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스파이크 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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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2013)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자신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출까지 맡은 첫 번째 영화다. 그는 <그녀>까지 총 네 작품을 연출했는데 그동안 찰리 카우프먼의 각본으로 <존 말코비치 되기>(1999)와 <어댑테이션>(2002)을,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을 원작으로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9)를 만드는 등 협업을 주로 해왔다. <그녀>는 온전히 스파이크 존즈의 상상력으로 빚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인공 지능과 사랑에 빠진다고?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의뢰를 받아 편지를 써주는 ‘아름다운 손 글씨 닷컴’ 소속의 작가다. 첨단의 소통 기기들이 판치는 시대에 낭만적인 직업으로 보이지만 정작 테오도르 본인은 외로움에 사무쳐 죽을 지경이다. 부인과 별거 중인데다가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하라는 상대 변호사의 독촉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혼자 게임이나 하든가 시답잖은 채팅 서비스를 이용하던 중 사용자의 심리를 파악해 일처리를 도와주는 운영체계 OS1을 컴퓨터에 깔게 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출연)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운영체계와 사랑에 빠진다.

OS1은 애플 모바일의 OS를 연상시킨다. 왜 아니겠는가. 스파이크 존즈는 아이폰의 시리(Siri)를 사용하던 중 <그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리는 즉석에서 채팅을 할 수 있는 대화 프로그램이다. 시리를 사용하던 중 사랑에 빠지는 상상을 하게 됐다.” <그녀>가 시리를 이용하던 중 떠올린 작품이라니. 그렇다면 스파이크 존즈에게 시리는 찰리 카우프먼과 모리스 샌닥과 같은 협업자의 존재라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았지만 영화상으로 볼 때 인간과 인공 지능 간에 형성되는 관계를 인정하는 것 같다. 아니 인정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윤리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과 인공 지능 사이의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의 경우,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데커드의 정체성을 두고 오랫동안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녀>의 테오도르는 사용자와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컴퓨터 운영 체계인 사만다와 속 깊은 대화는 물론 사랑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하지만 기존의 윤리에 발목 잡혀(?) 인공 지능과 관계를 갖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에 대해 혼란을 느끼거나 의문을 표하지는 않는다.

시리의 등장에서 보듯 우리에게 인공 지능과의 관계는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길거리에서만 해도 사람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스마트 폰에 얼굴을 묻고 걷는 이들이 더 많은 게 작금의 풍경이다. 이를 인정하고 이후에 생길 윤리 문제에 대해 고민하자는 게 <그녀>에서 스파이크 존즈가 내세우는 입장이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인공 지능이 내가 아닌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면? 실제로 <그녀>의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별 다른 의문을 갖지 않다가 그녀(?)가 동시에 640명과 사랑에 빠진 상태라고 하자 그제야 혼란을 겪게 된다. 사만다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고?

대상이 무슨 상관이야?

사람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대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컴퓨터와 노닥거리는 테오도르를 두고 ‘너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본인이 공인된 너드이기도 한 스파이크 존즈는 자신의 성격을 투영한 캐릭터를 애정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스파이크 존즈는 고립된 이의 사연을 즐겨 다뤄왔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크레이그 슈와츠(존 쿠색)와 로테 슈와츠(카메론 디아즈)는 부부이지만 채워지지 않는 심적 공허감으로 외로운 인물들이었다. <어댑테이션>의 찰리 카우프먼(니콜라스 케이지)은 대중이 알아봐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열증세를 겪는 무명작가였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맥스(맥스 레코즈)는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쓸쓸한 아이였다.  
 
의지할 곳이 마땅치 않다보니 이들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공허한 마음을 소통으로 가득 채워줄 존재를 찾아 나선다. 그 와중에 크레이그는 존 말코비치의 뇌로 연결되는 7 1/2층이라는 기괴한 통로를 만나고 맥스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만난 괴물들과 자신들만의 놀이를 즐긴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육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공 지능을 가진 사만다와 플라토닉 러브의 단계를 넘어 육체적인 관계로까지 나아간다. 대상이 문제인가, 대화가 가능하고 그것이 실질적인 소통으로까지 나아간다면 그 순간의 감정만큼은 진짜라는 것이 스파이크 존즈의 생각이다. 첨단의 통신 기기들이 우리의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인간과 인공 지능 사이에서 야기되는 관계의 풍경에 맞춰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다.

7 1/2층, 괴물, 컴퓨터 등 비인간적인 소재로 인간적인 감정을 품어내는 데 있어 스파이크 존즈의 연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녀>에서도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대화로 감정을 고양시키는 데만 그치지 않고 이를 육체적 관계로 전이시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때 스파이크 존즈는 마치 방송사고인 듯한 ‘무지 화면’을 띄우는데 이들의 신음하는 목소리만으로도 사랑으로 충만한 감정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새로운 관계의 부상에 따른 새로운 윤리 문제를 제기하듯 스파이크 존즈는 이에 맞춰 새로운 영상을 고안해낸다. 사실 새로운 영상을 창조했다기보다 기존의 영화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던 방식을 적극 끌어들인 것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이에 대한 스파이크 존즈의 견해는 이렇다. “편집이란 영화적인 것과 영화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끊임없는 발견과 변화일 것이다.”

영화에 대한 그의 철학은 곧 인간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녀>의 극 중 상황을 대입해 스파이크 존즈의 말을 살짝 바꿔 본다면, 그에게 소통이란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사이에 발생하는 관계의 발견과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네 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그의 필모그래프를 관통하는 주제는 일관됐다. 소수자들에게는 더 큰 세상으로 나오라는 격려이고 다수자들에게는 소수자에게 좀 더 손을 뻗어줄 것을 호소하는 목소리다. 사만다와 헤어진 후 테오도르가 찾아가는 이는 직장 동료다. 아무리 관계의 대상이 늘어나고 범위가 넓어진다고 해도 그 기본은 사람이라는 것을 스파이크 존즈는 알고 있다. 더 정확히는 사람이라는 진짜 감정을 말이다. 2014년 아카데미 영화제는 <그녀>에게 각본상을 수여하고 작품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 후보로 올리는 등 스파이크 존즈의 진가를 인정했다.  

BEYOND
(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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