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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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여왕>은 <1999, 면회>(2013) <족구왕>(2014)에 이은 광화문 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이다. 광화문 시네마는 현재의 청춘들이 맞닥뜨린 현실의 문제를 코믹하게 접근하면서 울림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독립영화 창작 집단이다.

<범죄의 여왕>은 그런 제작사의 정체성에 걸맞게 오락물이면서 소외된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한다. 그것이 가능한 건 고시원이라는 배경에 엄마라는 캐릭터를 접목한 까닭이다. 아들의 수도요금 120만 원 때문에 서울 신림동 고시원에 상경한 ‘엄마’ 미경(박지영)은 사건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외롭게 ‘열공’ 중인 고시생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그들의 사연을 묻고 관심을 드러낸다. 합격에 대한 욕망은 넘치지만, 이를 분출하지 못한 이들의 어둡고 암울한 기운이 지배하는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엄마의 출현에 분위기가 점점 개선되기 시작한다.

한국영화에서 엄마는 대개 주인공의 가족에 불과한(?) 주변 인물이었고 고시촌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외면받은 공간이었다. 이요섭 감독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엄마 캐릭터와 고시원 배경을 전면에 내새워 <범죄의 여왕>이라는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개성의 산실 ‘광화문 시네마’를 찾아 이요섭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광화문 시네마라고 해서 사무실이 광화문인 줄 알았는데 북촌에 있네요. (웃음)
전고운 대표(<범죄의 여왕>의 쿠키 영상에 등장한 <소공녀>의 연출을 맡았다!) 집이 광화문이어서 처음에는 ‘광화문 시네마’였어요. 그 후에 이쪽으로 오게 됐죠.

<족구왕>으로 좋은 흥행 성적을 거뒀어요. 형편이 나아지셔서 이쪽으로 옮긴 건가요?
<족구왕>은 최소 제작비로 만들어 약간의 수익을 냈어요. 여기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가 수익을 1/N 로 나눴어요. 이 사무실도 1/N 중 하나였기 때문에 월세로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에요.

<범죄의 여왕>에 대해 얘기하려면 <족구왕>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범죄의 여왕> 쿠키 영상을 언급 안 할 수 없죠. 어떻게 장편으로 발전시킨 거죠?
시나리오가 먼저였는지, 쿠키 영상이 먼저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러프한 형태의 시나리오 같지 않은 트리트먼트가 있었어요. 쿠키 영상의 예고편은 그 초안을 바탕으로 <족구왕> 마스터링 들어갈 즈음에 바쁘게 만들었어요. 처음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가 있어요. 어머니가 제 수도요금 50만 원을 해결해주신 적이 있어요. 조폭이 관리하는 오래된 주상복합 건물에서 자취하고 있을 때였어요.

감독님의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이군요?
어머니가 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협의를 하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탐정처럼 얘기하시더라고요. “5분만 있다 들어와. 소리 질러도 놀라지 말고” (웃음) 저로서는 어안이 벙벙했죠. 5분 후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관리소장이랑 커피를 마시면서 되게 차분하고 얌전하게 이야기 중이셨어요. 관리소장 왈, 이 문제가 뭔지 알아보겠다. 이 얘기를 듣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어머니가 “저 사람 관리소장 아니야, 저 뒤에 컴퓨터 하고 있는 애 있지, 걔가 관리자야”

영화 속 관리사무소에서 아랫사람들에게 일 맡기고 등 돌린 채 컴퓨터 하고 있는 관리소장의 모습이 여기서 나온 거군요?
원래 시나리오는 더 장르적이었어요. 지금 영화에서 ‘십시’(고시 2차 시험을 10번 떨어진 고시생을 십시일반 도와야 한다는 뜻)로 나오는 고시생 캐릭터는 원래 시체 처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었어요. 다만 배경이 고시촌이다 보니 극 중 살인을 관객들이 이해할 법한 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십시로 바뀌었죠.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는데 김태곤 감독님(<1999, 면회> 연출)이 초고를 보시고는 엄마와 아들 관계가 중심에 놓이는 이야기니까 엄마가 상경하는 설정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 최초의 기획을 해준 거죠.

특별히 고시촌을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그 당시에 고시촌과 관련한 사건들 얘기가 많았어요. 고시촌에 불을 피워놓고 놀란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면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도 있었어요. 그와 같은 사건들을 계기로 고시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고시촌에 들어갔죠. 지금은 생계유지의 최소한의 것이 갖춰진 공간이 되었어요. 그전에는 고시 합격이라는 꿈을 안고 올라온 사람들이 많았죠.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고시촌을 선택하는 사람들로 바뀌고 있어요.

고시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캐릭터는 대부분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죠, 사법고시 준비하는 아들과 이를 뒷바라지하는 엄마라는 설정은 익숙하죠. 사실 한국에서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사법고시를 보는 건 아니죠. 다만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을 가지고 개천에서 용 났다 식으로 크게 뒤틀어 보여줄 수 있는 게 사법고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를 집대성한 공간이 바로 고시촌이죠. 영화의 배경으로 잡으면 흥미롭겠더라고요.

