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이 소환됐다

dongjoo

2016년 한국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는 ‘경성’이다. 일제강점기의 경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리네 한(恨) 많은 삶에 주목한 영화가 줄줄이 개봉 (혹은) 대기 중에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스물여덟의 짧은 생을 마감한 시인 윤동주의 청춘을 다룬 이준익 감독의 <동주>가 이미 개봉해 호평을 받았다. 사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를 영화화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던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원작의 영국 빅토리아 시대 배경을 1930년대 경성으로 옮겨 두 여인의 사랑을 묘사한다. 박흥식 감독의 <해어화>는 최고의 가수를 꿈꾸는 여인과 당대를 풍미했던 작곡가가 1940년대 경성에서 어떤 운명에 휩쓸리는지 주목한다.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와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각각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비극적 삶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과 그를 둘러싼 투사들의 배신과 음모를 블록버스터급으로 만들 예정이다.

2007년과 2008년, <기담>(2007) <라듸오 데이즈> <원스 어폰 어 타임> <모던 보이>(이상 2008) 등 소위 ‘경성 영화’가 집중된 적이 있지만, 2016년처럼 굵직한 감독들이 대거 투신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여름, 비슷한 배경과 소재로 천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던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기폭제였다고 말하는 건 아주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유행의 이유를 설명하는 적확한 분석은 아니다. 한 편의 영화가 흥행에 크게 재미를 보았다고 해서 이를 쫓는 대여섯 편의 작품이 (한꺼번에 기획될 수 있을지 몰라도) 비슷한 시기에 차례로 개봉한 예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구성원 다수가 공유하는 어떤 욕망이 영화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보는 편이 옳다. 예컨대, <베테랑> <내부자들> <검사외전>까지, 재벌 3세의 악행과 정경언이 유착된 검은 거래와 검찰 내부의 비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의 연이은 흥행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의 불의와 부조리에 대해 한국인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얼마나 큰지, 또한, 선한 편이 승리하는 영화의 해피엔딩에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는 관객이 많다는 건 정의와 상식과 도덕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욕망의 끓는 점이 최고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증명한다.

천만(에 가까운) 흥행은 영화의 오락성만으로 달성하기 힘든 수치다. 사회의 수면 아래에서 들끓는 집단의 욕망을 건져 올릴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영역이다. 실제로 <암살>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친일 역사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2시간 20분의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경우다. <동주> <아가씨> <해어화> <덕혜옹주> <밀정> 등에 쏠리는 관심은 오락적 재미도 물론이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작금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반영해 결말을 가져갈지에 대한 궁금증을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배경을 인지한다면 경성 영화가 올해 유독 두드러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경성은 한국의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는, 한국과 일본이 충돌하는, 친일(親日)과 반일(反日)이 대립하는 공간으로 혼란한 한국을 상징한다. 혼란의 정체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이에 붙어먹은 친일파들의 압제로, 2016년 경성 배경 영화들은 피지배층으로 전락해 고통받는, 그래서 지배층에 저항하는 이들의 삶에 주목한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지금의 꼴이 일제강점기 경성 시대와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영화의 발현이다.

단적으로 지난해 12월 이뤄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협상’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한국에 굴욕적이고 불리한 내용이 수두룩해 충격을 안겨줬다.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 수렴 없이 졸속으로 진행된 이 협상은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과 위안부 재단 설립 비용 10억 엔 지원을 포함하고 있지만, 법적인 책임은 명시하지 않은 채 일본의 도의적인 책임만 언급하고 있고 ‘단돈’ 10억 엔 지원 역시 배상이 아닌 보상의 차원으로 책정되었으며 이번 협상을 최종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일본 측에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을 것을 불가역적으로 간주했다.

