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류준열

ryujun

“대한민국에 우리보다 더 센 놈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한강식(정우성)을 만나 승승장구하는 검사 한태수(조인성)와 중학교 동창이던 최두일(류준열)이 달리는 차에서 외치는 대사다. 목포 들개파 출신의 두일은 태수의 뒤를 봐주면서 자신의 세를 확장한다. 거칠 것이 없어 보이는 두일의 심정은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서 ‘정환이 신드롬’으로 일약 인기 대열에 오른 배우 류준열이 당시에 느꼈을 기분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류준열이 고개를 절레절레 짓고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 어리둥절했어요”라고 당시의 느낌을 회고한다. <더 킹>에서 두목의 자리를 넘보는 두일의 우쭐한 캐릭터보다는 <응팔>의 정환에 더 가까운 태도다. 한마디로 겸손하다. <응팔> 종영 이후 첫 번째 출연작으로 <더 킹>을 택한 이유도 그런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 “정우성, 조인성, 배성우 선배님과 하는 것만으로 좋았어요. 경험이 부족한데 배우로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기자가 <더 킹>과 관련한 어떤 질문을 던져도 류준열은 선배 배우’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빠뜨리지 않는다. 두일을 연기하면서 몸이 많이 상했던 그다. 촬영 중 장염에 걸려 아픈 몸으로 연기하기도, 추운 겨울에 액션 장면을 찍다가 심각한 손가락 상처를 입기도 했다. 막내 입장에서 마냥 편할 수만은 없는 촬영이었는데 자신을 챙겨주는 선배님들 덕에 무사히 연기를 마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인터뷰 전 사진 촬영을 위해 주연 네 명이 모인 자리에서 류준열은 주로 이야기를 들어가며 보조를 맞추는 등 선배들에게 기대는 모습이 귀여웠다.

극 중 두일도 류준열만큼이나 순수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다. 두일은 태수와 함께하는 앞길에 거치적거리는 이가 있으면 주먹을 앞세우는 ‘쎈’ 캐릭터다. 두일의 거친 면모를 두고 류준열은 “순수하다”고 해석한다. “욕망을 채우기 급급한 인물로 넘쳐나는 영화에서 두일은 양다리 걸치지 않고 태수에 대한 의리를 지켜요.” 어찌 보면 단순한 인물이지만, 류준열은 두일 역할을 위해 뭔가 더 없을까 생각을 거듭했다. “고민의 시간은 짧지만 대신 깊은 인물이에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과 태수를 위해 어떤 선택이 최선일까, 꽤 고민했을 것 같아요.”

이는 극 중 두일이 처한 위치 때문이기도 하다. 류준열 왈, “큰 흐름 안에 있는 인물이라기보다 한발 떨어져 영향을 미친다고 할까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이런저런 욕심을 내기보다 선배 배우들과 주거니 받거니 조화를 이뤄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두일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이자 류준열이 대중의 관심이 변덕 같은 연예 산업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 고수해야 할 전략이다.

류준열이 최근에 모 선배님에게 들었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인생에서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양심껏 해야 한다, 고 하시더라고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적당히 하라는 말, 좋아하지 않거든요.” <더 킹> 이후 류준열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송강호와 <택시운전사>, 최민식과 <침묵>, 김태리와 <리틀 포레스트>를 함께한다. 이게 바로 ‘리틀 킹’ 류준열이 들었다는 양심의 정체다. 영화계 ‘더 킹’의 자리에 오를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MAGAZINE M
(2017.1.9)

[GV] <귀>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ea%b7%80%ea%b7%80%ea%b7%80

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 내내 부조리한 상황들이 연속으로 펼쳐지며 웃음을 주다가 마지막에는 묵직한 깨달음의 순간을 준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감독과 함께 방금 본 <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영화감독) 일단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돼서 너무 감동스럽다. 나는 한국 영화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한국 영화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내가 얼마나 한국 영화를 좋아하냐 하면, 과거 LA에 있을 때 알지도 못하는 한국어로 된 단편 영화를 만들 정도였다(웃음). 앞으로 미래의 영화들은 한국 영화를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만들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너무 의미가 크다.

