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의 재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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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블록버스터의 시즌이다. 그 말은 곧 ‘재난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안 그래도 자연현상과 관련된 천재지변이 주를 이루는 재난영화는 블록버스터에 최적화된 장르다. 블록버스터의 입장에서 재난이라는 거대한 볼거리를 만들기에 유용하고 자연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유한함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더 임파서블>(2012), <2012>(2009) 등과 같은 해외영화는 물론 한국영화 역시 <해운대>(2009)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후 재난 블록버스터는 여름과 겨울 대목 시즌에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장르로 자리 잡았다. <7광구>(2011), <연가시>, <타워>(이상 2012)가 뒤를 이었으며 2013년에는 <더 테러 라이브>와 <감기>가 개봉해 많은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연 현상이 일으킨 몇몇 재난의 양상이 인재(人災)를 포함하고 있는 것도 재난영화가 각광받는 이유다. 예컨대, 일본의 3.11 대지진은 재해였지만 이에 따른 원전사고의 미숙한 후처리는 명백히 인간의 탐욕이 빚은 인재였다. 그런 탓에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 의식을 반영할 수 있어 재난을 스펙타클화(化)한다는 비난에서도 어느 정도 정당성을 획득할 수가 있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고질라>는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제작됐다. 극 중 고질라가 100미터가 넘는 크기를 자랑하는 까닭에 제작진은 이 영화의 장르를 ‘초대형 재난 블록버스터’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초대형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영화는 명백히 3.11 대지진에 따른 원전의 피해를 주요한 재난의 양상으로 바라본다. 오프닝에서 노골적으로 원전이 파괴되는 장면을 삽입하니, 그와 같은 원전 사고가 재난의 피해를 더 키웠다는 게 이 영화의 입장이다.

‘고질라’의 탄생 배경 자체가 그렇다. <고질라>는 고질라 탄생 60주년 기념작이기도 하다. 1954년, 세계 2차 대전으로 참담했던 시기에 일본 토호사는 이시로 혼다 감독의 <고질라>를 세상에 내놓으며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원자 폭탄이 투하되고 채 10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피해의 후폭풍이 고질라라는 괴수의 형태로 은유되며 일본인들의 피해 의식을 건드렸다.  

그런 맥락에서 고질라는 단순한 괴수의 의미를 넘어서는 존재다. 인간의 폭력성이 빚은 파괴의 신이면서 한편으로 인위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자연 속에서 인간이 평화롭게 살기를 염원하는 균형의 신이기도 하다. 실제로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만약 인간이 소통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거대한 생명체가 나타난다면’이라는 전제하에 <고질라>의 방향성을 잡았다.

그에 맞춰 영화는 인간들이 괴수의 등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후 고질라가 몰고 온 각종 재난에 대처하는 방식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거대한 재난에 맞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극 중 고질라를 찾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닥터 세리자와(와타나베 켄)의 대사는 그래서 <고질라>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사람들은 거만해요. 사람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죠.”

앞서 고질라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신’이라는 표현을 쓴 건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니다. 가렛 에드워즈의 영화를 비롯해 할리우드가 고질라를 표기할 때 그 철자는 ‘Godzilla’, 신(god)의 의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고질라는 도시를 파괴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악의 존재만으로 단순화되지 않는다. 쓰나미, 지진, 허리케인 등의 재난을 두고 선이냐, 악이냐 묻지 않듯이 고질라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일종의 자연의 힘 같은 거다.

사실 <고질라>에는 ‘무토’로 불리는 또 다른 괴수가 등장한다. 무토는 대지진에 따른 원전의 파괴로 생겨난 괴수인데 핵을 영양분으로 삼다보니 인류에게는 지구 멸망을 초래할 가장 큰 재앙으로 기능한다. 무토보다 일찍이 원전 피해의 산물로 존재하게 된 고질라는 예상 외로 무토의 공격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한다. 그와 같은 행동은 인간의 남용으로 파괴된 지구를 되돌려 놓으려는 자연의 섭리 같은 것이라고 감독은 설명한다.

이는 재난영화가 소재로 삼는 자연의 가늠하기 힘든 힘의 이중성과 같은 것이다. 고질라는 특유의 생김새와 압도적인 크기로 인간에게 어떤 해를 끼칠지 모르지만 동시에 영웅적인 면모도 갖춰 관객에게 신비에 둘러싸인 캐릭터로 다가선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자연은 평상시 인간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형태로 화할 경우,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지구를 폐허로 내몬다.
 
재난의 스펙터클화가 양날의 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피해의 당사자가 아닐 경우, 재난 묘사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재미있는 볼거리로 단순화된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에 따른 사실적인 재난 묘사는 정작 실제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오락영화처럼 소비하게 만드는 악영향을 초래한다. 더욱이 기상 이변에 따른 자연 재해가 빈번한 작금에 재난에 대한 무감각은 자칫 인간의 자연 남용을 옹호하는 결과로 작용하기도 한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재난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인디펜던스 데이>(1996) <고질라>(1998) <투모로우>(2004) <2012> 등 필모그래프의 8할이 재난영화로 채워져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특정 묘사, 즉 외계인의 공격에 백악관이 초토화되거나 고질라의 거대한 발에 자동차가 파괴되는 장면 등으로 기억되는 건 재난을 볼거리의 차원으로만 축소한 이유가 크다.

그러니까, 재난영화는 실감나는 재난 묘사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른 윤리가 필수처럼 따라야 한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에는 재난은 있지만 이를 사유할 만한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재난영화가 매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다. 현실의 재난이 빈번하고 이를 반영한 재난영화가 많아지는 지금 롤랜드 에머리히가 재난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좋은 재난영화는 결과적으로 자연을 무분별하게 남용한 인간을 향한 경고의 성격을 띈다. 그러니까 재난은 ‘신의 분노’와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좋은 재난영화일수록 인간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의미를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부분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재난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담아내는 재난영화는 인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MG새마을금고
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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