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정만식

asura

<아수라> 제작발표회 이후 배우 정만식을 두고 화제가 된 ‘말말말’이 있었다. ‘정만식은 개 눈을 갖고 있다.’ 함께 출연한 주지훈이 김성수 감독에게 들은 얘기라며 기자들 앞에서 폭로(?)한 것이다.

제작발표회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지만, 캐스팅 당시 김성수 감독은 꽤 진지했던 모양이다. 정만식과 마주한 자리에서 첫 질문으로 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물어봤다. “감독님께서 <대호> 촬영장을 방문하셨어요. 그때 제 촬영 분량을 보셨나 봐요. 제게 ‘눈이 좋다’며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하셨죠.”

정만식이 <아수라>에서 맡은 역할은 ‘사냥개’ 도창학이다.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를 저지하기는커녕 수하 노릇을 하는 한도경(정우성)을 예의주시하는 검찰 수사관이다. 신분은 그렇지만, 독종 검사 김차인(곽도원) 밑에서 한도경을 잡아다가 협박해 박성배의 범죄 혐의를 캐려고 이용하는 행동대장에 가깝다. 그런 사람의 눈이 선하면 쓰나. 그런 점에서 김성수 감독의 ‘개 눈’ 발언 인정이다.

정만식에게 검찰 수사관 역할은 꽤 익숙하다. 그의 필모그래프를 살펴보면 검찰 수사관처럼 공권력을 행사하는 캐릭터를 매년 찾아볼 수 있다. <내부자들>(2015)의 부장검사, <베테랑>(2014)의 전 소장, <끝까지 간다>(2013)의 최 형사, <간첩>(2012)의 한 팀장, <수상한 고객들>(2011)의 형사 등등.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에서도 검찰 수사관을 연기한 적이 있다. “<부당거래>의 공 수사관은 시간만 때우려는 그냥 공무원이에요. 무능력하게 살아가는 남자인 반면 도창학은 강해요. 한도경을 이용하는 게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만, 정의 구현을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게 도창학이 살아가는 세계의 룰이기 때문이죠.”

특정 영화의 캐릭터를 예로 들어가면서까지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같은 역할이라도 차별화가 되게끔 연기했다는 얘기다. “도창학은 실실 웃으면서 상대방을 압박해 들어가는 유형이죠. 그러다 못 참으면 그때 확 나가요. 제가 덩치가 있는 편이라 기본적으로 액션이 크면 관객들이 싫증을 내요. 웬만하면 행동을 크게 안 했죠. 김성수 감독님도 그걸 원했어요.”

도창학 연기에서 힘을 빼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다섯 명의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니만큼 자신의 연기에만 집착할 경우, 팀워크가 깨질 우려가 있었다. <아수라>는 남성영화로 분류되지만, 선이 굵은 폭력보다는 뼈있는 대화가, 낭자한 선혈보다 진한 눈빛이 더 중요한 작품이었다. 자신을 낮추고 함께 하는 배우들과 합을 맞추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말하자면, 배운다는 자세로 <아수라>에 임했다. “단 한 명도 선생님이 아닌 사람이 없었어요. (정)우성 형은 자기가 맡은 역할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는 능력이 대단했어요. (황)정민 형은 주변을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가졌어요. (곽)도원 형은 집요했어요. 원하는 연기가 나올 때까지 쉬는 법이 없었어요. (주)지훈은 날 것 같은 싱싱한 연기로 자극을 줬어요.”

정만식은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연기에 관한 것들을 다시금 떠올렸다”고 한다. 김성수 감독이 말한 눈의 정체, 정만식은 영화 현장의 모든 것을 집요하게 감시하고 사냥하듯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배우다.

 

magazine M
(2016.9.23)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sully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진이 발생했다. 자연재해라 어느 정도 피해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후의 대처가 문제였다.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는 불통이었고 국가재난 주관 재난 방송사는 신속한 정보제공과는 무관한 보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국민은 우왕좌왕하며 불안에 떨었다.