확실히 현실에서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고시촌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이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합격, 성공에 대한 욕망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요. 실제로는 그렇지 못해 부러 억누르고 있어 답답하고 어두운 느낌이랄까요?
영화 속 공간의 전체적인 룩 자체는 하드보일드를 흉내 냈으면 했어요. 시험공부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공간이잖아요. 그 사람들의 의식이 공간 안에 비주얼적으로 반영이 됐으면 했죠. 물론 영화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고시원은 없어요. 지금 고시원들은 잘 만든 모텔 같아요. 되게 깔끔해요. 영화에서는 하드보일드의 틀에 맞춰 암울하고 원색이 강한 느낌이죠. 저도 그렇고, 영화의 스태프들도 고시생이라고 했을 때 처음 갖는 느낌이 우울함이었어요. 근데 노량진이나 신림동에 가서 직접 조사를 해보니 이미지가 전혀 달랐던 거죠. 오히려 영화 찍는 사람들이 옷차림도 어둡고 고시생 같아요. (웃음) 실제대로 표현해서는 제가 원하는 비주얼을 얻을 수 없었던 거죠.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접근을 하신 거군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부모님 마음은 대개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상황일 거예요. 사시와 관련한 전문용어는 잘 몰랐는데 취재를 통해 접하면서 이해할 수 있었어요. 1년 넘게 범죄물 시나리오만 쓴 적이 있어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등을 질 수밖에 없었어요. 1년 뒤에 시나리오를 완성하기로 했는데 작업 중에 집에 누가 아프다고 해도 신경을 쓸 수가 없거든요.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더 다치게 돼요. 그러니까, 너무 맹목적이 되는 거죠. 외롭고 미쳐버릴 것만 같지만,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얻으면 잡고 싶은 걸 못 잡을 것만 같은 심정이 고시생들과 통하는 게 있었어요.

고시촌이 배경이지만, 주인공은 고시생이 아닙니다. 고시생의 엄마, 즉 미경이에요. 감독님의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이걸 영화로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이잖아요.
어떻게 관객들이 공감할 인물을 뽑아낼까, 고민하던 차에 김태곤 감독님이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엄마는 뭘 하고 다녀도 엄마다,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엄마만큼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어디 있냐, 모자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엄마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놀면 되지 않느냐. 그 얘기에 많이 공감됐어요. 많은 변형을 가해도 캐릭터가 유지될 수 있는 견고한 성 같은 존재인 엄마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예요.

감독님이 각본까지 쓰셨어요. 아무래도 아들의 관점에서 엄마를 바라볼 수밖에 없잖아요. 거기서 오는 한계를 느끼지는 않으셨나요?
미경이 미움받으면 안돼, 미운 아줌마로 보이게 할 수 없어,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포장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고 잘 안 풀렸어요. 시나리오 1고가 나온 후 전고운 대표님이 각색 작업을 하면서 미경 캐릭터가 디테일하게 바뀌었어요. 영화 속에서 미경이 어느 여자에게 이년, 저년 하면서 “말년에 다 외로워지고” 하는 대화가 있어요. 전고운 대표님이 양념을 친 거예요. 엄마이자 여자로 동시에 보이는 역할을 한 거죠. 미경을 연기한 (박)지영 선배가 워낙 귀여운 구석이 많은 여자예요. (웃음) “나 오늘은 더는 힘들어서 못 할 것 같아. 그래도 니가 시키니까 해야지” 하고 열심히 연기한 후에 널브러지면서 이렇게 얘기하세요. “나 오늘 괜찮았어?” 제가 지영 선배를 미경으로 대하는 태도가 편해지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엄마 이미지와 부합했어요.

그런 성격을 알고 처음부터 미경 역에 박지영 배우님을 염두에 두신 건가요?
마음에 두고 있던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돌렸어요. 그중에 지영 선배가 있었죠. 지영 선배는 시나리오 받은 지 하루 만에 연락을 주셨어요. ‘너희 나 좀 보자’ 이런 느낌이었어요. (웃음) 그래서 갔죠. 얼굴에 손을 괴고 앉아 계셨어요. 예전에 <장녹수> 같은 TV 드라마에서 봤던 이미지 때문인지, 어우~ 너무 떨리는 거예요. 보자마자 “나 이거 재밌게 봤어. 근데 감독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렇게 말씀하는 방식이 미경 같은 거예요. 그날 지영 선배랑 저랑 PD님이랑 셋이 밥도 안 먹고 다섯 시간이나 얘기를 나눴어요.

미경 역에 따로 모델이 있었을 거라는 심증이 드는 게 미경이 입고 있는 옷의 패턴이 <친절한 금자씨>(2005)의 금자(이영애)를 떠올리게 해요.
미경의 캐릭터를 어떻게 맞출까, 엄마인데 너무 여성스럽게 가도 괜찮을까. 전 겁이 나더라고요. 그때 의상을 맡았던 지지연 실장님(<피에타>(2012))이 영화적으로 접근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저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귀향>(2006)에서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한 엄마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했어요. 고시원의 캐릭터 구성이 진숙(이솜)을 제외하면 모두 남자잖아요. 그래서 미경에게 모종의 성적 긴장감이 드러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붉은 계열에 어깨 정도 노출하는 옷으로 꾸몄죠.

