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서독제] <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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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근, 임재춘, 김경봉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이면서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 밴드 ‘콜밴’의 멤버다. 이들은 회사의 부당한 해고에 맞서 ‘천막’을 치고 3,170일, 그러니까, 무려 8년 동안 투쟁 중이다. 지금은 함께 투쟁하던 동료들이 대부분 떠나고 셋만 남은 상황이다. 게다가 집으로 압류 통보가 들어오고 벌금도 수천만 원 대에 이르다 보니 이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마음을 잡지 못해 연주 연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로에게 신경질을 내는 최악의 상황. 급기야 재춘은 투쟁이고 밴드고 다 필요 없다며 천막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경봉은 이를 막기 위해 재춘을 달래지만, 인근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로 진행할 법한 소재이지만, 이란희 감독은 <천막>을 극영화로 끌고 간다. 실제 해고노동자인 이인근, 임재춘, 김경봉이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지냈던 실제 천막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란희 감독의 말로는 다큐멘터리보다 극영화가 자신에게 맞기 때문에 이런 형식을 취했다고 하는데 비슷한 소재의 다큐멘터리와 비교해 <천막>은 그 결이 사뭇 다르다. 실재인물이 연기한다는 설정은 기타를 ‘만들다’ 투쟁을 위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들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또한, 콜트콜텍 문제를 극영화로 확장하니,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에너지를 규합해 노래로 투쟁에 나서는 콜밴 멤버들의 현재 상황이 우회적으로 반영된다. 심각할 법한 이야기가 살짝은 어색해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로 재미까지 확보되며 <천막>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서울독립영화제 2016
(2016.12.1~12.9)

[2016 서독제]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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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이 영화의 공간은 ‘수영장 the pool’이다. 아직 물이 채워지지 않은 수영장에서 한 사람이 몸을 풀고 있다. 소녀인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가 어두워 그렇게 추측될 뿐이다. 서서히 수영장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 소녀는 슬슬 물장구를 친다. 스크린 멀찍이서 수영을 하다 물이 차는 정도에 맞춰 중앙으로 나오기도, 아예 가로지르기도 한다. 수면 위로 한 줄기 햇살의 조각이 일렁이는 가운데 아이들의 조잘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수영장>을 만든 고유희 감독은 연출의도를 이렇게 밝힌다. ‘깜깜한 지하에서의 그 시간 동안 빛나거나 덜 빛나거나, 움직이거나 미세하게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들을 따라가 보려 했다.’ 카메라가 따라간다기보다 미묘하게 출렁이는 수면에 몸을 맡긴 것처럼 움직이는 <수영장>은 수영장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운동성에 주목하는 영화다.

영화가 빈 스크린에 이미지와 사운드를 채워 넣어 꿈 혹은 상상을 구현하는 것처럼 <수영장>은 수영장 안에 물을 채우는 가운데 그 안에서 사람이 휘젓고 첨벙이는 소리가 울리는 등 그에 맞춰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잔잔한 수면 위의 물의 흐름은 그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오고 그 위를 첨벙첨벙 넘나드는 소녀의 헤엄은 잠을 깨우듯 현실을 자각도록 한다. 가장 컴컴했던 어둠이 바닥을 치고 저 멀리 새벽을 알리는 빛의 파편이 수면 위에 반사되어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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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2.9)

[2016 서독제] <우주비행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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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과 영선(박용혁 배우가 1인 2역을 연기했다!)은 형제다. 쌍둥이지만, 그들이 놓인 처지는 정반대다. 형 영진은 이과 출신으로 자연과학을 연구한다. 문창과 출신의 동생 영선은 글을 쓰고 싶다며 취직 대신 시골집에 내려간다. 영진은 원하는 건 아니지만, 생계를 위해 연구실에 처박혀 교수님의 연구를 뒷받침하고 있다. 영선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던 중 스스로 죽음을 맞는다. 이전에 둘은 식당에서 만나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시골로 내려간다는 동생의 결정에 형은 말한다. “엄마 보험금도 다 떨어져 간다. 나 돈 없다.” 그러자 동생은 이렇게 받아친다. “반대로 생각해. 부양할 가족이 없잖아”

