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초특급 미스터리


이미 영화 알바의 존재는 기정사실화 되어 있습니다. 공론화 되지만 않았을 뿐이죠. 그런데 작년 5월에 유수의 영화사이트 기자님께서 한 통의 제보를 영진공 게시판을 통해 접수하였습니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한 홍보 알바 게시물에 대해 어떤 유저가 알바 문제와 해당 기획사 홍보실에 항의하는 글을 썼는데 <화성으로 간 사나이> 홍보팀이 그 사이트에 연락해서 화를 내며 문제의 글을 삭제해 달라고 했다는 거죠.

그래서 편짱의 명령을 받고 조사를 해보니 너무 눈에 띄게 알바짓을 했더군요. 영화사이트란 영화사이트에 같은 시간, 같은 아이디, 같은 제목, 같은 내용으로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한 호평 도배를 해 놓은 겁니다. 영화라도 괜찮았으면 그냥 넘어갔을텐데…

이를 확인한 뒤 바로 해당사이트에 협조요청 메일을 보냈습니다. 문제의 글들의 아이피만 확인시켜 달라고. 10분 뒤 바로 연락이 오더군요. 근데 메일을 보낸 영화사이트가 아니라 <화성으로 간 사나이> 기획사더군요. 대뜸 한다는 소리가 왜 자기네들한테 얘기 안하고 기사를 쓰냐고 합디다. 영화사이트 알기를 자신들의 홍보물따위로 생각하는 마인드를 그대로 드러낸 대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쓰지말라, 쓰겠다 이러면서 대판 싸웠습니다. 나중에 그쪽에서 안되겠는지 왜 자기들한테만 그러냐고 그러네요. 은연중에 알바 푼 사실을 인정한 겁니다.

통화가 끝나고 잠시 진정한 뒤 다시 생각해보니까 또 한번 딥따리 열받더라구요. 왜 자기네 허락을 안 받냐고 하는 부분과 메일을 보냈더니 이를 기획사에 일러바치는 엔모 영화사이트한테 말이죠.

그래도 다행히 실명을 밝히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모 영화사이트의 협조를 받아 해당게시물에 대한 아이피를 획득하게 되었고 기사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가 되는게 그 전화를 받고 좀 쫄아서 <화성으로 간 사나이> 기획사 이름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켜서 기사가 임팩트가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영화홍보알바를 실명으로 공론화 할 수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죠…

지금와서 밝히는 건데 그 기획사는 시네마서비스에서 분화돼 나온 ‘청어람’이었고 그 사건 이후 청어람은 그동안 보내던 영화안내메일을 한동안 보내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다시 제대로 오고 있구요.

그렇다고 ‘청어람’만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사실 다른 유수의 영화사에서도 알바를 풀고 있어요. ‘청어람’은 재수가 없었을 따름이죠.

그래서 전 다른 분야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영화계는 그에 비하면 깨끗한 편이다, 고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글을 볼 때마다 아주 짜증이 납니다. 마치 십분의 일 발언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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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는 바야흐로 5월 14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본지 사옥 73층 영진공 사무실에서 평소처럼 막중한 잡담과 과도한 졸음, 쓸따리 없는 망상으로 정말 열심히 업무 외의 일을 수행하고 있던 본 기자에게 열혈팬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찾아왔다.

본 기자를 찾아온 용건은 바로 이 때문이었따.

