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송해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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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는 ‘로우 버짓 가족 어벤져스’ 영화라고 부른다. (웃음)” 송해성 감독은 우스개처럼 자신의 여섯 번째 영화 <고령화가족>을 일러 사이즈는 작지만 극 중 캐릭터들의 면면은 블록버스터 급인 작품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러니까, 막강한 물량과 전 세계적인 인지도로 국내 극장가를 초토화하고 있는 <아이언맨3>에 맞서 한국영화의 대항마로 나선 것이 바로 <고령화가족>인 셈이다. 하지만 너무 초라(?)하다. <아이언맨3>는 세계 평화를 부르짖고 있는 마당에 고작 가족, 그것도 평균 연령 47세의 ‘고령화가족’이라니.

<고령화가족>은 ‘구라꾼’으로 소문난 천명관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그런데 이 가족들, 막장이 따로 없다. 데뷔작이 쫄딱 망하고 부인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영화감독 인모(박해일)는 지낼 곳조차 없자 엄마 집으로 들어온다. 그를 맞이하는 건 큰 아들 한모(윤제문). 이 인간은 더 가관이다. 한때 주먹질 좀 했던 한모는 방구석을 뒹굴며 만화책이나 뒤적이는 백수 신세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엄마에게 용돈을 달라며 쪼르르 달려갈 정도다. 여기에 두 번 이혼 후 세 번째 결혼을 앞둔 막내 미연(공효진)과 그녀만큼이나 되바라진 중학생 딸 민경(진지희)이 가세하면, 문제적 삼남매와 손자를 데리고 살아야 할 엄마(윤여정)만 불쌍해질 따름이다.

TV드라마로 익숙해진 설정이라고?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고령화가족>에는 막장으로만 치닫는 TV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이 있다. 예컨대, 조카 민경의 분홍 팬티를 뒤집어쓰고 자위를 하다 들킨 한모는 동생인 미연과 인모로부터 체면이 말이 아니게 얻어터진다. 그렇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들 남매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모여 앉아 꾸역꾸역 밥을 먹는다. 이처럼 가족 구성원들이 티격태격해도 어느 순간 가족 특유의 정을 발휘해 융합하는 지점이야말로 <고령화가족>의 백미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송해성 감독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부글부글 끓는 된장 속에 다섯 개의 수저가 함께 들어가 있는 이미지였다. 실제로 극 중에는 된장찌개를 비롯해 삼겹살, 불고기, 조개구이, 피자 등 무언가를 먹고, 또 먹는 장면이 상영 내내 반복된다. 그만큼 가족 간의 다툼이 잦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이에 대해 송해성 감독이 밝히는 영화에 대한 변이 참 재밌다. “실제 가족들도 그렇지 않나. (웃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무수히 많은 핵분열들이 일어난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시대의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가족애가 주제다보니 <고령화가족>은 특정한 몇몇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기보다 가족 전체가 고르게 주인공 역할을 분담한다. 중심에 엄마라는 큰 존재가 버티고 서 있되 카메라에는 최소 두 사람의 가족구성원이 함께 담겨 있을 만큼 이 영화의 화면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작금의 영화들, 특히 블록버스터들이 개인의 활약상을 강조하기 위해 세련된 클로즈업을 구사하는 것에 비하면 촌스러운 화면 구성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송해성 감독은 그런 투박함의 정서가 이 시대의 가족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송해성 감독은 그의 이름을 알린 <파이란>(2001)부터 <고령화가족>에 이르기까지 사람 냄새 물씬한 드라마에 집중해왔다. <파이란>의 삼류건달 강재(최민식)와 위장 결혼해 한국에 들어온 중국인 파이란(장백지)과의 순수한 인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의 사형수 윤수(강동원)와 자살미수자 유정(이나영)의 조건 없는 사랑 등 아스팔트처럼 척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서 기어코 꽃 한 송이의 희망을 피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고령화가족>을 선택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순간 내가 충무로에서 여섯 편의 영화를 만든 중견감독이 됐더라. <고령화가족>은 욕심을 버릴만한 나이에 찍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 감독의 의도를 가장 극적으로 파악한 배우는 윤여정이었다. 영화 촬영 전 원작소설을 읽은 윤여정은 욕이 너무 많다며 영화에서는 좀 더 순화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 후 편집 본을 보니 극 중 엄마가 욕을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더란다. 욕이 나오지만 그것이 모멸감을 주기보다 가족이라는 순화된 형태 속에서 따뜻한 느낌으로 가슴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끼리 수십 번, 수백 번 지지고 볶은 후에야 그제서 가족의 정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아간다. 그것은 가족을 지렛대 삼아 이 험한 세상을 헤쳐 가는 생존법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왜 아니겠는가. 우리는 가족이란 소우주에서 아옹다옹 다투고 좌절한 후 엄마가 해준 밥을 에너지 삼아 다시금 세상과 맞설 힘을 얻지 않는가. 영화 현장도 마찬가지여서 송해성 감독은 배우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은 끝에 <고령화가족>을 완성했다. 그래서 송해성 감독은 <고령화가족>이 비록 촌스럽고 투박할지라도 관객들에게 엄마의 ‘밥심’ 같은 영화가 되기를 기대한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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