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Gra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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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영화의 감상을 방해할 만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아바타>(2010))은 알폰소 쿠아론의 개인 시사실에서 <그래비티>를 본 후 느꼈던 그 뜨거웠던 감정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보자마자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래비티>는 지금껏 본 우주 배경의 영화 중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 내가 오랫동안 꿈꾸고 기다려왔던 그런 종류의 영화였다.”

같은 멕시코 출신으로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적 동지인 길예르모 델 토로(<퍼시픽 림>(2013))도 이에 뒤질세라 한 마디 거들었다. “알폰소 쿠아론은 새로운 차원의 영화 만들기를 실현했다. 정말로 우주를 떠다니는 느낌을 받고는 완전히 충격 먹었다. 정말 대담한 영화라고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데이빗 핀처(<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는 좀 달랐다. 알폰소 쿠아론이 <칠드런 오브 맨>(2006)을 끝마치고 <그래비티>를 기획할 당시, 영화의 콘셉트를 듣고는 5년은 더 기다려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의 영화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제임스 카메론, 길예르모 델 토로, 데이빗 핀처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알폰소 쿠아론은 적어도 <그래비티>의 기획 단계 때만 해도 불가능할 것만 같던 프로젝트를 완성해낸 셈이다. 실질적인 등장인물이라고 해봐야 산드라 블럭과 조지 클루니 고작 2명, 90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의 <그래비티>는 어떻게 현대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아니 이를 능가하는 작품이 되었을까.

과거의 기술로 만든 첨단의 우주 영화

<그래비티>의 내용은 간단하다. 스톤 박사(산드라 블럭)는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베테랑 우주비행사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와 함께 지구로부터 600km 상공의 우주를 여행한다. 크게 어렵지 않은 작업이었기에 오래 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우주에서의 시간은 갑자기 찾아온 비상사태로 기약 없이 늘어나게 된다. 러시아의 인공위성이 파괴되고 그 잔해가 스톤 박사와 코왈스키 일행을 덮치면서 우주미아 신세가 된 것. 스톤 박사에게 남아있는 산소량은 고작 10%. 산소 없이 우주에서의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톤은 코왈스키에게 의지하지만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래비티>의 포스터를 장식하는 태그 라인 중 하나는 ‘외계인도, 우주전쟁도 없다’이다. 이것은 애초 알폰소 쿠아론이 <그래비티>를 만들면서 목적했던 것이다. “우리의 도전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었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처럼 아이맥스로 감상할 수 있는 사실적인 우주 배경의 영화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우주로 날아갈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육중한 아이맥스 카메라나 3D 촬영 장비를 갖추고 우주를 떠다니는 듯한 유려한 움직임의 영상을 찍어낸다? 데이빗 핀처가 5년을 더 기다리라며 찬물을 끼얹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는 알폰소 쿠아론도 인정하는 바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대신 우리는 좀 더 복고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하단의 Tip! 참조) 가령 이런 거다. 3D 촬영을 포기한다고 해서 무한대로 뻗어 있는 우주의 깊이를 지금의 기술력으로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3D 영상을 버리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대신 3D 컨버팅을 통해 광활한 우주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촬영의 콘셉트를 잡아갔다. 실제 우주를 경험한 사람은 극소수여서 촬영 방식이 획기적이지 않더라도 관객들에게 현실적인 느낌만 줄 수 있다면 리얼리티를 획득할 수 있을 거라고 알폰소 쿠아론은 판단했던 거다.

실제로 <그래비티>를 보고 있으면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그 끝을 감지할 수 없는 깊이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것은 부족한 기술력과 검증된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알폰소 쿠아론 이하 이 영화의 스탭들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치였는데 제임스 카메론은 이를 두고 “3D 컨버팅의 가장 완벽한 경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는 우주 미아가 된 스톤 박사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최선의 선택들이 차례로 좌절되면서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선을 선택하는 아이러니의 과정과 묘하게 닮아있다.  