허남웅 감독님이 첫 번째 장편을 2010년에 만들었으니 이 작품을 만드는 데 6년이나 걸린 셈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기억해주어서 고맙다. 6년 전에 영화를 만든 뒤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했었다. 하지만 다들 잘 알고 있듯이 영화계에서는 진행 도중 작품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 중이고, 그 기간 동안 다른 감독의 작품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는 일을 했었다. 나는 그런 시나리오 작업도 매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일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사람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 역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글을 쓰고, 그 글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영화를 제작하는 건 나에게 바캉스를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귀>의 경우는 희극으로 시작했다. 60-70년대에는 이탈리아에서 코미디 영화가 특히 많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따르면서도 좀 더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어떤 장면은 말이 굉장히 짧고 어떤 장면은 말을 엄청 많이 하면서 부자연스러운 순간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그리고 흑백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비엔날레컬리지 덕분에 그런 시도를 운좋게 할 수 있었다.

허남웅 이탈리아의 코미디 영화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영화의 첫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코믹하면서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특히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한번은 웃음의 요소가 많은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장례식을 진행하는 목사님이 말을 계속 더듬고 물건을 계속 떨어뜨리며 코미디 영화 같은 순간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그 장례식이 내 어머니의 장례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장례식의 상황이 너무 웃긴데, 그날은 나에게 가장 슬픈 날이었다. 이런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경우는 코믹하거나, 진지하거나 둘 중 하나지만 삶에는 우리가 보는 영화보다 더 복잡하고 많은 요소가 담겨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허남웅 <귀>는 화면비가 중간에 변하기 때문에 실험적인 느낌을 준다. 화면비에 변화를 준 이유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영화의 화면비를 바꾸는 아이디어는 촬영 감독과의 협의 과정에서 나왔다. 영화 중간에 화면비가 변하는 건 내가 알기로 이탈리아에서 시도된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한 번 시도를 하고 싶었다. 비엔날레컬리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상업적인 요소를 비교적 덜 고려하고 우리가 실험하고 싶은 걸 다 시도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세상에 마음을 닫고 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점차 주인공의 마음이 열린다. 어떤 개인이 아무리 잘났고 똑똑하더라도 그가 속한 세상은 지금 이곳 하나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마음 속에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화면비를 점차 확장시켜 나갔다.

허남웅 이 영화의 흑백 화면은 차갑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귀>는 처음부터 흑백으로 찍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각본을 쓰는 도중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흑백 이미지만 떠올랐다. 가끔 색깔을 넣어서 생각해 보려고 하면 아예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귀>는 처음부터 흑백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내 머릿속에서 태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사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흑백이라고 생각한다. 흑백으로 세상을 보여주면 관객은 색상에 시선을 뺏기지 않고 배우들의 얼굴, 시선, 말에만 집중한다. 세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흑백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영화가 비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나는 세상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영화 자체는 비현실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세상의 본질에 가깝게 보여주는 데 가장 적합한 건 흑백 촬영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대해 얘기했는데 혹시 이 이야기가 감독님 본인의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영화가 나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른 길로 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이상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또는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하는지 같은 고민들 말이다. 이런 고민은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허남웅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다음 작품도 혹시 6년 뒤에 나오는 건가(웃음).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그렇다(웃음). 농담이고, 내년에 새로운 작품을 촬영할 예정이다. 6년에 한 번씩 영화를 찍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기는 하다.

정리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 사진 최재협 자원활동가

<귀> GV
서울아트시네마
(2016.12.9)

[예스 24] <빌리 엘리어트> 희망을 향해 백조처럼 날아오르다

billyelliot

<빌리 엘리어트>가 재개봉(2017년 1월 19일)한다. 지난해 재개봉 영화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때 조만간 <빌리 엘리어트>를 극장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2001년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주변의 편견을 딛고 발레로 성공한 소년의 성공담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몇 번을 더 볼 기회가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는 그보다 훨씬 입체적인 영화였다. 그에 대해 써보고 싶었는데 마침 재개봉으로 기회가 생겼다.

빌리(제이미 벨)는 엘리어트 가문의 막내다. 이 집안에는 전통이 하나 있다. 할아버지 대부터 남자는 모두 권투를 배웠다. 당연히 빌리도 마을 체육관에서 권투 강습을 받는다. 근데 주먹을 휘두르는 폼이 영 익숙하지가 않다. 대신 체육관을 반으로 갈라 소녀들이 교육받는 발레에 관심을 보인다.

빌리가 토슈즈를 신고 플리에(Plie) 자세를 취하자 소녀들이 키득키득 웃어댄다. 이 정도 놀림쯤이야 견딜 만 하다. 문제는 남자들이다. 빌리가 발레를 배운다는 소식이 아빠와 형의 귀에 들어가자 수난이 시작된다. 아빠는 남자가 망신스럽게 무슨 발레냐며 빌리의 외출을 금지한다. 형은 정부의 탄광 폐쇄에 맞서 투쟁이 한창인데 춤이나 추고 자빠졌느냐며 쌍욕을 퍼부어댄다.