     열혈팬 : 이 일을 밝혀 줄 사람은 당신밖에 없소. 영화계의 평화가
                달린 일이오.
     본 기자 : 무슨 말씀이세요?
     열혈팬 : 도배꾼을 잡아주시오. 그들이 활개를 치고 있소.
     본 기자 : 도배꾼이라니요? 활개를 치고 있다는 건 또…
     열혈팬 : 다 알믄서… 지금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한 게시물이
                영화사이트를 점령하고 있소.
     본 기자 : 보지 말라고?
     열혈팬 : 아니오, 영화가 너무 좋다며 찬양일색의 글을 올리고 있소.
                그것도 대표적인 영화사이트에 아이디도 똑같고 그 내용까지
                도 같으며 심지어는 글 올라오는 순서도 같소.
     본 기자 : 헉! 설마 그럴 리가…
     열혈팬 : 어떻게 글 쓴 사람들의 ‘순서’가 똑같고 시간도 비슷할 수가
                있단 말이오? 심지어 저 겹치는 아이디들은 몽땅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한 좋은 평만을 올리고 있소. 이게 말이 되오?
     본 기자 : 당근 말이 안되죠. 알겠슴돠. 사태의 전모를 까 밝혀 달라
                  는 말씀이시죠. 앗…

자신의 정체를 ‘바른 영화 마케팅 추진본부 우원장’이라고 밝힌 문제의 팬은 본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어디론가 뿅~하고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던 본 기자 정신을 차리고 즉시, 구석에 짱 박혀 ‘원더보이’, ‘마계촌’ 등으로 본지 공용 컴퓨터를 전세 낸 카오루 기자를 몰아내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10분 후…

“뜨악!! 이, 이럴 수가… 정말이란 말인가…”

‘바른 영화 마케팅 추진본부 우원장’의 말대로 문제의 사이트 내 독자게시판에는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옹호하는 글이 13일과 14일 집중적으로 등록되어 있었고, 이 게시물들은 각 사이트들마다 거의 동일한 시간대에 비슷한 아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내용으로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이 다른 영화에 대해서도 그처럼 글을 남긴 것도 아니다.

세상에나! 어떻게 같은 사람이 쓴, 같은 내용의 글이, 같은 시간대에 게시물로 등록될 수 있을까? 이게 과연 현실세계에서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흔히 잉간덜은 이런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미스터리.

삼십 평생을 살면서 별 꼬라지를 다 목격해왔던 본 기자 이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황당무계하고 기묘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을 접하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등에 식은땀이 흐르며 머리카락이 쭈빗 서는 게 도저히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마냥 손놓고 만은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복날에 똥개 떨 듯 떨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본 기자는 곧 전용 핫라인을 통해 놀고 있던 편집국 기자를 모두 딴지사옥 지하 293층에 매설되어 있는 고문실로 비밀리에 불러내어 무려 2분 여에 걸쳐 이 사건에 대한 중지를 모았다. 그 결과 직접 이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하고 본 기자를 주축으로 한 특별 조사팀을 구성하였다.

2.

본 조사팀은 일단 문제의 글들이 올라가 있는 사이트에 협조요청을 보냈다.

“지금 니덜 사이트 내 독자 게시판에는 <화성으로 간 사나이>와 관련하여 이러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근데 이렇게 똑같은 글덜이 타 사이트에도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어떻게 된 조화인지 궁금하지 않니? 그래서 본 조사팀은 니덜의 도움을 얻어 무슨 일인지 밝혀보려 한다. 우리의 뜻에 동의한다면 그 게시물덜이 동일인에 의해 작성되었는지 좀 알려주라”

과연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본 기자를 비롯한 조사팀은 실로 귀두가 주목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만약 그 게시물덜이 동일인물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또는 서너 명의 인물이 돌림빵 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이는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관람하게 하려 조직적인 계획 하에 의도적으로 글을 올렸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땜시롱이다.

십분 정도가 흘렀을까, 영화사이트들로부터 차례로 반응이 왔고 본 조사팀은 너의 마음 나의 마음 울렁울렁 두근두근 쿵쿵, 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답변을 열어보았다.



참담했다. 모두 꽝 이었다. 본 조사팀의 순수한 의도에는 동의하지만, 자칫 개인정보 유출 혐의를 받을 수 있고 또한 영화기획사와 공생하고 있는 이 바닥의 생리상 섣불리 협조했다간 조뙤는 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오호, 통재라! 이들의 협조가 무산되자 별다른 방도를 찾을 수가 없었다. ‘화성’자만 낑궈지면 왜 모든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에 부딪친 본 조사팀은 어이없게도 이번 조사를 포기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 때, 본 기자의 귀를 강타하며 날카롭게 들려오는 한 방의 전화소리.

