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Ode To My Father)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은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다. 기획 의도부터가 그렇다. 윤제균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 당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를 바라보며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만든 영화다”

최근 들어 한국영화가 아버지에 주목하면서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부쩍 늘었다. 하지만, <국제시장>처럼 대놓고 고마움을 전하는 영화는 없었다. 얼마 전 개봉했던 <나의 독재자> <아빠를 빌려드립니다>가 자식의 시점에서 불화했던 아버지를 이해의 정서로 접근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지만, 작금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감정을 건드리다

덕수(황정민)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흥남에서 남한의 부산으로 피란 와 고모(라미란) 댁에 얹혀산다. 눈치가 보일지 몰라도 삶을 이어갈 수 있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덕수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전쟁 통 피란길에 자신의 실수로 헤어진 아버지(정진영)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그의 마음속에 너무나 크게 자리 잡으면서 평생을 괴롭히는 것이다.

대신 덕수는 홀로 된 엄마와 두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 돈을 버는 일에만 열중한다. 서울대에 입학한 남동생의 등록금을 마련코자 이역만리 독일에 광부로 떠나고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에 기술 근로자로 건너가 총상을 입는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의 시집 자금을 마련한다. 가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릴 법도 하지만, 덕수는 도리어 “힘든 세월에 태어나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지 않느냐며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덕수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반세기 한국 현대사를 그대로 관통하는 <국제시장>은 특정 개인의 경험이 아닌 아버지 일반에 대한 영화라 할 만하다. 특히 지금은 일흔 먹은 할아버지가 된 덕수가 과거를 회고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지나온 삶에 대한 호소의 정서가 물씬하다. 더욱이 회고의 배경이 되는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 가족과 친지들 간의 생이별을 전제한 한국전쟁, 베트남전, 이산가족상봉 등에 집중되어 있어 감독의 의도를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다.

한국인이라면 쉬이 공감할 한(恨)의 정서를 건드려 그동안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던 아버지(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겠다는 것. 꽤 영리한 대중적 접근이다. 이는 같은 아버지를 다루고도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나의 독재자>와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김일성과 같은 독재자에 비유한 <나의 독재자>와 백수인 아버지가 보기 싫어 타인에게 빌려(?)주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일반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

그에 반해, <국제시장>의 설정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태어난 이들이라면 자신의 사연이라는 점에서, 그 세대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경험치가 감정적으로 내재하여 있다는 점에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예컨대, 온 국민을 울렸던 이산가족 상봉의 장에서 덕수가 헤어졌던 아버지를 찾겠다며 방송에 출연, 자신의 사연을 읊을 때면 어쩔 수 없이 관객이라면 누구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확실히 윤제균 감독은 한국인의 집단 정서를 감정적으로 건드리는 데에는 도가 튼 연출자다.

면죄부를 주다

데뷔작 <두사부일체>(2001) 때부터 그랬다. 조폭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설정은 황당하지만, 학력 위주 사회에 대한 풍자와 학원 폭력에 대한 비판이 호응을 얻으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윤제균 감독의 경력에서 정점이라고 할 만한 <해운대>(2009)는 우리에게 익숙한 해운대를 배경으로 초대형 쓰나미가 덮친다는 스펙터클에 가족주의를 접목하면서 무려 1,1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그처럼 윤제균 감독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영화를 옮기는 것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국제시장>의 제작 의도만 해도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아버지를 소재로 한 대중문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작품은 아니지만, 하드 SF로 분류되는 <인터스텔라>가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웜홀, 블랙홀 등 어려운 개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극 중 딸을 향한 아버지의 절절한 부성애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탓이 크다.

그래서 <국제시장>의 흥행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데 극 중 아버지를 다룬 방식에 동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른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등장한 한 마리의 나비가 부산의 국제시장을 훑은 후 집 앞마당 대청에 앉아 있는 노령의 덕수와 영자(김윤진) 부부에게로 이동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화의 오프닝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장면이다.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 하얀 깃털이 바람에 휘날리다가 벤치에 앉아 있는 포레스트 검프에게로 떨어지는 오프닝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1960~70년대 미국의 주요한 현대사의 격동적인 현장에 우연히 개입하면서 마침내 입지전적 인물로 우뚝 서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포레스트 검프의 회고로 끌고 가는 진행 방식은 그대로 <국제시장>과 일치한다. 한국판 <투모로우>로 불렸던 <해운대>처럼 윤제균 감독은 전부터 유명 할리우드 영화를 가져와 거기에 한국적 드라마를 대입하는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과정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는 부분마저도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가져온 혐의가 짙다.

<국제시장>이 다루는 현대사는 이미 지나버린 과거이지만, 그 경험과 여파는 고스란히 역사로 쌓여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한국전쟁을 비롯해 질곡의 현대사를 통과하면서 우리네 삶의 철학은 오로지 잘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였다. 이를 <국제시장>은 ‘그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로 포장함으로써 아버지들의 신화로 격상시킨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일명 왕회장의 에피소드를 짤막하게 삽입한 건 단순히 웃음을 주려는 시도만은 아닐 것이다.

CG로 세련되게 구현한 스펙터클과 고증을 통해 꼼꼼하게 묘사한 시대 재현, 그리고 회고의 형식 등 한없이 낙천적으로 과거를 향수하는 영화의 태도는 잘 사는 것만을 유일한 가치로 내세운 우리 아버지들이 남긴 부정적 유산에 대한 문제의식을 대책 없이 지워버린다. 덕수가 회고를 마치면서 휘황한 부산의 정경을 큰 화면으로 잡아낸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 이 정도로 살게 된 건 다 우리 때문’이라는 아버지 세대의 자기만족에 가까운 인상을 남긴다.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힌 윤제균 감독의 말에 비추면 <국제시장>이 보여주는 결말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진다. 자식 세대의 치열한 삶과 고민은 싹 빠진 채 아버지 세대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국제시장>은 그럼으로써 현실과 합을 맞추기보다 결과적으로 판타지로 향한다. 그것이 영화로 현실을 잊고 싶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이 지향하는 대중영화의 면모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시사저널
(2014.12.6)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