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굿바이 레닌>은 병든 마더를 위해 선의의 거짓부렁을 일삼는 한 청년의 이야기다. 이름은 알렉스(다니엘 브륄 분). 의식불명에 빠졌던 마더가 극적으로 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을 받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닥터의 충고에 아들 알렉스는 모종의 행각을 벌인다. 마더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외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차단하고 왜곡하면서 마더 보호작전에 나선 것.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쥔공 알렉스가 마더에게 헌신을 하는 과정에서 가족끼리 서로 갈등을 겪지만두 끝내 마더의 건강을 사수, 가족 간의 화해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면서 찡한 가족애를 느낀다는 감동의 파노라마를 추측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예상은… 어느 정도 맞다. <굿바이 레닌>은 그동안 많이 보았던 가족에 대한 영화 중 하나다. 근데 당 영화는 외견상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가족영화가 아니다. 그건 당 영화 뒤로 흐르는 시간적 배경이 별거 아닐 것 같은 가족 이야기에 똥꼬 깊쑤키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는 동과 서를 반으로 뿜빠이하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90년. 그니까 통일독일을 전후로 한 시점. 다시 말해 그 시절은 알렉스로 하여금 마더에게 거짓부렁을 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럼 알렉스의 마더가 의식불명에 빠지던 그 때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알렉스의 마더 크리스티안느(카트린 사스 분). 서독 자본주의의 여자에게로 간 남편으로 인해 골수 사회주의자가 된 그녀. 크리스티안느는 절대 자본주의의 꼬라지 어느 것 하나 용납할 수 없는 여자다. 그런데 아들이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시위에 참가한 것을 목격한 크리스티안느, 용납할 수 없다. 그러니 쓰러질 수밖에. 그러나 력사적인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진 어느 순간 의식을 회복한 그녀. 그러나 자본의 유입으로 혼란에 휩싸인 동독의 현실을 크리스티안느가 목격이라도 하는 날엔 그녀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알렉스의 본격적인 거짓부렁은 시작된다.

다시 말해 당 영화는 알렉스와 크리스티안느의 모습을 통해 보편적인 가족의 사랑과 화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한편 ‘레닌’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와 ‘코카콜라’와 ‘버거킹’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가 통일로 인해 서로 짬뽕이 되면서 혼란을 겪는 그 시절의 동독을 바라본다. 


데 감독은 왜 당 영화를 통해서 가족과 당시의 시대상을 함께 엮어서 보여주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통독 이전과 이후를 몸소 겪은 볼프강 베커 감독이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믿고 의지했던 것이 사실은 알고 보니 굉장히 허약한 것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 꺼다.

1990년. 서독과 동독은 서로 하나가 되었고 그 하나된 국가가 월드컵에 나가 우승까지 거머쥐니 이들의 앞길은 탄탄대로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장밋빛 반딱이는 희망찬 미래도 잠시. 서로 다른 두 개의 체제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질수록 동독민이 그리고 서독민이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모두가 똑같이 잘 먹고 잘 싸고 잘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사회주의’도, 능력에 따라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는 ‘자본주의’도 결국 그들을 이상국가로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통일된 국가 역시 그렇고.

그들이 그걸 깨달았을 때 느낀 충격은 아들의 이야기를 믿어왔던 크리스티안느가 동독의 현실을 간파하고 느꼈을 그것과 같은 것이었을 테다. 그녀 역시 사회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겠지만 통일 이후 자본에 휩싸여 허우적대는 자신의 나라(?) 동독을 보면서 내가 믿고 의지했던 것이 결국은 모래성같은 것이었구나 라는 사실에 잇빠이 충격을 먹었을 게다.