그 때문에 미경 캐릭터가 눈에 띄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 고시생들의 외양이 대부분 비슷해 보여요.
전체 밸런스를 잡을 때 익수(김대현)와 하준(허정도)의 콘셉트가 비슷했어요. 저는 누가 살인범이고 아니고는 인간의 악함이 아니라 상황이 만든다고 생각해요. 익수의 방이 노멀하다면 하준의 방은 노멀에서 시험을 수십 번 떨어진 형태로 반영한 거죠. 하준이 여자였다면 진숙의 방이 되는 거고요. 그래서 익수와 하준의 의상은 거의 비슷해요. 다만 둘 사이의 차이는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었죠. 익수에게는 엄마라는 소통의 창구가 있는 데 반해 그렇지 않은 하준은 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캐릭터 배치는 그렇게 잡아갔어요.

좋은 장르물은 캐릭터와 공간이 조응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잖아요. <범죄의 여왕>이 그런데요. 감독님께서 연출자 이전에 장르 팬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영화라는 생각도 드네요.
장르물을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장르물을 만들되 좋은 게임이 될 수 있으면 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에요. 크든, 작든 확실한 성격을 가진 공간을 배경으로 좋은 장르물을 쓰고 싶어요. 하드보일드 작품을 보게 되면 담배 연기와 금발 머리와 여자와 선글라스와 빨간 립스틱 그런 것들이 등장하죠. 옛것 같은 느낌이 너무 좋아요. 제가 기억하는 영화의 풍광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다만 <범죄의 여왕>의 미경처럼 고시촌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에 마음이 가요. 그럼으로써 공간에 부여하는 엇박자의 느낌으로 접근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NEXT plus
(2016.8.25)

혁신하려면 디즈니처럼

junglebook

올해 들어 유독 한국 박스오피스의 1위는 ‘새로운’ 소재와 장르와 이야기 전개를 갖춘 영화들의 차지가 되었다. <데드풀>과 <주토피아>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곡성>과 <아가씨>의 한국영화까지, 그의 연장 선상에서 <베테랑> 이후 오랜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은 총 제작비 115억 원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정체성을 갖고도 장르물 중에서도 가장 마니악한 좀비물이라는 모험적인 시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이제 관객은 아무리 빅네임을 가진 배우가 출연하더라도 중반부 웃음, 후반부 신파로 승부를 보려는 한국형 가족드라마나 과도한 살인이 난무하는 스릴러에 조건 없는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 새로움으로 유혹하지 않는 한 부러 푯값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최근 관객들의 냉정한 소비 패턴이다.

새로움, 사실 말은 쉽지만, 구현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누구나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는 있어도 인정까지 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 어떻게 해야 새로움으로 관객에게 호감을 살 수 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걸 알았다면 지금 이 지면에 영업(?) 비밀을 밝히는 대신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물론 내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만큼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가깝고 그 언저리에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방식의 비밀을 파헤치는 건 어렵더라도 관객들이 유독 열광한 기존의 결과물을 통해 일관되게 목격되는 어떤 방향성을 캐치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럼 이렇게 질문해 볼까. 지금 전 세계의 영화 제작사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작품을 발표하는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슈퍼히어로물의 흥행을 독점하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 영화 개봉과 함께 흥행은 물론 세계 경제를 흔드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루카스 필름? 창의(創意)라는 단어와 동격의 대접을 받는 픽사 스튜디오?

답은 이미 하나로 모였다. 바로 디즈니. 디즈니가 이들 영화사를 사들인 건 유명하다. 2006년 픽사를 인수한 데 이어 마블엔터테인먼트와는 지난 2009년 5,000여개에 달하는 마블 캐릭터 소유권을 인수했다. 2012년에는 루카스 필름, 그러니까, <스타워즈>의 판권을 구입했다.

혹자는 디즈니의 공격적인 행보를 두고 ‘디즈니의 시대’라고 명명을 했을 만큼 전 세계 영화 시장에서의 활약이 독보적인 수준이다. 지난겨울 개봉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개봉 첫날부터 기존의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011)이 가지고 있던 개봉일 최고 수입 기록을 가볍게 넘어설 만큼 전 세계 극장가를 휩쓸었다. 국내 극장가에 역주행 흥행 신화를 썼던 <주토피아>는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 역대 흥행 5위를, 전 세계적으로는 10억 달러의 흥행 수입을 돌파하며 올해 개봉작 중 역시나 디즈니 산하의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바로 아래 자리인 2위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종합하자면, 디즈니는 2015년 메이저 스튜디오 북미 시장 점유율 순위에서 <쥬라기 월드>를 킬러 콘텐츠로 앞세워 16.5%를 차지한 유니버설에 이어 14.9%로 2위를 차지했다. 올해 상반기 디즈니의 순위? 연초부터 <주토피아>로 대박을 치고 <정글북>으로 다시 한 번 기세를 올린 후 <도리를 찾아서>로 정점을 찍은 디즈니는 상반기 누적 박스오피스 18억 달러를 달성했다. 연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스튜디오의 수익은 18~20억 달러 선에서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디즈니는 상반기 수익만으로 2016년 박스오피스 결산 1위 기록을 이미 예약한 것과 다름없다.

