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편집의 보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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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가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 당연한 결과지만, 이를 끌어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드러나는 의혹 앞에서 거짓으로 일관하는 박근혜를 비롯한 청와대와 새누리당 부역자들의 태도를 무력화한 건 진실이었다. 진실 앞에서 박근혜 일당이 보인 행적은 가식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몰상식의 극치라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 노릇을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드러나는 진실과 이에 대한 부인, 또 다른 진실 앞에 변명을 앞세우는 참과 거짓의 과정이 교차로 반복되면서 끝내 기념비적인 역사가 완성됐다. 그래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야기된 그간의 TV 뉴스/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활용된 기법은 다름 아닌 ‘교차 편집’이다.

교차 편집(cross cutting)은 다른 장소 혹은 시간대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시간상 전후 관계로 병치시키는 영화의 편집 기법을 말한다.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많이 쓰며 세밀한 심리 묘사에도 효과적이다. 이 기법의 효과를 인상적으로 활용한 방송은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SBS)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방영 전부터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와 ‘대통령의 시크릿’에서 교차 편집을 활용해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는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사건의 진실을 다뤘다. 오프닝은 강신명 전(前) 경찰청장의 이임식과 국정감사 출석 당시의 장면을 교차로 편집해 구성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자신의 가족과 함께한 이임식에서 “경찰의 힘은 국민의 사랑에서 나옵니다”라고 말한다. 곧 이은 국정감사 출석 장면에서는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자신에게 기쁜 날에는 모두가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고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는 말을 바꾸는 가식적 태도가 교차 편집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세월호의 숨겨진 7시간의 비밀을 파헤친다고 해서 <그것이 알고 싶다>의 10년 중 최고 시청률(19.0%)을 기록했던 ‘대통령의 시크릿’은 예고편에서부터 교차 편집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경우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가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이임식과 국정감사 장면을 앞뒤로 교차한 것과 다르게 ‘대통령의 시크릿’은 장면의 좌측을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사를, 우측에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1차 사과를 배치한 교차편집을 선보였다.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새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어갑시다” 대통령 취임사 연설 장면이 좌측에서 시작하면 이어 우측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대국민 사과문 중 일부가 플레이된다. 그리고 좌우 동시에 고개 숙여 인사하는 장면이 펼쳐지면 편집의 의도가 선명히 드러난다. 국민의 편에 서서 정책을 살피겠다고 공개선언을 했지만, 비공개적으로 최순실과 붙어먹어 사리사욕을 채운 대통령의 적폐가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뷰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이래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들은 카메라에 담겼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기법은 주목을 받았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 New American Cinema’의 경우가 이에 해당할 터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는 1970년대 미국에서 태동한 영화 운동으로 사회 순응적인 이야기만 선보이며 스튜디오를 벗어나지 않는 기성의 가치에 반하면서 시작됐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선도한 이들은 기존 35mm 카메라에만 안주하지 않고 16mm (때로는 8mm 혹은 비디오) 시스템을 채택해 거리로 나왔고 사회 고발의 형태가 짙은 영화를 선보였다.

이의 바탕이 된 건 베트남전 파병을 둘러싼 신구의 갈등이었다.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을 결정하며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몬 미국 정부를 비롯해 기성세대에 대한 청춘의 반발은 국가 전 분야에 걸쳐 변화를 요구했다. 국가 시스템에 순응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던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와 전쟁 반대를 외쳤고 이를 기록하는 카메라는 미국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조리와 비리를 고발하는 콘텐츠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기성의 가치에 반하는 저항정신과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폭발하며 등장한 영화 운동이 바로 뉴 아메리칸 시네마였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Nouvelle Vague’는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가 영화 운동에서 드러난 후 그 유명한 68혁명까지 이어진 경우다. ‘새로운 물결’이란 의미의 누벨바그는 소설 원작의 영화(?)나 만드는 등 매너리즘에 빠진 프랑스 영화 산업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됐다. <400번의 구타>(1959) <히로시마 내 사랑>(1959) 등이 선구자적 작품으로 기존 형식을 무시하는 태도로 대담하게 영화를 만들어 누벨바그의 기치를 세상에 알렸다. 그중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는 ‘점프 컷 jump cut’이라는 혁신적인 편집 기법으로 변화에 대한 열망을 ‘혁명적’으로 담았다.

