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구두구두구! 바야흐로, 연말 대 결산의 시간이 돌아왔다!! 아니, 너무 빠른가? 빨라도 어쩔 수 없다. 딴지 수뇌부에서 연말 기사를 뿜어내라니, 그에 따를 수밖에. 영화와 관련한 연말 결산이라면, 올해의 영화 베스트가 일종의 상식선이지만 딴지가 그런 관례를 따르는 곳은 아니니까.
그래서 2013년의 망작을 뽑으려 했지만 그게 또 여의치가 않더라. 한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긴급조치 19호>(2002) <낭만자객>(2003) 등과 같은 작품이 꾸준히 등장해 ‘쒯 오브 쒯’과 같은 아이템으로 연말에 써먹기 좋았더랬다. 그런데 한국 영화산업도 지난 10년 동안 다수의 대중이 좋아할 만한 영화 기획에 ‘올인’하다 보니 쒯스럽다고 할 만한 워스트 영화들이 씨가 말라버렸다. 오호 통재라!
문제는 관객이 많이 찾는 영화의 흥행 공식을 표준화하여 이를 대입해 만들다보니 흥행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만듦새에서는 기대치를 밑도는 영화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 것. 이런 종류의 흥행 영화를 만드는 곳이 대기업이고 더불어 멀티플렉스의 절대수를 보유하고 있다 보니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가 커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제목은 ‘흥행에만 성공하면 괜찮아?’, 부제는 ‘성에 안 차던걸’ 흥행이라는 숫자 놀음에서는 성공했지만 작품성에서는 아쉬움을 남긴 다섯 편의 영화를 무순으로 골랐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수현, 김수현, 그리고 또 김수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700만에 가까운 관객 동원은 김수현을 향한 ‘팬심’이 절대적이었다. 조회 수가 4천만을 넘었던 동명 웹툰이 원작인 점,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2010)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장철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점도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김수현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과연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영화로서 갖는 매력은 그리 높지 않았더랬다. 원작 웹툰을 콘티 북 삼아 그대로 찍은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영화로서 갖는 차별성이 전혀 두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원작을 훼손할 생각이 없었다면 굳이 장철수 감독이 연출을 맡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사의 입김이 커지면서 색깔 있는 데뷔작이 점점 희귀해지는 상황에서 장철수 감독은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을 통해 독특한 개성을 인정받은 터였다. 감독의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스타만 남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이상한 전말.
<더 웹툰: 예고살인>
충무로에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여름 시즌에 가장 먼저 개봉하는 공포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다는 것. 이와 같은 공식 아닌 공식은 작품의 질과는 무관하게 ‘여름에는 공포’라는 이상한 믿음이 만들어낸 더 이상한 결과에 가깝다. 그 때문에 함량미달의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는 덕본 공포영화들이 꽤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고사 : 피의 중간고사>(2008)라는 작품이 있고 올해는 <더 웹툰: 예고살인>이 그랬다. 웹툰 속 내용과 동일하게 현실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는 내용이 흥미를 끌지만, 그리고 이를 웹툰 형식으로 소개한 오프닝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이 영화의 장점은 딱 여기까지다. 긴박감 있는 전개와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끄집어내는 연출이 공포감을 전달하기보다는 귀를 찢는 사운드와 갑작스러운 초자연적 존재의 출현으로 ‘놀람’을 주기에 급급하다. <더 웹툰: 예고살인>은 개봉 전 홍보를 통해 김용균 감독을 공포영화의 거장을 포지셔닝했지만 만약 이와 같은 수준이라면 한국 공포영화의 현재는 암울하다 할 것이다.
