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브로닷컴

사이트를 개설하였습니다. 남브로닷컴(www.nambro.com)입니다. 아직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았지만, 보시는 데 큰 불편함은 없을 거예요. 기존의 허남웅닷컴(www.hernamwoong.com)도 운영을 합니다만, 업데이트는 이제 중단하고 기존 자료 보관용으로만 사용할 생각입니다.

그동안 허남웅닷컴을 찾아주셨던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비록 이곳에서는 새로운 글과 그림을 볼 수 없겠지만, 남브로닷컴에서 더 나은 환경으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는 남브로닷컴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 ‘죽음의 섬’에서 탄생한 에이리언

개인적으로 ‘에이리언’에 대한 애정이 크다. 변태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에클레어처럼 날렵한 머리통의 선 하며, 속의 내장과 뼈가 훤히 비추는 스키니 몸매 하며, 캬악~ 소리와 함께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이는 살상 능력 하며,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쓰다 보니 변태 맞네!) 요컨대, 영화 역사상 최고의 크리쳐(creature)라고 생각한다.

에이리언의 창조주(?)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H.R. 기거(Hans Rudolf “Ruedi” Giger)다. 리들리 스콧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1977)이 한창 인기를 끌던 당시 이에 대항해 우주 배경의 공포물을 기획했다. 무시무시한 크리쳐를 염두에 두던 중 화집 ‘네크로노미콘’에 나오는 괴물 그림을 보고 매료되어 H. R. 기거에게 에이리언 디자인을 맡겼다.

그렇게 탄생한 에이리언에 대한 리들리 스콧의 애정은 남다르다. <에이리언>(1979)을 완성한 후 <프로메테우스>(2012)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통해 에이리언 영화에 다시 손을 댄 건 그런 이유다. <에이리언 vs. 프로데터>(2004)와 같은 멍청한 작품에서 에이리언이 재능 낭비(?)하는 것에 분노한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이 마땅히 지녀야 할 크리쳐의 품격을 복원하고 싶었다.

그처럼 본격 에이리언 소환물이라 할 만한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의 영화다. 우주선 커버넌트 호는 인간 배아를 싣고 식민지로 적합한 행성을 향해 나아간다. 목적지로 향하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신호를 감지한 커버넌트 호는 계획을 변경해 그곳으로 향한다. 낭만의 신세계를 꿈꾼 것도 잠시, 커버넌트 호를 기다리는 건 미지의 생명체, 에이리언이다.

<에이리언: 커버넌트> 곳곳에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과 연결되는 복선을 여러 군데서 감지할 수 있다. <에이리언>의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일하던 ’웨일랜드’의 회장 피터 웨일랜드(가이 피어스)가 A.I.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을 완성한 후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커버넌트 호가 착륙한 미지의 행성에 엔지니어의 우주선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등이 그렇다.

사실 그런 디테일한 설정보다 내가 주목한 건 <에이리언: 커버넌트>와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을 관통하는 특유의 분위기이었다. 불안감이 공기처럼 떠도는 어둠의 배경,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지의 행성, 이곳에 발을 들였다가 한둘씩 죽어 나가는 인간들.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죽음의 섬’이 아닐까.

아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이라는 화가가 있다. 스위스 바젤 출신으로 반인반수 소재나 종말론적 색채가 강한 작품들을 주로 그려왔다.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은 <죽음의 섬>(1880)이다. 죽은 남편의 기일에 맞춰 추모 그림이 필요하다는 의뢰를 받고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추모의 분위기라고 하기에 <죽음의 섬>은 뭔가 기묘한 느낌이다.

바다는 적막할 정도로 잔잔하고 그 위로 바위 섬 두 개가 양쪽으로 불쑥 솟아 있다. 수면 위로 달빛이 어른거리지만, 섬 깊숙이 자리 잡은 삼나무가 음산한 기운을 더한다. 이곳은 어딜까? 힌트가 있다. 섬의 입구를 향해 배 한 척이 다가가고 있다. 뱃머리에 하얀 천으로 감싼 관이 실려 있고 그 뒤에서 역시나 하얀 옷을 입은 사공이 으스스하게 서 있다. 이 섬은 묘지인가? 그렇다면 하얀 옷을 입은 이는 사신(死神)?

