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감독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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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허리를 책임지고 있는 감독들의 신작 소식이 추수의 계절만큼이나 유난히 풍성한 이때다. 이정향과 장윤현, 그리고 정지영 감독은 오랜만의 연출작으로 조만간 관객과 조우할 예정이며 이명세, 변영주, 허진호 감독은 하루 빨리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작업에 한창인 것으로 알려진다. 워낙 한국영화계에서는 나름의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감독들인지라 장르와 소재의 폭도 다양해 변덕이 들끓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돌아왔다

이정향과 정지영 감독은 한동안 한국영화계에서 잊힌 이름 취급을 받았더랬다. 이정향 감독은 <집으로>(2002) 이후 9년 동안, 정지영 감독은 <까>(1998) 이후 13년 동안 연출 칩거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집으로> 단 두 편을 통해 작가적 입지를 굳힌 것은 물론 흥행력까지 갖춘 이정향 감독의 신작 <오늘> 소식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기대감은 증폭됐다. 오랜만의 신작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시아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송혜교와의 만남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다만 <오늘>은 인적 드문 시골에서의 할머니와 손자의 동거(?) 생활을 귀엽게 연출했던 <집으로>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주인공이 살인자를 용서한 후 겪는 정신적 갈등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을 연상시킨다. 

프로듀서 다혜(송혜교)는 약혼자의 죽음 이후 용서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면서 다양한 사건의 피해자를 만난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의 교류가 깊어질수록 자신의 경우를 반추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용서해준 17살의 가해자 소년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촬영 중 우연히 찾아온 소년의 소식,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에 충격을 받은 다혜는 용서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오늘>은 더욱 폭넓어진 송혜교의 내면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랑의 상처와 치유의 과정, 그리고 용서의 진실을 추적하면서 얻게 되는 어떤 깨달음까지, <오늘>은 스타에서 배우로 성장한 송혜교의 열연과 더불어 9년의 시간을 숙성해온 이정향의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조용히 13년 만의 연출작 <부러진 화살>을 준비해왔다. 이 작품은 지난 2007년 모 대학교수가 재판에서 패소하자 자신의 사건을 맡았던 판사에게 앙심을 품고 석궁을 쏘았던 충격적인 사건을 영화화했다.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 등 역사의 비극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던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에서도 역시나 여전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실제로 이 영화가 소재 삼은 ‘석궁테러사건’의 당시 언론 보도는 철저히 교수가 판사에게 석궁을 쏜 사실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화살을 맞은 것으로 알려진 판사의 셔츠에서 피가 발견되지 않은 점, 이 사건의 실체를 증명할 부서진 화살이 끝내 발견되지 않은 사실은 선정적인 보도 속에 완전히 묻혔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다루는 정지영 감독의 시선은 편향적이지 않다. 대신 문제의 석궁테러를 전후한 인물들의 행적을 다큐멘터리적인 필치로 추적하고 묘사하며 한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을 다시 한 번 건드린다. 정직한 개인의 신념이 어떻게 조직 논리에 의해 무시되고 파괴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안성기가 실체 없는 조직의 시스템에 맞서 자신의 항변을 주장하는 전직 대학교수 역으로 분했으며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범죄의 재구성>(2004) 등에서 인상적인 조연 연기를 보여준 박원상이 안성기와 갈등하는 변호사를 연기했다. <오늘>과 함께 <부러진 화살>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원작은 잊어라

