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가 달린다는 건 일종의 말장난이다. 거북이는 태생적으로 달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거북이가 달린다고 주장하는 건 그만큼 절실한 사연이 있기 때문일 터. 이연우 감독의 <거북이 달린다>는 땅에 떨어진 가장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달리는 형사의 이야기다. 그런데 왜 거북이냐고? 주인공 조필성(김윤석)이 태어난 곳이자 활동무대가 다름 아닌, 행동이 굼뜨다고 소문난 충청도인 까닭이다.
예산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필성의 일과는 따분하다. 워낙 범죄가 없다보니 지역 축제의 관리를 맡거나 단속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뇌물을 받아먹는 게 전부다. 벌이가 시원찮다보니 집에서는 아내에게 눈치 보기 일쑤요, 딸에게는 미안한 맘뿐. 그러던 차, 아내의 돈을 끌어다가 도박에 참여해 큰돈을 벌지만 그것도 잠시, 탈옥수 송기태(정경호)에게 뺏기고 만다. 돈을 찾기 위해 필성은 안간힘을 쓰지만 송기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무너질 수 없는 법. 필성은 오로지 가장의 체면을 세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추격에 나선다.
<거북이 달린다>는 김윤석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추격전이 영화의 동력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추격자>를 연상시킨다. 그랬다면, 김윤석이 이 영화에 출연했을 리가 없다. 그는 <추격자> 이후 엄중호를 연상시키는 역할의 시나리오만 들어온다고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김윤석은 자신의 차기작이 <추격자>와는 다른 작품이길 바랐다. 그의 뜻대로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작품이라 할만하다. 그가 연기한 조필성은 엄중호와 달리 사람 냄새 물씬한 인물이고 추격전이라고는 하지만 날이 선 긴장감도 없을뿐더러 기본적으로 코미디를 지향하는 작품이다.
이 같은 영화의 특징은 충청도라는 지역성에 빚진 바가 크다. 그 자신이 충청도 출신이라는 이연우 감독은 소위 ‘충청도의 리듬’으로 <거북이 달린다>를 완성했다. 충청도 특유의 느려빠진 말투와 행동거지는 속도감이 전혀 다른 추격전과 충돌하며 웃음을 유발하고 대낮의 논밭과 같은 확 트인 공간은 우리가 흔히 스릴러 영화에서 쉬이 접하는 어두컴컴한 골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서스펜스의 리듬이 아니라 너무 오래 입어 구멍 난 속옷과 같은 따분한 일상의 리듬이 극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필성은 엄중호에 비해 관객들이 감정이입할 여지가 큰 인물이다. 결코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직장에서 치이고, 가정에서 기 못 펴는 오늘 날의 고개 숙인 아버지와 겹치는 지점이 많은 까닭이다. 딸의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일일교사 권유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으로 끝나는 극의 구조는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거북이 달린다>는 이 땅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응원가이자 헌사인 셈이다.
그래서 조필성은 돈을 찾은 뒤에도 굳이 잡을 필요가 없는 송기태를 체포하기 위해 그렇게 뛰고 또 뛴다. 남자의 자존심이란 허세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허세가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준다고 굳게 믿는 까닭에 달리는 것이다. 이연우 감독은 조필성의 허세만 남은 자존심을 놀려가며 코미디를 만들면서도 끝끝내 그 허세를 현실화시켜줌으로써 가장의 체면을 세워준다. <거북이 달린다>는 요즘 영화와 비교해 세련되지도 않은데다가 영악한 구석도 없지만 느려터진 이야기와 리듬 속에서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