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 최시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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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 감독은 <경복>으로 연출 데뷔하기 전 ‘유형근’이라는 이름으로 연기자 활동(<은하해방전선><다섯은 너무 많아> 등)을 했다. 최시형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연기도 병행하는데 ‘형근’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한다. 그렇다면 <경복>은 자전적인 이야기인가? 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우리의 스무 살 시절은 어땠는지 먼저 물어보고 싶다. 영화 속 형근과 동환처럼 별다른 꿈 없이 그저 좁은 자기 방을 나가 독립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스무 살 시절을 통과하지 않았나? 최시형 감독의 인터뷰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면 당신 역시 그런 스무 살을 보냈다는 증거일 것이다.  
 

실명으로 출연해 직접 주인공 연기까지 했다. 그런 점 때문에 자전적인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다.  
전혀 아니다. (웃음) 아무래도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럼 연출 데뷔작으로 스무 살 청춘의 이야기를 선택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스무 살은 물리적으로 제일 많이 바뀌는 시기다. 담배를 피어도 되고 술집도 갈 수 있다. 또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크기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때이기도 하다. 그런 터닝 포인트에 관심이 많아서 <경복>을 만들게 됐다.  

감독님은 현재 이십 대 후반(1985년 생)의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시선은 스무 살이 아니라 더 나이를 먹어서 되돌아보는 스무 살 시절이다.
그렇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가 2009년이었다. 그 후 추가 촬영까지 감안한다면 스물여섯에 찍은 거다. 편집은 최근까지 했으니까 올해로 스물아홉인데 스무 살 시절에 느꼈던 청춘과 지금 되돌아보는 청춘은 다르다. 녹음실에서 형근의 목소리를 더빙하는데 목소리가 늙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웃음) 그때가 훨씬 순수했던 것 같다.

극 중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연출)의 얘기가 인용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꿈이 시시해진다는 것이다.” 30대를 앞둔 지금 이 말에 동의하나? (웃음)
이상하게 나는 시시껄렁한 거에 목숨을 거는 성향이 있다. 그런 경우가 많지 않나. 근데 그게 내 자신에게는 항상 최악으로 다가오더라. 그래서 스무 살, 스물 한 살 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많이 시시해졌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일들은 많이 접했는데 하다가 만 것들이 많다. 그게 오랫동안 콤플렉스였다. 내 꿈이 과연 뭘까?

하지만 지금은 연기도 하고 <경복>으로 감독 데뷔까지 했다.  
영화가 미친 듯이 좋아서 한 게 아니라 하다보니까 된 거다. 좀 거만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영화는 나 자신 때문에 만든다. 내 욕망 때문에 만든다. 근데 요즘은 그 마음의 100% 중 일부는 누군가를 위해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움’, ‘위안’ 이런 단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 영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과 위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내 욕심으로 시작한 영화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런 마음이 좀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영화를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팀플레이를 더욱 중요시 하게 됐다.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다. 대신 팀플레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럼 여러 사람들의 스무 살 시절의 경험이 반영된 것인가?
영화는 한 명만의 욕망이 드러나면 안 된다. 현장에서 배우와 스탭이 뭘 하든 웬만하면 막지 않는다. 그래서 대(大)주제라고 해야 하나, 굉장히 보편적인 걸 설정한다. 스무 살이 되어서 독립하고 싶은 애들, 이 정도에서 항상 시작을 한다. 나는 내 얘기를 하는 걸 안 좋아한다. 자기 얘기는 미화하기 마련인데 그래서 남의 사연을 얘기하고 다루는 것은 두근두근한 게 있다. 그러니까, 내 사연일 수도 있고 저 사람 이야기일 수도 있는 스토리가 좋다. 그런 설정을 가져와서 내 마음대로 표현을 한다. 거기에서부터 <경복>이 시작됐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각별했을 ‘정은임의 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그중 하나의 에피소드가 정성일 평론가가 소개하는 <임소요>(2002)의 영화 소개다. 이 작품 역시 하릴없이 빈둥대는 두 명의 청춘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경복>과 유사함이 느껴진다.    
정영음의 <임소요> 소개는 사실 애드리브에 가까운 개념으로 영화에 들어갔다. 사실 나는 정영음이 방송될 당시에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웃음) <경복> 출연진 중에 정영음을 직접 들은 세대가 있었다. 그들이 영화를 찍기 전에 소개를 해줘서 들었고 차용하게 됐다. <경복>을 보게 될 관객 중에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통해 정영음을 처음 접하게 되는 거잖나. 그렇게 구전되는 것이야말로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진다는 게 아닌가 한다.  

