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품을 애용합시다 – 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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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준은 ‘장난감 연구가’로 유명하다. 파주 헤이리에 장난감 박물관을 개관한 데 이어 홍대 앞에서 ‘현태준의 국산품전(展)’이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첫 개인전이다.


허남웅 기자:  인터뷰가 뜸했던 것 같다.
현태준: 근래 2~3년간은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인터뷰하면 진이 빠져가지고. (웃음)


허남웅 기자: 현재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현태준: 지난 8월 초 경기도 헤이리 아트벨리 안에 ‘20세기 소년소녀관’이라는 장난감 전시관을 열었고, 9월 7일부터는 홍대에 위치한 문화플래닛 갤러리 상상마당에서 ‘현태준의 국산품전’을 하고 있다.


허남웅 기자: 바쁘다면서 왜 이렇게 살이 쪘나?
현태준: 너무 뚱뚱해져서 이제 살 좀 빼려 한다. 멋을 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지금 내 체형에 맞는 옷이 없다. 남방을 못 입는다. 그나마 티셔츠도 맞는 게 없어서 고르느라 애를 먹었다. 젊은 사람들이 입는 힙합 브랜드 있지 않나, 일부러 헐렁하게 입는 스트리트 패션. 거기서도 사이즈가 제일 큰 거 입어야 겨우 맞는다. 걔네들이 무릎까지 헐렁하게 입는 티셔츠를 입어야지 나한테 맞는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원래 힙합 옷인데 이렇게 몸에 달라붙는다. 이 바지도 ‘똥꼬바지’라고 젊은 사람들이 입으면 축 처지는데 내가 입으니까 몸에 딱 맞는다. (웃음)


허남웅 기자: 원래 살이 많이 쪘던 편 아닌가?
현태준: 얼마 전 담배 끊고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다. 담배를 많이 피니까 몸에서 냄새나고 또 담배 사러 가기 귀찮기도 해서 끊었다. 게다가 담배가 몸에 그렇게 안 좋더라. 그런데 담배 끊고 나니까 할 일이 없어서 막 먹게 된다.(웃음)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그러다 보니 많이 먹게 되더라.


허남웅 기자: 무슨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나?
현태준: 전시회 하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니까. 머리 쓰는 게 싫고 억지로 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먹게 되는데 그게 살로 가는 거다.


허남웅 기자: ‘현태준의 국산품전’은 첫 개인전이다.
현태준: 상상마당 쪽에서 개인전을 할 작가를 찾고 있었다. 국내 브랜드인 만큼 국산이라는 이미지와 맞는 한국 작가를 찾다 일곱 명의 작가가 거론됐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작가들이 다른 곳에 전속돼 있고 전시회가 잡혀 있었던 거지. 홍대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찾다보니까 내가 제일 ‘널널해서’ 하게 됐다. 처음엔 나도 ‘20세기 소년소녀관’ 때문에 바빠서 못 하겠다고 했는데 다 지원해주겠다고 해서 하게 됐다. (웃음)


허남웅 기자: 전시회 타이틀은 상상마당에서 먼저 제안한 건가?
현태준: 내가 생각했다. 상상마당에서 어떤 전시 타이틀로 하겠느냐 해서 내가 국산에 관심이 많으니까 ‘메롱 코리아전’ 이런 식으로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는 무난하게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해서 지금의 타이틀이 됐다. 결과적으로 처음 의도보다 점잖게 된 측면이 있다. 분위기가 너무 내 취향으로 가버리면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기호에 따라 나뉠 텐데 지금처럼 돼서 여러 사람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허남웅 기자: 현태준 작품의 매력은 조잡함이라고 생각한다. 점잖음과는 잘 안 어울려 보인다.
현태준: 그렇긴 한데 조잡함을 많이 빼라고 해서 그렇게 안 보이도록 했다. 그래서 ‘국산품 애용의 길’(유리로 된 길 아래 장난감을 일렬로 배치한 작품)이라는 작품에만 조잡한 작품을 몰아넣었다. 저렇게 해놓으니까 아주 세련된 작품이 됐다. 이게 다 하기 나름이다. 액자도 처음으로 주문해서 한 건데 하나로 통일이 돼서 그런지 있어 보이지 않나.(웃음)


허남웅 기자: 이전까지는 만화와 일러스트 작업을 주로 해왔는데 헤이리의 전시관이나 이번 개인전을 보니 작업 패턴이 변한 것 같다.
현태준: 2000년부터 개인전은 아니지만 단체전으로 전시회는 많이 했다. 단체전이 편한 게 출품하는 작품 수도 많지 않고 무엇보다 그쪽에서 다 해주거든. (웃음) 이번 개인전도 상상마당에서 거의 다 해줘서 편했다.