재난 안전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한국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풍경은 익숙하다. 외양간을 고칠 때도 되었건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시스템은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할리우드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하 ‘<설리>’)을 보고 있으면 한국사회에 부재한 그 ‘무엇’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곳에는 책임감이 있었다

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항공 1549편 여객기가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한다. 양쪽 엔진에 손상을 입은 여객기는 뉴욕 도심 위를 아슬아슬하게 선회하다 센트럴 파크 인근 허드슨 강에 비상 착륙을 시도한다. 결과는? 강에 불시착한 비행기 탑승객 155명 전원이 생존했다. 전 세계 언론은 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기적을 이끈 여객기의 기장에 주목한다.

그의 이름은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톰 행크스)다. 설리는 언론에 의해 영웅으로 대서특필되었지만, 미국의 국가 운수안전위원회는 기장의 선택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며 그를 청문회에 제소했다. 비행기 사고 당시를 자체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보니 인근 공항으로 무사 회항이 가능했다는 것. 국가 운수안전위원들은 설리를 상대로 위험천만하게 강에 불시착할 이유를 따져 묻는다.

<설리>를 연출한 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이오지마 섬에서 발생한 전투를 각각 미국군과 일본군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이상 2006)를 연출한 적이 있다. <설리>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엔진 사고 이후 설리 기장이 조종석에서 취한 일련의 행동을 두 차례 반복한다. 사고 당시 실시간으로 한 번, 청문회의 시뮬레이션과 비교하는 차원에서 또 한 번 제시하며 설리의 판단이 옳았는지 관객이 결정토록 한다.

결정이 어렵지는 않다. 설리의 판단은 유효 적절했다. 국가 운수안전위원회가 설리의 판단에 딴죽을 걸었던 것은 엔진 사고의 책임을 그에게 넘겨 국가가 보상해야 할 액수를 줄여보자는 심산에서였다. 국가 운수안전위원회는 설리의 판단에 대해 이렇게 걸고넘어진다. 엔진 사고 즉시 항로를 인근 공항으로 잡았으면 무사 착륙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허드슨 강으로 향했나요?

“우린 모르고 당했습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역사상 최저고도에서 양쪽 엔진을 잃을 거라고 알려주지 않았죠” 설리의 답변이다. 여기에는 행간이 숨어있다. 국가 운수안전위원회의 지적처럼 엔진 사고와 동시에 인근 공항으로 향했다면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그런 비상 상황에서, 더군다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즉각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리가 유일하게 믿었던 건 40년의 비행 경험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위축 되기를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스른 설리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감에 의존, 강에 비상 착륙하는 것만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확신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도 모두를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은 설리가 오랜 비행시간 동안 터득한 기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설리는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후 150명의 승객과 5명의 승무원 모두가 무사히 탈출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행기 밖으로 몸을 피신했다.

이곳에는 리더가 부재했다

설리가 청문회에 참석하자 그를 지지하는 동료는 그에게 힘을 심어주며 이런 식의 얘기를 한다. “비행기와 관련해서는 가장 기분 좋은 소식이었어요.” 안 그래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청문회에 출석하기 전 설리가 빌딩 밖을 내다보며 뉴욕 도심에 비행기가 추락하는 상상으로 진저리치는 장면을 부러 노출한다.

여전히 대다수의 미국인은 9.11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와 같은 정신적 외상이 더욱 심해지는 상황을 막는 것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 여객기가 허드슨 강으로 하강하는 것을 지켜본 뉴욕 시민들은 9.11의 악몽을 떠올리며 긴장했지만, 테러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안도했다. 무엇보다 9.11 이후 2008년도에 발생한 금융 위기를 비롯해 안 좋은 뉴스로 가득했던 미국인들에게 ‘허드슨 강의 기적’은 희망을 주는 일이었다.

할리우드 작품이지만, <설리>를 보는 한국인의 심정은 남다르다. 영화가 단순히 영화로 보이지 않는 것은 안전과 관련한 비극이 한국에서는 현재형으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인양되지 않은 채 바닷속에 수장된 상태다. 침몰 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희생자 가족을 향해 이제 그만하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진은 또 어떤가. 강도 5.8의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4.5의 여진이 다시 경주를 강타했지만, 안전에 대한 조치는 단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설리>에 주목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혼란에 빠지지 않으며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인물은 정말 뛰어난 위인입니다. 영화에서 설리의 행동을 보는 것 자체로 정말 흥미로운 일이었어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얘기를 전해 들은 실재 인물 설리는 공을 구조 활동에 이바지한 모든 이들에게 돌렸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자신들이 할 일을 대단히 잘해냈어요. 그게 우리 모두의 생명을 구한 거죠. 단결된 모습이 있었기에 그날의 비행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해요.”