이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건 없다. 원래 이 그림의 제목은 <추모를 위한 그림>이었다. 후에 <죽음의 섬>으로 바뀌었는데 후자의 제목이 더욱 어울리는 건 죽음의 기운이라고 할 만한 어둠이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까닭이다. 이 그림으로 아놀트 뵈클린이 명성을 얻으면서 <죽음의 섬>은 후대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중 한 명이 바로 H.R. 기거다.

H.R. 기거는 <죽음의 섬>을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만의 해석을 덧씌워 뵈클린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 <뵈글린에 대한 경의>(1977)를 발표했다. 뵈클린의 <죽음의 섬>이 로맨틱(?)하게 보일 정도로 오싹하게 그린 것이 특징이다. 바다 위의 배와 사공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섬에만 집중한 모습이 마치 에이리언의 아가리를 연상시킨다. 심연으로 통할 것만 같은 섬의 입구에서는 또 하나의 에이리언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아 공포가 배가된다.

리들리 스콧이 아놀트 뵈클린과 H.R. 기거의 관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죽음의 섬>이 연상되는, 양쪽으로 뿔이 솟은 듯한 형태의 엔지니어, 즉 스페이스 자키의 우주선을 보고 있으면 아주 모르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게다가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인간의 몸을 뚫고 나온 에이리언은 알비노처럼 새하얀 모습을 하고 있는데(인간에 가까운 형태의 이 에이리언은 ‘네오 모프’라고 불린다!) 이는 <죽음의 섬>의 사신을 떠올리게 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첫 장면, 데이빗은 자신을 창조한 아버지 피터 웨일랜드에게 당신은, 그러니까, 인간은 누가 창조했습니까, 라고 묻는다. 리들리 스콧은 이 영화를 두고 “누가, 왜 에이리언을 설계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창조는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죽음 위에서 창조가 이뤄진다. 그 죽음의 대상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인간의 죽음을 발판으로 에이리언은 탄생한다.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뚫고 나오는 에이리언의 설정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커버넌트 호의 선원들에게 이곳 미지의 행성은 낭만의 신세계는커녕 ‘죽음의 섬’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 하나. 에이리언의 창조주는 누구인가? H.R. 기거라고? 에이, 농담하지 말고.

에이리언의 창조주는 바이런의 시로 알려졌지만, 실은 친구인 셸리가 쓴 <오지만디아스>의 시 한 구절을 읊는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로다. 강대하다는 자들아,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My name is Ozymandias, king of kings.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그리고 커버넌트 호의 최후의 생존자가 될 에이리언의 창조주가 마지막으로 커버넌트 호에 오르면 리하르트 바그너의 <신들의 발할라 입성>이 흐른다. 아놀트 뵈클린부터 바이런과 셸리와 리하르트 바그너까지,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품격을 지닌 크리쳐물이다.

 

예스 24
‘허남웅의 영화경’
(2017.5.11)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나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

“내가 너의 아버지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그 유명한 대사 “I’m your father”를 즉각적으로 떠올리실 테지만, 이 지면에서 다룰 내용은 이 장르와는 좀 다르다. 베일에 싸인 아버지의 정체 때문에 고뇌하거나 고민하는 슈퍼히어로에 관해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스타워즈> 시리즈도 슈퍼히어로물이기는 하다.)

이 주제를 떠올린 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이하 ‘<가오갤 2>’)를 보면서다. 확실히 마블과 DC로 대표되는 슈퍼히어로물은 다양한 슈퍼히어로들로 개별성을 뽐내지만, 결과적으로 ‘아빠 찾아 삼만리’ 테마의 변주다.

<가오갤 2>는 좀 다를지 싶었다. 주로 지구를 활동 무대로 활약하는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가오갤’ 멤버들은 우주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일 뿐 아니라 판타지 세계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멤버 중 리더인 피터 제이슨 퀼스/스타로드(크리스 프랫)는 ‘워크맨’으로 주목 같은 1980년대 팝 넘버를 애청하며 미래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과거를 끌어안는다.