허남웅 기자: 국산품전인데 전시물을 보면 아톰에, 슈퍼맨에, 독수리 5형제에 캐릭터는 모두 일본산이다.
현태준: 국산화된 캐릭터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한국 얼굴이다. 내가 장난감을 본격적으로 모은 지 십 년이 됐다. 저 얼굴들은 우리나라 장난감에 나왔던 것들을 그대로 살려놓은 거다. 우리나라 장난감 만드는 아저씨들이 일본 걸 정말 엄청나게 베껴댔다. 얼마 전에도 SBS에서 <돌아온 아톰>이라고 방영을 해서 인기가 좋았는데 아톰은 옛날부터 인기가 많았다. 그러니 장난감도 엄청 잘 팔리는 거다. 그 인기에 영합하려고 그냥 일본 것 베껴서 만들었는데 너무 급하게 하다보니까 제대로 안 된 거다. 전시물 얼굴 보면 일본 아톰하고는 생김새가 좀 다르다. 일본 아톰은 똘망똘망하고 빠릿빠릿하고 정의를 지킬 것 같은 다부진 얼굴인데 한국 아톰의 표정은 불안해 보이고 입은 처지고 가련한 데다가 도저히 지구를 지킬 것 같지 않은 생김새다. 그래서 작업 중에 한국 장난감을 보고 이게 한국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허남웅 기자: 아톰 몸이 근육질인데 거기에도 무슨 의미가 있나?
현태준: 지금 보면 세 캐릭터 모두 몸뚱이가 하나다. 똑같은 몸통이다. 옛날에는 돈이 없으니까 한국의 장난감 제조업자들이 제작비를 아끼려고 몸뚱이를 하나만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캐릭터별로 머리통만 갈아 끼웠다. 아톰 머리 박아 넣은 다음에 슈퍼맨 얼굴을 박아 넣고 독수리 5형제 얼굴 박아 넣는 식으로 말이다. 제작비가 절감되는 거다. 그 정신이, 그 발상이 얼마나 한국스러운가. 그런 과정 속에서 아톰은 근육질 몸이 아닌데 근육질이 된 거다. 재미있는 게 아톰의 근육질 몸은 또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굉장히 발전했다. 근데 머리통을 정신이라고 한다면 생각, 발상 이런 면은 사회 굴러가는 것만 봐도 아주 ‘유치빤스’잖나. 사람들이 생각이 없이 산다. 문화는 없고 오로지 돈이 최고다. 오직 몸뚱이만 최고고. 그러니까 저 인형이 한국인의 현재를 상징하고 있는 거다. 그런 심오한 뜻이 있다.(웃음)


허남웅 기자: 독수리 5형제 가슴에는 태극마크가 있다.
현태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차맨’이라는 캐릭턴데 내가 대놓고 가슴에다 태극기를 붙여 놨다. 그리고 ‘태극전사 가짜맨’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애국심이 엄청난 국가다. 젊은 사람들도 보면 애국심이 펄펄 넘친다. 이렇게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나라 사는 꼴이 요 모양 요 꼴인지 모르겠다. 이게 과연 애국심이 충만한 나라인지 그런 의문에서 태극전사 가짜맨을 만들게 됐다. 우리나라가 가장 애국심이 많이 발휘될 때가 바로 일본하고 엮일 때잖나.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 일본의 대표 캐릭터 가차맨에 태극마크를 붙였다.


허남웅 기자: 국산 장난감은 한군데 모아뒀다.
현태준: 국산품 애용의 길에 모아둔 장난감은 모두 십 년동안 모은 거다. 자세히 보면 특허 낸 제품들이 많은데 정말 황당한 것도 있다. ‘요지경’이라는 망원경은 눈을 대고 손잡이를 누르면 슬라이드처럼 이미지가 돌아가는데 여자 누드사진을 집어넣었다. 이것처럼 정말 재미난 장난감들이 많은데 다 망했다. 사실 저걸 누가 사.(웃음) 그래도 아쉬운 게 지금은 저렇게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창작은 예술가만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보통사람들도 재미난 거 발명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전제가 어떻게 보면 국산품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다.