잠깐,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디즈니의 박스오피스 독주는 단순히 디즈니가 인수한 루카스 필름과 마블과 픽사 스튜디오의 활약에만 있지 않다. 디즈니는 이들 스튜디오의 작품 외에도 자체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올해 개봉한 작품은 <주토피아>와 <정글북>이다.

두 작품은 영락없는 디즈니 버전이면서 한편으로 이전과는 달라진 지점이 눈에 띈다. 결과적으로 디즈니의 진화한 양상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콘텐츠다. 가족을 이루는 신구 세대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주토피아>와 <정글북>은 디즈니의 정체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또한, <정글북>은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한때 디즈니가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든 적이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인 <주토피아>와 장르적으로 공유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이 주는 메시지는 이전처럼 단순히 가족애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가족애의 메시지를 주로 전달했기 때문에 디즈니는 종종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토피아>는 그런 세간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배반한 작품이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주토피아라는 이상향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는 광경이 의미하는 바는 예사롭지 않다. 인간 세계를 겨냥해 다수자와 소수자가 서로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사이좋게 살았으면 하는 메시지가 우회적으로 담겨 있다.

첨단의 컴퓨터 기술력을 활용한 애니메이션에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은 방식의 <주토피아>는 디즈니보다 픽사의 작품 세계와 더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디즈니는 2006년 픽사를 인수하기 훨씬 전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며 가족애를 전면에 내세웠던 디즈니는 픽사가 <토이 스토리>(1995)를 발표하며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신천지를 개척하면서 한물간 취급을 받았다. 디즈니로서는 당장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변화에 대한 요구는 사실 그 전부터 있었다. 1984년 당시 디즈니를 이끌던 이는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이었다. 마이클 아이즈너는 가족 관객 중심의 디즈니의 영향력을 성인 관객으로까지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터치스톤 필름과 미라맥스를 사들이면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지만, 주변의 반발을 사면서 오히려 디즈니의 위기를 불렀다. 고집이 셌던 마이클 아이즈너가 주변의 의견을 듣기보다 자신의 비전을 강요하면서 주변 인재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마이클 아이즈너야말로 변화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수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마이클 아이즈너에 이어 2006년 새롭게 회장 자리에 오른 로버트 아이거는 현재까지 디즈니를 이끌고 있다. 변화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픽사와 마블과 루카스 필름의 인수는 모두 그의 재임 시절 이루어졌다. 특히 회장 취임과 함께 로버트 아이거는 픽사의 인수를 주도했다. 디즈니가 고전하는 동안 생겼던 마이너스 수익률을 픽사의 작품을 통해 플러스로 전환하겠다는 안일한 발상과는 거리가 먼 결정이었다.

로버트 아이거는 픽사 고유의 창작권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되 충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의 캐릭터 창조력과 이를 이야기에 녹이는 화법에 주목, 디즈니 작품에 이식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렛잇꼬’ 열풍을 몰고 온 <겨울왕국>(2013)과 <주토피아>이다. 픽사가 2013년 이후 발표한 <몬스터 대학교>(2013) <인사이드 아웃>(2015) <도리를 찾아서>(2016) 등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아니 흥행 면에서 오히려 더욱 파괴력을 지닌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픽사의 합병으로 얻은 이득이 단순히 흥행의 측면에만 한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디즈니가 다시금 전성기를 맞게 된 배경에는 제작사의 고유한 브랜드를 존중하고 이에서 얻은 이야기와 캐릭터와 기술력 활용에 대한 노하우를 디즈니 작품의 창작과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픽사에게서 뿐만 아니라 마블과 루카스 필름과의 관계에서도 디즈니가 유지하는 것으로 이는 올해 또 하나의 ‘히트다 히트’ 상품 <정글북>에서도 확인된다.

실사 영화에, 애니메이션에, 잊었다 하면 다시금 콘텐츠화되는 <정글북>의 영화화로 디즈니가 주목한 것은 ‘CG의 실사화’였다. <정글북>에는 70종이 넘는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는 모두 100% CG로 이뤄낸 결과물이다. 마블이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를 다루는 것처럼, 루카스 필름이 <스타워즈>라는 가상의 우주 세계를 창조한 것처럼 정글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주목한 디즈니는 여기에 CG 느낌이 전혀 없는 CG 동물들을 창조해 넣어 새로운 볼거리를 구현했다. 그리고 디즈니가 2016년 상반기 흥행 수익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세상에 전혀 존재한 적 없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은 이미 존재하는 콘텐츠들을 가지고 이를 재조합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하는 시대다. 예컨대, <부산행>은 좀비라는 익숙한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한국의 토양 위에 이식되면서 새로운 볼거리로 기능했다. <곡성>은 스릴러라는 기본 바탕 위에 오컬트와 좀비물을 섞으면서 전례 없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데드풀>은 지금 한창 사랑받는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되 정의 실현보다 사익 추구에 혈안인 성격으로 색다른 이야기를 견인했다.

