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의 세계는 돌고 돌고 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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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은 세계를 창조하는 연출자다. 그의 영화 속 배경은 저택(<로얄 테넌바움>(2001))이나 해양선박(<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2004)), 호텔(<호텔 슈발리에>(2006))또는 야영장(<문라이즈 킹덤>(2012)) 등 낯익은 곳이지만 웨스 앤더슨이 손을 대면 전혀 낯설어 보이는 세계로 변모한다. 그것이 시각적으로 먼저 관객을 압도하는 까닭에 그의 영화는 종종 ‘패션 필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짧은 유행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관객의 사랑을 받는 것은 화려한 미술 그 이상의 느낌을 뚜렷하게 남기기 때문이다. 그는 늘 무너진 인간관계를 스토리텔링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화려한 시각 이미지의 축적으로 환원되며 해피엔딩의 결말을 맞는 것이다.  

그가 이번에 창조한 여덟 번째 세계는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제목 자체만으로도 웨스 앤더슨 특유의 알록달록한 세계가 엿보이지만 의외로 피살 사건을 다룬다. 웨스 앤더슨의 세계에서 살인과 음모 같은 단어는 거의 금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배제된 묘사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와 같은 범죄가 이야기의 핵심에 자리한다. 그럼에도 잔혹하거나 잔인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 건 관계의 따뜻함을 최종 지점으로 삼는 웨스 앤더슨의 여전한 주제 의식 때문이다.

문라이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27년, 전쟁의 위험에서 멀찍이 떨어져 운영 중이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비보가 날아든다. 호텔의 고객이자 관리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의 친구였던 마담 D(틸다 스윈튼)가 살해당했다는 것. 장례식에 참석했던 구스타브는 마담 D가 그의 앞으로 비싼 그림 한 점을 남겼다는 유언을 전해 듣는다.

마담 D가 남긴 모든 재산을 손에 넣고자 하는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는 구스타브를 눈엣가시로 느낀다. 구스타브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할 뿐 아니라 제거하기 위해 킬러 조플링(윌렘 대포)까지 고용한다.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된 구스타브는 자신을 따르는 로비보이 제로(토리 레볼로리)와 함께 자신의 누명을 벗겨줄 마담 D의 집사 서지 X(마티유 아말릭)를 찾아 나선다.

이 내용은 극 중의, 극 중의, 극 중이라는 3중 구조에 매설된 형태다. 영화는 먼저 소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읽는 소녀를 주목한 후 이 소설을 쓴 작가(톰 윌킨스)의 모습을 비춘다. 작가는 곧 젊었던 시절 (젊은 작가는 주드 로가 연기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묵을 당시로 돌아가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회상한다. 그때 로비에서 만난 호텔 주인에게서 어떻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소유하게 됐는지 들은 내용을 책으로 옮겼던 것. 그 내용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줄거리, 즉 소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일반적이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과거의 과거’를 번거롭게 경유해 핵심에 접근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몇 번의 경유를 감내할 정도로 이 영화가 품은 메시지의 가치가 귀하다는 의미일 테다. 그에 반해 구스타브의 누명이 풀리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풀리는 편이다. 왜 아니겠는가, 웨스 앤더슨이 관심을 갖는 것은 마담 D를 죽인 진범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복원되는 어떤 관계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관계 복원 주식회사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는 매번 스타들이 집단으로 출연하지만 배우의 장악력보다는 감독의 세심한 손길이 화면 구석구석에서 빛을 발한다. 배우들을 24색 크레파스 삼아 스크린에 스케치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 웨스 앤더슨 연출의 특징이다. 안 그래도 웨스 앤더슨은 어린 시절부터 머릿속의 상상을 그림으로 그리기를 좋아해 스케치북이 남아나는 적이 없었다고 한다.