손경수 감독의 <우주비행사들>은 똑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는 형제를 통해 우주의 신비에 접근한다. 삶은 살아 있는 동안에만 해당하는 개념이 아니다. 생(生)과 사(死)가 이어져야 완성되는 것이다. 그처럼 <우주비행사들>은 반을 접었던 종이를 펴듯 영진과 영선 형제가 마주한 혹은 나란히 걷는 이미지부터 동생 영선이 컴퓨터, 즉 온라인에 남긴 영상을 오프라인의 형이 바라보는 사연까지, 온통 대칭의 개념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게 둘은 동일 선상에 놓여 있는 것 같아도 이를 가로지르는 각자의 시간이 삶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우주비행사들>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인터스텔라>의 상대성이론이 나오는 대목을 ‘쌍둥이 패러독스 Twin Paradox’ 버전으로 개비한 듯한 인상을 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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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2.9)

[2016 서독제] <바위너구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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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강력한 벼락이 공단을 내려치는 압도적인 광경으로 시작한다. 그 위로 6개의 내레이션이 차례로 깔린다. 남자는 슈퍼 태풍 너구리 때문에 공단 내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사건을 설명한다. 연신 안아보겠다는 남자와 별자리 얘기를 하며 딴청을 피우는 여자의 대화가 두 번째로 들린다. 곧 이은 박사장과 이과장의 대화는 욕이 오갈 정도로 거칠다. 의사와 환자의 대화도 이어진다. 정신질환을 의심하는 의사에 맞서 환자는 몽유병을 주장한다. 그리고, 세상이 작동하는 추악한 시스템을 폭로하려는 남자의 황당한 주장에 맞서 이를 말리려는 여자, 몰락해가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세 사람의 대화까지.

<바위너구리들>의 임유리 감독은 “석유화학 공단으로 변해버린 아버지의 고향을 어린 시절부터 종종 드라이브 가곤 했다. 거대했던 공단의 이미지는 나이가 들수록 변화해간다. 그 안에서 어떤 파편적인 정서, 경험들을 부유하게끔 하고자 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내레이션의 상황별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공단의 이미지와 음악으로 그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과정은 마치 객관적인 기억이 오래되어 주관적인 인상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따르는 듯하다. 공단을 에워싸듯 말과 이미지와 사운드가 실험적으로 결합한 이 영화가 왜 바위가 많은 곳에 서식하는 ‘바위너구리들’로 제목을 정했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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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2.9)

[2016 서독제]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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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 극 중 화자(이 영화를 연출한 오재형 감독)는 주변 사람들에게 미확인물체, 즉 UFO의 존재를 믿느냐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UFO의 존재 여부에 대해 접근해 들어간다. 근데 왜 영화의 제목이 ‘덩어리’일까? 사실 <덩어리>는 UFO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감독의 마음속에 묵직하게 눌러앉아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덩어리’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지, 종국에는 이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여기서 UFO와 덩어리를 잇는 공통분모는 ‘믿음’이다. <덩어리>의 오재형 감독은 UFO가 진짜라고 주장했던 유명한 이들의 사례가 결국에는 거짓으로 판명된 에피소드를 삽입한 후 이런 얘기를 한다. “나도 내 몸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으로 힘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 UFO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 영화는 중반 이후 감독이 경험했던 정체불명의 마음속 고통을 설명하는 데 할애한다. 흥미롭게도 그 과정을 지켜 보고 있으면 이 영화 자체가 감독에게는 일종의 치유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믿음에 대한 감독 자신의 판단으로 결국 마음의 병을 고치기 때문이다.

어떤 실체의 존재 여부와 상관 없이 믿음이라는 건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쪽으로 향하면 오히려 건설적일 수가 있다. 이를 UFO와 불안 장애로 연결해 다큐멘터리로 꾸민 감독의 발상이 재기 넘친다. 여러분은 UFO의 존재를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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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2.9)