새로움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을 알아보는 눈과 이를 꾸준히 지켜보는 인내심과 간섭 대신 지원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디즈니는 이를 통해 전 세계 극장가의 박스오피스를 쥐락펴락하는 제작사로 우뚝 섰다. 디즈니 말고도 새로움으로 주목받는 곳은 많으나 디즈니처럼 여러 자회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전 부문에 걸쳐 획기적인 성과를 내기란 절대 쉽지 않다. 흥행하려면 디즈니처럼? 아니 혁신하려면 디즈니처럼!

 

ARENA HOMME
2016년 9월호

<범죄의 여왕>(The Queen of Crime)

crimeofthequeen

극장가는 블록버스터 천지다.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찍었고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와 <터널>이 순서를 바꿔가며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나눠갖고 있다. 성수기 시장이란 게 그렇다. 큰 영화 등쌀에 작은 영화가 기를 펴기 힘들다. 이런 작은 영화 보릿고개 시기에 겁 없이 개봉하는 작은 영화가 있다. 이요섭 감독의 <범죄의 여왕>이다.

누구의 엄마도 아닌 모두의 엄마

미경(박지영)은 시골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아줌마들 머리를 볶아주는 와중에 ‘야매’ 성형시술도 병행한다. 서울 신림동에서 고시를 준비 중인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서다. 아들이 검사만 된다면야 못할 게 없는 한국의 엄마라지만, 들어주기 힘든 요구에 직면한다. “엄마 수도 요금 수납하게 120만원 보내줘”

12만원도 비싼데 120만원? 엄마 왈, “아들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게, 너는 며칠 남지 않은 사법고시 공부에만 집중해.” 그냥 돈이나 보내달라는 아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림동 고시원으로 상경한 미경. 아들에게 오랜만에 밥 한 끼를 차려준 즉시 아들의 옆 방부터 시작해 고시원 구석구석을 들쑤시고 다닌다. 그리고 내린 결론,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억울한 누명을 쓴 아들을 위해 엄마가 나서는 이야기는 봉준호 감독이 <마더>(2009)에서 선보인 바 있다. 익숙한 콘셉트임에도 <범죄의 여왕>이 새롭게 느껴지는 건 극 중 ‘마더’ 미경이 보여주는 모성애가 단순히 자기 자식을 향한 맹목적인 희생이 아닌 고시원 모두에게로 향하는 관심인 까닭이다.

사실 고시원은 지금의 청년 세대를 이야기할 때 외면해서 안 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누군가는 성공해야만 인간 취급을 받는 한국사회에서 고시 합격을 위해, 어떤 이는 최저 임금으로는 마땅히 살 집을 찾지 못해 최소한의 돈으로 지친 몸을 누이기 위해 2~3평 남짓한 박스 같은 공간에서 적게는 몇 달, 길게는 10년 넘게 청년 시절을 저당 잡히고 있다.

지금의 청춘이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중요한 공간임에도 메이저 영화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 이유는 공간 특성도 그렇거니와 그 안에 있는 이들의 사연이 어둡다는 편견 때문이다.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혹할 만한 배경과 캐릭터와 이야기가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제작사의 입장이다. 고시원과 같은 장소를 가지고서는 밝은 이야기를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 지금 한국영화계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청춘영화의 부재는 그와 같은 기성의 무관심이 작용한다.

<범죄의 여왕>이 고시원을 다루면서도 엄마 역할을 중요하게 다루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경은 엄마 중에서도 주변에 대한 관심, 그러니까 ‘오지랖’이 넓은 캐릭터다. 사법고시가 며칠 남지 않아 모두가 예민한 가운데서도 아들의 수도 요금 120만원의 실체를 밝히겠다며 엄마는 고시원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안녕하세요. 404호 엄마입니다. 다들 공부하느라 힘드시죠? 모두들 수도 요금을 어떻게 내시나요? 함께 모여 얘기합시다. 다들 제 자식 같아서 밥 한 끼 먹이고 싶네요.’ 이 글에서 방점은 ‘밥 한 끼 먹이고 싶네요’다. 우선은 자기 자식의 수도 요금을 해결하기 위해서이지만, 밥을 대접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아들 이외의 타인을 향한 또 다른 관심의 표명이다. 이들에게서 어떻게든 호감을 얻어 사건 해결의 단서를 얻겠다는 것. 이는 곧 고시원과 엄마와 같은 한국영화가 그동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요소를 가지고 어떻게든 관객을 유혹하겠다는 이요섭 감독의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거죠

방에 콕콕 처박혀 나오지 않는 고시원 사람들을 삼겹살로 유혹하려는 미경처럼 이요섭 감독은 익숙하지 않은 캐릭터와 배경을 관객들이 혹할 만한 장르로 접근한다. 수도 요금 120만 원의 실체는 무엇인가, 를 마치 탐정으로 빙의한 듯 조사하는 미경의 행동은 추리물을 연상시킨다. 검사로, 판사로, 변호사로 성공하겠다는 의지는 강하지만, 몇 년 째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못해 까맣게 타버린 마음을 어두컴컴한 고시원으로 형상화한 연출은 누아르를 닮았다. 그리고 ‘개’같이 ‘태’어났다고 개태(조복래)로 불리는 고시원 관리소 직원과 미경이 짝을 이뤄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는 버디 무비의 변형처럼 느껴진다.

