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영화보고 싶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찌, 아줌마들 안녕. 나도 안녕.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서 엄마, 아빠 손 붙잡고 극장에를 다녀왔어. 이래봐도 내가 ‘영키’거든. 영키 몰라? 영화 키드. 한 달 전부터 달력에 X표 표시해 가면서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일 때문에 피곤하다고 쉬는 날이면 해가 중천에 뜨도록 일어날 줄 모르는 엄마랑 아빠를 새벽 같이 깨워서 동네에 스크린 완전 많은 멀티플렉스 극장에를 갔지 뭐야. 글쎄 조조부터 영화를 보려고 엄마, 아빠를 끌고 온 내 또래 친구들이 극장을 완전히 도배했더라고. 한국 영화 힘들다고 요즘 말들이 많던데 걱정 뚝 해도 좋을 것 같아. 나 같은 영키들이 이렇게 많은데 한국 영화의 미래는 척 보면 삼천리 아주 밝은 거 아니겠어. 내가 생각이 좀 깊어.  


근데 말이야, 얘네들이랑은 수준이 안 맞아서 같이 못 놀 것 같아.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까지 <짱구는 못말려>랑 <썬더 일레븐>이랑 케이블 테레비에서 만날 해대는 만화 극장판을 보고 있더라고. 지들이 무슨 코 찔찔인가, 이제 고추에 털도 거뭇거뭇한 나이 정도 됐으면 극장에서는 영화다운 영화를 봐주는 게 예의 아니겠어. 극장 관계자 아찌, 아줌마들도 좀 그래. 애들은 죄다 짱구나 뽀로로 같은 만화 영화만 좋아하는줄 아나 봐. 물론 뽀로로는 우리들의 대통령이야. 나 뽀로로 인형 없으면 밤에 잠도 못 자. 가방이랑 양말에는 짱구 얼굴이 이따시만하게 찍혀 있는 걸.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인기가 짱 많다니까.

우리 엄마랑 아빠랑은 좀 다른가 봐. 극장에서 이런 영화 보고 있으면 아주 지루해서 죽으려고 해. 영화 보는 내내 얼마나 몸을 베베 꼬는지 몰라. 신경 쓰여서 영화에 집중도 안 되는 걸. 그렇다고 엄마, 아빠 탓하는 거 아냐. 내가 얼마나 생각이 깊은데. 아무리 어린이날이라도 나만 재밌는 걸 원하는 게 아니야. 엄마랑 아빠랑 같이 즐거울 수 있는 게 내 소원이야. 극장 관계자 아찌, 아줌마들에게 불만인 건 이 때문이야. 어린이날이라고 애들 영화 일색 말고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을 틀어주면 얼마나 좋아. 극장 매표대 누나가 짱구 가면 쓰고 자꾸 <짱구는 못말려> 표 사라는 걸 내가 <써니> 표로 3장 달라고 했어. 내 거랑 엄마 거랑 아빠 거. 12세 관람가라서 나는 원래 못 보는 건데 내가 좀 조숙해야 말이지.

그래서 영화는 어땠냐고? 엄마랑 아빠는 완전 좋아 죽더라고. 특히 엄마는 자기 이야기라나 뭐라나. 그러니 내가 재미있게 봤겠어? 공주 같이 예쁜 누나들은 몇 명 없던데 왜 칠공주라고 부르는 거야? 게다가 엄마 고등학교 때 패션은 왜 이렇게 촌스럽데, 아이폰이랑 아이패드 같은 건 한 개도 안 나와. 정말 어른들만 이해할 수 있는 오묘한 세계이던 걸. 이런 게 무슨 12세 관람가야, 나한테는 성인용이더라고. 자꾸 애들 영화랑 어른 영화랑 나눠 버리니까 가족끼리 서먹해지는 거라고. 그래서 이번 어린이날은 나 기분 완전 안 좋았어. 영화 좀 아는 영키인 내가 볼 때 말이야, 우리 나라 영화계 문제는 바로 이거야.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전체 관람가의 한국 영화가 없다는 거. <짱구는 못 말려>처럼 애들만 볼 수 있는 전체 관람가 영화 말고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애, 어른 다 재밌게 볼 수 있는 전체 관람가 영화 말이야.

작년에 울 영화 시장 점유율이 46.7%였데. 그니까 작년에 영화 본 사람 중에 두 명 중 한 명은 한국 영화를 본 거야. 올해도 4월까지 한국 영화 점유율이 52.6%래.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하면 무려 18.5%나 증가한 수치라고 하니 정말 한국 영화 짱 먹어야 할 것 같아. 왜 아니겠어. 울 아빠 말로는 한 15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영화는 비디오로나 보는 거였다는데. 음, 나는 비디오가 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한국 영화가 엄청 발전했다는 얘기로 들렸어. 근데 엄마랑 아빠랑 같이 볼만한 영화는 올해도 몇 개 없는 거야. 그나마 전체 관람가라고 개봉했던 영화들도 스펙이 완전 허접이지 뭐야.

