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그리고 인간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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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Her>로 알려졌던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신작이 <그녀>라는 제목으로 국내 개봉(5/22)한다. 그런데 제목이 지칭하는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컴퓨터 운영 체계다. <그녀>는 컴퓨터 운영 체계와 사랑에 빠진 그의 이야기다. 그게 가능하냐고? 뭐, 안될 거 있나?

os1과 사랑에 빠진 남자?

영화가 시작하면 테어도르는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크리스”라고 운을 떼며 결혼 50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부인과 함께 했던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한다. 물론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테오도르는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다. 테오도르는 의뢰를 받아 대신 편지를 써주는 일을 한다. 그렇다면 테오도르의 감정은 가짜일까? 표정으로 봐서는 거짓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에 이어 또 하나의 흥미로운 미장센이 이어진다. 편지 쓰기를 대리한다지만 테오도르는 편지지와 필기구를 이용하지 않는다. 대신 컴퓨터의 포토샵 프로그램을 열어 손 글씨 모양으로 디자인 후 프린트로 뽑아 편지를 완성한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녀>는 ‘진짜 감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전(?)적인 관계가 아닌 인간과 인공지능 간에 생성되는 감정에 대한 영화인 것이다.  

테오도르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정작 자신 주변에는 감정을 공유할 만한 존재가 없다. 예전에는 있었지만 현재는 부인과 1년째 별거 중이다. 퇴근 후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채팅 방에서 만난 여자와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다. 변함없이 출근하는 사람 무리에 끼어 이동하던 중 눈길을 사로잡는 광고를 보게 된다. 스스로 진화하는 컴퓨터 운영체계 ‘os1’으로, 테오도르는 이를 실행하는 즉시 ‘그녀’에게 끌린다.    

그녀의 이름은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출연). 인공지능 운영체계인 os1은 수백만의 프로그래머에 의해 코딩이 되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운영자의 명령이라는 경험을 통해 진화하는 인공지능 운영체계다. 스스로 사만다라고 이름 지은 os1은 테오도르의 명령을 바탕삼아 성격을 파악해 그가 원하고 선호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눈다.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그렇게 운영체계와 사용자의 관계에서 어느 순간부터 애인 사이로 발전한다.

이건 허무맹랑한 상상도, 거짓말 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스파이크 존즈는 아이폰의 ‘시리 Siri’를 사용하던 중 <그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금 버전의 시리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즉석에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소통 프로그램이다. 시리가 <그녀>를 가능케 했다.” 스파이크 존즈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디지털을 활용해 관계를 이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비록 인간과 인간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로 디지털이 활용되지만 워낙 기술의 발전이 빠른 만큼 언젠가 테오도르와 사만다와 같은 종류의 관계도 가능하지 않을까?

디지언트와 사랑에 빠진 여자?

이를 먼저 구체화한 작품이 있다.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라는 소설에서다. 주인공은 애나 앨버라도. 동물원 사육사로 6년 동안 근무하다 일자리를 잃은 애나는 가상 애완동물의 조련사라는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디지털 세계 안에 존재하는 동물 디지언트(가상 세계 속에서 사는 디지털 존재, digient)가 잘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라는 것.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포털 안에 들어가 디지언트를 기르는 애나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동물에 대해 느끼는 친근감을 전제한다. 게다가 디지언트는 <그녀>의 사만다처럼 학습 능력, 즉 인공지능을 갖고 있어 지식을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듯 진화한다. 누가 디지언트를 양육하고 어떤 환경에서 육성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인간처럼 각양각색의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os1을 사랑하는 테오도르와 디지언트를 애완동물처럼 돌보는 애나가 소통하는 방식은 각각 연인과 일종의 모자(母子) 관계처럼 다르다. 심지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디지언트는 인간형(形) 로봇 모양 하드웨어에 인공 지능 소프트웨어를 적용할 수 있어 현실에서 물리적인 양육도 가능하다. 물리적 육체를 욕망하지만 갖지 못하는 사만다와는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디지털 존재를 살아 숨 쉬는 생물과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점에서 테오도르와 애나의 행위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os1과 사랑에 빠지고, 디지언트를 돌보는 행위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지 인간과 디지털을 구별해 감정의 진짜, 가짜 유무를 따지는 세속적인 시선의 잣대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테오드르와 애나에게는 “사회가 개인의 욕망에 비정상적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문제”라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은 결코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테오도르는 사만다의 도움을 얻어 그 자신이 대리해서 쓴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른다. 책의 제목은 <당신 인생의 편지 Letters from your Life>. 테드 창의 팬들이라면 <당신 인생의 편지>를 인지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테드 창이 쓴 <당신 인생의 이야기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다. 스파이크 존즈가 <그녀>를 만들면서 테드 창의 작품을 참조한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대목이다.