<범죄의 여왕>은 얼마 전 이 지면에서 소개한 적 있는 ‘광화문 시네마’(1392호 ‘이제 ‘광화문 시네마’를 기억해둘 때’)의 세 번째 영화다. <1999, 면회>(2013) <족구왕>(2014)을 제작한 광화문 시네마는 독립영화 집단이다. 이들은 특히 저예산의 한계를 기발한 아이디어와 코믹한 이야기로 돌파해 좋은 평가를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 <범죄의 여왕>은 순제작비가 4억 원(1천만원으로 만든 <1999, 면화>와 비교해 제작비가 무려(?) 40배가 늘었다!)에 불과하지만, 장르 친화적인 접근 탓에 저예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는 큰 영화만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박스오피스에서 흥행에 성공하는 한국영화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제작비가 1백 억원을 호가하는 블록버스터는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규모이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매기보다는 기존에 성공한 요소를 따라 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다. <범죄의 여왕>이 반가운 이유다. 다만 저예산의 독립영화는 블록버스터처럼 스크린 수를 많이 잡을 수 없으므로 관객의 적극적인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관계라는 것이 그와 같다. 관심이 없어서는 이 세상이 밝아지기 힘들다. 고시원 사람들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 같아도 실은 이 사회가 이들을 한 데로 몰은 것과 다름없다. 성공이 아니면 관심도 두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은 실패를 거듭할수록 관계 맺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관심이다. 처음엔 미경의 호의를 무시한 이들도 시간이 갈수록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미경의 활약에 수도요금 120만 원의 실체를 확인하지만, 이는 미경의 단독이 아닌 고시원 ‘식구’들이 모두 힘을 합해낸 결과다.

그처럼 영화 역시 블록버스터, 작은 영화, 청춘물 등 규모에 상관없이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멆티플렉스에서 서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가장 이상적이다. 물론 <범죄의 여왕> 한 편을 가지고 블록버스터가 지배하는 작금의 영화 시장에 균형을 맞췄다고 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작은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끌기에 이만한 작품도 드물다. 블록버스터가 제공하지 못하는 색다른 재미와 메시지와 무엇보다 개성이 <범죄의 여왕>에는 있다.

 

시사저널
(2016.8.20)

[GV] <비거 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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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준비를 하면서 소리나는대로 쓴 글이라 오타, 비문 등이 난무합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

1. <비거 스플래쉬>는 자크 드레이 감독의 1969년 작품 <수영장>을 리메이크하였습니다. 두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 전개가 같아요. 편집 순도 흡사하고요. 이야기를 흡사하게 다룰 거라면 굳이 리메이크를 할 필요가 있는가.

이 영화들은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욕망은 제어한다는 게 쉽지 않죠. 어느 선을 넘으면 점점 불어나는 특징이 있는데요. 바로 거기에 착안을 했습니다. <비거 스플래쉬>가 욕망이라는 주제에 더 풍부하게 살을 붙였다고 할까요. 그래서 더 탐욕, 아니 욕망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요. 가령 이런 거죠.

같은 수영장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수영장>은 수면 위에 비친 주인공들의 모습, 그러니까 욕망을 비추는 거울 같은 느낌이죠. <비거 스플래쉬>는 이에 더해서 수영장을 욕망의 시선이 엉켜 있는 곳으로 그려요. 그래서 <비거 스플래쉬>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주목하죠.

2.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표작은 영화와 제목이 같아요. 바로 <A Bigger Splash>(사진)입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자크 드레이 감독의 <수영장>을 리메이크하기로 결정한 후 제목을 지으면셔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떠올렸다고 하죠. <A Bigger Splash>는 캘리포니아 현대식 가정의 쓸쓸한 한낮 정경을 포착한 작품이라고 해요. 수평과 수직의 선들이 교차하는 가운데서 비전형적으로 물이 튀는 모습이 강렬한 작품이죠. ‘물이 튄다’는 의미가 바로 <A Bigger Splash>라고 하는데요.

고요한 느낌 가운데 물이 튀니까 거기서 무언가 불안함과 혼돈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닌 게 아니라, 영화 <비거 스플래쉬>는 바로 네 남녀의 서로를 향한 욕망이 서로 사선을 그으면서 극단까지 이르는 이야기죠. 실제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욕망이 남, 녀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휘젓는지에 대한 것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이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아이 엠 러브>에서 보여준 것이기도 했는데요. 한편으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왜 <수영장> 리메이크에 관심이 많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죠.

