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덩치가 더 커버린 <씨네21>

1.

필자가 이 글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내용은 영화권력이 되어버린, 이상하게 영화보다 덩치가 더 커버린 영화주간지 <씨네21>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바로 이들의 과도, 무절제, 부적절 애무 행각에 대한 고발기사가 되겠다.

<씨네21>은 1995년 당시 외국 영화의 직배 이후 급작스레 늘어난 영화 개봉에 맞춰 이에 따른 대중의 정보욕을 총족시켜주기 위해 한겨레신문사에서 기획, 제작된 주간지 형태로 1995년 5월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게 된다.

다시 말해 이러한 태생적 배경은 <씨네21>의 존재 이유가 이 잡지를 구입하는 독자를 고객으로 모시고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들이 독자를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곧 대중에게 유리한 결국 대중의 입장에 선 기사를 전달하겠다겠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씨네21>은 자신들을 ‘영화 정론지’라 칭하였다.

그럼 우린 이 부분에서 ‘정론’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가릴 필요가 있다. 왜냐, 그것의 정의를 통해 최근의 아니 그 이전부터 <씨네21>이 ‘정론지’라는 이름을 내걸고 자행해 온 특유의 보도형태의 실태를 목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는 정론에 대해, ‘바른 언론, 이치에 맞는 의견이나 주장’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씨네21>이 그들의 주장대로 되기 위해서는 이치에 맞는 영화평이나 기사를 통해 독자가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 키잡이 역할을 제시할 때에 ‘바른 잡지’된 도리를 수행한다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충실히 유지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씨네21>을 ‘정론지’라 부를 것이다.

2.

그럼 스스로가 영화정론지라 자처하는 <씨네21>의 그간의 족적은 어떤가. 과연 그들이 정론지의 신분에 어울리는 자세를 보였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8월말 정론지로서 <씨네21>의 허위가 극명히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의 개봉을 앞두고 이들이 보여준 일련의 기사는 그 폐단이 집중적으로 부각된 경우였다.

<씨네21>은 이 영화의 개봉이 가시권 안에 들어오자 개봉 3주 전부터 ‘시사기’, ‘영화집중소개’, ‘감독의 신변잡기’, ‘찬반양론을 빙자한 호의기사’ 순으로 <성소>측에 서서 관객동원을  위한 홍보전단의 대안으로서뿐 아니라 최후의 수단으로써의 체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무엇보다 <성소> 개봉 1주전 특집이라는 미명하에 <씨네21> 368호에 소개된 ‘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무려 15쪽에 걸친 기사는 그들이 영화 잡지의 본분은 망각한 채 영화 팸플릿으로의 순간적인 업종전환을 보여준 극명한 사례라 할 만하다. 뿐인가, 영화업계의 쌍두마차 시네마서비스가 투자/배급하고,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여 2000년 여름 개봉한 <비천무>는 어땠나. 김혜린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이 작품은 각색의 미숙, 연출의 미숙, 연기의 미숙 누가 봐도 미숙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허접한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영화전문가들이 모였다는 <씨네21>은 이 작품을 옹호해 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개봉을 1주 앞둔 시기에는 <비천무>의 가장 크나큰 실패요인이랄수 있는 주인공, 김희선을 앞세워 영화에 대한 걱정과 영화배우로서의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그녀의 소개기사를 실어 동정심을 부각, 관객들이 품고 있는 배우 개인에 대한 호감을 자극하여 극장관람으로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게다가 이와 같은 호의적인 기사와는 반대로 관객들의 성토가 절정을 이루던 개봉 3주차 <씨네21> 260호에는 이 영화에 대한 냉철한 분석 및 냉정한 평가는 온데간데 없고 되레 ‘외전 비천무 출정기’라는 13페이지에 달하는 특집기사를 구성, <비천무>를 소재로 한 가상소설과 감독과의 대화를 전면에 내세워 흥행분위기를 조장하였다. 특히 이 특집기사에서 한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온라인 <비천무> 논쟁-호평하면 관계자, 혹평하면 문화사대주의자?’라는 입장표명이 애매모호한 기사를 통해 관객의 분노 중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씨네21>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쟁점을 교묘히 피해가는 술수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위의 <성소>, <비천무> 두 사례는 <씨네21>이 자신들의 입장을 확실히 밝히기보다는 감독의 서열이나 제작사의 덩치에 쉽게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결국 <씨네21>이 사리나 도리에 합당한 주장을 펴는 정론지가 아니라 영화 관계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업계지로,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영화 선택에 있어 하등 도움이 안되는 공론지라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3.

