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008년은 슈퍼히어로물의 진화를 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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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 전성시대다. <아이언맨>으로 출발한 2008년의 슈퍼히어로물은 <인크레더블 헐크> <원티드> <핸콕> 등을 거쳐 현재 <다크 나이트>로 정점을 찍고 있는 추세다. <아이언맨>은 국내 개봉과 함께 2주 연속, <원티드>와 <핸콕>은 일주일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슈퍼히어로의 위용을 과시했다. 특히 <다크 나이트>의 흥행 기세는 놀랍다. 미국에서 <타이타닉>에 이어 역대 흥행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더니만 한국에서는 4주 연속 관객동원 1위를 차지하며 여차하면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세웠던 5주 연속 1위도 넘볼 태세다.

슈퍼히어로물의 기세는 이게 끝이 아니다. <헬보이2: 골든 아미> <왓치맨> <스피릿> 등과 같은 기대작들이 개봉 대기 중에 있을 뿐 아니라 작금의 유행을 타고 <플라스틱맨> <그린 애로우> <퍼스트 어벤져: 캡틴 아메리카> <저스티스 리그> <토르>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슈퍼히어로물이 제작을 앞두고 있어 그 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쉽게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만큼 슈퍼히어로는 최근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현상이요, 탐내는 소재라 할만하다.

2008년의 슈퍼히어로물이 얻은 성과는 비단 폭발적인 인기에만 있지 않다. 불과 1년 전의 슈퍼히어로와 비교하더라도 올해 등장한 슈퍼히어로물은 장르가 품고 있는 내적인 논리 면에서나 허구를 다루는 형식적인 면, 그리고 그 속에 침전한 정치적인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점에서 변화한 면모를 보여준다.

우선, 태어날 때부터 영웅의 능력을 부여받거나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초인적인 능력을 얻게 된 과거의 슈퍼히어로와 달리 2008년의 슈퍼히어로는 만들어지는 존재로 거듭났다. 이제 슈퍼히어로는 더 이상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돈’이다.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와 같은 가난한 고학생 슈퍼히어로는 올해 들어 대기업의 ‘회장님’들로 환골탈태(?)했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와 <다크 나이트>의 브루스 웨인이 대표적이다.

토니 스타크는 대형군수업체 CEO. 신무기 홍보차 방문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이 만든 무기가 살상용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후 세계평화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니. 천재적인 과학적 지성과 자본을 바탕으로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이 된다. 브루스 웨인 역시 다르지 않다.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는 복수를 목적으로 초인적 존재로 거듭난다. 아버지가 물려준 천문학적 재산과 마음속에 도사린 두려움을 분노로 승화시켜 고담시를 지키는 ‘밤의 기사’가 된 것.

두 영화와는 다르지만, <인크레더블 헐크>와 <핸콕> 역시 이해 가능한 논리가 슈퍼히어로 탄생 과정의 기저에 깔려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슈퍼히어로로 기능한다. 예컨대, <인크레더블 헐크>의 브루스 배너는 헐크로 변신하는 자신의 분노를 치료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 분노를 억제하는데 성공한다. 이안이 만들었던 <헐크>(2003)가 감마선 실험의 실패로 헐크가 된 것과 비교, <인크레더블 헐크>는 이제 슈퍼히어로의 탄생이 이성(혹은 과학)으로 설명 가능한 텍스트가 됐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핸콕>의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슈퍼히어로가 백인 일색이었다는 점에 비춰 흑인 슈퍼히어로 <핸콕>의 등장은 이제 슈퍼히어로가 백인의 영역을 넘어 누구나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한 사례다.

이렇게 슈퍼히어로가 현실세계에 깊이 뿌리를 내린 만큼 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만화를 연상시키는 허구적인 묘사를 벗어나 사실주의에 기반 한 형태로 변모한 것. 그에 따라, 인물의 내적 고민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와 깊은 연관을 맺게 됐고 세트 차원에서 머물던 공간 묘사는 현장 로케이션으로 그 범위를 넓혔으며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의 활용 역시 느와르와 범죄물로까지 나아가며 더욱 더 현실적인 모습을 취하게 됐다. 허구의 세계를 맴돌던 과거 슈퍼히어로물이 캐릭터의 수와 이야기의 규모, 무엇보다 기술적인 면에서만 진화를 꾀한 것과 비교하자면 실로 획기적인 변화다.