갈갈이 패밀리 나온 <동자 대소동>, 달인 김병만 아저씨 나온 <서유기 리턴즈> 지금 장난해? 잘 나가는 코미디언 데려다 놓고 적당히 몸으로 때우면 우리가 모를 줄 알고? 영키가 몇 시간 앉아서 거저 득템하는 게임 아이템이 아니라고. 이런 병맛나는 영화들 빼고 올해 전체 관람가로 나온 울나라 영화가 몇 편인줄 알아? 놀라지 말어, 1월에 개봉한 <글러브>하고 3월에 개봉한 <굿바이, 평양>, 그리고 4월에 개봉한 <바보야> 딱 3편이야. 이 글 읽는 아찌, 아줌마 독자들은 몰랐지? 모르는 것도 당연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영화 언론이나 프로그램은 없으니까. 영화 줄거리 미리 밝혀서 조회수 높이는 것만 중요하지 우리 같은 애들 문제 따위에 관심이라도 갖겠어, 정말 미워.

그러면서 꼰대들은 우리한테 한국 사람이 울 문화에는 관심 없고 외국 것만 좋아한다고 막 뭐라는 거 있지. 기도 안 차서 말이야. 생긴 것만 한국 사람이지 하는 짓은 외국인이래. 대체 우리가 볼 만한, 들을 만한 영화를, 문화를 만들어줬어야 말이지. 그래서 내가 올해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재밌게 본 한국 영화는 딱 한 편 밖에 없어. <글러브> 말야. 말도 못하는 아이들이 완전 열심히 야구 하는 거 보니까 막 눈물이 나오고 앞으로 뭐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뭐야. 엄마랑 아빠랑은 내가 너무 기특한 생각을 한다고 뽀로로 스티커까지 사줬다. 우리 엄마, 아빠 짱이지.  <굿바이, 평양>이랑 <바보야>는 좀 그래서 안 봤어. 평양에 사는 애들이랑 고(故)김수환 추기경 할아버지 이야기는 나랑은 정서가 잘 안 맞더라고.

이러니 우리 가족이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는 외국 영화가 더 많다. 외국 영화 중에 가족끼리 볼 수 있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특히 <노미오와 줄리엣>이나 <랭고>나 <메가마인드> 같은 애니메이션은 우리 엄마, 아빠도 완전 집중해서 본다. 한 개도 안 유치하다고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작년엔 나 참 <토이스토리3> 봐야 한다고 나를 얼마나 들볶던지 누가 어린이고 아이인지 분간이 안 되더라니까. 굳이 애니메이션 아니더라도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이나 <걸리버 여행기> 같은 실사 영화도 같이 봐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그래서 난 외국에 나가도 하나 안 꿀릴 자신 있다. 걔네들이 본 영화 나도 다 봤는데 할 말이 오죽 많겠어. 영화 보면서 익힌 영어도 시험해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러니까 우리 친구들끼리 만나면 한국 영화보다 외국 영화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근데 이게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야. 작년 흥행 순위 10위 안에 든 영화는 <아바타>랑 <인셉션>이랑 <아이언맨2> 빼면 우와, 무려 7편이 한국 영화이었어. 하지만 전체 관람가 한국 영화는 에게, 단 한 편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할리우드는 어때, ‘꿈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디즈니가 픽사애니메이션과 손잡고 전문적으로 전체 관람가의 가족 영화를 만들고 있는 건 이제 상식이잖아. 다른 미국 영화사에서도 디즈니 독주 막으려고 전체 관람가 영화를 주기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더라고. 그뿐인가, 미국 역대 박스 오피스 순위 10위권에 있는 영화 중에 <토이스토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리 포터> <스타워즈>는 나이에 상관없이 가족끼리 볼 수 있는 영화들이다. 천만 관객을 넘은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등 최소 12세 이상 관람가인 우리 영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 프랑스는 또 어떤지 알아? 프랑스 정부가 아예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의무적으로 영화 수업을 포함시켰데. 그래서 <400번의 구타>와 같은 자국의 성장 영화를 교재로 삼아서 자기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길러줄 뿐 아니라 예술적 안목까지 넓혀 주고 있다지 뭐야.

아찌, 아줌마들! 내가 쓴 글 보니까 우리한테 얼마나 무심했는지 가슴으로 막 느껴지지. 게다가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전체 관람가 영화 잘 만 이용하면 완전 대박 칠 수 있다. 전체 관람가 영화 시장을 너무 우습게 보는데 <스타워즈> 시리즈가 30년 넘게 한결 같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전체 관람가 영화라서 그래. <스타워즈> 맨 처음에 개봉했을 때 우리 또래 나이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결혼하고 애 낳아서 자식들하고 같이 <스타워즈> 속편을 보러 극장을 함께 가잖아. 그렇게 창출되는 시장이 좀 크겠어. 그러니까 충무로에 있는 영화 만드는 아찌, 아줌마들. 제발 한국의 어린이들도 엄마, 아빠와 함께 영화를 즐기고 싶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년 어린이날에는 기대해도 좋겠지?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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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11년 5월호

2 thoughts on “가족과 영화보고 싶어요”

  1. 수표대가 아니라 매표대 아닌가요?!
    괜한 지적해서 죄송해요, 헤헤, 사실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남웅님이니깐, 남웅님만이 쓸 수 있는 글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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