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감독의 그 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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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극장가는 흔히 비수기로 꼽힌다. 1년에 한두 번 연례행사로 극장을 찾는 관객 대신 좋은 작품이면 연중무휴의 자세로 극장 순례에 나서는 관객들의 시즌이란 얘기다. 하여 여름 시즌의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이벤트성 영화가 휩쓸고 간 그 자리에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연기파 배우들로 중무장한 작품들이 넘쳐난다. 여기에는 뚜렷이 감지되는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감독의 존재감. 지금 소개하려는 <디스트릭트9>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 <솔로이스트>는 감독의 이름 없이 성립될 수 없는 영화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디스트릭트9>(10/15 개봉)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화다. 8월 14일자 미국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할 때까지 이 영화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딱 하나. 피터 잭슨이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원래 피터 잭슨은 닐 블롬캠프라는 신예감독과 게임원작 영화 <헤일로>를 준비하던 중 <디스트릭트9>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제작을 결정했다. 인간이 외계인을 슬럼가에 격리시켜 착취하고, 이걸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대체역사물처럼 포장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이는 한편으론 피터 잭슨이 초짜 감독시절 꿈꿨던 영화적 야망을 재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설적인 B급영화로 회자되는 <고무인간의 최후>(1987)를 통해 잔인무도하게 외계인을 살상하는 인간을 다뤘고, ‘페이크 다큐멘터리‘ <포가튼 실버>(1996)에서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조국 뉴질랜드의 영화사를 넘어 세계영화사를 다시(?) 썼던 그에게 <디스트릭트9>은 21세기 버전의 <고무인간의 최후>요, <포가튼 실버>이었던 셈이다. <디스트릭트9>의 외계인이 생체실험에 차출되고 기업에게 기술력을 착취당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고무인간의 최후>를 닮았고 닐 블롬캠프 감독이 자신의 고향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를 배경삼아 뉴스릴처럼 구성한 화면에는 <포가튼 실버>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닐 블롬캠프가 2005년에 만들었던 단편 <Alive in Joburg>를 장편으로 확장하며 시나리오와 연출을 도맡았지만 피터 잭슨의 이름을 지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10/22)는 <디스트릭트9>의 돌풍을 잠재우며 감독의 이름값을 톡톡히 한 경우다. 타란티노의 첫 번째 전쟁영화이자, 시대물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았던 <바스터즈>는 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 잠입한 유태계 특공대의 활약상을 담았다. 다만 전작을 통해 인용이 창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타란티노는 <바스터즈>를 전쟁영화인 동시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엔니코 모리오네의 스코어가 대거 채택이 됐는데 <바스터즈> 이전 제목으로 고려됐던 것이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를 패러디한 <Once Upon a Time in Nazi-Occupied France>이었을 정도다. (결국 극중 챕터 제목으로 채택됐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전쟁영화 특유의 진지한 자세라든지 숭고함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타란티노가 영화를 엄숙하게 다뤘던 적이 있었나. 영화를 놀이로 대하는 그는 <황야의 무법자>(1964)에서 <와일드번치>(1969)까지, 자신이 열광한 영화의 특정 장면을 ‘모아모아’ <바스터즈>를 구성하는 한편 그 잘생긴 브래드 피트의 외모마저도 ‘주걱턱’으로 만들어 웃음거리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얼마나 재미있냐고? IMDB에 오른 관객 평점을 보면 자신의 영화 중 <펄프픽션>(8.9점/10점)을 빼면 가장 높은 점수(8.6점)를 받았더랬다.

<디스트릭트9> <바스터즈>와 달리 <솔로이스트>(10월 중)는 감독의 이름보다 배우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하는 제이미 폭스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그들. 사실 이들은 <솔로이스트> 출연에 회의적이었다.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노숙자와 그의 실력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는 신문기자의 우정을 다룬 이 영화의 배역이 자신들이 전작에서 연기한 캐릭터와 겹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제이미 폭스는 <레이>(2004)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조디악>(2007)에서 각각 시각장애인 가수와 신문기자를 연기했던 것. 하지만 조 라이트가 감독으로 결정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제이미 폭스가 출연하겠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제이미 폭스의 출연을 조건으로 걸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승낙의사를 밝혔다.

조 라이트가 누군가. 그 힘들다는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2005)의 영화화를 데뷔작에서 성공적으로 이루고 두 번째 작품 <어톤먼트>(2007)로 그 해 아카데미에서 코엔 형제, 폴 토마스 앤더슨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감독이 아닌가. 조 라이트의 여성적 감수성이 배우들의 날카로운 연기력과 만난 <솔로이스트>는 미국 개봉과 함께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감동스토리를 쉽게 질리지 않도록 만든 조 라이트의 예민한 연출’(LA타임스), ‘2009년에 본 최고의 앙상블 연기’(롤링 스톤) 등 감독과 배우는 서로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가을바람에 물들어가는 색색의 단풍만큼이나 10월에 만나게 될 영화 역시 이렇게 다채로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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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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