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1995) <원더풀 라이프>(1998) <아무도 모른다>(2004)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배우자와의 사별, 사후 세계, 버려진 아이 등 많은 이들이 꺼려하는 문제를 정면에서 다뤄왔다. 그것은 결국 현대 사회가 잃은 또는 잊은 가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재라는 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항상 ‘남겨진 자’에 방점이 찍혀있다. <걸어도 걸어도> 역시 마찬가지다. 극중 주인공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는 10년 전 바다에서 사람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장남의 기일 때문이다.
그러나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는 부모님 댁에 가는 것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형만 편애했던 아버지(하라다 요시오)와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못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어머니(기키 기린)에게 걱정을 끼쳐드릴까 염려스러울 뿐 아니라 늦은 결혼으로 아내(나츠가와 유이)의 아들까지 얻었는데 가족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집에 도착한 료타는 부모님은 물론 누나(유) 내외와 한때를 보내면서 가족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하나>(2007) 이후 차기작으로 20대 후반의 여자가 등장하는 멜로드라마를 구상 중에 있었다. (후에 이 작품은 내용이 바뀌어 배두나가 출연한 <공기인형>으로 개봉했다!) 그러나 3대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의 하루를 묘사한 <걸어도 걸어도>로 갑작스럽게 바뀐 이유는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다. “3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2년 동안 병상에 누운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가족의 단절, 소통부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걸어도 걸어도>는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을 출발점삼아 완성한 작품이다. 영화의 초반,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주는 모습이랄지 그 주변에서 아이들의 재잘대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광경에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의 정서가 짙게 배어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가족의 일상을 다루는 <걸어도 걸어도>는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계보에 두고 설명이 가능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개인의 경험이 바탕을 이룬다는 점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는 못한다. (감독은 이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가 영화 촬영 중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 영화와 비교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어떤 소재를 다루든 가치판단을 개입시키지 않는 감독은 가족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섣불리 희망을 드러내거나 절망을 말하지 않는다. 료타의 가족을 차분히 지켜보는 감독의 시선에는 가족의 의미를 한 발 늦게야 깨닫는 현대 가족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어머니가 그렇게 궁금해 하던 스모 선수의 이름을 헤어진 뒤에야 생각하는 료타의 경우처럼 가족은 함께 할 때나 헤어질 때나 계속해서 평행을 긋기에 애틋한 존재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뒤늦게야 가족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극중 주인공들이 결코 성취를 이루는 법이 없다. 정신적 성장은 이룰지언정 목적을 이루는 성질의 마침표를 찍지는 않는다. 끝맺음되지 않았기에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안 그래도 <걸어도 걸어도>의 영화 제목은 1960년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이시다 아유미의 히트곡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의 가사에서 가져왔다.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 속 인물들은 비록 흔들릴지언정 계속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한 발 늦게서야 가족의 의미는 찾아오는 법이다.

(2009.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