허드슨 강의 기적은 설리를 비롯하여 탑승객 전원의 침착한 대응과 시민들의 협조로 이뤄진 것이었다. 첫 구조선은 4분도 채 되지 않아서 도착했다. 1,200여 명의 뉴욕시 구조대원들과 해안경비대는 잠수부를 동원해 구조작업에 나섰다. 구조용 보트와 130명의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7대의 출근 보트도 구조에 합류하여 승객들을 배로 옮겼다. 이는 불과 24분 동안 이뤄진 일이었다. 더는 뉴욕에 비극이 생기기를 원하지 않았던 시민들은 설리를 리더로 안전이라는 목표 아래 책임감으로 하나되어 기적을 일구었다.

<설리>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뉴스를 시청하던 중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기상청의 지진 대응 매뉴얼 중에는 ‘밤에는 장관을 깨우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는 보도였다. 이런 뉴스도 있었다. 잇따라 발생한 경주 지진 관련 정부의 대응이 부실하다는 반응에 대해 국민안전처 장관은 ‘재난대비 매뉴얼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국민의 분노를 불렀다. 리더들이 가장 먼저 빠져나간 한국호(號)에서 우리의 안전은 대체 누가 책임지는 것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설리>가 우리에게 판타지로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사저널
(2016.9.24)

확장판이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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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블레이드 러너>(1982) 얘기다. <마션>(2015)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블레이드 러너>는 미국 개봉 당시 제작비의 절반도 건지지 못하는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블레이드 러너>가 지금 누리는 지위를 고려하면 믿기 힘든 이야기다. 개봉 당시 철저히 외면받았던 영화가 이후 걸작의 반열에 오른다? 2차 판권 시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온라인 시장에서 부활하다

올해 상반기 최고의 문제작을 꼽으라면 단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이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앤트맨 등 마블 슈퍼히어로들의 독주에 맞서 배트맨과 슈퍼맨, 즉 전통의 슈퍼히어로가 힘을 합친다는 것만으로 팬들의 기대감은 상당했다. 결과는?

마블 영화의 경우, 슈퍼히어로 각각의 개별 작품을 먼저 선보인 후 ‘어벤져스’에서 뭉치는 방식으로 팬들의 기대감에 부응하는 데 성공했다. 그에 반해 <배트맨 대 슈퍼맨>은 배트맨과 슈퍼맨 외에 원더우먼, 플래시, 아쿠아맨, 사이보그 등 ‘저스티스 리그’의 히어로들을 모두 소개하려다 보니 151분의 상영 시간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 개봉했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86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에 반해 <배트맨 대 슈퍼맨>은 고작(?) 225만 명에 그쳐 체면을 구겼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원더우먼> <저스티스 리그> <그린랜턴 군단> 등 2020년까지 10편의 영화를 차례로 선보여야 하는 DC의 저스티스 리그의 입장에서는 출발부터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해결책은? 기존의 극장판에 30분의 추가 장면을 더해 181분의 확장판을 선보이자 기존과는 다른 평가가 줄을 이었다. 극장판에서 설명이 부족했던 설정들, 예컨대, 극 중 배트맨과 슈퍼맨을 파멸하려는 악당 렉스 루터와 슈퍼맨의 연인 로이스 레인을 미끼로 삼는 테러 조직과의 연관성, 클라크 켄트가 어떻게 렉스 루터가 연설하는 자선 행사장을 찾아 브루스 웨인과 만나는지 과정이 더해지자 이야기의 개연성이 높아졌다.

