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들>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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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이 ‘나쁜 놈’으로 등장한다. 조의석, 김병서 감독이 연출한 <감시자들>에서다. 생애 첫 악역 도전인데 얼마나 그럴싸한지 언론시사회 이후 정우성의 연기에 대한 상찬의 기사가 넘쳐난다. 악역마저도 멋지게 소화해냈다는 것이 한결 같은 기사의 요지다.

이름부터가 아주 근사하다. 제임스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절대 드러내지 않은 채 범죄를 모의하는 설계자다. 작전이 설계되면 팀원들에게 단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으며 웬만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에 제임스의 정체를 파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이 투입된다. 하지만 제임스는 단 3분 만에 저축은행을 털고 황반장(설경구)과 신참 하윤주(한효주)의 포위망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정우성의 대표작 중에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좋은 놈’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그동안 호감형의 이미지를 쌓아왔다. 이번 <감시자들>에서는 악역이라는 의외의 뉘앙스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정우성의 연기를 두고 ‘변신’이라는 수식을 달아주기에 여념이 없다. <호우시절>(2009) <새드무비>(2005)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와 같은 로맨스 영화에 출연했던 그의 전적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평가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다만 정우성은 <감시자들>의 제임스처럼 사회시스템에 순응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대립각을 세우는 캐릭터로 스타덤에 오른 케이스였다. 학교에는 출석하는 둥 마는 둥 동네 깡패들과 어울려 주먹질에 전념하던 <비트>(1997)의 ‘반항아’, 촉망받는 권투선수였다가 친구의 꼬임에 빠져 흥신소에서 재능을 낭비하는 <태양은 없다>(1998)의 ‘방황하는 청춘’은 그의 초기 필모그래프를 정의하는 키워드였다. 그렇게 구축된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는 <유령>(1999)의 잠수함 부함장, <무사>(2001)의 검객, <데이지>(2005)의 킬러, <검우강호>(2010)의 협객 등으로 진화를 거듭해오던 터였다.

<감시자들>의 제임스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만하다. 물론 범죄를 모의한다는 점에서 이전 캐릭터들과 선악의 위치는 다르지만 그를 불법적인 행위로 이끄는 건 검은 돈에 대한 일종의 적의다. 그가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건 저축은행, 증권거래소와 같은 최근 들어 기득권의 배를 불리며 비리의 온상을 전락한 금융권이다. 그렇다고 제임스가 가진 자를 농락하며 못 가진 자들의 편에 서는 반(反)영웅의 전형으로 묘사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약속을 신뢰하는 인물이란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제임스가 차가울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도 가끔씩 화난 모습을 드러내는 건 함께 하는 이들이 정해놓은 룰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다. 현금은 일련 번호 때문에 추적될 위험이 있어 증권만 챙기는 것이 그가 설계하는 범죄의 특징인데 약간의 돈에 눈이 멀어 욕심을 챙기는 조직원에게 제임스는 한 톨의 자비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자신에게 일을 맡기는 막강한 권력의 의뢰자에게 예외를 두지 않는 그만의 철칙이다. 단 1초의 지연과 단 한 번의 실수는 곧바로 감옥행이 되거나 목숨을 위협받을 만큼 위험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다.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된 감시카메라를 모두 동원하고 동물적인 직감과 본능으로 범죄를 쫓는 황반장과 탁월한 기억력과 관찰력을 지닌 하윤주가 죽기 살기로 따라붙어야 겨우 제임스의 뒤꽁무니(?) 정도를 목격할 뿐이다. 요컨대,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감시반 대 제임스, 즉 전문가들의 대결로 구도가 이뤄지다보니 반사회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제임스에게 호감을 느끼는 이유다.

아무래도 <감시자들>과 같은 상업영화는 선의 편으로 기운 엔딩을 따라야하는 것이 원칙 아닌 원칙이기에 제임스에게 호감을 느끼는 관객에게는 안타까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에게 비극적인 결말은 어떤 계기로 범죄세계에 몸을 담게 되었는지, 얼마나 혹독한 과정을 거쳐 최고 설계자의 명성을 얻었는지, 제임스의 전사(前史)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다. 조의석 감독은 <감시자들>이 흥행할 경우, 제임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리퀄을 만들겠다는 의중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만큼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선보인 정우성이지만 파격적인 수준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그의 연기의 폭은 그리 넓은 편이 아니다. 워낙 강한 눈매가 트레이드마크처럼 굳어져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어서 생긴 결과다. 그렇다고 배우로서 그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곡해말기를. 정우성은 매 영화 다양한 면모로 관객에게 어필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이미지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쪽에 최적화된 배우다. 만약 <비트>의 반항아가, <태양은 없다>의 방황하는 청춘이 범죄의 길에서 일탈(?)하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다면 그 인물이 바로 <감시자들>의 제임스가 아닐까. “표면적인 멋스러움보다는 본질적으로 악인에 담긴 여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정우성의 필모그래프에 대표작이 하나 더 추가됐다.

시사저널
NO.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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