그 시작은 <배트맨 비긴즈>(2005)에서 있었다. 허구의 이야기에 사실주의를 접목한 <배트맨 비긴즈>는 전례 없던 형식의 진화를 꾀하며 새로운 슈퍼히어로물의 전범이 됐다. 그때부터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슈퍼히어로물의 영화적 재미를 떠나 변모한 형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그건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슈퍼히어로물을 준비 중이던 관계자들도 <배트맨 비긴즈> 이후 이 영화의 성과를 어떤 식으로 반영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슈퍼히어로물은 늘 진화해왔다. <배트맨 비긴즈>도 의심의 여지없는 진화의 한 사례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실주의(realism)가 무엇을 겨냥하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좀 더 기다려 봐야할 것 같다.” 당시 <스파이더맨 3>를 준비 중이던 샘 레이미 감독의 말이었다.

그에 대한 답변은 2008년에 이르러서 밝혀졌다. 그것은 물론 <배트맨 비긴즈>를 감독한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이뤄졌다. 속편 <다크 나이트>는 사실주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이야기의 심화를 꾀해 전편의 성취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야기의 심화를 이룬 부분에는 명백히 지금 미국이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크 나이트>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배트맨의 명성이 더 강한 적을 부른다.’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9.11 이후 ‘적’을 소탕하겠다며 전쟁을 일상화한 미국이 더 큰 재앙에 직면한 현실세계의 정치학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서 탄생한 슈퍼히어로물은 결국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사실주의적인 묘사가 겹쳐진 <다크 나이트>는 미국의 현실에 대한 은유로 작용하기 안성맞춤인 구조다. 공교롭게도 <다크 나이트>의 성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이언맨>에서도 슈퍼히어로물을 통한 미국의 정치학을 감지할 수 있다. 극 초반 등장하는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이 9.11의 주범으로 지목한 빈 라덴을 제거하겠다며 무모한 전쟁을 감행한 곳이다. (1963년 선을 보인 원작만화에서는 베트남이었다!) 영화는 이곳을 배경 삼아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을 통해 테러리스트를 응징하고 약자를 지킨다는 논리를 은연중에 구축하며 전쟁에 대한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처럼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물은 미국 주도하의 국제 정세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반영한 알레고리로 작용해왔다. 하여 슈퍼히어로의 진화는 흥미롭게도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이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을 때마다 있어왔다. 슈퍼히어로물의 장르 공식을 창조한 것으로 평가받는 리처드 도너 감독의 1978년 작품 <슈퍼맨>은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강한 미국에 대한 상징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이에 영향 받은 대부분의 슈퍼히어로물은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를 적으로 상정해 무찌르는 ‘미국 만만세’ 영화로 전락(?)하며 지극히 단순화되어갔다.

이에 변화가 생긴 건 9.11을 전후해 슈퍼 국가 미국의 위상에 의문부호가 달린 2000년대부터다. 브라이언 싱어, 샘 레이미 등과 같은 비주류 성향의 감독들이 <엑스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작품을 만들면서 슈퍼히어로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1989년 등장한 팀 버튼의 <배트맨>은 이런 흐름의 시초라 할 수 있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건데 너무 앞서간 슈퍼히어로물이었다) 우리의 슈퍼히어로는 더 이상 주류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이 아닌 타자였으며 돌연변이였고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그래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고 책임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특히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이전에 없던 슈퍼히어로에 대한 내적 고민을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징후적이었다. 스파이더맨은 미국의 평화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에 앞서 자신조차 추스르기 힘든 상황이었다. 슈퍼 파워를 가지고 있음에도 집세도 내지 못하는 가난뱅이였고 변변한 일거리도 얻지 못하는 백수신세였다. 그렇게 미국은 외부의 적에만 신경 쓰는 사이 내부적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그 결과, 슈퍼 파워에 대한 강한 의문부호가 따라붙었고 그에 따르는 책임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맨>과 <다크 나이트>는 그에 따른 고민의 결과가 각각 어떤 형태로 구체화됐는지 잘 보여준다. <아이언맨>은 내부의 환부를 도려내고 (더 이상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토니 스타크의 결심에 불만을 품은 오베디아 사장과의 마지막 대결!) 슈퍼히어로의 역할을 긍정했다. 그에 반해 <다크 나이트>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적의 정체(극중 조커는 ‘악’일뿐 그 어떤 부연설명도 없다!)에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을 ‘어둠의 기사’라고 명명하곤 현실을 뒤로 한 채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다. 이제 더 이상 감출 것이 없어진 2008년의 슈퍼히어로물은 허구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리얼리즘을 끌어와 또 한 번의 진화를 꾀했다. 9.11 이후 미국 사람이 체감하는 불안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변화다.

슈퍼히어로물은 어느 날 갑자기 진화를 이룬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의 변화에 맞춰, 그에 따른 장르의 역사가 쌓이면서 그렇게 자가 증식해왔다. 2008년은 슈퍼히어로물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해라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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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404호
(200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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