워낙 그림에 재능이 있었을 뿐더러 당시 겪었던 이른 부모의 이혼이 웨스 앤더슨으로 하여금 자기 세계 안으로 더욱 천착하게 만들었음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부모의 이혼에 대해 “어린 시절 겪었던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내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대신 짧은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슈퍼8 카메라에 담아 영화를 만드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상실의 아픔을 상쇄하고는 했다. 그런 경험에 대해 웨스 앤더슨은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를 만들면서 가족애를 느꼈다”고 회상한다.

그런 가족애로 완성된 웨스 앤더슨의 공식적인 첫 작품은 <바틀 로켓>(1994)이다. <바틀 로켓>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던 중 알게 된 오웬 윌슨(각본과 출연)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단편이다. 우리가 아는 <바틀 로켓>(1996)은 동명의 단편이 선댄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제작비를 지원받아 장편으로 확장된 경우다. 아무래도 첫 번째 영화인만큼 ‘웨스 앤더슨 월드’의 출발을 가늠할 수 있는 원형(元型)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바틀 로켓>은 텍사스 출신의 소년들이 등장해 도서관을 터는 등 색다른 도주의 여정을 펼쳐 보인다. 이중 앤소니(루크 윌슨)는 정신병원을 탈주해 절친 디그넌(오웬 윌슨), 밥(로버트 머스그레이브)과 합류하며 모험을 시작한다. 빌어먹을(?)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자신들만의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웨스 앤더슨 월드의 테마가 이 시기에 이미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앤소니는 사랑을 알게 되고 가족애를 갈구하는 밥은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이를 대치하니, 현실에서 부재한 관계의 애정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복원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웨스 앤더슨 특유의 팬시한 이미지들이 결합하면서 현대의 동화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후 웨스 앤더슨은 관계의 복원을 테마 삼은 현대의 동화 들을 만들어왔다. 기괴하게 우뚝 솟은 성과 같은 저택을 배경으로 파탄 난 가족을 결합시켰고(<로얄 테넌바움>), 인도를 가로지르는 열차에 탑승한 미국인 삼형제의 유대감을 회복시켰으며(<다즐링 주식회사>(2007)), 로얄드 달의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인간들의 개발에 짓밟히는 동물들의 생존권을 지켜냈다(<판타스틱 Mr. 폭스>(2009)). 그렇게 관계의 복원에 대해 집착하는 웨스 앤더슨의 세계에서 가족애와 동료애는 구별되는 가치가 아니다. 그래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아예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이들의 동료애에 주목한다.  

웨스 군, 동료애에 빠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묘사하는 가족 관계는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가치다. 마담 D의 전 재산을 노려 어머니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 제거하는 드미트리에게 가족애는 번거로운 것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꾸준히 보아 왔던 이들이라면 극 중에 묘사되는 가족의 초상은 실로 파격에 가깝다. 살인과 음모와 같은 범죄물의 외양을 띄게 된 것도 이미 무너져버린 가족의 관계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더 이상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웨스 앤더슨의 변화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웨스 앤더슨에게 있어 영화 속 가족은 언제나 중요한 커뮤니티였다. 다만 피를 나눈 관계가 아니더라도 사랑이나 우정으로 변환된 유사 가족 관계의 의미를 획득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근작으로는 <문라이즈 킹덤>의 어린 소년과 소녀가 가족의 눈을 피해 그들만의 세계를 찾아 사랑을 나눈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무너진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인간적 가치를 수호할 수 있었던 건 사랑이나 우정으로 대변되는 동료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담 D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정기적으로 찾은 건 구스타브를 통해 가족에게서 얻을 수 없는 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의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 구스타브가 주인공인 이유는 그가 혈연과 같은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주변에 베푸는 사랑 때문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구스타브는 마담 D에게 섹스의 즐거움을 제공(?)했고 제로가 후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소유자가 되는 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 젊은 작가에게 호텔의 사연을 들려주는 이는 바로 제로다!)    