[2016 서독제] <돼지 잡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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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돼지를 잡는다고 하면 ‘잔칫날’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가족 관계가 유효했던 예전에는 그랬다. 가족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금에는 어떨까. 시골 농장에 친척 식구들이 모인다. 돼지를 잡기로 한 날인데 분위기가 영 심상찮다. 어머니 묫자리를 두고 형제간에 싸움이 붙는다. 다른 곳으로 이장하고 남은 땅을 팔자는 동생에 맞서 형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이에 성이 난 동생은 대신 형의 아들을 불러 장도리를 손에 쥐여주고는 돼지 머리를 치라고 주문한다. 보다 못한 매형은 이 상황이 맘에 안 드는 듯 장도리를 뺏어 돼지 머리에 화풀이하고는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양청직 감독의 <돼지 잡는 날>은 몸뚱이가 해체된 돼지처럼 심정적으로 뿔뿔이 흩어진 극 중 가족의 민낯을 내장까지 발려내듯 드러낸다. 반가워야 할 모임에 신경전을 벌이는 가족 간 사이는 바람 소리처럼 스산하다. 형편들이 어려워 자기 잇속을 챙기려 부딪히는 과정은 죽은 돼지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비릿하다. 그런 가족 사이를 살벌한 돼지 농장 배경으로 우회한 이 영화의 대사는, 그래서 중의적인 데가 있다. “뭐 한다고 그 징그러운 걸 보고 있어. 옷이나 버리지. 지겨워 아주” 친척 어른의 지친 듯한 목소리에 조카가 내놓는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나도 거들어야지” 그랬다가 돼지 내장을 담은 수레를 엎은 조카의 옷은 금세 피로 물든다. 친척 간의 갈등이 자식 세대로까지 이어질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돼지 잡는 날’의 의미는 과거와는 다르게 부정적인 의미로 변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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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2.9)

[2016 서독제] <거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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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떠드는 학생들, 교실 풍경은 일상적이다. 이때 심각한 표정의 담임 선생님이 교단에 서자 일순 분위기는 심각해진다. “여기서 누군가를 한 번이라도 괴롭힌 적이 있는 사람 모두 복도로 나가!”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바쁘다. 그 위로 흘러나오는 어느 학생의 내레이션. ‘00이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며 때렸다’, ‘ㅁㅁ가 강제로 내 입안에 뜨거운 물을 붓고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게 했다.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등등 괴롭힘을 당한 사례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복도에는 학생들로 가득 찬다. 선생님이 체벌을 가하려 하자 어느 학생이 묻는다. “근데 선생님은 정말 모르셨어요?”

정시온 감독의 <거미줄>은 한 학생을 괴롭히는 일명 ‘왕따’의 카르텔이 특정 몇 명의 모의가 아니라 선생님을 포함해 교실 전체를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괴롭힘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방관한 학생도 가해자로 몰리는 상황은 왕따가 광범위하게 벌어지면서도 조직적으로 은폐되는 경위를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절벽까지 몰린 피해 학생이 도움을 호소할 유일한 대상은 선생님일 터. 하지만 ‘소소한 애들 다툼’으로 일관하는 선생님의 반응은 괴롭힘의 카르텔이 ‘거미줄’처럼 촘촘해질 수밖에 배경의 정점으로 작용한다. 엔딩 크레딧의 말미에 나오는 내레이션이 의미심장하다. “XX가 내가 자기를 무시했다며 핸드폰을 뺏어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지막 소통 줄마저 끊긴 피해 학생의 심정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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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2.9)

[2016 서독제]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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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러 갈까?” 청춘 남녀가 ‘썸’ 타는 중 했을 얘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콩닥콩닥 뛸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인 문제와 결부되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인천댁으로 불리는 화자는 할아버지들을 상대로 불법적인 ‘연애’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이를 시기한 업계(?) 동료의 고발로 경찰에게 덜미를 잡힌다. 이때 단골 오빠인 중원이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다. 그에 대한 답례로 중원의 집에 따라가 연애를 하던 화자는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배에 차는 오줌 주머니를 보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서둘러 중원의 집을 떠나면서도 화자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중원의 건강을 걱정해 전화를 걸지만, 통화가 되지 않자 화자는 불안해진다.

김석영 감독의 <연애>는 최근 한국영화가 주목하는 소재 중 하나인 ‘박카스 할머니’를 주인공을 내세워 절박한 생존의 문제와 더불어 죽음을 결부한다. 이를 노인 복지와 가족 붕괴와 같은 거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신 화자와 중원의 사연에 밀착해 이들의 절박한 사연을 노출한다. 누구에게는 사랑일 관계가 검은 거래로 전락할 때, 특히 그 주체가 노인과 같은 약자일 때 이 사회는 쉬쉬하거나 부러 외면해왔다. <연애>는 화자와 중원의 우물 속 심정을 적나라하게 파고들어 은밀한 공간에 카메라를 갖다 대기를 서슴지 않는다. 극 중 내용과는 역설적인 제목이 주는 심정적인 거리감만큼이나 <연애>의 내용은 낯설지만, 그러므로 더욱 절실한 문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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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2.9)

리더가 바로 서야 팀이 바로 선다

mourinho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공히 리더를 잘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지면에 안 그래도 쏟아지고 있는 정치 이야기 하나를 더 보태려고 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리더 문제는 정치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있는데 여기서는 스포츠 지도자, 즉 감독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주제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gue)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의 경기였다. 맨유의 현(現) 감독이자 첼시의 전(前) 감독 조제 무리뉴로 인해 ‘무리뉴 더비’로 불린 이 더비에서 무리뉴는 전 소속팀에 0:4로 대패했다.