<씨네21>이 업계지로써, 공론지로써 두각을 나타낸 시기는 <단적비연수>와 <리베라매>가 동시에 개봉했던 2000년 11월, 276호에서였다. ‘블록버스터 대결전’이라는 허울을 쓰고 마련된 특집코너에 제작과정에서부터 장르소개, 스타분석, 감독의 인터뷰까지 두 영화에 대한 호의 기사는 민망할 정도의 작품성에도 불구,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거두며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데 결정적인 첨병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씨네21>은 이같은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다만 2000년 11월부터 유독 그 활약도가 두드러진 건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촉발된 관객들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이때부터 거대한 산업을 받쳐줄만큼의 커다란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즉, 국내영화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아지자 영화잡지에 대한 의존도도 그에 비례해 높아져갔고 당연히 <씨네21>의 옳지 못한 경향 역시 선명해진 것이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예기치 않은 수익을 벌어가는 영화사와는 달리 그 이득에 해당하는 만큼의 손해를 고스란히 <씨네21>의 구독자가 떠안는다는 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네21>을 사보는 독자는 예나 지금이나 그 수에서 별다른 변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를 막아줘야 할 후발 영화 주간지들조차도 이 점을 교훈 삼아 새로운 저널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씨네21>이 갈고 닦아온 그간의 행보를 답습하고 있다.

그 결과, <씨네21>은 여태껏 철옹성과 같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독자들은 도토리 키 재기 보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여러개의 영화 주간지 중에서 썩어도 준치라며 차악으로써 <씨네21>을 꺼내들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4.

그래서 창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씨네21>을 정독해 온 필자가 보기에 그들이 지난 7년간 이룩한 공적이라면,

첫째, 주간지 시장을 힘들게 재척하여 고작 국내 유력 영화사들의 대변자로 우뚝 선 점. 둘째, 독자들로 하여금 영화 리뷰하면 의례히 영화 전문용어로 도배돼 있고, 주제를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인상을 줌으로써 이런 식의 글이 평론이라는 고정관념을 전파하는데 일조한 점, 두가지다.

그리고 이 두가지가 가능했던 그 기저에는 정론지라는 명분적 정의와 달리 업계지로의 내공을 착실히 쌓아왔던 <씨네21>의 과도, 무절제, 부적절 애무행각이 있었다. 결국 첫번째로 언급한 한국영화에 대한 무조건적 호의는 동종업계의 많은 이들에게 반발심을 불러 일으켜 필요 이상의 영화주간지가 난무하게 된 작금의 비정상적 시장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씨네21>과 영화관계자와의 밀착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보도관행은 두 번째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결국 <씨네21>은 스스로가 무덤을 파는 행위를 함으로써(그렇다고 그 속에 들어가 누운 것은 아니지만) 독자와 영화 평자 간의 건널 수 없는 루비콘강을 이룩한 것이다.

물론 <씨네21>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층을 넓히고 이들을 고스란히 영화관객으로 전환하여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일정 부분에 공로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간지 시장의 1위 자리를 고수하기 위한 기사의 원천으로 업계의 상위권 영화사가 제작하는 영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그들의 앞잡이가 되고야 말았다. 그 결과, <씨네21>은 영화잡지시장을 넘어 한 영화의 운명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영화판의 권력으로 성장하였다.

이상스레 영화보다 덩치가 더 커버린 <씨네21>의 현재 모습이다.  

(2003. 1. 월간 북매거진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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