장윤현과 변영주 감독은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장윤현 감독은 김탁환의 <노서아 가비>를 영화화한 <가비>를, 변영주 감독은 ‘미미여사’로 통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화차>를 각색한 동명영화(가제)를 선보일 예정인 것이다. 올 연말로 개봉이 확정된 <가비>는 조선 최초의 여성 바리스타 타냐(김소연)를 둘러싼 고종암살작전의 비밀을 그린 영화다. 여기서 ‘가비’는 구한말 러시아에서 들어온 커피를 부르던 말이고 또한 소설의 ‘노서아 가비’는 러시아 커피를 뜻한다. 말하자면 <가비>는 조선과 러시아를 잇는 대하서사극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야기 역시나 달콤하게 들리는 제목과 달리 러시아 저격수 일리치(주진모), 일본인 스파이 사다코(유선)가 등장하는 등 첩보물의 형태를 띤다. 일반적인 사극과 비교해 좀 더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것이 특징으로 이는 장윤현 감독의 특기다. 전작 <황진이>(2007)에서 그는 기녀 황진이가 아니라 현대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인물로 황진이를 묘사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가비> 역시 100억 원이 투입된 볼거리로 현대의 관객을 현혹할 셈이다.  

장윤현 감독이 규모의 부담을 가지고 있다면 <화차>의 변영주 감독은 아무래도 원작의 이름값에 부담을 느낄만하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걸작’이라는 평가를 듣는 미야베 미유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서, 또한 징크스처럼 이제껏 미미 여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중에 성공한 작품이 없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일단 다행히도 시나리오를 본 미야베 미유키가 재미있다는 반응을 표했단다. 영화는 원작에서처럼 과거의 빚을 청산하고 새 인생을 꾸리고 싶었던 선영(김민희, 소설의 교코)이 신용불량과 개인파산으로 신분을 숨기면서 몰락한 과정을 쫓는다. 다만 원작에서 출연분이 많지 않았던 선영의 약혼자 문호(이선균)가 비중 있게 묘사되고 전직 형사 출신의 종근(조성하)이라는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해 추리적인 부분을 더욱 강조한다. 10월에 모든 촬영을 마치고 2012년 봄 개봉을 준비 중에 있다.     

새로운 면모를 기대하라

앞서 소개한 감독들과 달리 이명세와 허진호 감독의 신작은 아직 촬영 전인 상태로 프리프러덕션 단계에 있다. 이명세 감독은 ‘한국판 007’로 소개된 <미스터K>의 12월 촬영을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며, 허진호 감독은 프랑스의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위험한 관계>의 리메이크를 중국에서 준비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감독의 전작을 고려했을 때 꽤 어울리는 작품 선택이지만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된다. <M>(2007)을 통해 대중과의 호흡에 다소 미진한 결과를 받아들였던 이명세 감독은 관객들이 첩보영화에 기대할법한 요소 위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다만 할리우드처럼 매끈한 007이 아닌 부인(문소리)에게 정체를 숨기고 사건을 해결하는 생활인으로서의 비밀요원(설경구)으로 주인공을 설정한 것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감독의 노림수인 것이다.   

허진호 감독의 신작에 대해서는 사실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중합작영화인 까닭이다. 한국인 스태프 일부가 참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중국인이고 남자주인공 역의 장동건을 제외하면 장백지, 장즈이 등 중국계 배우들로 구성된다. 전작들에서처럼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이 전면에 나서지만 <위험한 관계>가 흥미로운 것은 허진호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이다. 이미 <호우시절>(2009)에서 중국인 스태프와 함께한 전력이 있지만 원작이 있는, 그것도 수십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의 리메이크는 허진호 감독에게 첫 경험이다. 프랑스의 영화를 한국인 감독이 중국에서 만드는 이 다국적 프로젝트가 과연 그의 영화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지 기대가 되는 것이다. 

marie clare사용자 삽입 이미지
16회 부산국제영화제 특별판

2 thoughts on “그 영화감독이 돌아왔다”

  1. 부산영화제 < 오늘> 예매실패한 후, 그래,,,이 영화는 서울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 위로했던 1인;;; < 미술관 옆 동물원> 춘희. 넘 넘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 오늘>도 많이 기대되요^^

    1. 아~ 무릇 영화란 남들보다 먼저 본 후에 자랑하는 게 가장 큰 재미인데 안타까워요 디케님 ^^; 그래도 좋은 영화 많이 예매하셨잖아요. ^^ 전 일정이 바뀌어서 내일 부산에 내려갑니다. 연락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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