점프 컷은 장면이 비약적으로 돌출한다는 의미의 편집 용어다. 보통 편집은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동작 및 사건이 연속적이 되도록 화면을 연결하여 한 장면이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그와 다르게 점프 컷은 연속성의 흐름을 깨뜨려 화면상의 연기 동작이 시간을 건너뛰거나 되돌아가는 듯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장 뤽 고다르는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jump)을 점프 컷의 미학으로 드러내며 누벨바그의 가장 중요한 감독으로 입지를 굳혔다.

장 뤽 고다르를 감독으로 키운 건 영화를 수집, 보관하고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였다. 시네마테크 운동을 최초로 설파한 건 앙리 랑글루아로 그는 1936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설립했다. 이후 1968년 2월 프랑스의 드골 정부가 앙리 랑글루아를 해임하면서 프랑스 영화인과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펼쳤는데 68혁명의 전초가 되는 중요한 사건으로 작용했다.

다시 말해, 과거와 안녕을 고하는 새로운 사회 변화의 움직임과 이를 기록하는 대중매체(mass media)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다가 폭발하는 민심의 지진은 종종 특징적인 카메라 기법의 여진을 강하게 동반하며 오랜 시간 깊은 인상을 남기며 회자되고는 한다. 기성의 가치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미국의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와 반전과 평화를 외쳤고 카메라는 이들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새로운 세기에 대한 프랑스 시민의 열망은 점프 컷을 선도하며 헉명을 불렀다. 그리고 2016년 현재 한국은 청산되어야 할 구체제와 이로 인해 발목 잡힌 현재의 가치가 충돌하며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에서 이에 관한 판단 근거로 교차 편집이 자연스레 등장했다.

그렇다면 교차 편집이 불러올 한국의 새로운 영상 운동은 어떤 형태가 될까? 개인적으로 추측건대, 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에서 전에 없던 보도가 여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사회 변화를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최순실 게이트를 폭로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몬 것은  <뉴스룸>(jtbc)과 같은 뉴스의 힘이 컸고 <그것이 알고 싶다>와 <스포트라이트>(jtbc) 등과 같은 시사 프로그램들이 세월호 7시간과 같은 비밀을 파헤치며 시민들을 광장으로 끌어내는 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닌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바꿔야 할 구습들이 산적한 까닭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언론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 몇몇 언론을 제외하면 정부와 여당의 철저한 통제 속에 박근혜 대통령과 부역자들의 입맛에 맞는 보도로 국민의 공분을 사 왔다. 이제 (타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부역 언론의 역사를 청산할 때인데 여기에 교차 편집의 미학이 유효한 이유가 있다. 권력에 부역한 이들은 과거와 현재의 말과 행동이 서로 맞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교차 편집과 같은 비교를 통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 할 만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그와 성격이 비슷한 ‘워터게이트 사건 Watergate Affair’과 비교되고는 한다. 워터게이트는 대통령 재선을 준비 중이던 리처드 닉슨 측에서 워터게이트 빌딩 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불명예 퇴진한 사건을 말한다.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던 닉슨은 이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워싱턴포스트의 대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탐사보도에 힘입어 대통령 자신도 무마공작에 나섰던 사실이 폭로되어 결국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워터게이트 이후 미국인들의 자국 언론에 대한 호감은 급상승한 것으로 알려진다. 언론사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급증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최순실 게이트도 마찬가지여서 뉴스와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률은 그 어떤 때보다도 높다. 언론에 대한 기대치가 반영된 결과일 테다. 이들의 보도로 인해 그동안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한 담화의 내용 중 상당수가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여전히 밝혀져야 할 진실은 많다. 박근혜 정부 들어 세월호 사건을 비롯하여 산적한 거짓말이 많다는 의미다.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를 밝힐 교차 편집은 한동안 뉴스와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교차 편집의 등장은 언론이 살아났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바야흐로 교차편집의 보도학이 이 사회를 바꾸고 있다.

 

ARENA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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