물론, 피터가 애지중지하는 카세트테이프가 어머니의 유산이라는 사실이 복선이기는 했다. 그렇다면 피터 아버지의 생사는? 이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내용이 <가오갤 2>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나 달라, 피터는 절체절명의 순간, 아버지와 상봉하게 된다. “I’m your dad, Peter” 근데 이 아버지의 정체가 좀 황당하다. ‘에고’(Ego)라는 이름의 ‘행성’(Planet)이다.

아시다시피, 피터는 외계 출신의 아버지와 지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계에서 온 슈퍼맨이나 지구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슈퍼히어로와는 좀 다른 출생의 비밀 아닌 비밀이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그냥 외계의 존재도 아니고 행성이라니!

파격은 여기까지. 피터의 아버지는 알고 보니 사람 모양의 에고를 앞세워 은하계의 곳곳에 씨(?)를 뿌려댄 전력이 있다. 그리고 자신, 즉 행성을 이어받을 후계자를 하나하나 찾아 나서 적임자를 찾은 게 바로 피터다. 그러는 동안 고아 신세가 된 피터를 데려다 키운 건 다름 아닌 욘두(마이클 루커)이었다. 그러니까, 피터에게는 아버지가 두 명이다. 생물학적 아버지 에고와 실질적인 아버지 욘두다.

두 명의 아버지를 가진 슈퍼히어로는 피터 말고도 또 있다. 외계에서 온 슈퍼맨/클라크에게는 크립톤 행성에서 그를 낳아준 아버지 조엘과 지구에서 그를 기른 아버지 조너선 켄트가 있다. 배트맨은 또 어떤가. 조실부모한 브루스 웨인은 웨인 가문의 집사이자 대리 아버지인 알프레드의 보호 속에 성장할 수 있었다. 굳이 두 명의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은 실종된 부모 대신 삼촌 집에서 사는 처지고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은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가 버키에 의해 살해된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서야 경악한다.

많은 슈퍼히어로가 출생 배경과 관련해 혼란을 느끼는 설정은 미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슈퍼히어로물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최전선에 선 오락물이면서 미국 역사의 트라우마를 읽을 수 있는 좋은 텍스트다. 세계 평화를 운운하며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물을 빌려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다.

그래서 이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위험한 총을 손에 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연상시킨다. 그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정체성은 자신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한 주인공의 출생 배경과 연결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미국은 개척정신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장했다. 하지만 말이 신대륙이지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을 몰살하고 그 위에 제국(?)을 건설한 미국의 역사는 피와 폭력으로 출발한 셈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슈퍼히어로는 개척의 아버지와 폭력의 아버지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낮에는 평범한 인간으로, 밤에는 범상치 않은 가면을 쓰고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슈퍼히어로의 운명. 좀 다를까 싶었던 <가오갤 2> 또한, 질기디질긴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 몸은 미래 배경에 존재하지만, 정신은 1980년대에 묶여 있는 피터 제이슨 퀼스/스타로드는 그렇게 미국 역사가 품은 기원의 양면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VOGUE KOREA
(2017.5.4)

<보안관> 잊힌 가치를 옹호하는 우리 시대의 희귀종

김형주 감독은 1980년대 생이다. 이 세대는 영화의 세례를 담뿍 받고 영화계에 들어온 경우가 많다. 특히 남자의 경우, 홍콩 액션물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보안관>은 김형주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영웅본색>(1986)을 부산의 기장을 배경 삼아 ‘아재’들이 출연하는 로컬수사극으로 개비했다. 리메이크는 무슨, 기본적으로 코미디라는 얘기다.

<보안관>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중년의 사내들은 <영웅본색>의 주윤발이나 장국영이나 적룡처럼 멋있지도, 비장하지도, 폼나지도 않는다. 멋있으려 해도 줄어드는 머리숱이 걸리고, 비장 하려 해도 아내와 딸 눈치 보기 바쁘고, 뭐, 동네를 시끄럽게 하는 대장질 정도에 그치니 무게 잡기도 영 민망하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자신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과시할 ‘한 건’이 절실하다. 마침 그런 건수가 동네에 터진다.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가 종진(조진웅)이 비치타운을 건설하겠다며 기장을 방문한다. 평화로운 동네에 외부인이 별안간 내려오니 토박이 대호(이성민)는 심기가 영 불편하다. 내 이놈을, 하는 순간, 종진이 대호에게 깍듯이 인사를 해온다. 둘에게는 사연이 있다. 대호가 대전에서 형사로 재직하던 5년 전, 영문도 모른 채 마약 운반책을 맡던 종진을 체포한 적이 있다. 생활고를 호소하는 종진이 안쓰러워 대호는 형을 적게 받도록 힘을 써줬다. 이를 잊지 않고 있던 종진은 대호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극진히 모신다.

