우와 김보경은 그렇다 치고 시체와 소통(?)하느라 혼자 연기하는 분량이 많았던 진구는 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있기라도 했을까? 그 부분에선 전적으로 맏형 김태우의 역할이 컸다. 현장에서 김태우의 별명은 ‘김PD’. 촬영이 있건 없건 현장을 찾아 배우부터 스탭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는 어른 노릇을 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진구는 그런 김태우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먼저 다가와 주셔서 쉽지 않은 연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김보경도 그의 덕을 톡톡히 봤다. 사랑하는 부부 사이로 등장하지만 공포영화인 <기담>에서 동원과 인영이 직접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행동이 아닌 감정으로만 보여줘야 하는데 실제로 사랑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김태우가 편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김보경은 마음을 열 수 있었고 그런 솔직함이 원활한 소통을 만들었다.

이런 모습은 예전의 김태우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 역시 내성적이었던 김태우가 배우생활 처음에 세웠던 목표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다. 상대 배우와의 소통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목표가 달라졌다. “감독과 배우, 스탭과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배우가 진정 좋은 배우죠.” 현장 분위기를 중요시하게 된 것도 생각이 바뀌면서다. 그래서일까? 후배들에 대한 칭찬만 늘어놓는 그에게 김보경, 진구에 대한 불만을 얘기해달라고 질문을 던졌다. “보경이의 감성은 때가 묻지 않았어요. 문제는 그게 너무 심해요. 연기에 빠지는 날엔 깊이 빠졌다가 안 되는 날에는 너무 힘들어하죠. 자신을 컨트롤했으면 좋겠어요. 진구는 나이가 어려 경험이 별로 없는데도 감성의 폭이 넓어요. 다만 거기에 빠져 감정을 너무 소비하지 않았으면 해요.” 단점 지적이라기보다 조언이다.

선배의 자상함을 보고 있자니 김보경과 진구는 안도감 대신 걱정부터 앞선다. 자신들도 김태우처럼 의젓한 선배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에서다. 당장에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기담>의 경험은 앞으로 연기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차가운 공포영화에 출연했지만 오히려 포근함을 느꼈어요”라는 진구의 말처럼 <기담>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은 물론 현장에서의 호흡까지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한 특별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기담>은 전쟁과 신문물의 유입이 교차했던 1942년을 배경으로 신구좌우 이념이 대립하는 현재를 절묘하게 관통하며 이중적 매력을 발휘한다. 그 가운데서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공포와 연민 등 감정의 이중주를 연주하는 김태우, 김보경, 진구의 연기는 <기담>의 이중성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볼거리. 이를 가능케 한 5할은 현장에서 쌓은 세 배우 사이의 신뢰요, 나머지 5할은 이를 바탕으로 한 연기를 통한 소통이었다. 사진 윤석무(세븐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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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45호
(2007.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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