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란 무엇인가?


지금 갑자기 고전(classic)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에 굉장히 뜬금없어 하시는 독자들이 많을 줄로 안다. 충분히 이해한다. 익숙하지가 않아서다. 필자가 이 기사를 쓰게 된 이유는 바로 익숙하지 않았던 방식에 작은 흠집이라도 내어 고전에 조금이나마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해볼까 해서다.

1895년 12월,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기차의 도착>이라는 짧은 릴을 상영한 이후, 영화는 영화사(史)라는 시간의 축적물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100년이 지난 지금 현존하는 최고의 오락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지나간 작품들을 고전이라 칭함으로써 현재의 영화와 구분을 짓는다.

하지만 우리가 고전을 이해하는 방식은 영화를 연예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던 헐리웃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처럼 ‘영화도서관’ 시네마테크 및 DVD와 같은 영화자료의 보고가 정착되지 않았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소수의 평론가와 기자, 매니아에 의해 독점(?) 된 고전이 대중에게 소개되는 방식은 대중성이 아닌 철저히 작품성 위주였던 것이다.

그런 풍토 속에서 영화를 접해 온 우리는 고전영화라고 하면 지레 고리타분한 것 아니면 재미없는 영화 또는 어려운 영화로 단정 지어버린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는 국내의 실정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편견이라는 사실은 금세 드러난다.

작품은 실망스럽지만 팀 버튼의 <혹성탈출>과 같이 고전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에 다수의 관객이 몰려드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서스피션>, 구로자와 아끼라의 <라쇼몽> 등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가 현재 리메이크를 준비 중에 있다는 사실은. 외국의 경우라 와닿지 않는가. 그럼 이는 어떤가.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의 문어체적 말투는 박찬욱 감독이 김기영 감독에게 바치는 오마쥬였다는 사실. 그뿐 아니다. <킬빌>보다 먼저 컴필레이션 영화를 완성했던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리>같은 경우, 6~70년대 한국액션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기획자체가 불가능했던 영화였다.

무슨 의미인지 이제 이해가 가시는지, 고전들이 현재의 영화에 계속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위의 사례들은 적어도 이들 고전이 지금의 영화에 버금가는 혹은 뛰어넘는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기억’의 범위 즉, 고전은 언제의 영화를 총칭하는 것인가. 미국의 ‘국립 영화 보존 위원회 National Film Preservation Board’는 1989년부터 매년 고전 영화 25편을 선정, 보존 및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선정기준으로 두 가지 조항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조항이 고전의 범위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될 듯하다.

국립 영화 보존 위원회에 제시한 고전에 대한 두가지 조항 중 하나는, 발표 된지 10년 이상이 지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혹시 < Madman of Mandoras >라는 영화를 보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제목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라 사료가 되는데 < Madman of Mandoras >는 1963년에 발표된 SF영화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자국민 중에서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의 조악한 영화로 IMDB에서는 최악의 영화 100 리스트에 4위를 마크하고 있을 정도다. 여기서 또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 Madman of Mandoras >와 같이 자국에서도 존재가치가 미진할 뿐더러 퀄러티마저 떨어지는 영화를 그저 10년 더 이전의 과거에 만들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전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없다.

결국, 10년 그 이전에 발표된 영화일 경우 고전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 조항은 필름상태에 따른 편의상 문제이지 정확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러한 모순에 대한 혐의를 잠재우고 고전영화에 대한 더욱 정확한 의미의 유추를 가능케하는 두 번째 조항이 제시된다.

‘문화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1994년에 발표된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은 이제 10년 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시간의 재배열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으로 그해의 칸느 영화제 금장상을 수상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많은 영화들의 모범사례가 되어 이제껏 인용, 패러디, 변형되고 있는 중이다. 이는 미국의 국립 보존 영화 위원회가 두 번째로 제시한 조항을 100% 만족시키고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반영’이란 측면에서 영화가 후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이는 10년이라는 숙성(?) 시기만 만족하면 고전으로 성립되는 것이다. 자, 이제 고전이라는 개념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와닿는가. 그렇다면 독자 여러분은 고전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럼 이제 앞에서 잠깐 밝혔던 고전이 현재의 영화에 미치는 기능에 대해 조금만 더 진도를 나가보자.

사람들은 거울을 이용,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봄으로써 그것에 반사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흐트러진 품세를 추스른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현재영화와 고전영화에 대한 관계는 바로 사람과 거울의 관계와 같다.

고전은 거울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아니 역할을 한다. 그래서 현재 영화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단언컨대 현존하는 모든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고전영화를 봄으로써 창조한다. 그뿐인가, 자신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의 보완을 위한 최우선 해결책으로 고전영화를 참조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러한 ‘수용’과 ‘반성’의 과정을 거친 최근 영화를 무수히 많이 기억하고 있다.

헐리웃 영화를 예로 들어볼까.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 홍콩의 쇼브라더스 작품들을 위시하여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 이탈리아의 웨스턴 영화 등등 이 영화는 순전히 감독의 취향에 따른 고전의 인용으로만 완성된 영화다. 또 다른 사례 하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대해서 감독 피터 잭슨은 자신의 영화가 1933년에 발표된 <킹콩>과 1963년 작 <제이슨 앤 아거노츠>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차기작은 <킹콩>의 리메이크라지 않나.

한편 영화의 신(god),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는 고전에 대해 언급하길, ‘과거는 지나간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영화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영화계는 ‘수용’의 측면에서나 ‘반성’적인 축면에서 고전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점유율이 10%를 겨우 넘기는 상황에서 뒤를 돌아볼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영화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 지금은, 그리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나마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여유가 생긴 후, 고다르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이미 언급한 <올드보이>와 <다찌마와리>는 차치하더라도 춘사 나운규의 1926년 작 <아리랑>이 지난해 이두용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좋은 평가를 받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충무로의 믿을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제목은 사정상 밝힐 수는 없지만 2~3편의 리메이크가 현재 기획중에 있고 성사여부의 가능성 역시 매우 높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국내영화계의 뜻있는 인사들은 폭발적인 우리 영화의 호응에 힘입어 한국영화의 복원작업에 점차 진행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내실있는 움직임은 이 나라에서 고전영화가 갖는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고전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아직도 고전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시는가. 이제 그런 걱정은 접어두셔도 좋을 듯 하다. 지면관계상 많은 영화를 소개시켜드리지는 못했지만 고전에는 덩치만 큰 요즘의 영화보다 재미있는 작품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들 고전작품을 리메이크하지 못해서 안달이겠는가.

또한 고전영화를 본다는 것은 취향의 고급화를 대변하는 것은 물론이요 광적인 영화팬만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가 절대 아니다. 고전영화를 본다는 것은 우리의 학창시절 혹은 연애시절의 풋풋한 순간을 떠올리듯 기억의 좋았던 한 부분을 현재에 다시 재생함을 의미한다.

자, 이래도 고전을 멀리 할 것인가!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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