대호는 그런 대접이 싫지 않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종진의 출현과 때를 같이 해 인근 해운대에서 마약이 돌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대호는 종진이 연루됐던 그 사건으로 동료 형사를 잃으면서 낙향한 처지다. 여전히 형사의 직감을 잃지 않고 있던 대호는 종진을 의심하고, 처남 덕만(김성균)을 조수로 삼아 뒤를 캐기 시작한다. 그런데 웬걸, 캐면 캘수록 나오는 대호의 미담. 돈 많고 인심 넘치는 종진을 의심할수록 동네 사람들은 대호를 ‘호로자슥’ 취급한다. 대호 왈, “두고 봐라, 이래 당하고만 있겠나. 게임은 인자 시작이다!”

성민이 궁지에 몰리는 설정은 우선적으로 코미디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로컬(local)극으로 대변되는 우리네 현실이 반영된 이유가 크다. 총격전이 눈에 띄게 주목받는 홍콩 누아르의 지배적인 정서는 다름 아닌 ‘의리’다. 관련해 <영웅본색>의 마지막 장면은 유명하다. 부하 아성(이자웅)에게 배신당한 자호(적룡)와 친형 아성이 여전히 범죄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고 생각해 그를 체포하러 온 경찰 출신의 동생 아걸(장국영)이 위기에 직면한다. 바로 그때, 마크(주윤발)는 이들을 향한 우정, 아니 ‘으리’ 하나로 위험천만한 총격전에 가세한다. 이 장면을 보며 <보안관>의 성민이 덕만에게 하는 말. “너도 내가 위험에 빠지면 저렇게 구해줄 수 있냐?”

홍콩 누아르가 수많은 한국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건 이 장르의 의리가 앞뒤 재지 않는 순수한 성질이었기 때문이다. 의리 따위 돈 앞에서 무용지물인 한국 사회에서 홍콩 누아르의 가치는 먼 나라 이웃 나라의 판타지 혹은 과거 호시절을 말할 때 떠올리는 향수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영웅본색>을 인생의 영화로 삼아 이를 현실에까지 적용하고 싶은 대호는 시대착오적인 인물인 셈이다. 오히려 그럭저럭 생활을 이어가는 기장 주민들에게 호감을 사는 건 비치타운 건설로 큰돈을 만질 수 있게 해주는 종진이다. 주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대호는 폼만 잡았지 영양가가 없는 기라.”

종진을 향한 대호의 적대감은 결과적으로 외로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성냥개비 질끈 입에 물고 희미해가는 남성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면서 몸에 맞지 않는 코트 자락 바닥에 쓸어가며 사수하고 싶은 의리를 향한 애달픈 순애보다. 대호가 보여주는 불굴의 오지랖은 짠내나는 정서가 바탕인 기장이라는 고장과 더없이 어울린다. 이제 어렵게 쥐어짜야 겨우 한 방울 얻을 수 있는 귀한 것. 그래서 ‘으~리~’ 코미디의 소재로 소비되는 순도 100%의 의리는 잊혀가는, 아니 잊힌 가치다.

이 영화가 제목으로 삼은 ‘보안관’은 악당에 맞서 홀로 평화로운 마을을 지키는 서부극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한국에 존재한 적도, 존재하지도 않는 보안관 행세를 하는 대호의 처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대호를 향한 처남 덕만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해서 “이기 다 매형이 자초한 깁니다. 지금 우리 둘만 왕따 된 거 모릅니까.” 그렇게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거나 말거나, 종진은 오늘도 한동안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영웅의 본색을 깨우느라 여념이 없다.