그야말로 영화의 제목인 ‘경복'(Big Good)이다.
그렇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임소요>는 지아장커 감독이 신문에서 본 기사로 만든 영화고 그것이 정영음을 통해 한국의 청취자들에게 소개되었다. 그게 구전되어서 <경복>에도 나온다. 경복은 그렇게 와야 하지 않나,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극 중 과거와 미래의 시점을 표현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대개 과거의 경우, 비디오 화질로 표현하지 않나. 그런데 이 영화는 거꾸로 스무 살 시절은 필름 느낌의 흑백으로, 스무 살이 훌쩍 지난 시점은 비디오 화질의 컬러로 촬영했다. 마치 현재를 과거처럼, 과거를 현재처럼 다룬다고 할까?
내가 성격이 모나서 그렇다. (웃음) 형근과 동환이 피아노 치는 장면, 동환이 터널을 지나가는 장면이 HD(High Definition)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영화다. 둘이 좋은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고, 터널을 통해 어딘가로 떠난다, 이게 영화지 하는 생각이 있다. 그것을 포장해주는 양념 같은 게 흑백의 DV(Digital video)다. 여기까지는 내가 설정을 한 거다. 그런데 영화 중간 중간의 8mm 장면은 우연히 나온 거다. 영화를 준비하던 어느 날 카메라 감독님이 카메라를 갖다 댔다. 카메라를 갖다 대면 의식을 가지고 어설프게나마 연기를 하지 않나. 영화와 현실의 경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쓰게 됐다.

스무 살의 성향과 닮았다.
그런 것을 보통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하는데 그런 느낌보다는 진짜인지, 아닌지 모호한 게 스물 살 같았다. 개인적으로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웃음) 즉흥적인 거를 믿지도 않고  기대도 안한다. 어릴 때 피아노를 많이 쳐서 그런지 처음부터 끝까지 구조를 제일 중요시 여긴다. 시나리오를 쓰건 어떤 설정도 대체로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팀플레이 얘기를 했지만 그러려면 연출자는 사전에 미리 정교한 판을 짜놓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내가 믿고 함께 하게 된 사람들이 뭘 하든 상관이 없는 현장이 바로 좋은 현장이고 영화라고 생각한다.

출연하는 배우 중 상당수가 감독이다.
신이수(단편 <너에게 간다>), 이종필(<전국노래자랑>), 허정(<숨바꼭질>) 감독이 출연한다. 그들이 출연한 첫 번째 이유는 친해서다. 두 번째는 능력이 있어서다. 이들의 경력과 시네마틱한 느낌, 이 두 가지를 잘 활용하면 최적의 시스템이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령, <전국노래자랑>(2013)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경복>에서 세상에 고함치는 록커 역할을 맡았다. ‘전국노래자랑’과 록커라는 간극이 재밌지 않나. 나만 알 수 있는 암호화된 방식으로 이들의 역할을 만들고 싶었다.

극 중에서 형근과 가장 친한 동환이란 친구는 어떤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다. 다른 설명 다 빼고 ‘친구’다. 최근에 내가 만든 단편에 영화음악을 맡았다. 지금은 독일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경복> 편집을 하는데 갑자기 보고 싶더라. 스카이프(skype)를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는데 그걸 영화에 넣었다.

HD와 DV도 그렇고, 스카이프까지 다양한 카메라와 동영상을 활용했다.
요즘은 디지털 시대다. 개인적으로 디지털 시네마에 관심이 많다. 디지털 시네마가 있을까? 아직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다양한 카메라가 나오고 있다. 10년 쯤 지나면 카메라 하나하나가 다 다른 구실을 하게 될 것 같다. 지금은 필름에 가장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좋은 거다, 라는 모종의 합의가 있지 않나. 근데 장면마다 다른 카메라로 찍는 시대가 가까운 미래에 올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카메라에 담는 새로운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 고민을 항상 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기작은 <경복>과는 또 다른 스타일의 영화가 될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했던 걸 또 할 필요는 없다. 다음 영화는 서울에 관한, 20대에 대한 이야기다. 이를 뭔가의 어긋남에 대한 영화로 만들 계획이다. 재미있을까? 시네마틱한 센스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가 본 영화 중에 이런 내용을 담은 작품이 없기 때문에 빨리 찍으려고 한다.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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