아니면 또 어떤가. 중요한 건 참조의 여부를 떠나 인간과 디지털 간의 소통과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만큼 그와 같은 풍경이 가능할 법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매체에 의지해 거리에서 혼잣말로 떠들어대고, 스마트 기기에 얼굴을 푹 파묻은 채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녀>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가 비슷한 시기에 대중에게 소개된 건 우리가 미래라고 상상하던 모습이 이미 현실에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인공지능과 소통해도 괜찮아?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에는 함께 살더라도 혼자 지내는 삶에 익숙한, 그러니까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는 듯한 성향을 지닌 인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존 말코비치 되기>(1999)의 크레이그 슈워츠(존 쿠삭), <어댑테이션>(2002)의 찰리 카우프먼,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9)의 맥스, 그리고 테오도르가 그러한데 <그녀>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라 할 만하다.

애나는 동물 디지언트를 돌보는 와중에도 회사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남자 친구도 사귀는 등 적극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에 반해 테오도르는 부인에게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는 일도 1년 가까이 미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맘에 드는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나도 좀체 마음을 여는 법이 없다. 그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쉬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성향이기도 하다. 존즈가 <블링 링>(2013)의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4년간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가 헤어진 건 유명하다. 극 중 테오도르와 별거 중인 부인 캐서린(루니 마라)의 관계는 존즈와 코폴라 전(前)부부의 사연을 그대로 투영한 것에 가깝다. 테오도르가 별거에 들어간 건 캐서린이 힘들어할 때 충분히 신경 쓰지 않아서인데 소피아 코폴라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4)에서 일중독에 걸린 남자(지오바니 리비시)를 등장시켜 존즈에 대한 불만으로 우회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스파이크 존즈의 경우처럼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 이는 관계의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찾아 다시금 회복하려는 소통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녀>를 보건데 그 대상이 굳이 인간으로만 한정되는 것 같지는 않다. 존즈는 영화를 완성한 후 <그녀>를 배우 제임스 갠돌피니, 촬영감독 해리스 사비데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원작자 모리스 센닥 등에게 바쳤다. 영화를 매개로 스파이크 존즈와 소통을 하고 우정을 나누며 관계를 이어갔던 사람들이다.  

존즈가 힘들 때 영화가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테오도르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그 방법을 사만다, 즉 컴퓨터 운영체계에게서 찾으려 한다. 존즈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인간관계에 절름발이였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따뜻한 영화로 기억되고는 한다. 결국 <그녀>는 사만다와 동등한 관계를 이어가던 테오도르가 결과적으로 컴퓨터 운영체계인 사만다의 도움을 얻어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 결말로 나아간다.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관계를 다룬 영화는 부지기수이지만 둘 사이의 감정적 관계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 영화는 <그녀>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하지만 일찍이 대중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던 관계를 탐구하던 이 영화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안착하는 결말을 보면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 생성되는 감정적 관계를 유예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애나가 자신의 디지언트와 서로간의 욕구의 균형을 맞추며 진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결말을 보면 더욱 그러한 것이다.    

더 나은 사만다를 기대하며

<그녀>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다른 결말을 두고 스파이크 존즈는 보수적이고 테드 창은 진보적이라고 평가내릴 수 있을까? 사실 이는 속도전의 문제다. <그녀>에서 테오도르와 디지털 존재인 사만다의 관계는 육체적인 단계까지 나아간다. 사만다가 물리적인 육체를 갖고 있지 않지만 맨 살이 닿고 결합했을 때 느끼는 감정을 서로가 공유한다면 크게 문제없다는 투로 영화는 접근한다.  

대신 다른 문제가 있다. 사만다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테오도르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그 속성상 단일 상품의 시스템을 다수의 사람이 사용하는 형태다. 이를 사랑의 윤리로 대입하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방식이다. 연인을 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니 테오도르가 종국에 사만다를 버리고 인간을 선택하는 결말은 이해할 법도 하다.

다만 스파이크 존즈는 이를 마침표로 가져가지 않는다. 혼란해하던 테오도르가 안정을 찾는 결말로 가져가지만 <그녀>는 첨단의 디지털 매체 들이 인간의 삶 깊숙이 파고든 상황에서 새로운 관계의 윤리가 필요하다는 뉘앙스의 질문을 과제처럼 남기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os의 하고 많은 버전 중에 첫 번째인 ‘1’로 가져갔을까.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감정적 교류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프로그램의 속성을 간파한 테오도르가 마지막 순간 보여주는 혼란과 이에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 사만다의 반응은 이들의 감정이 진짜라는 것을 대변한다. 그와 같은 혼란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인간 간의 감정 교류를 인정하는 기존의 관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관성 때문에 생겨난 거다. 하지만 관계의 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 세대에게 디지털 매체는 단순한 기계 그 이상임을 우리는 경험상 잘 알고 있다.

이건 누가 옳고, 그르고의 판단 문제가 아니다. 기술의 진화에 맞춰 인간의 삶도 그만큼 진보하고 있다. 이건 이해의 문제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애나와 디지언트의 관계처럼 젊은 세대는 우리가 관계의 범주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대상과 전혀 다른 차원의 소통을 나눌지도 모른다. os1에서 발견된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감정적 관계의 오류 문제를 해결한 업그레이드 버전의 os2, os3, 그러니까 또 다른 사만다의 출현이 멀지않은 것이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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