<배트맨 대 슈퍼맨> 확장판은 IPTV와 디지털 케이블TV와 인터넷 VOD 서비스(이하 ‘디지털 온라인 시장’)를 시작한 첫 주에 3위를 기록했다. 실망스러운 극장 흥행을 고려하면 꽤 선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향후 ‘저스티스 리그’의 개봉이 줄을 잇고 있어 개봉 때마다 연관성을 찾기 위해 관객들이 디지털 온라인 시장을 통해 <배트맨 대 슈퍼맨>을 더 찾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극장 개봉 이후 잊힐 운명이었던 <배트맨 대 슈퍼맨>은 2차 판권 시장에서 일종의 패자 부활전을 통해 기사회생했다.

변화한 2차 판권 시장

이는 극장 개봉 수익에만 의존했던 2000년대만 하더라도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디오 시장이 궤멸하고 불법 다운로드가 비일비재했던 당시 극장이 아니면 영화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종종 DVD로 극장에서와는 다른 버전이 소개되어 영화 팬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극장 입장료의 2~3배를 선회하는 판매 가격은 마니아를 제외하고는 애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 들어 디지컬 케이블과 IPTV가 도입되고 인터넷 VOD 서비스가 일반화되는 등 2차 판권 시장이 살아나면서 극장의 판도 또한 급격히 변화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한국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2010년 이후 IPTV 및 디지털 케이블의 매출액은 2010년 491억 원에서 2014년 2,254억 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인터넷 VOD 또한, 2010년 267억 원에서 2013년 729억 원의 매출액 상승을 기록하며 2차 판권 시장의 부활을 견인했다. (2014년에는 무려 31.5%가 떨어지며 499억 원에 그쳤다!)

이와 같은 디지털 온라인 시장의 급격한 팽창은 수입 영화의 확대를 불렀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매주 개봉하는 신작이 10편을 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지금은 무려 20편 이상이 될 정도로 디지털 온라인 서비스가 극장가에 불러온 파급효과는 대단하다. 영화를 제작하는 것과 달리 수입할 경우,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뿐더러 극장 개봉 수익이 여의치 않더라도 디지털 온라인 시장에서 이를 만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외화를 수입하는 회사가 늘어났고 꼭 극장 개봉이 아니더라도 예술영화로 분류되어 극장에서 외면받은 작품, 남의 눈을 피해 안방에서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성인영화들이 디지털 온라인 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2차 판권 시장의 윈윈

디지털 온라인 시장이 확대되고 매체와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처럼 극장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작품의 확장판뿐만 아니라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도 디지털 온라인 시장 이용자를 위한 새로운 버전으로 관객몰이에 나선다. 바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다.

<아가씨>는 극장 개봉 당시 428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박찬욱 감독의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중에서 최고 수익을 올렸다. 박찬욱 감독은 기존의 144분 버전에서 20분을 추가한 감독판으로 2차 판권 시장을 공략한다. 이는 제작사와 감독에게 디지털 온라인 시장이 극장 개봉만큼이나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개봉 당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디지털 온라인 시장에서 그 기세를 이어가는 게 보통이다. <곡성>이 디지털 온라인 시장에 풀린 6월 말 이후 한동안 순위 1위를 기록했던 게 증거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판이나 확장판으로 새롭게 선보일 경우, 이미 극장에서 본 관객을 디지털 온라인 시장으로 다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판권을 가지고 있는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수익이 늘어나니, 감독은 애초 자신이 의도한 버전을 소개할 수 있으니, 디지털 온라인 업체는 다양한 콘텐츠로 이용자의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으니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셈이다.

물론 이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극장에서의 마이너스 수익을 디지털 온라인 시장에서 만회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은 영화의 수입가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어 시장의 건전성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더군다나 케이블 TV 간의 과열 경쟁으로 시장의 적자 폭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큰 문제다. 제2의 <블레이드 러너>는 건강한 2차 판권 시장이 존재할 때 가능한 현상이다. 극장에서 이뤄지는 1차 시장과 디지털 온라인 서비스를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2차 시장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영화 산업은 비로소 안정을 꾀할 수 있다.

 

시사저널
(2016.7.16)

[GV] <범죄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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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했던 <범죄의 여왕> GV를 관객기자단 [인디즈] 홍수지 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사진은 김은혜 님께서 찍어주셨고요. 그날의 기록을 여기에 올립니다.)

