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


제목이 뭘 지칭하는지 알아보자.  

때는 바야흐로 1972년 1월 31일 일요일, 장소는 북아일랜드 데리시. 이곳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시민권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인다. 왜? 영국정부가 이들의 주권을 마구 침해하니까. 근데 영국진압부대는 씨바스럽게도 비폭력 평화 시위를 벌이던 데리시 주민에게 총을 난사한다. 아작난 평화, 그리고 피로 물든 북아일랜드. 이것이 소위 피의 일요일, 즉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라 불리는 사건이다.

당 영화는 바로 이 문제적 실화를 거머리처럼 밀착 들러붙은 카메라 출동 필로 딱 하루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당 영화는 카메라가 수전증 걸린 것 마냥 쉴새없이 지랄발광을 떠는데 그러다보니 연출되었음에도 불구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한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왜 이러한 전략을 구사했을까. 왜 그러긴, 사실감있게 보이려고 그런거지. 감독이 이를 통해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그럼 또 왜 30년이나 지난 사건의 진실을 이제서야 말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이 사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썰했듯 북아일랜드의 비폭력시위를 악랄한 폭력으로 제압한 영국, 진실이 알려지는 날엔 전지구적 개망신은 물론이요 그 후한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 가라로 왜곡하거나 은폐, 축소하는 것.

이제 눈치들 좀 채셨는가. 그렇다, <블러디 선데이>는 탈골한 진실을 제 자리 찾아주는 영화인 것이다. 게다가 감독인 폴 그린그래스는 사건의 가해자측인 영국 출신. 진실을 숨기는 자신들의 역사가 부끄러웠나보다. 하지만 감독은 북아일랜드, 영국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양측의 상황을 교차로 편집해 보여주면서 사건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졸라게 땀 흘린다.    

허나 이처럼 중립을 지킨다고 해서 이 사건이 주는 충격이 쪼그라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시선이 어디에도 고정돼있지 않고 보여주는 화면이 느무느무 사실적이다보니 관객은 마치 사건의 목격자가 된 듯하고 그 앞에서 무고한 잉간덜이 군바리덜의 총탄에 하나둘 죽어 나가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음이다. 게다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보게되니 어디메선가 이글이글 분노가 뚜껑을 열고 치솟아 오를 지경이다, 씨바!

무엇보다 당 영화가 우리 관객에게 남의 일 같지 않은 건 우리 역시 이와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5.18 광주 학살. <블러디 선데이> 속 북아일랜드 주민과 영국군을 광주 시민과 전두통 살인마로 치환해도 무방한고로 우리에게도 당 영화처럼 진실을 과감하게 폭로할 수 있는 작품이 있었으면 하고 기대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만큼 영화라는 매체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단순히 ‘재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당 영화인 것이다.

따라서 당 영화를 통해 재미, 스펙타클, 볼거리 등 블록버스터 영화가 제공하는 오르가자미를 기대하는 건 우물가서 숭늉 찾는 격. 다른 영화를 찾아보심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 사료된다. <블러디 선데이>는 그런 영화가 아니니까.

아무튼 그런 전차로 당 영화를 베스트 주녀에 올림이다. 이상!


<딴지일보>

2 thoughts on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

  1. 슬픈 건, 우리들중 많은 이들이 우리의 광주마저 별로 관심 없어 한다는 겁니다. 나이 어린 젊은이들, 고루한 영남인들, 이기적인 서울사람들…광주가 광주분들만의 사실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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