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감독 ‘미이케 다카시’


1.

울 영화계의 엽기 테크니쎤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당근 본 공사가 한 번 맨져준 적이 있는 김기떡 감독 생각하실 꺼라 본다. 그러나 김기떡 감독의 엽기 공력은 미이케 다카시에 비하면 명함 일 장 못 내미는 수준이라고 하면 감들이 잡히시겠능가…

우리는 김기떡 감독의 ‘오이로 똥꼬 굴착하는 비술’, ‘냉동 고등어로 사람 배따지 담그기’에 벌어진 턱주가리를 주체 못 한 적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다카시는 오이는 말랑말랑하다고 쳐다도 안 본다. 배따지 담그는 장면만 보여주면 싱겁다고 입맛을 다신다.

그는 수세미처럼 대구리가 빠득빠득한 마이크를 똥꼬에 쑤셔 쳐 넣는다. 배따지 담그는 장면에 그치지 않고, 그 벌어진 배따지 사이로 방금 먹은 라면 줄거리 등 내용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까정 보여준다. 오이, 오이는 양반이다. 냉동 고등어, 귀엽다.

더 놀라운 건 이 정도는 약과라는 사실.

미이케 다카시가 2001년에 만든 <이치 더 킬러>라는 작품이 있다. 당 작품은 지나친 폭력 땀시 일본에서조차 문제가 됐던 작품인 <코로시야 이치>라는 만화가 원작으로 다카시의 영화 중에서도 사지절단 피퐁당 살점뚝뚝 내장철푸덕 등 고어의 필살기가 한보따리 가득 총망라 되어있다.

당 영화는 사라진 보스를 찾기 위한 조직원 카키하라(아사노 타다노부 분)가 그 보스를 쥑인 이치(오모리 나오 분)를 쫓는 이야기다.

근데 카키하라는 가학과 피학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존나게 잔인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보스를 쥑인 용의자를 고문하는데 있어, 옷을 다 벗기고 수십 개의 갈고리를 맨 살에 걍 낑궈 천장에 대롱 매단다. 글구 대바늘로 목, 볼따구니를 쿠욱 쿠욱 쑤셨다 뺐다 반복하길 수십여 회, 그것도 성에 안 차는지 팔팔 달궈진 튀김기름을 등짝에 퍼붓는 수준이다. 미친너무스키…

이치는 학창시절 반 여자친구가 남자동급생들에게 강간당하는 모습을 꼼짝 못한 채 지켜보다 치욕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인물로, 이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폭력을 휘두른다.

카키하라 못지 않은 엽기 살인 스킬 보유자인 이치의 필살기는 구두 발목에 달린 면도칼. 그가 발을 상하좌우 1회만 왕복운동 해주면 최하 대구리뎅거덩 피폭포콸콸 사지뚝이다.

특히 이치가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 발차기에 사지가 절반이 나는 명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감독 다카시는 마치 수박이 쪼개지듯 쩌억 반으로 찢겨 나가는 사지를 진드가니 보여주고, 그 찢겨진 사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내장에 폭포수처럼 뿜어지는 피분수까정 여과없이 보여준다.

당 영화에는 이 장면뿐 아니라 날라 오는 주먹을 입으로 확 먹어 버려 손꾸락 잘근 씹어 뿐질르기, 도려진 얼굴 껍디 벽 타고 흘러내리기 등 피바다의 보고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주옥같은 고어 명장면이 속출한다.

그리고 당 장면들을 계속 알현하고 있다보면 다카시가 어떻게 하면 더 잔인하게 살인하고 포뜨고 회치는지 이 문제에만 대구리 굴리는 건 아닌지 존나 궁금해진다니까. 글고 이는 당 영화 <이치 더 킬러>뿐 아니라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 대부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면 및 표현일 뿐 아니라 그의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이다.


2.


하지만 다카시가 아무리 엽기 감독이다 하더라도 이런 사지절단 피퐁당 살점뚝뚝 내장철퍼덕 영화만 만든다고 생각하면 그거 니덜 큰 오산이다.

다카시는 영화 찍는 거에 뭔 놈의 한이 맺혔는지 닥치는대로 영화 만들기로 또 유명한데, 1999년에는 5편, 2000년에두 5편, 2001년에는 6편을 찍었단다. 많지?