      ‘따르릉’

      본 기자 : 엽떼여~
      의문남 : 난 모든 걸 알고 있다. 내 정체를 캐묻지 않는다면 이번 사
                 건의 전말을 알려 주겠다.
      본 기자 : 누구떼엽?

     ‘뚝’

이런 닝기리… 의문의 남자는 정체를 묻자마자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렇탐 이번 조사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맺음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 의문남은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백운도사의 신통력을 가뿐히 능가한다 세간의 찬사를 받는 본지의 예견력. 본지는 이미 몇 달 전 이번 사태를 예견하고 전화기에 발신자 추적 기능을 달아놓았던 것이다.

       본 기자 : 엽떼여~
       의문남 : 헉!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고?
       본 기자 : 그건 알 필요 엄꼬, 정체는 묻지 않을 테니 <화성으로 간
                   사나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모두 까 밝혀 주기 바람
                   돠.
       의문남 : 난 낮에는 회사원이지만 밤에는 유리구슬을 통해 과거를 보
                   는 마법사다.
       본 기자 : …(밝히지 말라면서, 지가 다 말하네)
       의문남 : 당신덜이 원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를 팩스로 보낼 테
                   니 반드시, 반드시 영화계의 평화를 위해 유용하게 사용해다
                   오. 영화계의 운명이 걸린 일이니 실수 없이 잘 처리하고. 내
                   말 명심하시오.

      ‘뚜 뚜 뚜 뚜’

통화가 끊어지기가 무섭게 본 기자는 즉시 본사 23층에 마련된 팩스실로 뛰어가 송신인 불명으로 된 팩스 한 장을 수신하였다. 받아든 그 문서에는 실로 엄청난 내용이 담겨 있었따.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호평한 특정 한(one) 사이트의 게시물 중 무작위로 32개를 축출하여 누구의 소행인지를 조사한 내용이었는데…

그 문서에 따르면 32개의 게시물은 10개의 IP에 의해 단지 9군데의 장소에서 작성되어 있었다. 한 IP가 적게는 두 건에서 최고 다섯 건까지 게시물을 작성한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건 이들이 게시물을 작성하기 이전 몽땅 회원가입을 했다는 사실이다!

아… 럴수럴수 이럴 수가!

같은 아이디로 된, 같은 내용의 글들이, 같은 시간대에 작성되어 많은 영화팬에게 살 떨리는 충격을 주었떤 이번 사건은 결국 특정인 몇몇이 <화성으로간 사나이>를 의도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 하에 벌인 일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게시물덜이 조작이었다니… 아, 무시라…

3.

그러나 벅차 오르는 감격도 잠시, 우여곡절 끝에 동기는 밝혀내었으나 안타깝게도 이 사건을 막후에서 지시하고 있는 씹숑 아니 배후자는 끝끝내 찾아 낼 수가 없었다.

수신 중 적들의 방해파 공작이 있었는지 아니면 83년에 제작된 고물 팩스 탓인지 결정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기밀문서의 페이지가 심하게 손상된 탓에 이를 전혀 알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 정녕 하늘은 우리를 버리시는 겐가… 이를 밝히려 다시 한 번 그 마법사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통화음만이 울릴 뿐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게시물 조작에 대한 의도를 밝힌 선에서 조사를 마칠 수 밖에 없었던 본 조사팀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 세계의 이상야릇한 일을 관장하고 계신 ‘세계 불가사의 지정 협의회’ 책임자에게 이번 사건을 추천,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지정해 줄 것을 강력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칭찬하는 여러 개의 게시물 중 다수가 소수의 IP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사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삘 꽂힌 한 오타쿠 팬의 편집증적 애착성 도배증후군적 소행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음모가 있는 걸까?

판단은 니덜에게 맡기겠다.


(2003. 5.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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