바야흐로 2016년. 일본으로부터 1945년에 해방되어 나라와 주권을 다시 찾은 지가 71년 째인데 소녀상을 두고 이전을 반대하는 국민과 이를 감시하며 저지하려는 ‘한국’ 공권력 사이의 대립이 지금 이 시각 일본대사관 앞을 비롯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본이 전범국으로서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게 하고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게 하여야 하거늘 한국 정부에게는 이에 대한 역사 인식을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국민적인 바람과 상관없이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조기에 해결해 그동안 껄끄러웠던 일본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의도만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위안부와 소녀상은 물론 독도 문제에서도 한국은 이전 정부 때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일본 정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는커녕 저자세로 일관해 왔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 한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일제강점기 일본의 지배 아래에서 신음하던 백성이 겪었을 ‘정신적 혼란’이 이와 비슷한 양상이지 않았을까, 를 심각하게 느끼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2016년 한국영화의 경향 중 하나로 경성 영화가 부상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와 관련해 일본 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정부에서 임명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다수 언론의 논조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상황에서 사회 고발의 역할을 해야 할 신문과 방송은 오랫동안 의무를 내버리며 신뢰를 잃었다. 이를 대신해 영화는 ‘무비 저널리즘’에 입각해 여러 사안에 대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왔지만,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떨어지다 보니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더군다나 세월호 사태에 대한 정부 무능을 고발한 <다이빙벨>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신경을 건드리는 영화는 강도 높은 유무형의 탄압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서 충무로는 우회하는 방식을 고안하기에 이른다.

우회로써의 경성은 글 서두에 짧게 언급했듯 2007~2008년에 주목받은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는 시기 경성 영화는 이념을 달리하는 정당의 정권 교체가 불러올 혼란을 예고하고 반영하기에 적절한 배경이었다. 하지만 작품성 면에서나 흥행 면에서 주목받지 못한 것은 사회 반영과 오락성의 적절한 줄타기를 하는 것에 실패한 탓이 크다. 경성이라는 혼돈의 공간이 주는 메시지와 이미지만 강조된 탓에 오락적인 요소를 바라는 관객의 입장에서 호감을 느끼기에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컸을 것이다.

늘 좋은 소재와 배경에 목말라하는 충무로에 역사는 이야기의 보물창고 역할을 한다. 특히 조선 시대를 포함한 그 이후의 역사가 그러하다. 사료(史料)가 충분한 데다가 상상력을 가미할 여지도 많아 시대극은 역사 엔터테인먼트로서 흥행과 평단으로부터 오래전에 검증을 마치고 한국영화의 주류 장르가 된 지 오래다. 다만 조선 시대에 집중되어 있던 것이 이제 점점 일제강점기로 분산되기 시작한 것인데 지금 한국사회에 응축된 ‘어떤’ 욕망과 겹치면서 경성 영화는 2016년 한국영화의 추세로 자리 잡았다.

‘어떤’ 욕망이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일본 친화적인 정책이 민족의 혼을 갉아먹는 상황에서 많은 한국인은 민족적 특성, 즉 뿌리에 대해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조상의 정체는 무엇인가? 2016년 경성 영화 중 <아가씨>와 <밀정>은 그와 같은 정체성 혼란이 이야기의 주요한 축을 이룬다. <아가씨>는 원작소설의 내용으로 유추해 보건대 태생이 뒤바뀐 두 여자의 출생 비밀이 이야기를 끌고 갈 것으로 보이고 <밀정>에서 송강호가 연기하는 일본 경찰 이정출은 일본에 붙어먹은 매국노인지, 아니면 독립운동가를 돕기 위해 언더커버가 된 것인지 아리송한 스탠스를 취해 의도적으로 관객의 혼란을 가중한다.

한국과 일본, 아군과 적군, 나와 너로 대립하는 시대적 상황은 필연적으로 선택을 요구받기 마련이다. 나를 위해, 국가를 위해 어떤 운명의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혼란이 경성 영화가 출현한 두 번째 욕망에 해당한다. <동주>의 윤동주는 시를 통해 일제에 핍박받는 한민족의 삶을 드러내는 한편으로 적극적인 저항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고통받았다. 또한, <덕혜옹주>의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는 원치 않는 이와 정략결혼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갖은 고초를 겪으며 간신히 귀국했지만, 곧 생을 마감했다.

<덕혜옹주>와 <동주>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도, <아가씨>처럼 허구의 이야기에 경성 배경을 이식한 작품도 있지만, 경성 영화들은 시대를 우회해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으로써 역사를 바로잡고 혼란한 이 시대에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오락물의 형태로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할 예정이다.

역사 교육은 교실에서만, 그리고 교과서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역사를 교과목의 형태로만 묶어 놓은 채 단수의 시선으로 재단하면 왜곡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시선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인데 영상이 대세가 된 시대에 영화는 역사를 알리고 바로 잡을 좋은 교육의 장() 중 하나다. 특히나 비극적 역사의 피해국으로서 가해국에 목소리를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큰소리를 듣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는 더욱 중요한 것이 되었다. 경성 영화를 통해 일제강점기 경성이 재조명되고 있는 현실이 예사롭지 않다.

 

ARENA HOMME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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