수도 요금이 120만원? 물을 120만원을 쓸 수가 있나? 그것도 고시공부를 한다고 틀어박혀 있는 사람 한 명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사법고시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아들은 그냥 돈이나 보내라고 성화다.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친구를 때리는 친구의 남편에게 다짜고짜 보톡스 주사기를 들이미는 당찬 여성 ‘미경’(박지영 분)은 짐을 싸 들고 아들이 있는 고시촌으로 향한다. 그리고 미경이 마주하게 현실은 역시나 수상스럽다. 이 유쾌하고 수상하고 어딘가 독특한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이번 인디토크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감독 이요섭과 배우 조복래와 백수장, 진행으로 허남웅 평론가가 함께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허남웅 평론가(이하 허): 감독님께 먼저 질문을 드릴게요. <범죄의 여왕>은 <족구왕>(2013) 엔딩 크레딧에 나왔던 짧은 영상에서부터 시작되었을 텐데, 어떻게 장편으로 작품을 발전시키셨나요?
이요섭 감독(이하 이): <족구왕> 뒤에 쿠키영상을 붙일 때는 시나리오 초안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 뒤에 시나리오를 무수히 수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죠. ‘덕구’(백수장 분)와 ‘진숙’(이솜 분)을 러브라인으로 잇기도 하고, ‘개태’(조복래 분)를 다른 느낌으로 써보기도 하고, 미경도 진짜 범죄자가 됐다가 불법시술을 하는 아줌마 정도로 바꾸기도 하고. 그렇게 1년 반 정도 쓰고 찍게 된 것 같습니다.

허: 먼저 개태 역을 맡으신 조복래 배우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역할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조복래 배우(이하 조): 아마 일부러 극장을 찾아서 영화를 보러 오신 분들은 대부분 아시겠지만, 모두들 ‘광화문시네마’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이 한 번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도 물론 너무 재밌었고요. 개태는 조금 덜떨어진 것 같고 대사는 거의 쌍욕이라 이걸 어떻게 사랑스럽게 표현하나 무수한 고민이 있었어요. 현장에서도 많이 징징거렸던 것 같아요. 이게 맞냐고, 이렇게 표현해도 되냐고. 아무튼 재밌게 작업을 했습니다.

허: 백수장 배우님께도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덕구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욕망을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계속 얘기를 하고 참여하는 역할입니다. 어떻게 준비를 하셨나요?
백수장 배우(이하 백): 덕구가 스스로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법조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을 거예요. 덕구를 연기하며 정이 든 부분이, 덕구는 뭐든 잘하지는 못해도 주어진 걸 열심히 한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집중력 훈련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덕구라는 역할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허: 외양을 따로 준비 하셨나요? 예를 들면 뿔테안경 같은 거요.
백: 아뇨. 그런 건 감독님이 정해주셨어요. 감독님이 확고하게 덕구의 모습에 대한 생각이 있으셨어요. 많이 듣고 참고를 했어요. 저와 다른 모습을 가진 캐릭터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재밌었어요.
조: 원래 백수장 배우가 덕구 같은 캐릭터는 아니에요. 말투도 아니고요.(웃음)
허: 감독님이 압박을 주신건가요?
이: 그렇다기보다 시나리오를 읽고 덕구에 대해 약간 후덕하고, 조금 더 공격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은 분들이 있었어요. 제가 팟캐스트를 평소에 많이 듣는데, ‘불금쇼’의 ‘경춘선’이라는 캐릭터의 말투가 되게 특이하더라고요. 백수장 배우님에게 들려주고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어요. ‘오덕’인데도 사랑스러울 수 있을 것 같은?(웃음)