3. <비거 스플래쉬>는 마리안의 콘서트 무대 뒤편의 철골 구조를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호크니 그림에서 목격되는 수직과 수평의 선들이 어지럽게 교차를 하고 있죠. <비거 스플래쉬>가 어떤 욕망과 감정이 이렇게 복잡하게 서로 선을 그으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는데요. 그래서 이 영화에는 시선이 교차하거나 서로의 방향이 어긋나는 운동성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꽤 많아요.

차를 몰고가는 마리안과 폴의 시선 반대에서 해리와 페넬로페를 실은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마리안과 폴 그리고 해리와 페넬로페의 감정이 갈수록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죠. 이 장면 전까지 정말 아무 소리 없이 평화로웠던 분위기는 자동차 엔진 소리와 비행기의 착륙 소리가 극대화 되면서 평화를 깨고 있는 것인데요.

그럼으로써 한적하게 휴가를 보내고 있던 마리안과 폴의 분위기는 해리와 페넬로페가 타고 있는 비행기에 의해 잠식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어요. 그렇듯 우리 주인공들의 욕망은 너무나 달라요. 그리고 사실 욕망은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라서 그것을 백 퍼센트 파악하기도 힘들죠. 그러다보니 서로 간의 욕망은 결국 엉켜버릴 수밖에 없어요. 마치 이 영화의 첫 장면이 보여주는 것처럼요. 그래서 <비거 스플래쉬>에서 보여주는 욕망의 색깔들은 너무 다양하고 서로 달라요.

4. 마리안과 폴이 휴식을 취하는 부분에서의 이 영화의 카메라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죠. 하지만 공항에서 해리를 바라보는 폴의 시선은 차가운 파란 빛이에요. 선글라스 렌즈를 통해 색을 굴절하고 있죠. 해리를 향한 폴의 마음의 굴절을 보여줘요. 사실 해리는 여기에 온 목적이 있죠. 전 연인이었던 마리안의 마음을 다시금 돌려 놓고 싶어요. 마리안은 그 가운데서 갈등해요. 그래서 화면의 한쪽은 너무 뜨겁지만, 한쪽은 차갑게 해서 혼돈을 표현하는 장면도 등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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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하나의 데이빗 호크니 그림이 <비거 스플래쉬>에서는 중요하게 활용이 돼요.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라는 작품인데요. 영화 <비거 스플래쉬>에는 이에서 인용한 듯한 장면이 있어요. 수면 위로 수영장 아래 새겨신 선들이 비추고 있는데 이는 또한 욕망이 엉켜있는 듯한 이미지들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거죠. 그것은 ‘비거 스플래쉬’, 즉 물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것처럼 욕망이 엉킬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데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바로 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영화의 형식을 구상하고 있어요. 무슨 소리냐고요?

물이 튀면 물 방울이 어디로 튈지 모르잖아요. 그처럼 해리와 페넬로페가 마리안과 폴의 평화로운 일상을 깨면서 드러나는 파편화된 감정들을 여러 가지 예술 매체로 파편화해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요. 일단 영화 <비거 스플래쉬>는 <수영장>을 리메이크 했죠. 리메이크 하면서 영화의 제목을 데이빗 호크니의 그림에서 가져왔죠. 그리고 이 영화에서 마리안은 록 스타를 연기하는데요. 그래서 록음악이 빠질 수 없죠.

6. 루카 구아다니노는 <수영장>을 <비거 스플래쉬>로 각색하면서 “우리는 20세기를 끝으로 한 물 간 로큰롤의 시대와 현재의 우리를 지배하는 신보수주의 시대 사이의 균열에서 아이디어를 시작했다”는 말을 했어요. 이 영화가 욕망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로큰롤은 욕망 중에서도 밖으로 분출하는 데 이만한 장치가 없는 요소죠.

그중에서도 롤링스톤즈가 사용이 됐는데요. 이에 대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왈, “로큰롤이 곧 롤링스톤즈였다. 만약 당신이 롤링 스톤즈에 대해 잘 모른다면 로큰롤을 잘 안다고 주장해선 안 된다. 스크립트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각본가 데이빗은 ‘해리’ 캐릭터를 롤링 스톤즈의 역사에 아름답게 뿌리를 둔 멋진 인물로 그리기 원했다.”

7. 특별히 롤링 스톤즈의 <Emotional Rescue> 음악이 중요하게 사용이 되죠. 해석하자면, ‘사랑의 구원자’ 정도가 되려나요. 해리는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과 함께 이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는데요. 어떻게 보면 마리안에게 은밀하게 암호를 보내는 것 같아요. <Emotional Rescue>의 가사 일부를 들어볼까요.

‘약속이란 깨려고 있는 거 아니나/ 내가 너의 사랑의 구원자가 되어줄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가 실린 앨범은 해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종의 상징이 되고 맙니다. 폴과 다투다가 해리는 죽고 이를 폴이 아닌 다른 이의 타살로 몰아가려 폴은 수영장에서 죽은 해리의 시신 옆에 이 앨범을 두죠.