허남웅 기자: 희귀 장난감들은 다 어디서 구했나?
현태준: 문방구에서 구하기도 하고 가끔 청계천 같은 곳 걸어가다 보면 덤핑 나오는 거 있다. 그러면 바로 산다. 내가 본격적으로 장난감을 모으려고 맘먹은 것이 1998년이다. 그때부터 2002년까지 전국을 돌아다녔다. 재미난 장난감 있으면 어떻게든 다 모았고 2002년 이후에도 꾸준히 모았다. 그렇게 모아둔 게 내 작업실과 창고에 가득 차 있다.


허남웅 기자: 그렇게 장난감을 모으게 된 계기는 뭔가?
현태준: 어릴 때부터 모은 건 아니다. 그렇게 하기 힘든 게 중학교 올라가면 관심대상이 여자로 바뀐다. (웃음) 1997년도 즈음에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했다. 앤티크 숍이나 벼룩시장에서 옛날 물건을 파는데 엄청 활발한 거다. 자기네 어릴 때 쓰던 물건을 파는데 없는 게 없더라. 거기에 ‘뿅’하고 넘어갔다. 귀국하자마자 나도 찾아봐야겠다 해서 다니기 시작한 거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돌아다녀보니까 한국에도 옛날 문방구가 있고 옛날 장난감이 많이 남아 있는 거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모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허남웅 기자: 오랫동안 모았으니 장난감 구입에도 나름 원칙이 있을 것 같다.
현태준: 워낙 옛날부터 헌것, 중고품을 좋아했다. 새것을 잘 안 썼다. 고등학교 때 청계천 다니면서 ‘빽판’ 사는 걸 좋아했는데 새것 살 돈으로 싼 거 더 많이 살 수 있으니까. 싸게 사는 걸 좋아한다. (웃음)


허남웅 기자: 싼 걸 구입하더라도 워낙 많이 구입하니까 비용도 만만치 않겠다.
현태준: 그래서 요즘은 자제하고 있다. 수집광들 보면 망하는 경우 많다. 골동품에 미친 사람들은 집 말아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골동품은 몇백만 원 혹은 몇천만 원이지만 장난감은 비싸야 몇만 원이니까 그나마 티는 잘 안 난다.(웃음)


허남웅 기자: 그중 많은 수가 이번에 ‘20세기 소년소녀관’에서 전시된다고?
현태준: ‘쌈지’에서 후원을 해줬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공개하려 한다. 그동안 모을 만큼 모은 거 같다. 사실 이게 개인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의 장난감처럼 캐릭터성이 강하지는 않지만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희소성도 있을뿐더러 우리가 직접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런 게 남아 있지 않으면 우리의 과거는 없어지고 개개인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을 것 아닌가. 한국은 너무 빨리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장난감 같은 소소한 물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난 시절의 모습을 보관하지도, 간직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1980년대 거리풍경을 촬영한 사람도 거의 없지 않나. 선조들의 역사를 알기 위해 국립박물관에 가듯이 내가 장난감을 전시하면 후세들에게 아버지, 어머니는 이런 걸 가지고 놀았다 알릴 수 있을 것 같다.


허남웅 기자: 그 때문에 언론에도 많이 알려졌다.
현태준: 앞서 말한 의미처럼 난 이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매스컴들은 ‘추억을 찾아서’라고 추억의 한 부분으로만 의미를 축소시킨다. 그나마 내가 2002년도에 <아저씨의 장난감 日記>라고 책을 썼는데 그걸 보고 장난감 마니아들이 많이 생겼다. 그분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희귀 장난감을 많이 찾았고 모았다. 나 혼자 장난감을 찾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그분들 덕에 옛날 장난감이 많이 살아남았다. 2000년을 전후로 문방구 업계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완구시장이 대부분 망하면서 중국산 장난감이 대거 들어왔다. 그런 시기에 마니아들이 한국의 옛 장난감을 수집해놓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점에서 장난감 수집은 단순히 추억이 아니라 완구역사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허남웅 기자: 나이 먹은 사람이 장난감을 모은다는 것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점도 있었을 것 같다.
현태준: 그렇다. 장난감 수집이 ‘추억을 찾아서’로 소개되니까 과거에 빠져서 연연하는 사람 이렇게 몰아세우더라. 그러면서 피터팬신드롬에 빠진 사람, 회귀적인 본능에 빠진 사람, 그런 얘기를 하고 그러는데 그건 아니다. 중요한 자료 수집이자 개인의 역사 보존하기다.