근데 이건 극장용 장편 영화만을 편수에 넣은 경우고, 그는 시간이란 게 코딱지만큼이라도 생기기만 하면 비디오 영화는 물론(일본에서 이를 V시네마라고 한다) TV 영화도 찍는데, 그래서 그의 1년 실 영화 연출작은 거의 10편에 달한다. 한마디로 미이케 다카시는 1년 365일 먹고 싸는 시간만 빼면 모두 영화 만들기에 매진전념몰두하는 사람이라 보면 된다.

그래서 그의 필모그래프는 며느리도 모르고 감독 본인조차도 알까리한단다. 하긴 1995년에 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줄곧 이렇게 주구장창 찍어댔는데 아무리 지가 천하의 존 내쉬라고 한들 기억 못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겄냐.

그럼 그가 그렇게 찍구 싶은 영화가 많아서 다작을 하느냐, 그건 아니고. 그는 자기가 찍구 싶은 영화를 연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어느 영화 찌라시와의 이너뷰 기사에서 본 기억이 얼핏 난다. 아님 말구. 우짰든 다카시는 제작사가 제안하는 영화만 찍는 걸루다가도 업계에 평판이 자자하다.

그러니 그의 필모그래프가 다종버라이어티한 건 당근지사. <이치 더 킬러>처럼 막 나가는 고어영화도 있고,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을 리메이크 한 <카타쿠리가의 행복>같은 뮤지컬도 있으며, <중국의 조인>처럼 청렴결백 순수한 동화같은 얘기도 있고, <레이니 독>처럼 느와르에 서부극을 짬뽕한 영화도 있다.

이처럼 자신이 고르고 골라 작업한 영화가 아니라 주는대로 받아먹는 그런 방식이다보니 다카시 영화의 스또오리는 심오찬란하다거나 일관되게 주장하는 철학 그런 나부랭이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엄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존함을 모른 채 영화를 봐도, 몇 분만 지켜보다 보면 이건 딱 다카시 영화구나 하는 삐리리가 온다. 그만의 표현법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 폭력적으로, 더욱 자극적으로.


3.

근데 그의 ‘더욱 폭력적이고, 더욱 자극적인’ 표현에서 보여지는 특징 중의 하나는 앉아쏴덜을 몹시도 수치스럽고 모욕적으로 묘사한다는 사실이다. 워떤 정도냐 하면…

남자 팰 때처럼 패대기로 밀어붙이는 건 기본장착이고 똥꼬에 마이크 굴착(<아지테이터>), 오랄 섹스 후 창피해하는 여자의 얼굴 클로즈 업해 정액 내 뱉는 장면 걍 보여주기(<데드 오어 얼라이브>), 젖꼭지 집게로 잡아당겨 두부 썰 듯 젖통 싹둑 도려내기(<이치 더 킬러>) 등등등.

아마 울 YWCA 아줌마덜이 당 장면들 봤다간 그 자리에서 즉시 개거품 물고 대 국민 도덕성 함양을 위한 저질 영화 추방 백만인 서명운동 들어갈 꺼 안 봐도 눈앞에 선하다.

정녕 다카시가 여자에게 불알을 ‘톡’하고 뽑히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어 복수심에 불타 이리도 심하게 않자쏴를 다루는가 하면 그건 아닐 테고 다만 제작자의 요구(V시네마의 최고 흥행요소인 여자의 몸을 노출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상업적 이익 같은)와 다카시 나름의 표현법(벗기되 자극적으로)이 맞아 떨어져 나온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왜냐, 여자만 존나 깨지는 게 아니거덩.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 중에서 무라카미 류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오디션>을 보면, 영화 역사상 여자한테 가장 무지막지하게 린치당하는 남자 캐릭터가 등장한다.

당 영화는 부인과 사별한 홀애비 아오야마(이시바시 료 분)가 배우 오디션을 빌미로 참신하고 이뿐 24세의 앉아쏴 아사미(시이나 에이 분)를 찜했다 후에 그녀에 의해 절단기로 발목 절단 나뿔고, 대바늘로 눈 굴착 당하며 웬갖 수난을 당하는 남자의 수난기에 대한 이야기다.