허: 조복래 배우님과 백수장 배우님을 캐스팅한 이유가 있나요?
이: 두 배우 다 편견을 깨고 나중에는 사랑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했어요. 조복래 배우 같은 경우는 다른 영화에서 봤을 때 무서운 느낌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일단 얼굴이 되게 ‘개태’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씩 웃으니까 옆에 있던 스크립터가 왜 이렇게 좋아하냐고 해서 내가 생각했던 거랑 얼굴이 너무 닮았다고 했어요. 웃을 때 되게 예뻐서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어머니한테도 다정하다고 해서 개태 역할을 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복래 배우와 백수장 배우 둘 다 영화 <차이나타운>(2014)에서 무섭게 나오는데, 백수장 배우는 삭발하고 칼침을 놓는 무서운 인물로 나와요. 그런데 오디션 영상을 보니 저보다 어린 줄 알만큼 동안이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귀엽고 호감 가는 인상인데, 실제로 만나니 더 그렇더라고요. 목소리도 ‘덕구’ 같은 느낌이 되게 강해요.(웃음) 순수하고 좋은 형이에요.

허: 개태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조: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던 캐릭터였어요. 미영과의 관계 구축에 많은 신경을 썼고, 친구인 듯 애인인 듯 모자관계인 듯 보일 수 있도록 했어요.

허: 백수장 배우님은 힘드신 부분은 없었나요?
백: 오디션에서 덕구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이 연기해야 했어요. 시크하고 독특한 느낌으로 연기했는데, 조연출님과 스크립터님이 감독님께서 특별히 원하는 느낌이 있다고 하시면서 아까 얘기한 팟캐스트를 들려주셨어요. 듣고 나서 짧은 시간 안에 그런 느낌으로 연기를 다시 했더니 캐스팅이 됐어요.

허: 아무래도 미경 역이 중요한 것 같은데, 처음부터 박지영 배우님을 염두에 두신 건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영 배우님을 캐스팅하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이: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저는 항상 다른 배우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웃음) 박지영 배우님는 처음 뵀을 때부터 놀랐어요. 강하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나니 그렇지 않았어요. 정신없기도 하고 털털하면서 말이 많은데, 말도 예쁘고 외모도 아름다웠어요. 아들에게는 좀 밉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호감을 얻는, 제가 생각한 미경의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딱 맞는 캐스팅이었던 것 같습니다.

허: 미경의 모델이 있었나요?
이: 처음에는 엄마의 연령대가 훨씬 높았어요. 진짜 ‘엄마’ 같은 느낌을 가져가려고 했는데, 그러면 너무 일반적이고 고리타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연령대를 낮췄어요. 그런 느낌을 찾다보니 스페인 여성들이 비슷했어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2006)에 나오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섹시하지만 모성애가 넘치는, 여러 모습들이 뒤섞여있는데, 그 감정에 솔직한 모습이 제가 봤을 때 건강한 엄마 같더라고요.
조: 개태 엄마는요?
이: 원래 시나리오가 있었어요. 마지막에 미경과 개태가 미용실에 앉아있으면 전화가 한 통 와요. 알고 보니 개태의 엄마가 정선 카지노에 붙잡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둘이 정선 카지노로 떠나는 거죠. 저는 개태가 어릴 때 보육원에 맡겨지고 그 삶에 적응하지 못해 뛰쳐나와 흘러 흘러 관리사무소의 아저씨를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개매 엄마는 도박을 즐기는 미인 정도로 생각했어요.

허: 박지영 배우님에 대해서 두 배우님은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극 중 관계를 위해서 따로 준비하신 것이 있는지 여쭤볼게요.
백: 처음에 덕구 캐릭터에 대해 약간 자신이 없었는데, 전체 배우들이 모여서 첫 리딩을 하는 날부터 박지영 선배님이 덕구로 대해주셨어요.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고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조: 처음에는 박지영 선배님이 되게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적당선 이상을 넘지 말아야겠다 했는데, 처음부터 미경의 모습을 보여주시더라고요. 다정함을 넘어 깊게 파고들어오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저도 다가갈 수 있었어요. 촬영현장에서 선후배를 넘어 동료로 어우러질 수 있었어요.

허: 구체적으로 에피소드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조: 화장실에 숨어 있는 장면을 찍을 때 여러 가지 제안을 하며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해봤어요. 이 장면 말고도 많은데, ‘403호 강하준’(허정도 분)을 찾으려고 신림동을 뒤지는 장면 같은 경우는 텍스트가 따로 없어서 저희끼리 자유롭게 했어요.