스코어 차가 말해주듯 맨유는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했다. ‘스페셜 원 Special One’으로 불리면서 맨유 명가의 재건을 노리던 무리뉴. 첼시를 비롯하여 맨체스터 시티 등 라이벌 팀과의 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노멀 원 Nomal One’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지금까지의 결과(11라운드 현재 5승 3무 3패로 6위!)를 보자면 무리뉴와 맨유는 궁합이 맞지 않아 보인다.

포르투와 첼시와 인터밀란과 레알 마드리드와 (다시) 첼시를 거치며 보여준 무리뉴의 축구에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었다. 우선 뒷선의 수비를 견고하게 구축한 후 중앙의 플레이메이커가 찔러주는 패스 한 방으로 윗선의 골게터가 득점하는 경제적인 축구로 무리뉴는 EPL을 비롯해 이탈리아의 세리에 A,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까지 유럽 3대 리그를 모두 석권했다.

그런데 맨유에서는? 수비진은 11경기에서 13골을 내주며 매 경기 한 골 이상의 실점을 기록 중에 있다. 미드필더는 거액을 주고 인터밀란에서 데려온 폴 포그바만이 매 경기에 출전 중이고 파트너로 마이클 캐릭, 마루앙 펠라이니, 후안 마타 등이 번갈아 가며 뛰는 등 확실한 플레이메이킹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스트라이커의 경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팀에서 가장 높은 6골을 기록하고 있지만, 예전 같은 파괴력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리그 일정이 아직 절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언할 수 없지만, 지금의 결과만 본다면 무리뉴 감독과 맨유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인상이다. 반면, 맨유와 ‘레드 더비’로 유명한 리버풀은 감독 한 명 바꿨을 뿐인데, EPL 출범(1992년) 이후 가장 인상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벌떼 축구’의 진수를 보여줬던 위르겐 클롭 감독은 제라드도 없고, 수아레즈도 떠나고 라이벌 팀보다 이름값이 떨어지는 선수단을 이끌며 당당히 1위에 올랐다.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피치 위의 선수 전원이 벌떼처럼 움직이며 승리를 쌓는 모습은 올해 리버풀의 전망을 밝게 한다.

팀의 선수 사정과 스타일을 고려해 감독을 선임하는 건 그렇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이름값이 보장하는 건 과거의 경력에 비추어 지급해야 할 돈의 액수가 높다는 사실을 빼면 별로 없다. 미래의 결과는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경기장 안팎의 온갖 변수를 감독과 감독의 지도를 받은 선수들과 이들을 총괄하는 프런트가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달린 셈이다. 리더의 선임에는 따져야 할 게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다.

EPL 감독 선임 문제로 글을 연 건 실은 한국 프로야구(Korea Baseball Organization)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두산 베어스의 우승과 함께 스토브 리그에 돌입한 KBO는 이미 10개 구단의 감독 선임이 끝난 상태다. 두산과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와 기아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는 기존 감독이 내년에도 이끄는 것으로 결정 났다. 하지만 넥센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와 kt wiz는 신임 감독으로 내년 시즌을 준비한다.

넥센은 파격적으로 프런트 출신의 장정석 감독을 사령탑으로 맞이했다. SK는 롯데의 제리 로이스터에 이어 KBO 역사상 두 번째 외국인 감독 트레이 힐만이 팀을 이끈다. 그리고 삼성과 kt는 각각 김한수와 김진욱 감독을 차기 감독으로 선임했다. 팀 재정 상황이 넉넉하지 않은 넥센은 지도력이 증명된 감독을 거액 주고 데려오기보다 돈을 아끼면서 좋게는 도전, 시쳇말로는 도박하는 쪽을 택했다.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이후 매년 성적이 내리막길인 SK는 쇄신 차원에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며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지만큼은 확실하게 표명했다.

삼성은 류중일 감독이 유임될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김한수 전 타격코치를 감독 자리에 앉혔다. 2011년 삼성 지휘봉을 잡고 2015년까지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의 기념비적인 성적을 거둔 류중일 감독을 이렇게 내칠 거(?)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에 반해 신생팀 kt를 팀 창단부터 이끌던 조범현 감독은 지난 시즌에 이어 올해에도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전 두산을 이끌었던 김진욱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줬다.