우주로 보는 인생의 아이러니

<그래비티>의 포스터를 장식하는 또 하나의 태그는 ‘이것이 진짜 재난이다!’이다. 알폰소 쿠아론은 재난에 대해 나름 이렇게 정의한다. “고난을 겪는 것과 그에 따른 극복의 과정은 모두 재난의 결과다.” 그런 자신의 지론에 따라 알폰소 쿠아론은 실제 아들이면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조나스 쿠아론에게 원하는 이야기의 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주를 즐기면서 동시에 위험을 겪기도, 고난에 빠지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두 개의 모티브와 주제가 양립하는 이야기를 단 한 번의 끊어짐 없이 일직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자”

조나스에게 아버지와의 작업은 공식적으로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를 쭉 봐온 입장에서 예상한 바이기도 했다. 핵심은 관객이 허구처럼 받아들일 법한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래비티>는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시리즈가 아니라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론 하워드의 <아폴로 13>(1995)의 성격에 가까운 영화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조나스와 알폰소 쿠아론 부자(父子)는 나사(NASA)의 ‘실시간 악몽 시나리오'(real-life nightmare scenarios), 즉 우주 비행 중 예기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 중 하나인 ‘케슬러 신드롬'(the Kessler Syndrome)을 적극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케슬러 신드롬이란 1978년 나사의 과학자인 도널드 J. 케슬러(Donald J. Kessler)가 세운 이론을 말한다. 저궤도에 자리 잡은 우주선이나 위성 간에 행여 최초의 충돌이 발생할 경우, 거기서 생긴 파편이 엄청난 속도로 또 다른 우주선이나 위성에 충격을 가해 도미노처럼 계속적인 사고와 피해를 양산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처럼 케슬러 신드롬은 <그래비티>의 극 중 사건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이 영화의 촬영과 이야기를 결정한 중요한 메타포이기도 했다. 알폰소 쿠아론 왈, “작은 파편 하나로 더 큰 사고가 이어지는 케슬러 신드롬처럼 우리의 인생 역시 작은 행동 하나가 거대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인생이란 아이러니의 연속이 아니던가.”

케슬러 신드롬이 <그래비티>의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력은 ‘아이러니’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되지만 스톤과 코왈스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우주는 곧 생존 가능성이 10%도 되지 않는 지옥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이 절망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겠다고 사투를 벌이는 스톤의 삶에 대한 의지를 보고 있노라면 인생은 그래서 더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와 같은 아이러니의 이야기 속에는 우주의 무한함에 대한 경이로움과 더불어 그렇기 때문에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공간(space)이 아닌 세계(the universe)로서의) 우주의 신비에 다가가기 위해 더 악착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희망이라는 삶의 중력

알폰소 쿠아론이 자신의 영화를 통해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미학은 잘 알려졌듯 ‘롱테이크’다. (알폰소 쿠아론의 롱테이크 미학 참조) 참고로, 롱테이크는 특정 장면이 단 한 번의 끊어짐이나 편집 없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속칭 긴 쇼트를 말한다. 알폰소 쿠아론은 유한한 인간이 죽음에 맞서 좀 더 살기 위해 벌이는 투쟁,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이 내포한 생의 지속성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영화적 기법이 바로 롱테이크라고 생각한다. <그래비티>는 알폰소 쿠아론이 가진 삶에 대한 철학과 영화적 미학이 집대성된 야심작인 것이다.

조나스 쿠아론에게 일직선의 이야기를 요구한 것처럼 알폰소 쿠아론은 <그래비티>의 롱테이크를 위해 자신의 미학 원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위대한 유산> <이 투 마마> <칠드런 오브 맨>)를 다시 한 번 불러들였다.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그래비티>의 시나리오를 읽고는 “이전의 Sci-Fi 영화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장 긴 지속 시간의 롱테이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처럼 영화의 시작과 함께 20분 넘게 지속되는 오프닝을 포함해 <그래비피>에는 메시지와 미학과 관련한 중요한 3개의 롱테이크 장면이 등장한다.