그럼 남자는 왜 이렇게 당해야만 하느냐, 여쥔공 야마사키가 남자에 대한 정신적인 외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쥔공 중년 남성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 부당하게 자신을 찜한 것에 가하는 혹독한 벌이다.

결국 남자 역시 다카시의 영화에서는 수치와 모욕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 <오디션>을 제외하고 여자의 수난이 더욱 많고 돋보이는 것은 현실사회에서 여자덜이 당하는 수난이 남자보다 훨 많고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오디션>은 그런 여자덜이 남자덜에게 날리는 살의(殺意)에 찬 필살 똥침 한 방인 셈이며, 다카시의 의식을 보여준 영화인 셈이다.


4.

그럼 이렇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이며 엽기적인 감독에게 ‘가족’을 대입시키면 도대체 워떤 그림이 나오게 될까? 예상 가능하다시피 존나게 골 때리고 젓나 민망하며 조또 자극적인 그림이 나온다.

아들 내미는 오늘도 학교 친구에게 흠씬 얻어 터지구 집으로 돌아온다. 근데 이노무 자식새끼가 엄마를 막 팬다. 화풀이다. 엄마는 그 고통을 이기려 마약을 한다. 그 시간 아빠는 여관방에서 빠굴을 뜨고 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딸내미랑. 그것두 합의 하에. 딸내미는 아빠랑 빠굴 뜬 후에 원조교제에 들어간다.

다카시의 2001년 작 <비지터 Q>이다. 이는 분명 일본사회의 가족붕괴를 은유적으로 상징한 설정임은 분명한 터인데, 세상에나 세상에나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 집안이 엄따. 이런 거 솔직히 포르노 영화 <타부>에서나 본 설정 아닌가. 이게 인간들 가족이냐 개새끼들 가족이지. 다카시의 눈에는 일본 가정들이 이렇게 보이나부다.

이런 설정자체도 받아들이기 존나 힘든 마당에 다카시는 이런 가족들을 어찌어찌해서 결국엔 화해시킨다. 근데 그 화해의 상징적 장면이 역시나 상상초월 엽기다.

엄마가 입고 있던 옷을 벗는다. 그리곤 아빠가 오른쪽 젓을 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딸이 온다. 엄마의 왼쪽 젓을 빤다. 엄마는 이들을 품는다. 다카시스런 가족의 합체이다.

하지만 이렇게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엽기X37912789 + 자극X3871788인 탓에 그 의외의 결말이 주는 교훈 역시 엄청 크게 비춰질 정도다. 저런 꼴 안 당하려면 가족끼리 친하게 잘 살아야 해, 뭐 이런 느낌. 우짰든 가족의 붕괴와 해체, 결합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감독이 세상 천지에 다카시 빼구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아무리 다카시 감독이 엽기 충만한 감독이라고 해도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이 있는 건 당연할 터이고 그의 맘속엔 그리고 그의 영화 속엔 붕괴된 가족에 대한 걱정이 자리잡고 있는 거 또한 사실이다.


5.

이렇게 썰푼 바와 같이 다카시는 엽기로 대표되는 감독이다. 하지만 그가 엽기로써만 설명될 수 없는 감독이란 거 역시 잘들 아셨으리라 본다.

그는 늘 한 곳에 고여있지 않고 다른 곳을 향해 전진해 가는 스따일이다. 한 장르만 집착하지 않고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하는 것이 증거다. 마치 엽기로 흥한 자 엽기로 망한다는 사실을 눈치 까기라도 한듯.

하긴 1년에 거의 10편씩 찍는 마당에 엽기 하나만 가지고 지겨워서, 또 할 얘기가 없어서 무슨 수로 그렇게 많은 영화를 연출하겠냐. 존 포드가 서부극의 대부로 알려져 있지만서도 항상 서부극만 찍은 건 아니자너. 코미디도 연출하고 로맨스도 찍구 다큐멘터리도 제작하고.

다른 장르, 다른 소재의 영화도 찍어봐야 창조력에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장르와 소재에 맞는 아이디어를 구해, 좀 더 새로운 표현방식을 찾을 수 있지 않겠냐 이거다. 다카시는 이 점을 잘 아는 감독이다.  


<딴지일보>

“지상 최대의 감독 ‘미이케 다카시’”에 대한 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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