발레가 좋으면 남자라도 할 수 있는 거지, 라고 빌리는 생각하지만, 빌리를 둘러싼 환경은 그렇지가 않다. 빌리가 나고 자란 영국 북동부의 더럼(Durham)은 탄광으로 유명하다. 깊은 지하로 내려가 석탄을 캐는 일이 워낙 거칠다 보니 남성적인 규칙과 기운이 지배적인 곳이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집안에서는 법에 가깝고 이를 어긴다는 건 곧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남성적인 환경에서 남자들은 전통적으로 권투를 배우면서 샌드백을 두드린다.

하지만 빌리는 사람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권투보다 아름답게 몸의 곡선을 뽐낼 수 있는 발레에 더 마음이 간다. 위압적인 샌드백을 상대로 물리적인 힘을 과시하기보다 수평의 발레 바에 몸을 맡겨 리듬을 타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그러니까, <빌리 엘리어트>는 수직적인 환경에서 수평적인 관계를 꿈꾸는 아이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권투의 샌드백과 발레의 바와 같은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가 서로 힘겨루기하는 방식으로 극이 진행된다.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은 1984년이다. 당시 영국은 보수당의 대처 총리가 집권하던 시대였다. 흔히 ‘대처리즘 Thatcherism’으로 불리는 이 시기에 영국은 경제개혁을 추진한답시고 복지를 위한 공공 지출을 삭감했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했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규제했다. 이에 가장 직격탄을 맞은 곳이 바로 더럼과 같은 탄광 지역이었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탄광 폐쇄가 줄을 잇자 일자리를 잃은 광부가 속출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진 이들은 일자리를 돌려달라며 투쟁에 나섰고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시위를 억압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더럼의 주민들은 남들처럼 먹고살게 해달라며 탄광 폐쇄 철회를 요구했지만, 대처의 보수 정부는 이를 못 들은 척 했다. 가난한 이들은 더욱 곤궁한 삶으로 몰고 잘 사는 사람은 더욱 부자로 만들며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겼다. 탄광에서의 고된 노동을 퇴근 후 펍에서의 맥주 한 잔으로 풀며 삶의 시소를 잔잔한 수평선으로 이끌었던 주민들에게 대처리즘은 평행 추를 절벽으로 기울인 폭력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할 크리스마스에 엘리어트 가족은 붕괴 일보 직전이다. 형은 투쟁에 나섰다가 구속된 상태고 생활비를 벌어오지 못하는 아빠는 벽난로에 불을 피우겠다며 살아생전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피아노를 부숴 땔감으로 이용한다. 탄광 일을 하지 못하니 이제 더는 살아갈 방도가, 아니 희망이 없다.

그렇지 않다. 크리스마스에는 기적이 존재하는 법이다. 계집아이나 하는 운동이라며 빌리를 몰아 세웠던 아빠는 막내아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화려한 발레 기술을 뽐내자 마음이 바뀐다. 발레만이 빌리를, 그의 기족을 삶의 절벽에서 구해줄 동아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즉시, 아빠는 투쟁을 멈추고 노동자 동료들의 비난을 감수하며 정부 직속의 탄광에서 최저 생활비를 받아 빌리의 발레 교습비로 충당한다. 마침 이 소식에 마음이 흔들린 더럼의 주민들 또한, 빌리가 런던의 로열발레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푼돈까지 모아 십시일반 한다.

대처리즘에 저항하는 약자들의 저항 혹은 생존법이라고 할까. 그제야 빌리는 아빠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고 형과 함께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이별을 아쉬워한다. 그동안 엘리어트 가문을 지배했던 상명하복의 문화는 사라진 지 오래다. 아빠와 형은 다시금 굳은 얼굴로 지하의 탄광으로 내려가지만, 과거와 다르게 견뎌낼 희망이 생겼다. 런던의 지상 무대에서 공중으로 화려하게 날아오를 빌리의 발레가 그것이다. 폭압적인 시대에도 살아갈 방법은 있다. 가족의 화합과 마을 주민들의 도움과 같은 연대다. 수직적인 지배 환경이 거셀수록 수평의 문화는 더욱 힘을 발하는 법이다. <빌리 엘리어트>가 단순히 빌리의 성공담을 넘어서는 이유다.

 

예스 24
(2017.1.5)