나도 한때 <영웅본색> <첩혈쌍웅>(1989) 등에 열광한 적이 있었다. ‘싸나이’의 우정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 우정이란 게 돈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실현 불가능한 가치가 되었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나마 판타지로 구현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홍콩 누아르와 같은 ‘싸나이’ 영화를 부러 외면하며 살아왔다. 이제 희귀종에 가까운 <보안관>의 대호 같은 이를 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안쓰럽게 느껴진다. 한편으로, 과거에 열광했던 가치를 여전히 옹호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 묘한 감동에 빠진다.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이 대호 같은 이들로 바뀔 리 만무하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얼마간은 아름답게 느끼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가치가 있다. 그 때문에 우스갯거리가 되거나 말거나, “걱정도 팔잡니다. 우리 대호 행님, 어디다 떨궈놔도 잘 묵고 잘 살깁니다”

 

예스24
‘허남웅의 영화경’
(2017.4.27)

<언노운 걸> 타인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

‘형제’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감독들이 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의 루소 형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코언 형제, <매트릭스>(1999)의 워쇼스키 형제, 엇! 이들은 여자로 성 확정 수술을 받았으니 이제는 자매이지만, 어쨌든. 그리고 벨기에 출신의 다르덴 형제가 있다.

다르덴 형제는 누구?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형제의 <언노운 걸>(2016, 국내 개봉 2017년 5월 3일)은 201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작품이다. 다르덴 형제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의 단골손님(?)으로 유명하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칸영화제 초청을 받아 <언노운걸>을 포함해 7편의 영화가 연속해서 경쟁부문에 포함되었다. 칸영화제에서의 수상 경력은 더욱 화려하다.

<로제타>(1999)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아들>(2002)로 남우주연상을, <더 차일드>(2005)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로나의 침묵>(2008)으로 각본상을, <자전거 탄 소년>(2011)으로 심사위원 대상(박찬욱 감독이 2004년 <올드보이>로 받았던 바로 그 상!)을, <내일을 위한 시간>(2014)으로 에큐메니컬 상을 받는 등 세계 최고의 영화제로 군림하는 칸에서만 무려 7개의 상을 받은 명실상부 유럽, 아니 전 세계 최고의 영화감독이다.

대체 다르덴 형제가 어떤 영화를 만들기에 발표하는 작품마다 칸영화제가 주목하는 걸까.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받은 애큐메니컬 상(Prize of the Ecumenical Jury)은 인간 존재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것은 물론 예술적 성취까지 이뤄야 받을 수 있다. 그렇다, 다르덴 형제는 이 사회의 가장 최하층에 있는 인물에 주목하고 그들의 삶에 눈높이를 맞춘 카메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언노운 걸>의 제니(아델 에넬)는 입원 중인 원장 의사를 대신해 병원 업무를 맡고 있는 의사다. 인턴의 일 처리가 맘에 들지 않아 충고를 하던 중 벨이 울리지만, 제니는 업무가 끝났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다음날 병원으로 경찰들이 찾아온다. 인근에서 ‘신원미상’(The Unknown Girl)의 소녀 변사체가 발견되었는데 마지막 행적이 이 병원이라는 것. 자초지종을 살피던 중 제니는 어제 병원 벨 소리의 정체가 소녀이었음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된 제니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소녀가 살해된 것만 같아 마음이 괴롭다.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대신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녀의 이름을 찾기로 한다. 소녀가 최소한 익명으로 매장되기를 바라지 않는 제니는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주변을 수소문한 끝에 소녀가 어떤 이유에서 성매매를 하던 중이었고 그 대상자 중 한 명이 제니가 치료하는 환자와 연관이 있다는 걸 발견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엄밀히 말해 제니는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니다. 몰려오는 환자를 치료하느라 업무에 심신이 지쳐 안정을 취할 목적으로 정해진 진료 시간을 지켰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제니가 신원미상 소녀의 죽음에 죄의식을 느끼는 건 사회적인 약속의 범위가 포함하지 못하는 사각지대, 즉 마음의 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제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사건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괴로운 거겠죠.”이다.