관객: 미경이 모든 캐릭터에게 반말을 하는 설정이 흥미로웠어요.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 미경이라는 캐릭터가 장벽을 내려놓는 방법 중 하나가 말을 놓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사이에 많은 벽이 있지만, 빨리 정리하고 시작하자’인 거죠. 말을 놓는 게 벽을 허물기에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관객: 반전이 없다는 게 이 영화의 반전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스릴러물 같은 경우 무리하게 반전을 설정하는 경우도 많은데, 반전에 대한 유혹은 없으셨나요?
이: 처음에는 진짜 멋있는 반전을 써야지 생각하면서 1년 반 동안 반전만 생각했어요.(웃음) 근데 반전을 넣으니까 두 가지가 걸렸어요. 하나는 미경이 403호를 제외하고는 다 진심을 주는데, 반전이 생기게 되면 어쨌든 미경이 배신당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니까 이야기가 별로더라고요.

또 하나는 403호 하준 캐릭터였어요. 저는 하준이 사회에서 치여 왔던 과정을 풀어내고 싶었어요. 이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게 된 이유가 사이코패스거나 미쳐서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 ‘드라마’라고 해요. 코미디를 잘 쓰지 못했고 스릴러는 껍질만 가져왔어요. 하준이 싸우고 있는 사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관객: 개태의 본명이 있나요?
이: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보육원에 맡길 때도, ‘개똥이’ 식으로 지어 놓고 갔을 거예요. 본명이 전개태입니다. 남들이 이렇게 자기를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관객: 미경이 화려한 원색의 옷을 입고 나와요. 신발에 포인트가 맞춰진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요?
이: 하이힐에 대한 페티시가 있는 건 아니고요.(웃음) 고시원에 없는 신발이 뭘까, 없는 색깔이 뭘까 생각했어요. 칙칙한 공간을 바쁘게 다니는 빨간 신발. 그리고 하준 아내의 살구색 신발은 시간이 오래 지나 닳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문턱을 많이 드나든 느낌.

허: 배우 분들은 연기하면서 힘들 때가 있었나요?
조: 원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액션신이 있었어요. 찍을 때 다리도 다쳤는데, 편집돼서 더 힘들었죠.
이: 제 자식 덜어내듯이 잘라냈습니다.

관객: 스릴러로 포장된 가족영화의 느낌을 받았어요. 기존의 가족 영화랑은 다르게 개태와 미경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 같았어요. 감독님은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가족 관계를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이: 저는 ‘익수’(김대현 분)의 아빠를 만들어 주는 것을 꺼렸어요. 미경을 독립된 존재로 남겨두고 싶었어요. 그리고 피로 섞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모여 살면 훨씬 나은 지점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 대안 가족의 형태를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에요. 다 쓰고 나니 개태랑 미경이 한 번 더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태를 미경의 미용실에 취직시켰죠.

관객: <족구왕>에서도 그렇고, 왜 하필 ‘벤츠’를 사용하셨나요?
이: 저희에게 후원이 온 것은 절대 아니에요. 그냥 좋은 차면 상관없었는데, <족구왕>에서 한 번 쓰였기 때문에 사용한 이유가 가장 커요. 미경이 봤을 때 좀 부러운 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허: 세 분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조: 내년 1월쯤에 <궁합>이라는 영화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백: 10월 초에 장편영화를 찍을 것 같고, 올 말쯤에 개봉하는 <싱글라이더>에 출연합니다.
이: 글을 다시 써야겠죠. 대반전이 있는 글을 써보고 싶네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요섭 감독이 말했듯이 <범죄의 여왕>은 스릴러의 껍데기를 쓴 드라마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맨션(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건물)의 누추한 모습은 그 무엇보다 영화 세트(가짜) 같지만, 지금 당장 서울 신림동에서 비슷한 곳을 찾아보라고 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우리는 그곳과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범죄의 여왕>은 이 공간을 사랑스러운 인물들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한때는 사랑스러웠을 ‘하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범죄의 여왕>은 미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는 스릴러가 아닌 인간들에 대한 드라마다.  

 

<범죄의 여왕> GV
(201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