그래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화려한 이미지는 동료애를 콘셉트로 이뤄졌다. 동료애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3중 구조의 형식을 뚫고 들어가야 하듯 미술 역시도 3겹의 레이어로 조직되어 있다. 유럽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웨스 앤더슨은 팬이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과 회고록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세계 대전이 배경이었던 탓에 유럽 국가들이 나치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각 나라들이 어떻게 분열되었는지를 다룬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나 아이렌 네비로프스키의 ‘스위트 프랑세즈’를 참고하기도 했다.

소설의 책 표지를 보여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 이미지의 첫 번째 레이어라면 두 번째는 할리우드와 프랑스의 클래식 시절을 대표하는 영화, 그중 <윤무>(1950) <쾌락>(1952) 등을 연출한 막스 오퓔스의 작품에서 영향 받은 바가 크다. 연극 경력을 갖고 있던 막스 오퓔스는 무도회장, 기차, 호텔 방과 같은 실내극에 강점을 보인 감독이었다. 웨스 앤더슨은 그런 공간들을 가져올 뿐 아니라 호텔 계단을 우아하게 올라가는 카메라의 미학도 그대로 취하고 있다. 이는 막스 오퓔스를 포함한 선배 감독들에 대한 존경이자 동료 감독으로서 표하는 우정 같은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두 겹의 이미지 레이어를 벗기면 비로소 등장하는 것이 웨스 앤더슨 월드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의 향연이다. 웨스 앤더슨은 공간의 미장센만큼이나 캐릭터의 독특한 특징을 부여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구스타브의 호텔 관리인 복장은 말할 것도 없고 마담 D의 번개 맞은 듯한 머리, 살바도르 달리를 연상케 하는 드미트리의 콧수염 등은 캐릭터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보는 즉시 인지하도록 만든다. 이는 과도한 미술적 효과보다는 캐릭터를 향한 웨스 앤더슨의 무한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 같은 것이다. 동료애를 부각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과장된 이미지는 웨스 앤더슨의 철학이 녹아든 핵심인 것이다.  

판타스틱 Mr. 앤더슨 월드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 결국 끊어진 줄을 다시 잇는 것과 다르지 않다. 웨스 앤더슨 월드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는 카메라가 원을 돌듯이 공간을 비추는 숏이다. <문라이즈 킹덤>에서 소녀의 가족들은 서로에게 소원한 상태다. 하지만 이들 각자의 공간을 원을 돌아 잡는 카메라는 그 관계가 여전히 이어져있음을 암시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는 그와 같은 특징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층들이 철저히 구획되어 있고 각각의 방마저 분리되어 있는 호텔의 특성상 원의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웨스 앤더슨은 그곳에서마저 기어코 관계를 복원하고 역사를 잇는 유사 원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감옥에서 탈출해 스스로 도망자 신세가 되는 구스타브가 누명을 벗는 데 도움을 주는 인물들이 있다. 그의 뒤를 이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맡게 되는 동료 관리인들과 더불어 호텔 관리인들의 비밀 모임인 ‘십자열쇠협회’ 구성원들이다. 카메라는 이들이 누구인지 시대별로 연속 편집해 주목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원, 즉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인다. 외부로는 전쟁의 포화가 자욱하고 내부로는 살인과 음모가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구스타브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는 동료들의 우정을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로비 보이들과 십자열쇠협회 구성원을 연기한 배우들의 면면이다. 오웬 윌슨과 제이슨 슈워츠먼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관리인으로, 빌 머레이와 와리스 알루와리아가 십자열쇠협회 구성원으로 카메오처럼 등장한다. 이처럼 웨스 앤더슨은 영화로 맺은 인연을 놓는 법이 없다. 배우들 역시 웨스 앤더슨을 위해서라면 역할의 비중에 상관없이 출연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로 계보를 만들면 공교롭게도 원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동료라는 원, 궁극적으로 가족이라는 세계. 그렇게 웨스 앤더슨은 영화의 친구들과 더불어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현대의 동화라는 판타스틱한 웨스 앤더슨 월드를 창조하고 있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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