이 사회에는 단순히 업무 시간을 지키는 것 이상의 가치가 요구될 때가 있다. 병원이라는 곳이 그렇다. 병원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심각한 병을 예방하고 그럼으로써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의 공간이다. 인간은 약한 존재여서 병원처럼 치료와 치유의 공간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다. 약자는 더 그렇다. <언노운 걸>의 죽은 그녀는 여자이고, 아이이고, 흑인이고, 난민이다. 도움이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들에게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도움이 절실하다.

의사는 그 누구보다 타인의 고통에 먼저 반응하고 동참해야 한다. 제니의 죄의식을 추동하는 건 이 부분이다. 그리고 이는 다르덴 형제 영화의 근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등장했던 인물의 면면을 보면, 생계 곤란에 시달려 아이를 팔아야 하는 부부(<더 차일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온 이주민(<로나의 침묵>), 아빠를 찾아 보육원을 탈출한 아이(<자전거 탄 소년>), 동료의 동의가 있어야 회사에 복직할 수 있는 노동자(<내일을 위한 시간>) 등 계급이라는 표현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의 사정을 외면한다고 죄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제니가 벨 소리를 외면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다. 굳이 죄의식이 아니더라도 연대의식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처하게 될 최악의 상황을, 또는, 동일한 고통의 반복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다르덴 형제가 영화를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래서 다르덴 형제 영화의 카메라는 극 중 인물의 곁에 바싹 달라붙어 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게 하여 종국에 세상을 변화시킬 방법에 대해 고민하도록 한다.

그러니까,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일종의 <언노운 걸>의 도움이 절실한 소녀가 누른 ‘벨 소리’이다. 이에 대해 문을 열어줄지 말지를 판단하는 제니의 위치는 곧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상황인 셈이다. 실제로 생활이 너무 곤궁해 일자리 찾기에 전전하는 소녀를 다룬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는 개봉 후 벨기에 정부가 청년 고용을 의무화하고 십 대 노동자를 보호하는 ‘로제타 법’을 제정하도록 했다.

세상이 아무리 고도화되고 조직화되고 그 결과, 각박해지고 있더라도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이유로 우리 모두에게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책임감은 타인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타인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 또한, 주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간다는 의미다. 제니는 소녀의 죽음에 죄의식을 느끼고 최소한 그 소녀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걸 세상에 확인시켜주려고 이름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타인의 고통은 익명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세상은 병들었다. 병든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건 관심이라는 책임감이다. 다르덴 형제는 그와 같은 책임감에서 영화를 만들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형제, 아니 감독을 통틀어 최고의 연출자가 되었다.

 

KDI 나라경제
2017년 5월호

<랜드 오브 마인> 가해의 역사를 인정한다는 것

4월 극장가는 전통적으로 비수기다. 최근 몇 년 들어 이 시기에 극장을 찾는 사람은 더 줄었다.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아니다. 날이 좋아지면서 어두컴컴한 극장을 기피(?)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다보니 벚꽃놀이 같은 나들이를 선호하고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하면서 야구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4월의 비수기를 극복할 극장가의 대안은? 대중성 있는 작품은 잠시 개봉을 미뤄두고 규모가 크지 않거나 빅스타가 출연하지 않지만, 작품성이 있는 영화로 틈새시장을 노린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이 코너의 제목처럼 정말 ‘보물찾기’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데 <랜드 오브 마인>(2016)이 그렇다.

<랜드 오브 마인>은 덴마크 출신의 마틴 잔디블리엣 감독 작품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아카데미의 외국어 영화상 부문의 후보에 오른 작품들은 출품 국가의 정체성을 살리는 가운데 이를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해 좋은 점수를 받은 경우다.