하긴 왜 아니겠냐. 그동안 그들은 국가가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제시해주는 비젼을 보면서 자신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그 상황을 철통같이 믿고 따랐건만 알고 보니 그런 비젼이 조작되고 차단되어서 유지되고 있었던 거시니 말이다. 당 영화가 썰 하고 있는 두 부분, 즉 알렉스 가족의 이야기와 통일을 전후한 독일의 당시 시대상이 기름과 물처럼 따로 놀지 않고 자전거 바퀴처럼 잘 맞아 떨어져 돌아가고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점을 함께 공유하며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극중 알렉스의 애인인 라라(슐판 카마토바 분)의 말을 빌자면 “원래 진실이란 모호해서 각색하기도 쉽다”는 점일 텐데 그래서 알렉스가 마더를 속이기 위해 고립된 방에 가둬(?) 정보를 차단하고, 알려주더라도 미디어를 통해 조작하는 건 단순히 재미를 위해 낑궈진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당 영화의 감독인 볼프강 베커는 이런 알렉스 가족과 혼란스런 당시의 동독을 바라보는데 있어 굉장히 따뜻한 시선을 견지한다. 그뿐 아니라 무거울 것 같은 소재를 매우 우끼고 자빠라지게 그리기까지 한다. 

이는 감독이 당시의 동독을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 하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 이후 적응하지 못한 동독의 보통사람들에 앵글을 맞춰 추억하는 듯한 느낌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당 영화에는 동독인의 향수를 자극하는 물품이 많이 등장한다.

본 우원이야 거기에 안 살아봐서 알 턱이 없지만서리 보도자료에 나와있는 대로 표현하자면. 동독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향수를 느끼고 있을 피클과 술, 초코렛 그리고 트라반 승용차를 극중으로 끌어들여 알렉스가 마더 크리스티안느를 위해 서독물건을 동독 것으로 감쪽같이 속이는 모습은 재미도 재미지만 향수 어린 시선을 통해 딱딱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감싸는 역할까정 한다. 

게다가 알렉스가 절친한 시네아스트(?) 친구와 함께 통일이 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자체 제작한 뉴스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마더를 안심시키는 부분은 당 영화를 코미디로써도 기능하게 한다. 재미있는 건 이와 같은 아들내미의 조작행동이 마더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주의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 당 영화가 코미디이면서 결론에 이르러 가슴 뭉클한 감동까정 전달하는 건 바로 이런 부분에서 기인하고 있다.


처럼 당 영화는 통일에 따른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급격히 혼란에 휩싸이는 동독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철거당해 반쪽만 떨렁 남은 레닌의 동상을 통해 사회주의가 이상국가를 건설하는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역설적으로 자본주의가 성공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앞썰에서도 자세하게 언급했지만 감독은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결국 이상국가는 없었다고 말한다. 통일된 독일이 이상국가라고도 전혀 썰 풀지 않는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통독 역시 존나 혼란하게 보여지거덩.

이상국가, 즉 유토피아, 곧 어디에도 없는 나라. 그래서 당 영화는 결론적으로 이상적인 국가는 없다고 말한다. 아니 아직 그것은 찾아오지 않았다고 보여준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아둥바둥거리면서 살고 있는 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겠다고, 나름대로 이상적인 생활을 해 보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닌가. 

해서 감독은 대신 알렉스의 가족을 통해 그 해답을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쫌 곰팡내 나는 표현같다만 한마디로 하자면 ‘가족 간의 사랑’. 마더를 보호하기 위해 별 짓을 다하는 알렉스의 가족처럼 당 영화는 이러한 가족의 사랑이 결국 이상적인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말한다. 바꿔 말해 가족의 사랑이란 것은 범위를 더 크게 하자면 화합이라고 할 수 있을 꺼다. 화합. 그래서 서독과 동독은 큰 혼란을 무릎 써서라도 통일을 이룬 걸꺼다. 그런 점에서 당 영화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때마침 우린 송두율 문제로, 이라크 파병 문제로 서로 다른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물론 이들 각자에게 송두율을 추방하거나 처벌을 가하는 것이, 아니면 이념에 관계없이 송두율을 끌어안는 것이, 또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라크에 군인을 파병하여 양국 간의 우호를 증진하는 것이, 그 반대로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의미에서 파병에 응하지 않아 미국의 부당함을 알리는 것이 지들 나름대로의 더 나은 세상을 이룩하기 위한 선의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화합하지 않는 선의란 그것은 단지 허울뿐인 선의인 것이다. 그리고 그 허울 뿐인 선의에 상처를 받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고. 그래서 이와 같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건 화합. 이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당 영화 <굿바이 레닌>이 특정한 개인의 과거사와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별개의 사실을 결합시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건 역시 이것이 아닐까 본 우원은 생각한다. <굿바이 레닌>을 강추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2003. 10. 26.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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