<감기>
<감기>는 주요 캐릭터를 소개하는 첫 장면부터 깬다. 주차 중 사고를 당한 극 중 수애가 소방대원 장혁으로부터 구조를 받는 상황이다. 그 긴박한 순간에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간 수애는 장혁을 향해 왜 다리를 훔쳐 보냐며 신경질을 낸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이후에도 수애는 장혁에게 감사를 표하기는커녕 소방대원으로서 할 일을 한 것 아니냐며 되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달라고 생떼를 부린다. <감기>는 초당 감염 속도가 3.4명일 정도로 급속히 퍼지는 감기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재난영화다. 하지만 이 오프닝이 보여주는 대로라면 <감기>는 재난을 진지하게 묘사하는 대신 볼거리로서 소비하겠다는 얄팍한 속내를 드러낼 뿐이다. 너무 진지하게 접근해서는 관객들이 무겁게 생각할 것이니 캐릭터를 유머러스하게 가져가 재미를 확보하겠다는 의도인데, 재난은 그 성격상 너무 의도적일 정도로 장난스럽게 묘사해서는 안 된다. 특히나 주인공은 그 재난을 극 중에서 몸으로 직접 체화하는 오브제이니만큼 캐릭터 묘사가 진지하지 못하면 영화는 관객의 동의를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스파이>
이 영화는 아시다시피 촬영 초반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프로젝트였다. 원래는 <미스터K>라는 제목으로 이명세 감독이 준비했지만 너무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촬영 중 해고당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그래서 감독을 교체하고 제목을 바꿔가면서까지 완성한 영화는 어떤가. <스파이>를 보고 있으면 오버랩 되는 작품들이 꽤 된다. 스파이와 남편 사이를 오가며 위태롭게 테러에 맞선다는 설정은 <트루 라이즈>(1994)를, 각종 첨단 무기들을 볼거리화 하는 전략은 <미션 임파서블>과 <007>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JK필름의 영화들은 늘 이런 식이었다. 예컨대, <해운대>(2009)는 <투모로우>(2004)를, <퀵>(2011)은 <스피드>(1994)를 노골적으로 벤치마킹하며 한국관객들을 공략했다. 아무렴, 그럼으로써 흥행에만 성공하면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건 모든 문제가 지워진다지만 애당초 그럴 거면 왜 굳이 이명세 감독에게 연출을 맡겼는지 의아해진다.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 균형을 가져가 좀 더 세련되고 새로운 코미디 영화를 만들자는 의도가 아니었나 말이다.
<관상>
추석영화라면 모름지기 관객들이 원하는 바가 <관상> 안에는 모두 담겨 있다. 우리 고유의 명절이라는 특성 상 사극이라는 장르가 굉장히 적절해 보이고 풍성한 한가위에 어울리게 세대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여기에 관상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이를 웃음과 눈물로 황금분할 한 연출은 800만 관객을 모으기 충분했다. 불만은, 계유정난이라는 실제 역사를 가져와 이를 팩션으로 풀어가지만 그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수양대군의 역모를 막으려는 천재 관상가 내경이 역사 앞에 끝내 무릎 끓는 결말이 너무 전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왜 한국 영화 속 개인은 늘 역사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시금 과거로 회귀하는 우리 현대사를 반영한 설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팩션을 내세우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이에 역행해 역사를 넘어선 개인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 모험을 선택하기에 흥행이라는 눈앞의 이득이 더욱 간절했던 것일까. 우리 사회가 기득권자의 것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의 순응하는 <관상>의 결말은 어쩔 수없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렇게 기사를 마무리 하려고 했더니 딴지 수뇌부 측에서 2% 부족하다고 단 한 편의 추천작이 더 필요하다는 추가 주문을 하달했다. 나는 추천작이 너무 많아서 안된다고, 못 하겠다고 답변을 보냈지만 뭐,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갑의 횡포라고 생각했지만 원고료를 받는 을의 입장에서는 까라면 가야지 뭐.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완성도와 상관없이 내가 꼽은 단 하나의 ‘추천작’은 바로 이거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왜냐고? 사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는 올해의 영화라고 꼽을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단 한 편의 추천작으로 꼽은 이유는 근래에 이 영화만큼 과격했던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이>의 주제 의식은 살부(殺父)다. 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그래서 극 중 17세 소년 화이는 끝내 아버지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게 과연 올바른 것일까?
정말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면 그건 패륜이다. 이 영화가 살부를 통해 의도하는 바는 아버지를 넘어서는 거다. 언젠가부터 한국은 아버지들의 세계가 되어 가고 있다. 아니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개발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386세대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보신을 위해 기득권과 손을 잡았다. 그 속에서 지금 우리의 청춘들은 아버지들이 만들어놓은 취업과 입시의 시스템 속에서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도전, 모험, 혁명과 같은 청춘의 특권을 모두 저당 잡혔다.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아프면 견디기보다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검사를 해야 하고 그리고 치료해야 한다. 청춘이 지금 고달픈 건 순전히 아버지들 때문이다. 그 고달픔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아버지를 넘어서야 한다. 누구처럼 아버지의 유산이 제 것인양 그것으로 부와 명예를 충족하고 지배의 배경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내 눈앞의 괴물은 삼켜 버려야 한다. 그래야 새 시대를 맞이할 수가 있다. 바로 그와 같은 주제 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장준환 감독의 <화이>인 것이다. 딴지가 보증하는 올해의 추천작으로 딱!이지 않나.
더 딴지
NO.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