덴마크의 서해안 해변을 배경으로 하는 <랜드 오브 마인>은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바로 그 시기를 다룬다. 5년 간 독일의 강점(强占) 하에 있다가 해방된 덴마크는 그에 대한 보복 조치를 감행한다. 포로로 잡고 있던 독일의 소년병 2,600명 정도를 독일군이 덴마크의 해변에 매설해 놓았던 약 200만 개의 지뢰 해체 작업에 투입한 것. 이 과정에서 많은 소년병이 목숨을 잃거나 신체에 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전쟁 포로를 극심한 노동이나 위험한 작업에 내모는 것을 금지했던 제네바 협약을 위배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희생자는 10대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평소 2차 세계 대전을 말할 때 독일을 가해의 원흉으로만 인식해왔던 내게 <랜드 오브 마인>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전쟁이란 단순히 가해와 피해의 도식으로 구분할 수 없는, 그 자체로 비극이란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와 같은 사실이 왜 이제야 알려진 걸까. 개봉 당시 <랜드 오브 마인>을 두고 덴마크에서는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영화보다는 이를 연출한 마틴 잔디블리엣 감독을 향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요지는 이렇다. 덴마크 입장에서 부끄러운 역사를 만천하에 공개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거다.

실제로 덴마크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지배를 받으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영국과 대척에 섰던 독일은 영국군이 덴마크의 서해안을 경로 삼아 독일 본토로 들어올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상당 수의 지뢰를 덴마크 서해안 지역의 해안에 매설했고 2010년대에 들어서야 이 지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다. 독일을 향한 덴마크인의 앙금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렇다고 독일 소년병을 향한 덴마크의 가해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독일군이 덴마크를 점령했던 5년의 세월보다 1945년 5월부터 10월까지 5개월 동안 진행된 지뢰 해체작업에서 더 많은 독일 소년병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런 사실들을 알리지 않고 무언으로 남겨둔 채 자신들의 피해 사실만 강조하는 덴마크에게 책임을 물어 마땅하다.

다만 <랜드 오브 마인>이 덴마크의 문제로만 소년병의 희생을 다뤘다면 보편성을 확보하기 힘들었을 터다. 이에 대해 마틴 잔디블리엣 감독은 가해의 전쟁 역사를 가리는 행위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이 영화는 바로 그와 같은 은폐의 시도들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의 아픈 역사를 통과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랜드 오브 마인>의 메시지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전선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했던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고 국가 차원이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이뤄졌다며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는 일본 아베 정권의 태도는 전쟁 가해의 역사를 가리는 대표적인 행위다. 그런 일본 정부에 항의는커녕 질질 끌려다닌 박근혜 정부의 졸속적인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다음 정부가 바로 잡아야 한다.

이처럼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바르게 세워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에 동의한다면 한국 또한 참전했던 전쟁에서의 가해한 역사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와 같은 후속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약 9천 명의 베트남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전해진다. 베트남에는 한국군의 잔익한 학살을 잊지 않기 위헤 세운 증오비도 알려진 것만 다섯 군데다.

일본이 한국에게 가한 만행도, 한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야만스러운 행동도 모두 가해의 역사다. 우리가 일본에게 일제강점기 당시의 역사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을 요구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베트남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에 합당한 배상 및 보상 절차를 진행해야만 한다. 일본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요구하면서 우리가 저지른 가해의 역사를 부러 외면하는 건 결코 올바른 행위가 아니다.

<랜드 오브 마인 Land of Mine>의 제목은 일차적으로 ‘지뢰가 묻힌 땅’을 의미한다. 중의적으로 ‘나의 땅’이라는 뜻을 포함한다. 나의 땅에서 발생한 비극의 책임을 따져묻는 것만큼이나 ‘남의 땅’에서 행한 사건사고의 책임을 지는 것도 중요하다. 역사 청산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덴마크 영화 <랜드 오브 마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실이다.

 