이들 팀의 감독 선택이 옳았는지는 내년 시즌의 성적이 말해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대보다 의문이 앞선다. 넥센은 파격적인 감독 선임도 물론이거니와 김동우 신임 배터리 코치는 전력분석팀장 출신으로 또한 모험적인 선택이다. 코치진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맡을 것이라는 예상을 깬 중용(重用)이라 벌써 내년 시즌 넥센의 성적을 꼴찌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주요 선수가 대거 빠져나간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한 염경엽 감독을 떠나보낸 넥센 프런트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반응이기도 하다.

삼성의 감독 선택은 또 다른 면에서 반감에 직면한 상태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살펴봐도 류중일 감독 만한 업적을 이룬 사령탑은 1983년 해태 타이거즈 감독 취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1986∼1989년까지 4연패를 달성한 김응룡 전 감독 정도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정규시즌 9위를 기록했다고 해서 올해를 제외하면 계약 기간 내내 팀을 우승으로 이끈 감독을 바로 내친다는 건 삼성 프런트가 사령탑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지도자의 권위라는 건 감독 스스로가 만들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보내주는 신뢰가 또한 밑거름이 된다.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닌 것이 SK나 kt처럼 약속한 계약 기간을 준수한 후 리그 결과에 따라 재신임을 묻거나 아니면 아쉽지만, ‘마이웨이’ 각자의 길을 가면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넥센과 삼성의 감독 선임 사례는 많은 씁쓸함을 남긴다. 선수단의 사정, 즉 스타일을 고려한 감독 선임도 아니고 전임 감독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차기 감독을 결정한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한국 프로야구의 프런트의 현주소를 가늠케 한다.

맨유의 레전드 중 한 명인 게리 네빌은 언론을 통해 올 시즌 맨유가 4위 안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무리뉴 감독을 경질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강하게 비쳤다. 아직 무리뉴가 자신의 베스트 팀을 구축하지 못했다며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맨유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팀 맨유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와 관계 없이, 지금까지의 성적과는 별개로 나는 네빌의 발언을 지지하는 쪽이다. 프로 스포츠는 성적으로 말하지만, 먼저 팬을 위해 존재한다. 팬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우승하는 것을 바라지만, 단 하나의 결과에 상관없이 성장해 가는 모습에 더 많은 감동을 한다.

프로야구를 포함해 한국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팀은 말로는 팬을 우선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성적에 기준을 맞춰 대부분을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팀의 프런트는 이미 지나간 업적을 기준으로 지도자를 꼽아 선수단을 만신창이로 만들기도 한다. 현대의 프로 스포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 침해 방식의 훈련으로 과연 이것이 프로 스포츠에 합당한 것인지 팬들의 반발을 불렀을 정도다. 이것도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유효기간이 끝난 스타일은 퇴행을 불러올 뿐이다.

현대의 프로 스포츠에서 감독은 선수단을 조직하고 그에 맞는 전술을 구축, 좋은 성적을 거두는 임무에 앞서 팬들이 이해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팀의 존재 이유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를 전제로 팬들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소통은 말을 통해 전달되기도 하지만, 마음을 이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팬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우승하지 못한 것에 아쉬워해도 단순히 성적만을 위해 팀의 존재 이유를 해치는 결정에는 실망한다.

결국, 스타일은 역사다. 팀의 색깔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승만을 생각한다면 아직 팀과 궁합이 맞지 않는 무리뉴는 경질되는 것이 맞다. 맨유 왕조를 이끌었던 ‘퍼기 경’ 알렉스 퍼거슨도 1986년 감독 부임 초기에는 실망스러운 행보로 팬들의 비아냥을 듣기도, 경질 위기도 겪었다. 결과적으로 2013년까지 27년의 재임 동안 EPL 13회 우승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달성했다. 감독이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아니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결과다. 이를 직접 경험한 맨유와 맨유의 팬들은 무리뉴의 실망스러운 행보에도 서두르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것이 팀의 품격이고 팀의 리더를 대하는 태도이자 예의라는 생각이다. 팬들이 응원하는 팀에게 원하는 바로 그것이다. 한국 프로 스포츠에서도 퍼기 경처럼 장기간 팀을 이끌고 존경받을 수 있는 감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절실히 바란다.

 

ARENA
2016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