첫 번째 롱테이크는 우주에서 평화롭게 유영하며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던 스톤과 코왈스키에게 별안간 우주 파편이 날아들어 충격을 가하는 장면에 할애된다. 신비의 대상이었다가 한순간에 위험한 곳으로 변모하는 우주의 양면성을 20여 분의 시간동안 담아내는 것이다. 두 번째 롱테이크. 불의의 일격에 안전장치를 잃으면서 혼란에 빠진 스톤의 심리가 헬멧 속 그녀의 시선으로 10여 분간 이어진다. 평화로운 순간에 갑자기 닥친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게 이 롱테이크의 목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스포일러 주의!) 홀로 남은 스톤이 간신히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위성에 탑승하는 데 성공하지만 연료가 없자 삶을 포기하는 순간에서다.

이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코왈스키가 스톤의 눈앞에 나타나 연료가 없으면 차선을 찾으면 되지 않겠느냐며 삶에 대한 무한한 낙천성을 전달하고는 곧바로 사라진다.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컷으로 연결해 잡은 이 세 번째 롱테이크는 <그래비티>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죽음을 앞둔 순간 기적처럼 찾아온 삶에 대한 희망은 죽음에 맞서 인간의 생을 끌어당기는 힘, 그야말로 삶의 ‘중력'(gravity)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그래비티>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우주 배경의 영화들을 최종적으로 끌어당기는 메시지의 중력은 결국 ‘인간의 조건’인 셈이다.

우주 배경 영화의 아이러니는 그것이 우주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얘기라는 점에 있다. 우주에서 시작해 지구에서 끝나는 <그래비티>는 우주를 헤매며 고군분투하던 스톤이 땅을 밟고 느끼는 순간에야 비로소 끝을 맺는다. 여기에는 삶을 위해 ‘포기’를 모르는 인간의 조건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를 <그래비티>의 완성을 향한 알폰소 쿠아론의 의지에 대입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공교롭게도 그의 꿈은 우주를 여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 우주여행은 아니지만 <그래비티>를 만든 알폰소 쿠아론은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꿈을 이루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첫 선을 보였을 때 당시 관객이 느꼈을 감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래비티>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 것은 영화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놓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Tip! <그래비티>는 어떻게 과거의 기술력으로 진화를 이뤘는가

스톤 역을 맡은 산드라 블럭은 <그래비티>가 위대한 이유에 대해 “스톤과 같은 여자 캐릭터가 이전에 없었던 것처럼 참고할 만한 영화나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이뤄낸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몇몇 과거의 작품은 우주 영화의 진화를 원한 알폰소 쿠아론에게 좋은 본보기였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나사의 도움을 얻어 완성한 최초의 우주 배경 영화였다. <그래비티>도 마찬가지다. 나사의 협조 속에 그들이 사용하는 우주복은 물론 우주선과 내부 인테리어, 그리고 위성의 캡슐을 활용, 우주에 최대한 가까운 환경에서 촬영에 임했다. 산드라 블럭의 경우, 나사 직원과 언제 어느 때고 연결할 수 있는 직통 전화를 마련해 궁금증이 생기면 늦은 시간에도 통화를 시도할 만큼 열의를 보였다.

<아폴로 13>은 <그래비티>가 전범으로 삼은 작품이었다. 론 하워드의 <아폴로 13>이 ‘구토유발 혜성'(Vomit Comet)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나사의 무중력 우주 장치를 활용해 영화를 찍은 것처럼 <그래비티> 역시 이 기계를 활용해 사실적인 우주 배경을 완성했다.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은 퍼포먼스 캡처(Performance-capture) 방식을 활용해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우주선 내부로 들어오는 빛을 배우의 얼굴에 비추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알폰소 쿠아론은 엠마누엘 누베즈키가 제안한 방식을 따랐다. 엠마누엘 누베즈키는 배우 한 명과 그 자신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우주선 캡슐 내부에 접히는 LED를 넣어 그 효과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를 ‘빛의 상자'(Light Box)라고 불렀는데 산드라 블럭은 촬영 기간 동안 캡슐에 들어가는 날이면 10시간 동안 갇혀 고생을 해야 했다.

맥스무비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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