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형 감독의 연출 데뷔작 <경복>은 스무 살의 청춘을 다룬다. 제목의 영문 표기는 ‘Big Good’으로 ‘큰 기쁨’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다만 감독이 1985년생인 것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다루는 내용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를 뜻하는 ‘호우시절 好雨時節’에 가까워 보인다. 시간이 지나고 스무 살 시절을 돌아보니 참 좋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형근(최시형)은 지금 막 대학 시험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마침 부모가 여행을 떠나 집이 비게 되자 친구 동환(김동환)을 부른다. 둘은 형근의 방에서 노닥거리다가 함께 지낼 방을 구해 독립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돈이 부족하자 부모 몰래 형근의 방을 세놓기로 하고 세입자를 구하기 시작한다.
<경복>은 케빈 스미스의 데뷔작이었던 <점원들>(1994)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흑백의 화면으로 진행되고 한정된 공간을 떠나지 않으며 극 중 청춘들이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과 대화로 시간을 죽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르다면, 이와 같은 설정을 케빈 스미스는 대사’빨’이 돋보이는 코미디로 가져갔다. 그에 반해 최시형 감독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스무 살의 욕망을 드러내는 성장물로 활용한다.
영화는 형근과 동환의 독립이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에 대해서는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이는 열린 결말을 통한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남겨두려는 목적보다는 스무 살의 특징을 반영한 쪽에 가깝다. 스무 살 시절이 그렇지 않나.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의미를 갖는 나이 대다. 안정적인 성공보다는 좌충우돌하는 경험을 통해 청춘은 성장한다. 이들의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과 대화가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그런 배경 때문일 터다.
이처럼 형근과 동환은 성공과 실패, 의존과 독립, 소년과 어른 사이에서 아직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경계 위의 존재다. 그래서 영화는 동환이 터널 안을 지나가고 있는 장면을 처음과 끝에 배치했고 흑백 화면 중간 중간 컬러 영상을 삽입하여 과거와 현재 시점이 모호하도록 형식을 취했다. 또한 최시형 감독 본인이 형근을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의 출연진 중 상당수가 감독(<전국노래자랑>의 이종필, <숨바꼭질>의 허정)이나 작가(신이수, 최아름)일 만큼 역할에 있어서도 뚜렷한 하나의 개념에 종속되지 않는다.
그러니 스무 살 청춘에게는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좋은 직장을 얻고, 그럴싸한 집을 얻어야만 독립인가.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형근(과 동환)처럼 두 평 남짓한 자기 방을 나가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 또한 독립에의 욕망이다. 중요한 건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든 행동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키즈 리턴>(1996)의 마지막 대사, “우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잖아”에 대한 변주이자 2013년의 버전을 <경복>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첫 머리에서 언급했듯, 스무 살 시절의 온갖 경험이란 때를 알고 내리는 비와 같다. 그냥 비가 아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인생의 좋은 비다. 우리 모두가 통과의례처럼 겪었던 청춘이 지금의 나를 가능케 해준 영양분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최시형 감독 본인이 출연한다는 점 때문에 자전적인 영화로 추측하지만 그는 정작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그렇다. <경복>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스무 살 호우시절에 대한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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