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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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드디어! 영화로 나왔다. ‘주부들의 포르노’라는 수식을 끌고 다니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동명 원작은 성인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무려 1억 부를 팔아치웠다. 원작자 E.L. 제임스는 지금도 매주 한화 12억 원에 가까운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이 금액은 소설 속 젊은 억만장자 그레이보다 많다고 한다. 무엇이 전 세계적인 ‘그레이’ 열풍을 이끈 배경일까?

영화는 총 6권으로 이뤄진 원작에서 1부 격인 1권과 2권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다. 대학생 아나스타샤(다코타 존슨)는 감기에 걸린 친구를 대신해 학보신문에 실을 그레이(제이미 도넌)의 인터뷰에 나선다. 생전 처음인 인터뷰 진행인지라 실수를 연발하지만, 차갑다고 알려진 그레이는 뜻밖에 친절한 태도를 보인다. 그의 따뜻한 면모에 아나는 순식간에 마음을 뺏기고 그레이 또한 순수한 그녀의 매력에 빠진다.

영락없는 ‘백마 탄 왕자’ 스토리다. 돈 많고 매력적인 젊은 남성이 대학 공부하랴, 아르바이트하랴 미래가 불투명한 여성을 구원하는 테마가 아닌가 말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SM, 즉 가학 피학성 성욕이다. 손을 넥타이로 감아 침대에 묶은 채 섹스를 나누는 건 기본이고 채찍으로 몸을 학대해 성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묘사가 넘쳐난다.

성적 관계에 있어서만큼 그레이는 주인으로 군림하고 아나는 조건 없는 복종을 감내한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설정인데 원작자는 물론이고 영화감독까지 여성이다. 존 레논의 젊은 시절을 묘사한 <존 레논 비긴즈-노 웨이 보이>(2009)로 연출 데뷔했던 샘 테일러-존슨 감독이다. 이 영화에서 함께 했던 23살 연하의 애런 존슨과 부부 인연을 맺어 화제를 모았던 감독은 어떤 면에서 판타지 같은 사랑을 실현한 장본인인 셈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선택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맘에 들었다.” 파격적인 섹스가 전부인 영화가 아니라는 우회적인 표현이다. E.L. 제임스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섹스 묘사로 화제를 모았지만, 많은 독자를 매료시킨 건 진솔한 사랑 이야기였다.” 파격적인 로맨스의 이면에 놓인 이상적인 남녀 관계에 대한 고찰. 이에 주목했기에 샘 테일러-존슨 감독은 “두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 변화에 중점을 두고 연출에 임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섹스는 과격한데도 카메라의 움직임은 첫 경험을 맞은 여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몸을 훑는 신사의 태도와 닮았다. 이는 곧 아나와 그레이의 관계다. 사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섹스 장면보다 흥미로운 건 SM을 두고 이 둘이 벌이는 협상 과정이다. 입에 담기도 힘든 행위를 내용으로 한 계약서를 받아들고 가부 여부를 결정하는 아나의 태도는 오히려 그레이를 리드하는 인상이 강하다. 그레이를 사랑해 SM을 받아들였지만, 그 뒤에 감춰진 아픈 과거를 목격하고 그를 치유하기 위해 벌이는 적극적인 노력은 단순한 볼거리 이상을 넘어 이 작품에 특히 여성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영화를 향한 관객들의 반응은 대개가 혹평 일색이다. 소설보다 못하다는 둥, 성적 수위가 예상만큼 높지 않다는 둥 말이 많지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전 세계 56개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누가 뭐라던 극장에서 확인하겠다는 태도는 많은 이들이 극 중 그레이와 아나의 관계처럼 ‘길티 플레져’로서 이 작품을 즐기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시사저널
(201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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