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도 살인사건>


신인 김한민 감독의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이하 극락도)은 얼핏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시킨다. 고립된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살인사건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이 영화가 ‘미스터리 추리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목포에서 배편으로 4시간여 떨어진 섬 극락도(極樂島). 평화롭기 그지없던 이 섬에 어느 날 아침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밤새 화투판을 벌이던 이들끼리 시비가 붙었던 것.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용의자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섬의 주민들이 차례로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보건소장 제우성(박해일)과 여선생 장귀남(박솔미)이 앞장 서 살인범을 추적하는 사이 학교 소사 춘배(성지루)는 결정적인 단서로 보이는 한 장의 메모를 발견한다. 이 섬에는 과연 어떤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극락도>의 구조는 독특한 데가 있다. 추리의 형식 속에 공포를 이야기하는, 장르의 액자식 구성을 보여준다. 밀실정치 시대인 1986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시절의 무거운 공기를 적극 끌어들이거나 풍자하지는 않는다. 장르적 기능에 충실하며 오락영화로 기능하겠다는 얘기다. 비중만 놓고 본다면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예상과 달리 공포물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의 무대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은 오히려 <전설의 고향>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화는 살인자를 색출하기 위해 치밀한 추리와 아슬아슬한 복선을 사용하는 대신 마을 주민이 살해당하는 순간을 잔인하게 묘사하며 용의자를 하나씩 줄여나가는 방식을 택한다.


이처럼 <극락도>는 살인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보다 살인을 부추기는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는데 더 관심이 많다. 살인자를 찾겠다며 소동을 벌이는 과정에 열녀귀신과 같은 괴담을 슬쩍 끼어 넣어 섬 주민들의 광기를 부채질하며 공포를 극대화하는 건 영화가 지향하려는 바를 잘 드러낸다. 17명의 섬 주민이 모두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상황이야말로 인간의 욕망이 그려내는 극악무도한 풍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락도 살인사건’ 주모자의 정체를 밝히는데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 범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인간의 욕망이니까. 하지만 <극락도>는 끝내 그 정체를 극적인 방식으로 까발리며 장황한 설명을 덧붙여 가면서까지 동어반복 수준의 ‘정답’을 제시한다. 미스터리 추리극을 표방하는 만큼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럼으로 인해 영화의 긴장감이 한순간에 무너진 건 아쉬운 대목이다. 장르공식에 너무 완벽하려다보니 주제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공포에 초점을 맞춘다면 <극락도>는 꽤 흥미로운 작품으로 다가올 여지도 크다.







필름2.0 330호
(2007.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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