ARENA
2017년 5월호

올 여름 블록버스터 기대작 7

바야흐로 블록버스터 시즌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블록버스터의 공세는 5월부터 시작한다. 워낙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만들어지다 보니 개봉 시기가 앞당겨진 결과다. 그만큼 블록버스터 영화들끼리의 경쟁이 심하다는 의미다. 그중 놓치면 삼대가 후회할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 팬이라면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기대작 7편을 골랐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 감독 제임스 건 | 출연 크리스 프랫, 조 샐다나 등 | 개봉 5월 3일
로켓과 베이비 그루트가 신경전을 벌이는 내용의 예고편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의 매력에 빠진 팬이 많다. 또다시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 ‘가오갤’ 멤버 중 스타로드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출현에 전편의 최강 빌런 ‘타노스’를 능가하는 더 큰 위험에 봉착한다. 우주 전쟁이 배경이지만, 스타로드의 사랑스러움, 베이비 그루트의 귀여움, 로켓의 ‘츤데레’스러움이 볼거리인 작품이다. 미국에서의 첫 공개 후 1편보다 재미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에이리언: 커버넌트> 감독 리들리 스콧 |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캐서린 워터스턴 등 | 개봉 5월 9일
리들리 스콧은 H.R. 기거와 함께 창조했던 에이리언이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시리즈로 망가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에이리언은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 크리처였다. 그래서 인류의 기원을 찾는 탐사 여행을 다룬 <프로메테우스>에서 짧게나마 에이리언을 호출했고 마침내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발표했다. 미지의 행성으로부터 온 신호를 받고 출항한 ‘커버넌트’ 호가 에이리언을 비롯해 상상 초월의 위협적인 존재와 맞닥뜨리는 내용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감독 요아킴 뢰닝, 에스펜 잔드베르크 | 출연 조니 뎁, 하비에르 바르뎀 등  | 개봉 5월 중
이 시리즈 매력은 잭 스패로우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 5>의 예고편에서 주목한 이는 살라자르다. 그러니까, 이들을 각각 연기한 조니 뎁과 하비에르 바르뎀의 세기의 캐릭터 대결이란 얘기다. 잭 스패로우에 의해 부대가 전멸하고 목숨까지 잃은 살라자르는 복수심에 불타 바다의 학살자로 다시 태어난다. 해양 모험물 <콘-티키>로 능력을 인정받은 노르웨이 출신의 요아킴 뢰닝, 에스펜 잔드베르크가 이 시리즈의 영광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옥자> 감독 봉준호 | 출연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안서현 등 개봉 6월 중
동물? 괴수? ’옥자’의 정체를 두고 별의별 예측이 난무했다. 옥자는 비밀을 간직한 돼지다. 강원도 산골에서 어린 미자의 보호를 받다가 사라진다. 지역색 강한 설정이지만, <옥자>는 <설국열차>에 이은 봉준호의 두 번째 미국 영화다. 옥자가 바다 건너 먼 이국땅으로 건너갔다는 의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바로 거기에 이 영화의 재미가 있다. 넷플릭스로부터 600억원을 투자받고 최종편집권까지 얻었다고 하니 봉준호 영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원더우먼> 감독 패티 젠킨스 | 출연 갤 가돗, 크리스 파인 등 | 개봉 6월 중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망작 직전에서 구한 건 ‘원더우먼’이었다. 남자 슈퍼히어로만 넘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유일하게 믿을 건 이제 원더우먼이다. 아마존 왕국의 공주였던 다이애나는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와 원더우먼이 되었는가. <원더우먼>을 통해 걸크러쉬를 제대로 폭발시킬 패티 젠킨스 감독은 샤를리즈 테론을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으로 캐스팅했던 <몬스터>의 연출자로 유명하다.

<스파이더맨 : 홈커밍> 감독 존 왓츠 | 출연 톰 홀랜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 개봉 7월 5일
부제가 의미심장하다. 한동안 SONY로 가출(?)했던 스파이더맨이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서 마블로의 반가운 귀환을 알린 후 솔로 영화로 완전히 ‘홈커밍’했다. 이전의 <스파이더맨>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처럼 학창 시절에 초점을 맞추지만,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특별하다. 말 많은 토니의 영향을 받아 청소년 특유의 발랄함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이에 맞선 벌쳐 역이 전직 배트맨 마이클 키튼이란 점도 흥미롭다.

<덩케르크>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톰 하디, 킬리언 머피 등 | 개봉 7월 중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크리스토퍼 놀란은 주로 판타지 세계에 기반을 둔 작품을 주로 만들어왔다. <덩케르크>는 놀란 감독의 첫 번째 실화영화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의 항구 도시 덩케르크에서 독일군에 의해 포위됐던 영국, 프랑스, 벨기에의 기적 같은 철수 작전을 다룬다. 워낙 대규모의 작품인 까닭에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는 놀란 감독은 전작의 경험을 살려 이 영화의 전체 필름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다.

 

보그
(2017.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