허남웅 기자: ‘장난감 연구가’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현태준 그 호칭도 괜찮긴 한데 대부분 사람들이 직업을 물어오면 만화가라고 한다. 장난감 연구가라고 하면 자꾸 물어본다. ‘그거 뭐하는 거예요?’ 만화가라고 하면 ‘어디 연재하세요?’ 딱 한 번 물어보고 만다. 그래서 만화가라고 하는 게 편하다.(웃음)


허남웅 기자: 여행으로 글도 쓰지 않았나?
현태준 여행도 작업의 일환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건 여행 책을 쓰기 위해서다. 나는 사람들이, 특히 서울사람들이 ‘매트릭스’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골목길을 채우고 있는 차와 매연 속에서 생활하고 있고 전철과 버스 안에서 힘들게 이동하는 삶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일본이나 대만 등 해외로 나가서 보면 한국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어느 정도 객관화된다.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네, 하는 모습이 보인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기를 통해 한국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트릭스 밖 세상은 다르다’라는 걸 알리고 싶다. 삶의 목적이 오로지 돈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허남웅 기자: 그런 작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4년에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를 발표했는데.
현태준: 곧 <도쿄 여행기> 완전판이 나온다. 나 혼자 쓰는데 그걸 마치고 나면 <대만 여행기>를 쓸 예정이다. 말했다시피 여행도 내 작업 중 하나다. 보통 내 책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산다. 우리의 희망은 애들이다. 한국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래서 중고생들도 내 책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그 친구들은 미디어의 허황됨, 허구, 가짜, 꾸미는 것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데 그렇지 않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 젊은 사람들에게 한국 밖의 세상을 알려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걸 내가 하고 싶다.


허남웅 기자: 한국의 젊은 친구들에게 아쉬운 점이 많나보다.
현태준: 요즘 젊은 친구들은 어떻게 보면 끌려가지 않나. 컴퓨터 게임상으로만 무엇을 할 뿐이고 자기 창작이라고 할 만한 일을 별로 하지 않는다. 외국의 젊은 친구들은 공산품 이런 것에 반해 자신이 직접 만드는 물건, 즉 수공예 제품에 관심을 갖는 일이 많다. 게다가 거기서 파생되는 일도 많다. 기호와 취미가 다향해지면 취미전문점이 생겨날 테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그곳에 물건을 대려면 공장들이 생겨나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경제가 좋아진단 말이다. 1년 전쯤인가, 홍대 앞에도 일본의 굉장히 유명한 취미전문점이 들어왔었는데 얼마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우리는 PC방밖에는 없는 거다. 홍대도 보면 술집이나 클럽 말고는 갈 데가 없다. 십 년 전에는 그나마 문화지역으로 차별화됐는데 지금은 다 똑같다. 그래서 애들이 희망이다. 애들이 자라면 지금의 이런 획일화된 모습이 바뀌지 않을까.


허남웅 기자: 취향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걸 보니 도쿄를 괜히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다.(웃음)
현태준: 그 전까지 거품경제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문화적으로 굉장한 부흥기를 맞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적이지도 않고 뭐랄까 우리보고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하지만 진짜 다방면에서 움직임이 활발한 건 일본 같다. 게다가 전세계가 문화적으로 일본에 주목하고 있는 시기다. 일본에는 인종차별도 별로 없고 나이가 많건 적건 자기 일이 있으며 취향에 대해서도 대화가 통하는 면이 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돈을 못 벌어도 자신의 취향대로 살아가는 걸 보면 부럽다. 그런 걸 이번 <도쿄 여행기> 완전판에 실을 거다. 자료 정말 많이 모으고 있다. 방대하니까 빨리 해야 할 거 같다.


허남웅 기자: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현태준 내년 초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된다.(웃음)  사진 안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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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55호
(2007.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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