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바이 더 씨> 가족 관계의 역학에 대해

(* 영화의 관람을 방해할지도 모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장 밀접한 사이지만, 그러므로 더욱 알 수 없어 가족 관계를 탐구하는 영화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도 그런 영화 중 한 편이다. 한국말로 풀자면, ‘바다 마을 맨체스터’ 정도 되려나. 근데 언제부터 맨체스터(Manchester)가 바다를 접하고 있었느냐고? 나도 처음에는 박지성 선수가 활약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속한 영국의 도시가 배경인 줄 알았다. 아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속한 작은 도시다.

리 챈들러(케이시 애플렉)는 보스턴의 아파트 관리인으로 근무하며 혼자 살고 있다. 슬픔이 얼비치는 듯한 눈매가 매력적인 리는 자주 여자들의 구애를 받음에도 반응하는 법이 없다. 대신 술에 취해 주변 사람과 시비가 붙을 때면 감정을 폭발시키고는 한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다가오는 여자들도 마다하고 인정머리 없이 매몰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생길 때쯤 리에게 고향에서 소식이 날아든다. 형 조(카일 챈들러)가 심부전으로 위독한 상태이니 급히 맨체스터로 오라는 전갈이다. 살아있기를 바랐지만, 도착하니 형은 숨진 상태다. 임종을 지키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에서 리는 형이 아들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으로 자신을 지목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내가 고향을 왜 떠났는데, 리는 패트릭을 데리고 보스턴으로 가려 했다가 조카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다.

패트릭은 되려 리에게 보스턴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맨체스터에서 함께 살자며 설득에 나선다. 형이 남겨둔 재산도 있겠다 듬직한 조카도 있으니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리는 택도 없는 소리라며 조카의 의견을 무시한다. 이들은 작은아버지와 조카의 관계가 무색하게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던 중 리는 전 부인 랜디(미셸 윌리엄스)의 연락을 받고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이 영화의 주요한 배경이 ‘바다’인 이유가 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연출한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가족이리는 테두리 안에 갇힌 구성원들의 심정이란 곧 바다 위를 표류하는 배와 같다고 생각한다. 스포일러(!)를 밝히자면, 리가 고향을 떠난 이유는 몇 년 전 새벽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술을 사기 위해 식료품점을 갔다 오던 중 집에 불이 나 자식 셋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불찰 때문이라고 생각한 리는 괴로운 마음에 자살 시도까지 하는 등 고향에서 더는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인과 이혼을 한 후 보스턴에서 혼자 살아가던 중이었다.

삶의 풍랑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잔잔한 수면 위에 떠 있듯 보스턴 생활에 익숙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별안간 형이 죽고 조카를 돌보기 위해 맨체스터에서 다시 생활해야 한다니, 리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안 그래도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는 이들 가족, 더 정확히는 리와 조 형제의 부모님이 소유한 배가 있다. (배의 이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부모님 사후 리와 조와 패트릭은 종종 이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 고기 낚시를 하고는 했다. 형 조가 배를 몰면 리는 패트릭에게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고는 했다. 바로 이 구도에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묘사하려는 가족 관계의 역학이 압축되어 있다.

조가 세상을 떠났으니 배의 운전대는 리가 잡아야 하는데 리는 이제나저제나 물(?) 밖으로 떠날 궁리만 한다. 언제 또다시 불어닥칠지 모르는 파도를 피하고 싶은 리는 바다와는 거리가 먼 육지, 즉 보스턴이 일종의 피난처와 같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리의 심리에 맞춰 연출을 가져간다. 보스턴에서의 일상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속에 이뤄지는 가운데 어느 날 눈발이 날리고 찬바람이 씽씽 불어오면서 형의 병상 소식이 들려온다. 그리고 형의 유언장을 담당하는 변호사로부터 패트릭의 후견인 얘기를 듣고는 리의 현재와 과거가 마치 배의 양옆을 때리는 파도처럼 리를 흔들며 혼란스럽게 교차한다.

가족관계를 자연에 빗대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특별한 사연을 다룬다기보다 보편적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물론 리의 심리를 무너뜨린 사연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머무는 동안에는 떠나고 싶고, 떠나있는 동안에는 돌아가고 싶은 가족을 향한 양면적 감정을 이해하는 이들에게 리가 처한 복잡한 상황은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표류하는 배처럼 밀려오면 쏠려나고 쏠려 나면 밀려오는 가족을 향한 모순된 심정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이에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가족의 초상’과 같은 작품이다.

가족의 초상을 내세우는 영화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말고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단지 세상의 끝>(2016) <미스 리틀 선샤인>(2006) <가족의 탄생>(2005) <바람난 가족>(2003) <아메리칸 뷰티> <매그놀리아>(이상 1999) <아이스 스톰>(1997) 등에 더해 아예 가족의 초상이 부제로 들어간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2013)도 있다.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가족도,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들 작품이 모두 공유하는 지점은 오랜 시간을 지지고 볶고 해야 겨우 티끌만 한 정도의 이해와 화해의 폭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마지막은 리와 패트릭이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갑판 위에서 낚시하는 장면으로 할애된다. 이들이 잡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날 저녁상에 올라갈 생선일까? 언젠가 이들이 함께 맞이할 미래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제 리와 패트릭이 새로운 가족을 이뤄 이 배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것이 리와 패트릭 간의 절대적인 화해를 의미하는 건 아닐 테다. 가족이란 구성원 모두가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혈연이라는 운명에 묶여 반목하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손잡는 일을 반복하며 평생을 보낼 존재들이다.

리와 패트릭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또 부딪힐 테고 때때로 서로의 품 안에서 온기를 느낄 것이다. 이들에게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그렇게 좋던, 나쁘던 가족 관계에 풍화 작용을 일으켜 매 순간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부여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정의를 내릴 수 없어도 관계의 역학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ARENA
2017년 3월호

2 thoughts on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가족 관계의 역학에 대해”

  1. 특히나 가족의 관계나 리의 심리를 순행적으로 보여주지 않아서 더 인상깊었어요 케이시 애플렉등 배우들의 힘 뺀 연기와 연출도 상당히 좋았어요^^

    1. 전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케이시 애플렉의 성추문 사건을 알았어요. 만약 알고 봤다면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 이승영님께서도 올 한해 건강하게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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