8. 이처럼 극 중 마리안과 폴과 해리와 페넬로페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는 경우가 없어요. 물이 튀는 것처럼 욕망을 분출해요. 마음을 숨기고 있을 때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성적 혹은 욕망의 상징물을 도구를 통해 드러내는데요. 와인병과 카메라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죠.

그 의도는 <수영장>에서 폴이 글을 쓰다가 실패한 인물인 것에 반해 <비거 스플래쉬>에서는 사진 작가로 변경된 것이 그렇죠. 해리는 너무 드러내 놓는 반면 폴은 그래도 좀 참으려는 욕구가 있어요. 그래서 페넬로페가 노골적으로 폴에게 접근하지만, 폴은 시선을 돌려 카메라, 즉 남성의 성기를 내려놓고(?) 욕망을 조절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9. 다만 욕망 분출이라는 측면에서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마리안은 좀 다른 부분이 있어요. 말을 하지 못하는 설정으로 되어 있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마리안 역할에 가장 먼저 염두에 뒀던 배우는 케이트 블란쳇이었다고 해요. 케이트 블란쳇이 스케줄 문제로 <비거 스플래쉬>에 합류할 수 없게 되자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틸다 스윈튼에게 합류를 요청했죠. 틸다는 자신이 1순위의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아이 엠 러브>의 인연에 아랑곳없이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녀의 단호한 결심에 변화를 가져온 건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 단절된 관계와 벽에 부딪힌 소통의 한계를 경험한 틸다 스윈튼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중화해 줄 영화가, 캐릭터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마리안은 자연인으로서 경험했던 한계와 이를 예술로 승화할 좋은 매개체가 되어줄 것 같았습니다.

틸다 스윈튼은 엄마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경험을 반영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에게 한 가지 조건을 들어 마리안 역할을 수락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인물로 마리안을 설정해달라는 것. <아이 엠 러브>에서도 그랬듯이 인간의 욕망이 초래하는 복잡한 관계와 비극을 테마로 삼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에게 틸다 스윈튼의 제안은 혹할만한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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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비거 스플래쉬>에는 유독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죠. 낙원에서의 식사, 게다가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식사의 의미가 뒤로 갈수록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데요. 그래서 이들이 서로의 파트너(?)를 놔두고 관계를 맺은 후 어색한 감정 속에 나누는 마지막 식사 장면은 일종의 ‘최후의 만찬’이 되겠죠. 실제로 <비거 스플래쉬>에는 종교적인 상징도 있어 보여요. 마리안과 폴을 찾아온 해리가 마굿간을 개조한 침실에서 잠을 자는 것도 그렇고 뜬금없이 뱀이 등장하는 장면도 그러한데요.

11. 판텔레리아 섬은 이탈리아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죠. 우리가 흔히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해서 일종의 낙원, 이상향의 위치를 남쪽으로 잡고 있는데요. 실제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판텔레리아 섬은 정말 낙원처럼 보이죠. 하지만 중간 중간 언급되는 내용들을 보면 판텔레리아는 노예들의 섬이었고 지금은 튀니지 쪽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이 꽤 많이 유입되고 있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판텔레리아 섬에 문명의 파편들이 유입되면서 서서히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 생채기가 나고 있어요. 해리가 고층빌딩이 난무한 뉴욕에서 이곳으로 왔다는 설정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죠. <비거 스플래쉬>의 첫 장면, 콘서트 무대의 ‘철조물’로 욕망의 엉킴 혹은 어긋남을 표현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서 낙원처럼 보이는 판텔레리아에는 비밀이 있는데요. 비밀은 이 영화의 결말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함께 하던 에덴 동산은 낙원이죠. 하지만 이곳에는 일종의 인류 욕망의 비밀 같은 것이 서린 곳이에요. 뱀이 나타나 이브를 유혹하고 선악과를 따먹게 하죠. 그 순간부터 아담과 이브에게는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한 비밀이 생기는 건데요. 그처럼 폴과 마리안에게 에덴 동산 같았던 판텔레리아 섬은 폴이 해리를 죽이면서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곳에 남은 폴과 마리안과 페넬로페에게는 모두 비밀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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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폴과 마리안은 해리의 죽음이라는 비밀을 간직한 현대의 이브와 아담입니다. 페넬로페요? 그녀는 17살인데 22살이라고 속였고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있었죠. 어쩌면 페넬로페는 낙원에 침투한 뱀이고 해리는 선악과와 같은 존재일 텐데요. 그동안 페넬로페가 해온 행동들이 뱀과 닮아 있지 않나요? 특히 등에 베길 것만 같은 돌맹이 사장에 누워 몸을 비틀어 폴을 유혹하는 것을 보세요. 뱀(?)이 따로 없죠.

13. 해리는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인데요. 그래서 뭔가를 놓치고 싶지 않은, 끌어 안고 있는, 하지만 해리를 죽인 폴에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마리안에게는 그의 죽음을 비밀에 붙여야 할 마치 선악과처럼 먹어치워야 할, 하지만 목 안에 걸리는 비밀 같은 것이겠죠. 그래서 둥근 형태의 사과 모습 같기도 하고 말이죠.

 

<비거 스플래쉬> GV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2016.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