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피>(警官の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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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경관과 경찰을 혼용해 사용합니다.

최근, 아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찰력이 자주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임을 자처하는 경찰들이 어찌된 일인지 국민을 폭력으로 탄압하는 일이 잦아진 까닭이다.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존재해야할 이들이 도리어 국민의 안위에 위협을 가하면서 과연 경찰의 정체가 무엇인지 국민들은 헛갈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정의를 선도하는 천사? 불의를 조장하는 악마?

현재 일본에서 가장 각광받는 미스터리소설은 바로 경찰물이다. 공동체 정신이 급격히 무너지고 사회가 극도로 개인주의화되면서 과거 생각할 수 없었던 끔찍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역할 역시 커지게 됐는데 그에 대한 관심이 경찰물의 인기를 불러온 것이다.

이 같은 사회 변화에 맞춰 현재 일본에서는 경찰물에 무관심하던 작가들의 전향이 이어지는 추세다. 단적인 예가 바로 사사키 조다. 1979년 <철기병, 날았다>로 데뷔한 그는 이후 첩보, 모험, 전쟁, 역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선 굵은 필치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후 2006년 <웃는 경관>을 필두로 경찰물로 전향했는데 2007년 <제복수사>에 이어 2008년 발표한 <경관의 피>는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작품이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손자로 이어지는 경관 삼대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은 미스터리한 사건을 축으로 전개되며 세계2차 대전 후 일본 60년 현대사와 함께 장대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제목의 ‘경관의 피’가 지칭하는 것은 단순히 주인공 삼대의 ‘혈연학적’ 의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에 더해, 경관의 정체성까지 탐구하는 ‘직업적인 피’까지.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중의적이다. 전후(戰後) 급박하게 발전해온 일본 사회상에 맞춰 진화해온 범죄에 대항해 경찰의 역할 역시 변화한 것이다. 그 과정은 결국 경찰의 역할, 즉 정체성의 변화를 의미한다. 전통적인 검거 방식으로 첨단화되는 범죄를 막을 수 없었기에 경찰 또한 발 빠른 변신을 꾀한 것. 그래서 <경관의 피>는 일본 60년 현대사에 자행된 다양한 범죄의 스펙트럼을 통해 경찰의 존재를 탐구한다.

그것은 극중 주인공 삼대가 모두 경관으로 근무하지만 맡은 바 역할이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대 안조 세이지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경관이 되어 혼란한 전후 지역사회의 안전에 봉사한 인물이고, 2대 안조 다미오는 세상을 변혁하려 했던 일본 젊은이들의 저항이 빈번하던 1960, 70년대 경찰이 되었다. 다만 적군파에 잠입, 이들을 감시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지 않을까 번민의 나날을 보냈던 비밀경찰이었다. (작가는 그 유명한 ‘아사미 산장 사건’을 가져와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리고 3대 안조 가즈야는 범죄가 날로 기업화되어가는 1990년대 초반, 선배의 비리를 감시하는 경찰로 복무한다. 그 역시 후에는 비리 혐의로 의심을 받게 되는데 이는 범죄자와 같은 조건, 즉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범죄를 소탕할 수 없는 현대 경찰의 짓궂은 운명을 보여준다.

세이지에서 다미오, 그리고 가즈야로 이어지는 경관 삼대의 운명은 백(白)에서 흑(黑)으로 점차 이동하는 경찰의 역할을 증명하는 좌표와 같다. 세이지가 활약하던 당시 오로지 선의 가치를 추구하던 경관은 다미오에 이르러 선과 악 사이에서 경찰의 역할에 대해 혼란을 겪은 후 결국 가즈야 대에서 선과 악으로 뚜렷하게 구별할 수 없는 회색의 존재로 선회했다. 모든 죄가 상대적인 것으로 가치, 판단되는 작금에 경찰에 대한 평가도 상대적인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사키 조가 경찰을 규정하니 그들은 ‘경계에 선 인물’이다. 극중 가즈야의 말을 빌자면, “우리 경관은 경계에 있다. 흑과 백, 어느 쪽도 아닌 경계 위에 서있”는 것이다.

범죄는 사회를 투영하는 거울이라고 했지만 사사키 조가 보기엔 경찰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 역시 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굳이 <경관의 피>가 아니더라도 현재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경찰들의 활약(?)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촛불을 켜는 것만으로, 광장으로 진출하는 것만으로 시민을 잠재적인 폭도로 몰아붙이는 경찰의 행동에서 우리는 공안정국을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지지 못하는 현실은 정부의 방패막이 혹은 꼭두각시로 전락한 경찰의 신세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관의 피>와 같은 경찰물이 의미를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경찰물은 예전에도 존재했다. <경관혐오>로 유명한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같은 경우, 경찰물의 걸작으로 꼽히지만 <경관의 피>처럼 역사학자의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삼대에 걸친 경관의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경찰 내부는 물론 전후 일본 60년사까지 뒤진 사사키 조의 방대한 취재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여기에는 소설을 단순히 오락이 아닌 역사로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이 있다. <경관의 피>는 일본의 현대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진정 걸작이라 불러 마땅한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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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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